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49강. 음녀가 거래하는 상품들 (계 18:1-24)

정낙원 2016. 10. 22. 20:26

49강. 음녀가 거래하는 상품들 (계 18:1-24)

 

18:1-2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음녀는 종말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이는 세상 것으로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음녀들이 각종 상품들을 사고팔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 때 구약 교회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때 교회의 모습이 어떠했나요?

장터와 같고 강도의 굴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다 내어 쫓아 버리고 강도의 굴혈이 된 성전에 더 마물 수가 없어서 나와 버립니다.

그리고 성전의 멸망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 모습은 재림 때 음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음녀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다 찾아내시고는 음녀를 멸망을 시켜버립니다.

초림은 재림의 그림자에요.

 

영적 상태는 어느 시대나 동일해요.

이는 어느 시대나 죄는 동일하게 역사를 하고 어느 시대나 인간들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음녀가 행하는 일들도 과거 조상들이 해 오던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이야기는 온 인류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교회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서 신약 교회를 세우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져 오자 신약 교회가 또다시 구약 교회처럼 강도의 굴혈이 되고 말았어요.

이를 오늘 본문에서는 상고들이 각종 상품을 사고파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상고란? 장사꾼을 말해요.

그런데 이 상고들을 일컬어 땅의 왕족들이라고 합니다.

땅의 왕이 누구인가요?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에요.

거짓 목사들입니다.

이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영혼을 사고파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고 판다는 말은 서로 매매하고 있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 파는 자가 있고 사는 자가 있는 겁니다.

목사는 팔고 교인들은 삽니다.

무얼 팔고, 무얼 삽니까?

 

목사와 교인 간에 매매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구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구하는 게 뭔가요?

세상에서 잘 되고자 하는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음녀에게 속한 목사들은 그 복을 주겠다고 합니다.

 

목사는 복을 주는 입장이고,

교인들은 복을 받는 입장입니다.

이러면 거래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치르는 값은 종교적인 행위로서 전도와 충성과 봉사와 헌금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상고들이 파는 품목들이 있어요.

 

12-13.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거래되는 상품들은 모두가 그 당시 로마의 귀족들 간에 매매가 되던 귀한 물건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 로마를 은유적으로 바벨론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큰 음녀의 이름을 바벨론이라고 하였어요.

큰 음녀를 의인화하면 적그리스도이고 장소적 의미로 말하면 적그리스도가 거하는 본산이에요.

 

그러니까 음녀가 거래하는 물품들은 모두가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있는 타락한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각양의 종교적인 일들인 것입니다.

영적 의미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도 보리 한 움큼을 위하여 영혼을 사고 팔았어요.

그래서 음녀의 상품의 품목 속에 사람의 영혼들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종말의 타락한 교회가 사람의 영혼들을 사고 파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중세 로마 카토릭이 면죄부를 팔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종말의 타락한 교회인 음녀를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처소를 직역하면 무당의 집이라는 뜻이에요.

무당이 무슨 일을 하는가요?

복체(卜褅)를 받고 길흉화복을 점쳐주잖아요.

음녀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황이 없는 것은 종교 장사에요.

이방 종교야 세상에 속한 것이니까 세상의 복을 가지고 장사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교회는 하늘에 속한 것이므로 이 땅의 것을 복으로 장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큰 음녀와 땅의 음녀들은 세상의 복을 주겠다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가 우리는 하늘에 속한 교회가 아니고 이 세상에 속한 마귀의 집단이라고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어요.

술 집 숫자 만큼이나 많은 교회가 유흥가처럼 음녀가 되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어요.

교회마다 백화점식으로 각양의 종교 상품들을 진열해 놓고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말씀을 찾아서 돈을 주고 사면 되는 것입니다.

 

기적을 원하고 신비로운 것이 필요하면 신비주의 교회로 가면 되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세상 복이 필요하면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교회로 가면 되고,

바른 세상을 만들고 싶은 정의감에 불타면 정의 사회를 구현하고자 데모하는 교회로 가면 됩니다.

 

이 시대는 교회마다 각양의 말씀들이 있어요.

십인십색이라 하듯이 목사들마다 말씀들이 다 달라요.

교인들은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듯이 돈만 내면 얼마든지 자기가 듣고자 하는 각양의 말씀들을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가 있어요.

 

이러한 모습들이 지금 우리 주변의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고 있어요.

땅에 속한 목사들은 교회에 충성하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교인들은 그 말을 믿고 기도와 전도와 예배와 헌금과 봉사와 충성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순수하게 구원받음에 감사로 행하여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거짓 종들은 복을 따내는 수단으로 전락을 시켜 놓았어요.

신과 거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행위들이 거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교회에서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이건 절간에서나 쓰는 용어들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것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회자 되고 있어요.

충성해서 복 받으라는 말이나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말은 같아요.

그 본질은 똑 같아요.

 

복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복이라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어지는 모든 것들은 복이고 은혜에요.

구원이나 믿음이나 은혜와 같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에요.

하늘에 복은 성도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거짓 종들은 이러한 것을 우리의 열심과 충성으로 얻어 내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하나님은 충성한다고 복을 주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 시대 타락한 교회에서 증거되는 말씀들을 보면 교회에 충성하면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은혜가 법으로 변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이방 신을 섬기는 모습들입니다.

이방 신은 법으로 다스리는 신이에요.

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댓가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상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 신앙은 인간들의 정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지성이면 감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요구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기를 바라세요.

이것이 깨달아지면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행하는 헌신은 무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성도가 행하는 신앙은 거래가 아니고 감사인 것입니다.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여러 가지 신앙 행위로 토해내는 것이므로 복을 받은 것에 대한 반응이지 복을 받고자 하는 거래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교회인 음녀는 교인들의 행위를 복을 따내는 수단으로 전락시켜 놓았어요.

