◈ 은혜 보다 법을 좋아하는 인간 ◈
인간은 선악의 법에 매여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눈만 뜨면 새로운 법을 만든다.
법을 만드는 이유는 그 법으로 자유를 얻고자 함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성경을 석장씩 보던 사람이 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과정에 식상함을 느끼고 어느 날부터 다섯장씩 읽기로 한다.
석장을 읽을 때 보다 두 장을 더 읽었다는 것에 왠지 기쁘다.
이렇게 되면 하루 다섯장씩 읽어야 하는 법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이 법에 가두이게 되면 그 때부터 다섯장을 미달하였을 때에는 법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 든다.
뭔가 하나님께 불충한 것 같은 생각에 들어 마음이 찜찜하다.
그래서 다짐한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성경 다섯장씩 읽는 것은 반드시 지키리라고,,,스스로 법에 종속됨을 선언한다.
그런데 옆에 하루에 성경을 석장씩 읽는 사람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났다는 자부심이 든다.
그런데 하루에 성경 열장 읽는 사람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 순간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함을 느끼고 결핍을 느낀다.
그래서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그 사람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 열 다섯장씩 읽겠다는 새로운 법을 만든다.
이것은 성경 읽기를 예로 든 것뿐이지 실상은 인간들의 모든 삶이 그러하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법이 윤리와 도덕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더 윤리적이고 더 도덕적이 되면 더 나은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더 윤리적이고 더 도덕적인 인간이 되고자 경주한다.
왜? 인간들은 법을 선호하는가?
이는 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법 지킴이 곧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법이 교회 안에 그대로 작동되고 있다.
교회에서 법을 가르치게 되면 법 지킴은 곧 힘이 된다.
교회에서 이것저것(주일성수, 십일조, 봉사, 전도,,,) 을 행하십시오 라는 법을 선포하면 법 지킨 것이 힘이 되므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보다 상대적인 강자가 된다.
법은 항상 인간의 행함을 근거로 힘을 얻기 때문에 교회는 점점 더 법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법을 강조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군중들이 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은혜는 평등이고 법은 차별이다. 인간은 평등보다 차별을 좋아한다.
군중들이 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법을 통하여서 자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법을 많이 지키면 지킬수록 그 사람의 발언권은 강해진다.
그만큼 자아가 확장된 증거이다.
인간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실상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법을 깨트리면서 다가오신다.
야곱이 장자권을 얻고자 함은 장자권이 곧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형의 장자권을 탐낸 것이다.
그러나 장자권을 얻는 순간 하나님은 그 힘을 무력화시키면서 다가오신다.
그래서 집에서 쫓겨나도록 하신다. 야곱이 집에서 쫓겨난 것은 죽은 것과 같다.
이제부터 하나님은 처절하리 만치 야곱이 힘이라고 여기는 것을 부수는 작업을 하신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있어 힘은 오직 하나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힘을 다 빼앗아 가시고 지팡이 하나만 달랑 주신다.
야곱에게 있어 지팡이는 하나님의 현현이다.
그래서 임종직전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요셉의 두 아들을 장자와 차자에게 어긋맞게 축복을 해 버린다.
이는 힘이란? 장자라는 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야곱과 같이 간섭하셔서 지팡이만 의지하도록 한다.
주여 어찌 그러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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