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56강.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27)

정낙원 2017. 6. 10. 11:20

56강. 새 하늘과 새 땅 백성으로서의 삶 (계 21:1-27)

 

계 21:1-27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두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오늘 본문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알다시피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20장은 천년왕국에 대한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21장은 천년왕국의 실재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사를 가서 천 년 동안 안식을 누리게 되지만, 불신자들은 이 땅에 남겨져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심판이 일어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됩니다.

 

이를 의인과 악인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의인은 천년왕국으로 데려감을 당하고 악인은 세상에 버려둠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목자가 양을 칠 때 낮에는 양과 염소를 함께 들판에서 방목하다가 저녁이 되면 양은 양의 우리에 집어넣고 염소는 염소의 우리에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산 자와 죽은 자 두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산 자는 살려주는 영으로 사는 자이고,

죽은 자는 산 영으로 사는 자들이에요.

성경은 산 영을 죽은 자라고 합니다.

 

아담을 일컬어 산 영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일컬어 살려주는 영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산 영들이 사는 곳에 하나님의 아들이 살려주는 영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는 이야기에요.

 

산 영이란? 유한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마치 유한한 역사와 같은 것입니다.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어요.

이는 정한 기간 동안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역사를 의인화로 의역하면 산 영과 같은 것입니다.

산 영은 역사처럼 정한 기간 동안만 살게 되어 있어요.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산 영와 같이 정한 기간 동안만 존재하는 유한한 것이에요.

이를 죽은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죽은 생명으로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에요.

 

이러한 곳에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겁니다.

살려주는 영이란 글자 그대로 살려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즉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창조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창조를 다른 말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내신다고 합니다.

창조와 구원은 영적 의미에서는 같은 말이에요.

 

예수님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해 내세요.

이를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신다고 합니다.

이들은 창세전에 영생주시기로 작정 한 자들이에요.

창세전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하시려고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창조에 속한 것이에요.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재림을 하신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하신다는 뜻이 되겠지요.

맞아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새 하늘과 새 땅을 몰고 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몰고 오는 것을 일컬어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합니다.

‘새롭다’ 라는 말을 ‘카이노스’ 라고 하는데 이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과 천년왕국은 같은 역사의 범주에 속하였지만 질적으로는 낮과 밤처럼 완전히 달라요.

이 세상은 죄와 사망의 나라이지만, 천년왕국은 의와 거룩의 나라에요.

이 세상은 죄인이 살아가지만, 천년왕국은 의인들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이건 마치 에덴동산과 에덴동산 바깥의 세계와 같은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거룩한 곳이고 에덴동산 바깥은 죄악된 세상이에요.

에덴동산은 죄인은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이 범죄하자 에덴동산 밖으로 내어 쫓은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이 살아가는 에덴동산 바깥 땅은 죄인들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이름하여 이 세상이에요.

이 세상을 역사라고 불러요.

죄인들이 살아가는 땅인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를 머금고 있어요.

구원은 저주받은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빼내심을 입는 것이에요.

 

이를 구약의 출애굽 사건으로 보여주었어요.

애굽은 저주받은 땅이에요.

저주받은 땅은 종들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언약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정한 기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였어요.

하나님이 정한 때에 구원자를 보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빼내 오게 하셨어요.

 

구원이란? 저주받은 땅에서 저주가 없는 땅으로 옮겨가는 것이에요.

새 하늘과 새 땅은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눈물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어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죄인들이 살아가는 죽음의 땅이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땅이에요.

 

천년왕국은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가 된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천년왕국은 부활의 세계에요.

그래서 부활된 자들과 변화된 자들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만물을 의인화 하여서 말하고 있어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뜻은 인간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만물은 종말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그래서 종말이 창조를 앞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이 창조를 앞선다는 말은 멸망할 것을 창조 하였다는 뜻이에요.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이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천 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치 7일 창조의 사건 속에 일곱째 날과 같은 것입니다.

일곱째 날은 엿새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요.

 

일곱째 날 안식일은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와는 달라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지만,

일곱째 날은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감이 없어요.

쉬운 말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낮과 밤이 있지만 일곱째 날은 낮과 밤이 없어요.

낮과 밤이 없다는 말은 빛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창조 7일은 모두가 역사에요.

하지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은 달라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수고하는 날이지만

일곱째 날은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는 날이에요.

 

이 세상과 천년왕국이 그러해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이 세상을 상징하고, 일곱째 날은 천년왕국을 상징해요.

천년왕국은 역사에 속하였으나 역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세상이에요.

역사에 속하였으니 역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창조 7일의 일곱째 날 안식일은 천년왕국을 모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는 멸망할 것과 멸망하지 않을 것이 있어요.