그래서 음녀에게 빌붙어서 땅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을 상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종교 장사하는 상고를 땅에 왕족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들이 행하던 일이에요.

대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을 독점적으로 합법화하여서 돈을 바꾸는 환전소를 설치하고 제사에 드려지는 짐승들을 팔았어요.

여기서 막대한 이익금을 챙겼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을 뒤엎어버린 것입니다.

이건 성전이 아니고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면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어버리고 비둘기파는 자들을 내어 쫓은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을 장사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였어요.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 종말의 교회들이 그러고 있어요.

구약의 유대교가 한 짓을 그대로 이 시대 교회들이 반복하여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타락한 교회인 음녀가 장사꾼들이 우굴거리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고파는 소굴이 되어 버렸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초림 때 종교 지도자들이 종교적인 행위들을 가지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듯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거짓 목사들이 기복주의 신비주의 거짓 신앙으로 교인들의 수중에 있는 돈을 갈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말이에요.

 

어느 시대이고 영적인 것은 동일해요.

이는 죄가 어느 시대이고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어느 시대이고 동일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대를 초월하여서 종교적인 것들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만물 속에는 새 것이 없다고 하였어요.

지금 나타나는 것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던 것들이라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행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하여 순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어느 시대이고 인간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인간들이 낳은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퀴벌레가 바퀴벌레를 낳듯이,

죄인도 죄인을 낳습니다.

그래서 인간들도 자기 조상들이 하던 짓들을 그대로 반복하여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일들도 일 년 주기로 세상이 돌아가듯이 반복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이미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하던 일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마귀는 항상 교회를 타락케 하였어요.

무엇으로 타락케 하였는가 하면 떡으로 하였어요.

백성들은 늘 떡에 미혹 당하였어요.

 

인간은 떡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떡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떡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떡으로 인하여 신앙의 타락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소속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세계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떡으로 사는 세계인 애굽에서 빼내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광야로 끄집어내는 구원을 하신 겁니다.

 

광야에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면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광야에 나와서도 애굽의 떡을 쫓아갔어요.

떡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떡이 있는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어요.

이게 타락이에요.

 

교회의 타락은 항상 떡에 가치를 추구하면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에서는 666으로 나타납니다.

666은 한마디로 하면 떡이에요.

떡에 가치로 살면 666을 받은 것과 같아요.

 

신자는 말씀의 가치로 살기 때문에 666을 받지 않아요.

이 말은 신자는 떡을 먹지 않고 말씀만 먹고 산다는 뜻이 아니에요.

떡을 안 먹어도 산다는 말이 아니에요.

 

살아가는 의미를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산다는 뜻입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하나님 언약에 둔다면 이 땅에서 떡으로 인하여 고난이 따른다 할지라도 이겨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이에요.

 

떡에 가치로 사는 사람은 떡이 없으면 죽어요.

그들에게는 떡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사람들은 말씀을 버리고 떡을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에서의 계열이에요.

 

에서는 장자권에는 관심이 없고 떡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에서에게 있어 삶에 의미는 떡이었어요.

그러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린 것입니다.

에서에게 장자권의 가치는 팥죽 한 그릇 만도 못한 것이었어요.

 

성경은 에서의 이러한 행동을 망령되다고 합니다.

망령되다는 말은 우상 숭배자라는 말입니다.

귀신을 섬기고 사는 자라는 뜻과 같아요.

음녀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야곱이 있고 에서가 있어요.

그런데 에서의 계통이 힘이 강해요.

힘이 없는 야곱의 계통은 항상 밀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시대 교회 안에는 돈 가진 자들은 왕 노릇하고 돈 없는 자들은 하인 취급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자가 교회 안에서도 부자로 행세하고,

세상에 가난 한 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가난한 자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는 돈에 가치로 우열과 서열이 정해지고 있어요.

 

교회가 세상 가치로 엄몰되어서 믿음의 법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믿음이 좋고 복 받은 자로 인정받고, 가난하고 실패하면 믿음 없는 자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떡의 가치로 판단이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교회의 타락은 떡으로부터 일어났어요.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로 보여주었어요.

부요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반대로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을 찾았어요.

 

이 시대 교회의 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의 부요 때문입니다.

교회가 돈 맛을 알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어요.

하나님을 힘으로 삼지 않고 돈을 힘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믿음 있는 사람 보다 돈 있는 자들을 교회의 중직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세상 것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물량적 가치로 경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여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녀의 모습을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사치하고 연락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왕 노릇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세상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어요.

하지만 이 시대 거짓 목사들은 바울이 버린 배설물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버렸습니다.

교회마다 바울이 버린 배설물을 많이 소유한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교회로 둔갑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뱀의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녀를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떡을 주겠다고 하였어요.

자기에게 절만 하면 세상의 부귀영화와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했어요.

그것도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마귀가 세상에 내어놓은 하나님 아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성공한 자에요.

세상의 떡을 많이 가진 자에요.

마귀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하늘에서 타는 별이 물 샘에 떨어져서 사람들에게 쑥물을 먹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별은 하늘에 떠 있어야 해요.

그런데 땅으로 떨어졌어요.

이는 목사가 땅의 가치로 타락한 것을 말합니다.

이들이 강단에서 쑥물을 먹이고 있어요.

뱀의 말을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서 성공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땅에 속한 자들이 따릅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니라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곳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사고팔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타락이에요.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자 땅을 저주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였어요.

저주받은 이 세상이 지옥이에요.

하나님은 뱀과 함께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지옥으로 내어 쫓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일컬어 지옥의 사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흙이란? 육을 말하고 이 세상을 말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뱀에게 이 세상을 넘겨준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이 세상은 자기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므로 누구든지 나에게 절을 하면 다 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저주받은 이 세상을 넘겨주고서 이 세상 것으로 땅에 속한 자들을 땅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뱀과 거짓 선지자는 소속이 같아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을 일컬어 땅에서 올라온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떡에 가치로 사는 교인들을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666표를 주어서 짐승을 따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마귀는 항상 떡으로 미혹했어요.

