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강해

9강.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레 6:8-13절)

정낙원 2018. 5. 13. 16:20

9강.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레 6:8-13절)

 

레위 6:8-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9.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 하니라 번제물은 단 윗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11.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 갈 것이요 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13.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레위기 1장에서 5장까지는 백성들에게 5대 제사가 이런 것이라고 알려 주는 내용이고,

6장에서 7장은 제사를 직접 지내야 하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에게 고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어떤 자세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정한 법대로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백성은 직접 제사를 드릴 수가 없고 제사장만이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만 받으십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제사를 드릴 때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의 제물도 하나님이 정해주셨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도 하나님이 알려주셨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도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가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만나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이 정한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로 두신 것입니다.

알다시피 중보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럼 구약의 제사장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인간 제사장이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제사장인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는 일 속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를 모형과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럼 제사장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례들이 있는데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는, 번제단 위에는 항상 제물이 불에 타고 있어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태워야 합니다.

이는 번제단에는 항상 희생 제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상번제라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드려지는 상번제는 개개인이 드리는 개인의 제사가 아니고 제사장이 온 민족을 위하여서 드리는 민족적인 제사인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너희들이 살고 있는 그 바탕에는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살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번제단 위에 제물이 하루 종일 태워진다는 것은 백성들은 매일 매일 희생 제물의 죽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번제단에 하루 종일 희생제물을 태움으로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살고 있음이 희생 제물의 죽음 때문임을 알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막 안에서 입는 옷과 성막 바깥에 입는 옷이 다릅니다.

 

번제단에서 태워진 제물의 재는 진 바깥에 버려야 합니다.

이 때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입던 옷을 벗고 성막 밖에서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진 밖으로 나가서 재를 버려야 합니다.

 

왜 성막 안에서 입는 옷과 성막 바깥에 입는 옷을 다르게 할까요?

이것은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진 바깥은 저주 받은 곳을 상징합니다.

 

옷이란? 신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입을 옷을 거룩한 옷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옷은 거룩한 곳에서 입는 것입니다.

 

성막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에 들어와서 일을 할 때는 거룩한 옷을 입고서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옷이 그를 덮어서 거룩을 유지시켜 주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옷을 벗으면 여전히 죄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거룩 한 곳인 성막 밖에서는 거룩한 제사장 옷을 입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거룩케 하는 옷을 입고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도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으로서 거룩케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번제단의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번제단의 불은 제물을 태우는 불입니다.

하나님은 불에 태워지는 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시고 죄사함을 주십니다.

번제단에는 불과 제물이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불은 제물을 태우기 위함이고 제물은 불에 태움을 입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태워지지 않는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제물이 태워진다는 것은 완전한 소멸을 말합니다.

제물은 죄인을 대신하여 태워지는 것이므로 제물의 완전한 태워짐은 죄인의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제물을 태우는 번제단에 불이 꺼진다는 것은 희생 제물의 대속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제물이 불에 태워짐으로 속죄가 이루어지는데 만약에 불이 꺼져서 제물을 태울 수가 없다면 그 제사를 무효가 되고 맙니다.

 

제물이 불에 태워지지 않으면 온전한 제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물이 불에 태워지는 향기를 흠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날 것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제물을 태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도 불로 태움으로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습니다.

노아의 제사도 정결한 제물이 불에 태워짐으로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제사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태움으로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습니다.

 

제물이 불에 태워져서 향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제물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제물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불에 태움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번제단의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번제단에서 불에 태워지는 희생 제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이게 아침저녁으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살아가는 삶은 성도의 삶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희생제물의 죽음을 바탕으로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신앙의 행위는 예수님의 것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이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성도들 위에 임하신 것은 성령이 번제단의 제물로 죽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증거하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번제단의 불은 하늘로서 온 불입니다.

 

번제단의 불은 다른 불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불로 제물을 태워서는 안 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즉사 하였습니다.

 

다른 불이란? 인간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는 받지 않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는 인간의 의라는 다른 불로 하나님께 드리다가 죽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인간의 열심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이 빠진 행위는 다른 불로 드리는 것이 됩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하늘로서 온 불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성령의 열심으로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늘로서 온 불에는 하나님의 의가 담겨져 있고 인간의 불에는 인간의 의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만 받습니다.