멸망할 것은 천지이고 멸망하지 않을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요.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요.

하나님 나라는 영생의 나라에요.

우리는 영원한 천국이라고 합니다.

 

천년왕국은 영원한 영생의 나라를 예표하고 있어요.

천국과 천년왕국은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처럼 다른 영역이면서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것과 같이 둘이면서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멸망할 나라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세요.

그래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살아난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언약이에요.

이 언약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가 된 것입니다.

만물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산 영인 죄인이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영생하는 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모두가 창세전 언약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언약을 하셨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앞으로 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걸 예정이라고 합니다.

예정하신 것이나 약속하신 것이나 동일해요.

그래서 편의상 창세전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언약인가 하면 그 아들을 만유의 주가 되게 하는 언약입니다.

어떻게 주가 되느냐 하면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을 자신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서 그 나라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약대로 희생 제물로 대신 죽으셨어요.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대속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대속을 받게 된 것을 죄에서 건져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죄인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인 예수님의 죽음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 자들에게 아들의 영을 보내 주어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아 주셨어요.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교회로 부르셨어요.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일을 하고 또한 성도 간에 서로 섬기고 교제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건 장차 천국에서 해야 하는 일을 미리 맛보기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건 연습에 불과해요.

실전은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져요.

이를 위하여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 프로그램 속에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담겨 있어요.

초림을 이미 이루어졌어요.

이제 남은 것은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사셨고,

성경대로 가셨고,

성경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성경이 응해지게 됩니다.

성경의 시작은 역사의 창조로 하였지만,

성경의 결론은 역사의 종말로 마감하게 되어요.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이라는 역사는 이제 그 끝을 다하고 있어요.

그 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이를 다양한 징조로 알려주고 있어요.

 

피조 세계의 생명은 사람이든 만물이든 끝이 다다르면 모두가 후패해져요.

왜냐하면 유한한 생명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말은 타락하고 후패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종말의 모습을 구약에서는 노아 시대로 보여주었어요.

노아 시대를 죄악이 관영한 시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지음을 한탄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였어요.

이 시대가 노아의 때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요.

 

죄악이 관영한 모습이 교회가 하나님을 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로 세워진 교회가 예수 이외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종교 통합 운동에 동참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종말의 타락한 교회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모든 신들과 행음을 하고 있는 음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서 금수만도 못한 짓을 일삼고 있어요.

지구도 각종 천재지변으로 용도가 다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구의 수명이 다해간다고 합니다.

지구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니까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여서 우주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성경이 다 응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종말의 징조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로서 성도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이후로는 성경(세상)의 결론을 말하고 있어요.

19장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20장에서는 천년왕국과 그 후에 일어날 것을 말해주고 있고,

21장에서는 천년왕국의 모습을 예루살렘 성으로 말해주고 있고,

22장에서는 천년왕국은 생명수 강이 흘러넘치는 영생의 나라임을 알려주고 결론을 맺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새 것이라는 말은 옛 것의 상대적인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서 내려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서 내려온다는 말은 옛 것은 땅에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늘에 속한 땅이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땅에 속한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天地) 창조로 보면 천(天)은 하늘에 속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고, 지(地)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영적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천지가 만물의 창조에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만물에 속하였으나 하늘과 땅은 질적인 면에서는 달라요.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늘은 영이고 땅은 육이에요.

영과 육은 질적으로 달라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육의 나라이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에 속한 나라에요.

이것은 에스겔서에서 보여주었어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새 하늘과 새 땅을 에스겔은 이미 성신의 감동으로 보았어요.

 

에스겔 37장을 보면 마른 뼈 골짜기가 나옵니다.

마른 뼈는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상징해요.

이것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이 바로 그러한 곳이에요.

 

이러한 곳에 생기가 붑니다.

그러자 마른 뼈들이 살아납니다.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룹니다.

이렇게 생기로 살아난 백성들 위에 다윗이 영원한 왕으로 등극을 합니다.

 

40장부터 성신이 성전을 짓고 성읍을 짓습니다.

그렇게 성신이 지은 성읍을 일컬어 ‘여호와 삼마’라고 합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말은 여호와가 그 가운데 계신다는 뜻이에요.

이는 천년왕국을 상징해요.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으로는 영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때는 실재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에스겔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라는 이중 계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에스겔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이 그러합니다.

 

에스겔은 장차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년왕국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생기로 살아난 마른 뼈들이 성신으로 세워진 성전과 새로운 땅에서 회복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예수로 시작하고 예수로 끝이 나요.

예수님과 운명을 함께해요.