그럼 땅에 속한 자들은 떡을 주는 자를 따르게 되어 있어요.

 

666은 우리가 의지적으로 받아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싸움이 아니에요.

이는 육과 영의 존재 양식에 관한 문제에요.

떡에 가치로 사는 자는 반드시 받게 되어 있고,

하나님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는 안 받게 되어 있어요.

 

떡과 하나님 말씀은 먹어야 하는 양식입니다.

떡은 육신의 양식이고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에요.

떡은 땅에서 난 사람인 육신이 먹어야 하는 양식이고,

하나님 말씀은 하늘로서 난 성도들이 먹어야 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각자 먹을 양식이 달라요.

하나님이 창조시에 각자 먹을 양식을 따로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먹으라고 하신 양식은 바꿀 수가 없어요.

 

하늘에 속한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땅에 속한 자들은 떡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떡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떡을 쫓아가고,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전부인 사람은 떡을 쫓아가게 되어 있고,

하늘로부터 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가게 되어 있어요.

양식은 각자의 생명에 대한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어요.

 

무엇을 쫓아가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디에서 난 자인지 그 근본을 알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의 삶에 모습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하늘에 속한 자이고, 누가 땅에 속한 자인지를 구별하고자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666으로 시험하게 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에서의 계열과 야곱의 계열이 있어요.

야곱과 같이 영에 속한 자는 장자권을 얻고자 떡을 버렸고,

에서와 같이 육에 속한 자는 떡을 얻고자 장자권을 버려요.

 

장자권은 구원과 같아요.

야곱의 계열에 속한 자는 세상에 먹고 사는 문제보다 구원의 문제가 더 중요하였고,

에서의 계열에 속한 자는 구원보다 세상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쉬운 말로 야곱과 같이 구원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고,

에서와 같이 유기된 자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감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음녀에게서 나오는 자들이 있고 음녀에게 빌붙어서 사는 자들이 있어요.

음녀에게 빌붙어서 사는 자들을 땅에서 왕 노릇하는 상고들이라고 합니다.

상고란? 장사꾼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해요.

교회를 이용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사고파는 물품이 뭔가요?

종교 상품입니다.

즉 교인들의 신앙 행위입니다.

목사들은 교회에 충성하면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고 하고,

교인들은 충성과 봉사와 헌금이라는 복채를 내고 그 복을 따내고자 하는 겁니다.

이러면 거래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떡을 신으로 여기고 사는 목사들이 어떤 신앙을 가르치겠습니까?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속주의 신앙입니다.

음녀 교회는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산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하늘에 말씀을 가지고 땅에 말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영혼이 사냥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녀가 사고파는 물품 중에 사람의 영혼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음녀가 파는 물품들은 모두가 교인들이 행하는 종교적인 일들이에요.

그래서 음녀가 사고파는 물품들이 대부분 성막에서 사용하는 것들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누구 화상이 그려져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가이사의 화상이냐!

하나님의 화상이냐!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으면 가이사가 그 사람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의 화상이 그려져 있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주인입니다.

가이사는 세상 신이고 하나님은 하늘의 신이에요.

 

가이사는 떡을 주고,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 가이사가 그려진 사람은 에서처럼 말씀(장자권)을 버리고 떡을 쫓아가게 되고,

하나님이 그려진 사람은 야곱처럼 떡을 버리고 말씀(장자권)을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광야로 빼냈습니다.

떡으로 살던 구조에서, 말씀으로 사는 구조로 빼냈어요.

광야에 나오자 하늘에 말씀을 상징하는 만나를 주십니다.

만나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양식이에요.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해요.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자들에게 하늘에 만나를 주신 것은 너희들은 하늘에 속한 백성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애굽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존재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은 세상의 떡으로 살지만 하늘에 사람들은 하늘에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타락은 말씀으로 살지 않고 떡으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떡에 가치로 살고자 하는 애굽에서 나온 1 세대들을 다 죽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건 우리 옛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아요.

우리 옛 사람은 떡의 가치로 살고자 해요.

그래서 성령은 날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밭을 하나 샀어요.

그 밭의 이름을 아겔다마 라고 하는데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에요.

그 피 밭을 나그네들의 무덤으로 삼았어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피 밭은 교회를 상징해요.

교회는 하늘나라 나그네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에요.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 하늘나라 백성들은 교회에 와서 하늘에 소식을 듣고 이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묻어야 해요.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하였어요.

 

타락이란? 구원의 목적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그냥 두면 안 되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목적에서 이탈한 음녀의 멸망을 가지고 이 세상의 멸망을 동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창조주의 필요에 의하여서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였어요.

언약이 완성되면 만물은 폐기가 되어요.

그러므로 이 세상이라는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에요.

유한해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창조로 시작하여 멸망으로 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어요.

 

히브리서 1장을 봅시다.

 

1:10-12.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고 하늘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 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지를 멸망할 것으로 창조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옷처럼 낡아진다고 합니다.

 

낡아진다는 말은 서서히 부패해진다는 뜻입니다.

쉬운 말로 천지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싱싱하고 좋았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낡아지고 고장이 나서 결국은 폐기처분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한 것이에요.

정한 때가 되면 유통기한이 다 되어서 밧데리가 방전이 되듯이 죽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작할 때는 시작의 모습이 있고,

멸망할 때는 멸망 할 모습이 있습니다.

시작은 생명이 풍성하지만 끝은 생명이 쇠잔해집니다.

 

교회의 시작과 끝도 이와 같아요.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초대 교회는 천국의 모습처럼 가진 자와 없는 자 간에 차별이 없이 유무상통하면서 세워졌어요.