 

성령은 성도를 제물로 사용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몸을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사용하십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예수님 십자가로 출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봉사하여야 하고 헌신하여야 하고 예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연보도 하고 구제도 하고 교제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이 빠진 것은 모두가 인간의 의가 드러나는 태워지지 않은 제물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상달 되지가 않습니다.

 

성령이 왜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이는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고자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안에서 깨닫게 해 주실 때 우리 안에 열심이 생깁니다.

 

열심이란? 뜨거움입니다.

 

성령이 일으키신 열심이 나를 삼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몸이 산 제물이 되어서 산 제사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일으킨 열심으로 행하는 것을 산 제사라고 하고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로 자세히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마음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뜨거움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늘에 불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자 내려가던 신앙이 올라가는 신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왜 성도의 몸을 성전으로 삼았나요?

성도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함입니다.

성도의 몸으로 성전의 기능을 하고자 함입니다.

 

성전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화목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아래로는 이웃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화목케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 할 때 성도의 몸이 산 제물로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산 자는 뜨겁고,

죽은 자는 차갑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살아 있는 자이고,

마음이 차가운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따뜻함은 생명을 자라게 하지만, 차가움은 생명을 죽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따듯하고, 법에 속한 사람은 차갑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번제단의 불이 타고 있는 것이고, 마음이 차가운 사람은 번제단의 불이 꺼져 있는 것입니다.

 

하늘로서 온 불인 성령은 사람을 따뜻하게 합니다.

성도는 성령의 뜨거움으로 자신을 제물로 태움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뜨거움으로 태워지는 성도의 헌신을 흠향하십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합니다.

 

산 자는 위로 올라가고, 죽은 자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산 자는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하고, 죽은 자는 내려가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올라가는 신앙을 살았다 하고, 내려가는 신앙을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의 교회 모습을 요한계시록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맨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다른 불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나는 부자라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것으로 자족하고 자긍하고 자만하고 자랑하고 자위하고 자고하며 자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열심으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자기 의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문밖에 쫓겨나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열심을 내라 회개 하라고 합니다.

인간의 불을 버리고 하늘의 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으로 하지 말고 성령으로 열심으로 하라고 합니다.

인간의 열심으로 하니까 자아도취에 빠져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교만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약을 사서 발라서 네 꼬라지를 보라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그런 신앙은 없다고 합니다.

 

성경 어디에 인간의 열심과 의로 나오라고 한 적이 있느냐?

없지 않느냐?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말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는 버리고 인간의 의로 치장하고 있지 않느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돌이키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열심을 내라고 합니다.

성령의 열심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뜨거움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차가움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차가운 자를 일컬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고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내 안에 불은 꺼지지 않았는지,

내 안에 불은 하늘로서 온 성령의 열심이라는 불인지,

아니면 땅에서 난 인간의 열심이라는 불인지,

 

땅에 불인 인간의 열심은 금새 꺼져 버리지만,

하늘로서 온 불인 성령의 열심은 영원토록 지속이 됩니다.

실제로 번제단의 불은 바벨론에 의하여 성전이 불타고 멸망당하기 전까지 1000년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고 제단에서 제물을 태웠습니다.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사라진 불을 예수님이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하늘의 불을 성령이 우리 안에 가지고 와서 지펴 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 주십니다.

일을 시작 하신 이가 끝날 까지 우리 안에서 이루실 것입니다.

주의 열심이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불은 모든 것을 살게 하는 에너지이고 생명입니다.

 

나는,

산 자인가요?

죽은 자인가요?

 

손발이 움직여지면 산 자이고,

손발이 움직여지지 않으면 죽은 자입니다.

 

행함이 있으면 산 믿음이고,

행함이 없으면 죽은 것이고 귀신의 믿음인 것입니다.

삶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고 귀신의 신앙인 것입니다.

 

산 자에게는 향기가 나고, 죽은 자에게는 악취가 납니다.

산 자에게는 감사와 찬송이 나오고, 죽은 자에게는 불평과 정죄와 미움이 나옵니다.

 

예수는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머리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는 온 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지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