이는 만물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에서 일어나는 것은 태초에 생명의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는 마지막 일들을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하시는 마지막 일은 재림을 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천 년 동안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영적 천국을 몰고 오셨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실재 천국을 몰고 오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그러자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를 돌보는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집단이 나타납니다.

법 아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 아래서는 인간의 조건으로 차별되던 것이 성령이 임하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인종 간에 벽이 허물어지고,

부자와 가난한 자 간에 차별이 사라지고,

종과 자유자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예수님이 몰고 온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을 봅시다.

 

사 11:1-16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 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13. 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4. 그들이 서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 시키시리라 15.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를 말리우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때가 되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메시야가 다윗 언약에 따라서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을 봅시다.

 

마 1: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신약의 문(門)을 어떻게 여나요?

예수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 언약으로 오신 분이라고 하지요.

아브라함과 다윗 언약은 그 나라와 그 후손에 관한 언약인데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는 새로운 시대를 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법 아래서 종노릇하던 자들이 은혜 아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섬기는 것입니다.

이를 이사야는 이새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서 결실을 이룬다고 하였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왜 왔나요?

그 나라와 그 후손들을 낳고자 함입니다.

어떻게 그 후손들을 낳습니까?

이는 예수님이 샘플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성신으로 잉태되어 오신다고 예언을 했어요.

 

2절.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속에는 하나님 백성들의 탄생 모습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들도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교회 안에 인간의 조건이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로 모두가 동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 모습을 이사야에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보십니다.

 

6-9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노닐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아이가 독사와 장난을 치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게 되고,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을 잡아먹고,

표범이 어린 염소를 잡아먹고,

사자가 소를 잡아먹고,

독사가 아이를 물어서 죽이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상함과 해함이 난무하는 곳이에요.

이 세상에서는 사자가 풀을 먹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가 몰고 온 나라는 이리가 양과 함께 놀고 사자가 소와 같이 놀고 표범이 염소랑 놀고 사자가 풀을 먹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는 존재 양식이 이 세상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원리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먹히는 힘의 원리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고 서로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요?이는 살아가는 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존재 양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육적 가치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하늘의 영적 가치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별성을 없애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가 부자와 가난 한 자가 함께 할 수가 있고, 종과 자유자가 함께 할 수가 있고, 남녀노소가 함께하면서 유무상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 부자는 사자처럼 가난 한 자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주인은 종을 억압하고 채찍으로 다스렸습니다.

주인의 밥상과 종이 밥상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하고, 주인이 종과 함께하고, 주인과 종이 겸상을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몰고 온 하나님 나라에요.

예수님이 몰고 온 나라는 죄가 없는 나라에요.

죄가 없으니 차별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차별이 사라지니까 모두가 동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장차 예수님이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로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이런 곳이다” 라고 표본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 세워지는 교회들에게 정답지를 준 것입니다.

역사 속에 교회는 초대교회를 통해서 늘 고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아니에요.

죄 아래서는 초대교회처럼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초대 교회를 통해서 이 시대 교회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을 인자로 보내서 인간들을 고발하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깨트려 버렸어요.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온전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라고 하지요.

인자라는 말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라고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이면서 인간들을 고발하는 참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고발당하는 것입니다.

 

‘나는 참 인간이 아니구나!’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죄인이구나!’

예수님 앞에 서면 우리는 죄인으로 드러나요.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 앞에 서면 죄가 고발당하여야 해요.

초대교회처럼 되려면 죄가 사라져야 합니다.

 

이 세상은 죄 아래 있어요.

교회 역시 죄 아래 있어요.

교회는 원리적으로는 의인들이 모인 곳이지만 실제로는 죄인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는 의인이지만 실제로는 죄인이에요.

왜냐하면 죄 아래서 난 놈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서 난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우리는 의인이면서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이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죄를 이길 수 없는 몸이에요.

비록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모인 교회라 할지라도 온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이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한계성입니다.

 

언제 온전한 몸이 되고 온전한 교회가 되느냐?

예수님이 재림을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팔절에 재림을 하시면 온 나라가 죄를 벗는 속죄일이 이루어집니다.

이 속죄일을 통해서 온 나라가 죄를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초막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초막절이 바로 천년왕국인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되면 비로소 이사야 11장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상함도 해함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해서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 서로가 서로를 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이 바로 초막절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일컬어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위에 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초막절을 장막절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에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에서의 삶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은 성도들이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긴 의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3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 중에서 이기는 자들은 이것들을 유업으로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들이 천년왕국에서 실재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기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서는 천년왕국의 성격을 말해주었다고 한다면,

21-22장은 천년왕국의 모습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려온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비록 새로운 세상이지만 피조물의 역사입니다.