그런데 천국과 같은 모습으로 시작한 초대 교회가 종말에는 장사꾼들이 우굴거리는 강도의 굴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음녀의 멸망을 통해서 교회와 세상의 멸망을 동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끝을 내야 하기 때문에 타락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멸망시킬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의 수명이 다하였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이제는 더 두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타락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언약은 시작 할 때가 있고, 마칠 때가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때가 있고, 열매를 거둘 때가 있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은 이 세상에다가 그 언약을 이루어가십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재림으로 교회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세상은 교회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도가 다하였기 때문에 폐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세상에서 뽑아내시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권념하셨다고 합니다.

 

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언약을 기억하사 권념하셨다는 말은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완성하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이 어떤 내용인가요?

자기 백성들이 이방 나라에서 400년 동안 객으로 종노릇 하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애굽에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기근을 들게 하여서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곤 400년이 차매 애굽에서 빼내신 것입니다.

애굽은 용도가 다하였기 때문에 멸망을 시킨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두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이방 나라로 내려가는 것이 있고,

둘째는, 이방 나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400년 동안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때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된 것은 아브라함 언약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이 종살이를 청산하고 해방되는 때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제 그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권념하셨다고 합니다.

 

이건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율법 아래서 종살이 할 때가 있고,

율법에서 해방이 될 때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봅시다.

 

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바울은 성도의 구원을 종에서 아들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래 아들인데 하나님께서 정한 시기까지 종으로 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인하여 종에서 해방이 되고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이건 마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정한 기간까지 애굽에서 종노릇하게 하였다가, 때가 차매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구원이 뭐냐?

종에서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걸 아들의 명분을 얻었다고 합니다.

원래 아들인데 잠시동안 종 아래 두었다가 때가 차매 아들의 영을 보내주어서 본래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아들에 영을 받고 보니까 내가 종이 아니고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구약 이스라엘을 가지고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도 이처럼 구원의 서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율법 아래서 은혜 아래로 옮겨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때가 차매 옮겨진 것입니다.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정하셨어요.

 

만물도 그러합니다.

언약이 씨처럼 싹을 내고 자라서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이 있듯이 만물도 언약의 때에 따라서 진행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듯이 하나님도 이 세상에 언약의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고 완성시켜 나가십니다.

 

이제 그 완성의 때가 다다랐다는 뜻입니다.

종말의 타락된 모습으로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지구나 사람이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능이 저하되고 폐기 처분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 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의 종말을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종말에는 노아의 때와 같은 영적 상태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노아의 때가 어떠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노아 시대 세상이 어떠하였기에 하나님이 심판을 하셨을까요?

 

창세가 6장을 봅시다.

 

6:1-8.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때를 사람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를 시작할 때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의 수가 많아진다는 뜻도 있지만,

인간의 문명이 절정을 이룰 때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 시대 과학이 신의 경지를 침범할 지경으로 발달하였다고도 할 수가 있어요.

 

다니엘의 말을 빌리면 종말에는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한다고 하였어요.

지식이 더한다는 말은 최고조라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들의 지혜가 최고조에 달하는 때를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러한 때입니다.

상징적으로 인간들이 과학의 힘으로 우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본 모습은 어떤가요?

죄악이 관영한 때라고 합니다.

관영이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꽉 찼다는 뜻입니다.

이는 세상 모든 곳이 다 타락을 하여서 성한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시대 사회 현상론적으로 보면 썩지 아니한 곳이 없어요.

사람도 썩고 만물도 섞었어요.

지구도 수명을 다해가고 있어요.

 

세계 곳곳에 이상 징후들을 보이는 것은 지구가 많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몸에 이상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아프듯이,

지구도 늙고 병들어서 아프다는 것을 천재지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애 속한 것은 모두가 끝을 향하여 달음질하고 있어요.

사람으로 말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데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도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이에요.

인간이 짐승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시대 사람들을 일컬어 분노 조절을 상실한 괴물이라고 합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죄인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짐승이 되어요.

죄인 속에는 각양의 죽음의 무기들이 담겨 있어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분냄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생각과 같은 것들이 가득해요.

이것이 종말에는 그대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죽으면 괄약근이 풀려서 똥을 쏟아내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 욱 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묻지마 식으로 살인하는 일들이 온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무서운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동물은 대접을 받고 인간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이 짐승보다 못한 시대에요.

떡에 가치가 팽배한 시대에 자기 배를 위하여서는 남을 해치고 있어요.

내 입에 떡을 넣고자 남을 죽이는 시대에요.

이게 떡으로 사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지금이 그러한 때에요.

 

노아 시대에 얼마나 타락했으면 하나님이 사람 지음을 한탄하셨다고 할까요?

한탄하셨다는 말을 의역하면 속이 상해서 후회한다는 말과도 같아요.

이건 우리가 자식들이 속을 썩이면 “어휴 내가 저걸 왜 낳았을까” 라고 비통해하면서 자식 낳은 것을 후회하고 탄식하는 것과 같아요.

 

얼마나 패역하였기에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할 지경까지 이르렀을까요?

이는 하나님이 바라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죄를 일컬어 과녁에서 빗나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과 빗나갔나요?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사람의 딸들과 혼인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아야 할 대목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발로 차버렸다는 말과 같아요.

이 말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앞날을 내다보고서 예언을 할 때 쓴 말입니다.

 

신명기 32장을 봅시다.

 

32:15-18.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여수룬이 살찌매 하나님을 발로 찼다고 합니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을 말해요.

이스라엘이 먹고 배가 부르니까 하나님을 버렸어요.

 

어떻게 하나님을 버리고 발로 찼는가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으로 반역한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고 발로 차버린 것과 같아요.

구약에서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음행이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런 자를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아요.

이걸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한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을 말하고, 사람의 딸은 가인의 후손을 말해요.

 

아담은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을 낳았어요.

가인과 아벨은 형제이면서 원수에요.

가인과 아벨은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로 보여주었어요.

가인은 육에 속한 자를 상징하고, 아벨은 영에 속한 자를 상징합니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각각 자기들 방식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어요.

가인은 땅에 소산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았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둘 다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 방식으로 섬겼어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둘 다 예수를 믿는데 각자 마음이 다른 겁니다.

한 사람은 떡을 위하여 예수를 따르고,

한 사람은 말씀을 위하여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암튼 가인과 아벨은 각자의 제물로 제사를 드렸어요.

이들이 바친 제물 속에 이들의 본질이 담겨 있어요.

가인은 땅에 소산물로 제사를 드렸으므로 땅에 속한 자를 상징하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으니 하늘에 속한 자를 상징합니다.

아벨이 바친 양은 하늘에 속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어요.

이는 아벨은 옳고 가인은 틀렸다는 뜻입니다.

이에 가인이 분노가 가득해서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겁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죽인 거에요.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아벨에게 쏟아부은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오면 마귀가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죽음을 대신하여서 셋을 주었어요.

 

셋은 아벨을 대신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이 죽은 자리에 셋을 주신 것입니다.

셋이 자식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에노스’ 라고 합니다.

이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에노스’ 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누가 사람이냐?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자식인 셋이 낳은 자식들을 말합니다.

“셋” 이라는 말은 “대신 주셨다”는 뜻이에요.

아벨 대신 주신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아벨은 예수님을 상징해요.

아벨의 죽음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서 그 형제들로부터 죽임당한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님은 내가 가면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시고 보내주신 다른 보혜사는 성령이에요.

그럼 성령이 예수님을 대신하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예수님은 아벨과 같고, 성령은 셋과 같아집니다.

‘셋’이 낳은 아들이 ‘에노스’인데 이는 곧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을 말합니다.

‘셋’이 낳은 ‘에노스’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듯이,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에노스’의 뜻이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바로 ‘에노스’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왜 셋이 낳은 자식을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에노스’ 라고 하였나요?

이는 셋의 계통이 바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벨이 죽자 하나님은 가인과 셋을 인류의 대표로 두신 겁니다.

이제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이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가인의 방식으로 땅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셋의 후손들은 셋의 방식으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들은 땅에 충만해져 갔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해 가면서 둘 다 자기의 세계를 넓혀갑니다.

그리하여 노아의 때까지 온 것입니다.

 

이 둘은 노아의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로 나타납니다.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의 좋아하는 대로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이 시대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요.

이를 간음이라고 하였어요.

 

결혼이란? 둘이 한 몸 되는 것입니다.

한 몸은 같은 종자끼리만 가능해요.

사람과 사람이 결혼을 하여야 사람을 낳습니다.

사람과 짐승이 결혼하면 이종교배가 되어서 순수혈통이 아닌 괴물을 낳게 되어요.

이걸 타락이라고 합니다.

 

율법에 짐승과 교합하지 말라고 합니다.

문자적 의미로는 짐승과 교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영적으로 짐승이에요.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영적으로 사람입니다.

가인의 후손은 이방인입니다.

영적으로 짐승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 셋의 후손이 가인의 후손과 결혼을 합니다.

이걸 타락이라고 하고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인 가인의 후손들과 결혼을 할까요?

이는 가인의 후손들에게는 떡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땅에 소산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땅에 소산물로 살아가는 가인의 후손들을 양을 치면서 살아가는 셋의 후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에요.

 

가인의 후손은 떡으로 사는 자들이고,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셋의 후손들에게는,

떡으로 살아가는 가인의 후손들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딸들 중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난 자들이 바로 네피림이에요.

거인족으로 거대한 용사들인 것입니다.

이종교배로 태어난 괴물들인 것입니다.

 

네피림이란? ‘큰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이는 이 땅에서 큰 자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큰 자라는 말은 땅의 것을 많이 소유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힘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네피림이고 용사들이에요.

네피림은 겉은 사람인데 그 속은 짐승인 것입니다.

 

이 시대로 말하면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마귀를 섬기는 자들이에요.

교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떡으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

입술로는 천국을 말하지만 몸은 땅이 기운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교회인데 속은 절간인 것입니다.

 

교회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부터 교인들은 상품으로 전락해 버렸어요.

목사들이 교인들을 돈으로 보기 시작하였어요.

세속적 가치로 세워진 교회에서의 교인들은 돈 내는 기계에요.

교회를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돈 많은 교인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돈 가진 자들을 교회 안에 직분자로 세워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속적 가치로 세워진 교회는 믿음으로 척도를 삼지 않고 돈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자는 복 받은 자로 여김을 받고, 돈 없는 자는 복을 받지 못한 자로 취급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세속적 교회인가?

돈의 가치로 세워진 교회인 것입니다.

돈으로 교회 안의 직분을 매관매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면서 하늘의 말씀이 땅의 말로 전락하게 되었어요.

교인들의 신앙 행위들이 상품화 되어서 진열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누구는 이렇게 하여서 복을 받았다는 식의 간증들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증들은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여서 신앙을 자기 유익을 얻는 데 이용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나도 저 사람처럼 성공하고 싶어서 그가 행한 방법론을 쫓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육적 목사들은 교묘하게 이용하는 겁니다.

교인들의 종교 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일수록 세상적으로 가진 자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로 교인들의 신앙이 매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돈 있는 자는 장로나 권사가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제외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의 장로와 권사라는 직분이 매매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에요.

돈입니다.

돈을 내야 교회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도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교회의 중직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요.

돈 없는 사람은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해요.

이 시대 대부분의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믿음의 법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돈의 법으로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서는 음녀라고 합니다.

음녀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떡을 바꿔 먹는 자를 말합니다.

교회를 떡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바로 음녀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에서는 세상과 짝하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였어요.

지금 교회가 세상 가치에 푹 빠져서 간음하고 있어요.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떡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음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노아의 때처럼 되고 말았어요.

물질의 풍요가 교인들로 하여금 떡의 가치를 쫓게 만들었어요.

 

음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짝해서 세상 것에 취하여서 살고 있어요.

세상의 사치와 연락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음녀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없어요.

오로지 이 땅의 부귀영화뿐입니다.

이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포도주는 포도주인데 음행케 하는 포도주 라고 합니다.

 

포도주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음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땅의 것을 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하늘에 말씀을 땅의 것으로 해석해요.

하늘에 신령한 복을 땅의 복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음녀는 교인들에게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 것을 많이 가진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이러한 가르침이 진리인 줄 알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 하늘을 지향하지 않고 땅을 지향하면 행음하는 것이 되어요.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타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쫓지 않고 떡을 쫓아가면 타락이에요.

 

신명기 8장을 봅시다.

 

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설교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을 결산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광야 40년을 걷게 한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빼내서 교회로 불러들인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 안에서 광야 40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율법을 통해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침을 받았어요.

신약의 이면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은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또한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라는 것을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시내산 위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있어요.

교회는 시내 산 위의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가지고 시내 산 위를 보게 하였어요.

그럼 교회도 교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보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영광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의 존재 목적이에요.

 

이에서 벗어나면 타락입니다.

교회가 떡을 쫓아가면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같아요.

신자가 세상 가치를 추구하면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행음하는 것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관심사나 교인들의 마음이 세상 가치를 추구하고 떡을 쫓아가면 그곳이 바로 귀신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세요.

항상 부요로 인한 부패와 타락으로 망했어요.

적과 싸울 때는 타락하지 않아요.

그 때는 죽느냐 사느냐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육신의 쾌락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어요.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부요해지면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육체의 쾌락을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신앙도 쾌락주의로 흐르게 되어 있어요.

가치관이 땅의 것을 쫓아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육신에게 유익한 쪽으로 도적질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지고 인간은 부요하면 반드시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경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가 어떻게 망했나요?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모든 전쟁에서 이기고 평안해지면서 내부적인 타락이 시작 되었어요.

 

예수님 당시의 로마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어요.

그 로마를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음녀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부요와 사치가 로마를 타락케 하였듯이 큰 음녀와 그를 따르는 땅의 음녀들도 부요와 사치로 인하여 치부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왜 교회는 핍박받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음녀는 풍요로움으로 세상에서 연락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요?

이는 교회는 하늘에 속하였고, 음녀는 땅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교회에게는 땅의 것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어요.

성도는 땅에 기업이 없어요.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행인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몸뚱이는 땅의 기운으로 살고자 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러한 체질을 잘 아세요.

그래서 우리의 원함대로 인도하지 않고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가나안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가나안 7족속들이 살고 있어요.

이름하여 우리 옛 사람인 것입니다.

이 놈이 거인족과 같아요.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여도 자기 몸뚱이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스스로 물질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고난 속에 던져서 물질을 쫓아가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물질을 버리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치워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기 백성 사랑법입니다.

그 사랑이 강권하여서 우리로 하여금 떡을 쫓지 말고 말씀을 쫓아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떡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떡을 의지하지 못하는 구조 속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사랑이에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은 역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사랑은 육에 속한 사람들은 몰라요.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영에 속한 성도들만 알아요.

그래서 하늘에 속한 성도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고 실패 속에서도 낙망치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약 교회의 멸망과 같이 음녀로 변한 신약의 교회도 멸망을 시킬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어찌 피하겠느냐 라고 저주하신 것처럼 종말에도 귀신의 처소가 된 음녀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일순간에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를 맷돌이 바다에 빠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뜨인돌처럼 오셔서 세상의 근본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멸망을 무엇으로 말하고 있나요?

땅의 상고들이 탐하던 과실들이 떠난 것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땅에 속한 거짓 목사들이 탐하던 과실들이 누구인가요?

돈 많은 교인들이에요.

 

어떻게 상고들이 탐하던 괴실들을 떠나게 하는가요?

이는 예수님이 오셔서 강도 노릇을 하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의 실체를 고발하고 교회의 타락상을 폭로 하여서 교회에서 빼내신 것과 같이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도의 굴혈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셨듯이,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예수님처럼 음녀의 실상을 고발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손으로부터 빼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음녀를 고발하면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음녀들이 탐하던 것들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계시록 11장을 보면 두 증인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두 증인들에게 먼저 작은 책을 먹입니다.

작은 책이란 영원한 복음입니다.

 

영원한 복음이란? 하늘에 복음이란 말입니다.

두증인들은 하늘에 말씀으로 음녀에게 가서 땅에 거하는 자들과 싸웁니다.

이때 두 증인들은 엘리야의 심정으로 일을 합니다.

두 증인들이 엘리야의 심정으로 교회로 간다는 것은 종말의 교회가 아합 왕 시절의 이스라엘처럼 바알을 쫓고 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갈멜 산에서 이기고 기손 시내에서 다 죽였듯이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하늘에 권세를 가지고 거짓 선지자들이 입을 막아 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수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음녀의 멸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초림 때 왜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발악을 하였나요?

이는 예수님이 그들의 종교적 허상을 폭로하고 악을 고발하니까 그런 겁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떠나 예수를 쫓으니까 자기들 밥줄이 끊어지니까 발악을 한 것입니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고자 말이에요.

 

그들에게는 사람의 머리가 곧 돈이었어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얻기 위하여 외식으로 경건을 위장한 것입니다.

 

이 시대 기복주의를 쫓아가는 목사들에게는 교인들은 자기 호주머니의 지갑이에요.

교인들은 언제든지 돈을 빼 쓸 수 있는 현금 인출기와 같은 목사 전용의 ATM 기계에요.

그러니까 이 시대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으로 치장한 목사들은 하나님 말씀을 자기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도적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오늘 본문에서는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다고 합니다.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손에 금잔을 들고 산해진미를 먹으면서 왕 노릇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22-24까지 보세요.

 

22-24.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 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사라진다고 하지요.

이 모습은 사극에서 임금들이 연회를 할 때 행하는 것들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스스로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고 하잖아요.

 

등불도 사라지고 산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들리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는 더 이상 예수 이야기가 사라지고 복음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사라지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복음이 없는 곳은 교회가 아니고 절간이라는 것을 드러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그렇게 가고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인간의 열심과 충성이 차지하고 있어요.

은혜가 사라지고 법이 지배해요.

 

예수그리스도의 의는 사라지고 인간의 의가 난무해요.

천국이 사라지고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가 하나님의 복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았어요.

껍데기만 교회이고 무늬만 신자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들을 하시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나타나서 거짓으로 포장한 교회의 포장지를 확 뜯어버리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구약 교회가 예수를 죽였듯이 신약의 종말 교회도 두 증인들을 죽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죽임당한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께 갈 때가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두 증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이들이 사역을 할 때는 입에서 불이 나와서 태우는 것처럼 영적 권세가 엘리야 같아요.

그러나 사역이 다 하면 힘없이 죽임을 당해요.

그래서 음녀의 소굴을 두 증인들을 죽인 곳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이 성 중에 있다고 하지요.

이것은 예수님 초림 때와 같아요.

구약 교회도 선지자들을 죽였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의인 아벨로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를 흘리게 한 곳이라고 한 것입니다.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구약의 마지막 교회가 의인들의 피에 취하였듯이,

신약의 마지막 교회들도 예수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어요.

왜 음녀가 예수님의 증인들을 죽일까요?

이들이 그들의 거짓을 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항상 있어온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증인들 피를 뿌리면서 세워져 왔어요.

복음은 항상 의인의 피를 원해요.

그래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에는 항상 핍박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항상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가 공존하고 있어요.

마치 한 집안에 서로 다른 두 형제가 있는 것과 같아요.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처럼 함께 있어요.

그리하여 항상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사단에게 속한 자들로부터 핍박당하는 모습으로 있어 왔던 것입니다.

 

성도가 어디에서 죽느냐 하면 교회에서 죽어요.

교회가 예수의 증인들을 죽여요.

사단의 종인 거짓 목사들이 누구를 죽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참 종들을 죽여요.

왜냐하면 참 종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빼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창조를 흑암에서 빛을 빼내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을 흑암과 혼돈 속에서 빛을 빼내는 것으로 시작을 하여서,

성경의 마지막도 음녀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구약 이스라엘의 시작을 애굽에서 빼내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서 마지막을 강도의 굴혈로 변한 타락한 교회에서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빼내는 것으로 마감을 한 것과 같습니다.

이게 종말에도 그대로 음녀로 재현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교회들이 급속하게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집을 세울 때는 수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질 때는 한 순간에 무너져요.

그래서 국가를 일으키기는 힘들어도 무너지게 하는 것은 일순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어요.

 

종말의 교회를 상징하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맨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이 시대 교회의 교만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속이 다 썩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그래요,

겉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화려한데 그 속은 다 썩었어요.

강단에서 증거 되는 말씀들을 보면 뱀이 토한 물이에요.

만국이 음녀의 복술로 만국이 미혹 당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돈은 곧 힘이고 권력이고 권세에요.

마귀는 이러한 세상의 힘을 주겠다고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너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렇게 살아서 되겠느냐?

그렇게 가난하고 비실비실해서 되느냐?

그건 하나님을 망신시키는 거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진 성공한 자로 나타나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내가 너를 천하만국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부귀영화를 줄 테니 내게 절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떡에 가치로 사는 자들은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거짓 목사들이 이런 마귀의 논리로 교인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축구 선수가 골을 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영화배우가 시상식에서 상을 타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자식이 좋은 대학에 붙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교회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오면 하나님께서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귀신의 처소로 만들고,

교인들에게 뱀을 독을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뱀의 독을 마신 교인들은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실패하면 목사가 자살을 하고 장로가 자살을 하고 교인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힘이라고 믿던 것들이 사라지니까 살아갈 의미를 상실하고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쪽 팔려서 말이에요.

예수를 위하여 죽는 것이 아니고 돈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세상 것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을 보면 대부분 관 뚜껑에 십자가 문양을 덮어 놓았어요.

 

마귀가 그들의 죽음을 가지고 교회를 조롱하고 하나님을 망신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장 16절을 보면 “짐승이 여자를 다 사용하고서는 발가벗겨서 불로 태워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귀가 교회를 이용해 먹을 것은 다 이용해 먹고는 버린다는 말이에요.

 

적그리스도는 교회를 망하게 하려고 교회에 들어왔어요.

그러므로 교회를 철저하게 이용해 먹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용가치가 사라지면 차 버리는 겁니다.

 

거짓 목사들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단의 첩자들이에요.

그런데 이들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있어요.

그러니 영안의 어두운 육적 교인들은 몰라보는 것입니다.

 

원래 가짜가 진짜보다 더 화려하잖아요.

이게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 자체가 허상으로서 거짓이에요.

 

거짓이 거짓을 감추고자 진짜처럼 위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말이에요.

망하지 않고 영원할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정한 때까지 두셨다가 때가 차면 일 순간에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들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내어서 십년 쌓은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듯이 무너지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두 증인들로 하여금 교회가 종교통합으로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마귀라는 것을 폭로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떡을 주겠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사단의 종이라는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가 곧 가까워졌어요.

교회의 타락은 예수님의 재림을 보여주는 시계에요.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맞추어서 교회는 타락의 속도를 더할 것입니다.

앞으로 엄청난 타락의 모습들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교회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조롱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시작이 되었어요.

지금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조롱당하고 있어요.

 

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조롱을 당한다고 한 말처럼 이 시대 교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조롱당하게 하고 있어요.

이는 그만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다는 징조에요.

 

교회의 타락을 보면서 아파하면서도 또 다른 의미에서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알려주고 있는 징조이므로 기뻐해야 하는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우리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새 날이 가까이 올수록 밤이 깊은 것과 같아요.

그래서 세상의 끝이 되면 모든 것이 다 타락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타락하고,

종교도 타락하고,

세상도 타락하고,

지구도 수명을 다하여 가기 때문에 갖가지 재앙으로 몸살을 하면서 종말의 징후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은 뭐라고 하나요?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너희 구속이 가까웠으니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보지 말고 언약을 믿고 하늘을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18장에서 음녀의 종말을 말하고는 19장에서는 예수님의 신부들이 단장하는 모습과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음녀 속에서 자기 신부들을 빼내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근신하고 정신을 차리고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란? 세상 가치를 쫓지 않고 하늘에 가치를 쫓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출애굽하는 마음으로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그 고기를 숯불에 구워서 쓴 나물과 함께 먹고 떠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십자가 복음으로 무장하여서 고난이 닥친다 하여도 좌절하지 말고 잘 이겨내라는 말입니다.

잠시 잠간 후면 주님이 오실 것이니까

그 소망으로 믿음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 모이기를 힘쓰고,

더욱 더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가야 해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세상을 이겨내야 합니다.

 

성도가 위로 받고 쉴 곳은 교회뿐이에요.

비록 교회가 타락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일을 해 가십니다.

그래서 두 증인들을 교회로 보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받은 은혜로 섬겨야 합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서 말이에요.

 

그리하여 교회에서 죽으세요.

성도가 죽을 곳은 교회에요.

아벨로부터 사가랴까지 모두가 교회에서 죽임당했어요.

예수님이 구약 교회에 죽임당했듯이 두 증인도 교회에서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음녀로부터 죽임당해야 해요.

하나님께서 음녀에게 죽임당한 자들을 하늘나라 성전의 벽돌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성전의 모퉁이 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나라 성전의 재료가 되는 성도들을 타락한 교회로 보내서 음녀에게 죽임당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임당하는가요?

그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의 죄를 고발하는가요?

그들이 하는 일에 참예치 않는 것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쫓아가는 것을 쫓아가지 않음으로서 그들을 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돈을 쫓아가고 세상 영광을 쫓아가는데,

사람이 돈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고 우리의 영광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하면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그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값싼 것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것이 그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비싼 요리 먹고 자랑하는 자들에게,

라면 하나 먹으면서도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그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좋은 집에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것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좋은 집에 좋은 차 타고 다니지 못하더라도 감사하며 사는 것이 그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싸우라는 말이 아니고 그들과 다름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가치는 하늘의 가치로만 이길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음녀가 세상 가치로 나오면 우리는 하늘의 가치로 이겨야하는 것입니다.

 

너는 틀렸어 말하지 말고 그들의 가치와 다름으로 사시면 됩니다.

성도는 땅에 가치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가치로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성도가 보여주어야 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 사는 자입니다.

 

봉사를 해도 하나님 앞에서 하고,

교회를 섬겨도 하나님 앞에서 섬기고,

연보를 해도 하나님 앞에서 하셔야 합니다.

 

난 너희들이 꼴 보기 싫어서 아무 것도 안 해!

그래서 교회도 안 가! 라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는 짓이 꼴 보기가 싫지만,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고 감사하기 때문에 묵묵히 내 할 도리를 하면서 섬기는 것이 그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타락된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서 계세요.

어둠 속에 빛으로 있듯이 성도는 타락한 교회 속에 참 교회로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해요.

그게 전도에요.

 

전도는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이에요.

예수님도 구약 교회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셨어요.

바울도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회당에 가서 전도했어요.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교회에서 전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란?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사람 포섭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듣게 하고 안 듣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지 우리 몫이 아니에요.

 

우린 다만 복음만 전하면 되어요.

그럼 듣는 자도 있고 거부하는 자도 있을 겁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므로 그것으로 만족하여야 해요.

 

복음은 자기 백성을 찾아내는데 목적이 있지,

남의 백성을 내 백성 만드는데 목적이 있지 않아요.

예수님은 자기 양을 찾으러 왔지,

남의 양을 자기 양 만들고자 오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도의 굴혈인 구약 교회 안에서 자기 백성을 찾으셨어요.

종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증인들을 타락한 교회로 보내서 예수님의 양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음녀가 된 교회이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을 받은 성도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프지만 말이에요.

 

빛은 어둠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빛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세속화된 교회에서 하늘에 가치로 산다는 것은 고난이에요.

그러나 그 고난은 빛으로서 당하는 고난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에 삼키움을 당하여서 어둠을 빛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일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삼키움을 당하여서 우리가 빛이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짐승의 구유에 오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짐승의 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먹은 짐승이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생산해 내신 것입니다.

이걸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밀알을 생산해 낸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음녀 속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어요.

그래서 두 증인들을 음녀 속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럼 음녀 속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은 두 증인의 말씀을 듣고 음녀가 하는 일에 참예치 않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흑암 속에서 건져지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멸망 속에서 구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은혜인 것입니다.

 

음녀와 함께 멸망을 당해야 하는데 거기서 빼내 주신단 말입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고 두 천사가 롯의 팔을 잡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끄집어내셨듯이 하나님이 음녀의 멸망 속에서 우리를 끄집어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끝자락에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세세토록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그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곧 그 날이 오니까,

그 날을 소망 하면서 하늘에 가치로 현실을 이겨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 내고 있습니다. 세속의 가치가 홍수처럼 엄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이 세속의 가치를 쫓아가지 않도록 지켜 주셔야만 합니다. 노아의 방주에 안팎으로 역청을 칠해서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듯이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피를 칠하여서 뱀이 토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주시옵소서. 그리고 만물들이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소리치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어서 주님이 오시는 소리로 듣게 하여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