피조 세계라는 뜻에서는 같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의미에서는 다른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을 봅시다.

 

벧후 3:7-13절.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는 이제 있는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한 바 되었다고 합니다.

이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불타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는 이 땅과 하늘은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유황 불 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 오늘 본문에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새” 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이논'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성은 같은데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년왕국은 피조 세계라는 의미에서는 같은데 존재하는 양식은 전혀 다른 곳이라는 뜻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육의 원리로 먹고 마시는 것을 추구하는 원리로 살아가는 곳이에요.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의 원리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는 원리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삶의 질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 멸망에도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완전 소멸론”이 있고,

“우주 갱신설”이 있습니다.

완전 소멸론은 이 세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고,

우주 갱신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맞느냐?

둘 다 맞고,

둘 다 틀렸어요.

둘 다 부분적으로는 맞고 부분적으로 틀렸어요.

 

완전 소멸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완전히 소멸이 된다고 합니다.

저도 완전 소멸론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시기가 달라요.

예수님이 재림 시에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에는 반대에요.

소멸은 하는데 이 때는 아니에요.

천 년 후에 소멸이 되어요.

 

천 년 동안 존속해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천 년 동안 뱀과 그 후손들이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지옥을 맛 보아야 해요.

 

히브리서 1장에 의하면 이 세상은 장차 철거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 철거가 되느냐 하면 천년왕국 이후에요.

피조물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천년왕국 이후에 일어나요.

 

천년왕국까지가 피조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까지는 완전히 소멸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끝이 나면 처음 하늘과 땅과 새 하늘과 새 땅도 동시에 소멸이 되어요.

이 부분은 앞서 천년왕국에서 살펴본 원본과 복사본을 이해하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완전 소멸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천년왕국을 영원한 천국이라고 보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의 말대로 예수님이 강림하시면 하늘과 땅이 불에 녹아서 완전히 체질이 풀어진다고 하였으니까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이 세상은 완전히 소멸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불 바다가 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세상 자체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에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성도들은 이 땅에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공중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면서 살아요.

변화된 몸으로 말이에요.

 

성도들이 다 빠져나간 이 세상은 죽은 자들만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큰 심판을 단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은 것은 자기 백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자기 백성들이 다 빠져나가고 없으니 이젠 두고 볼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이 지진으로 세 갈래로 갈라진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지구의 핵인 마그마가 폭발하여서 용암이 흘러나와서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그럼 지구는 불바다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를 유황 불 못 지옥이라고 합니다.

뱀의 후손들은 유황 불 못인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공중이라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는데,

뱀의 후손들은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지옥에서 고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사로는 천국에서 안식하는데,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당하면서 목말라 하지요.

이게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비유가 실재가 되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주 갱신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이 갱신된다고 합니다.

 

우주 갱신설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베드로후서 3장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지요.

여기서 “새” 라는 단어가 “카이논(kainos)”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요.

이 “카이논(kainos)” 이라는 단어 때문에 우주가 갱신된다고 합니다.

 

“새” 것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네오스(neos)”가 있고,

“카이논(kainos)”이 있습니다.

 

네오스(neos)는 질이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합니다.

쉬운 예로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와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는 같은 태초이지만 질이 완전히 다른 태초입니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창세전 하나님 나라의 태초를 말하고 있으며,

창세기의 태초는 이 세상 역사의 시작인 태초를 말하고 있어요.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창세전 하나님 나라의 태초는 피조 세계 바깥의 창조주가 사는 세계에요.

하지만 창세기의 태초는 피조물들이 사는 피조 세계에요.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태초와 창세기의 태초는 완전히 다른 네오스(neos)에요.

 

카이논(kainos)은 동질인데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동질이면서 다른 것입니다.

피조 세계라는 의미에서는 동질이에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악인들이 살아가는 유황불 못인 지옥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들이 살아가는 천년왕국이에요.

 

베드로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카이논(kainos)이라고 쓴 것은 비록 피조 세계에 있는 세상이지만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는 다른 세상으로서의 새로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땅은 죄와 사망 아래 있는 곳이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죄와 사망 바깥에 있는 곳입니다.

 

우주 갱신설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면서 몰고 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세상이 갱신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는 회복이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땅이 새롭게 회복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이 되는데 이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아니에요.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땅이 회복된 곳이 아니고 아담이 범죄로 추방당하고 감추어졌던 에덴동산이에요.

에덴동산과 아담이 추방당한 땅은 같은 피조 세계이지만 다른 곳이에요.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생명과를 따 먹고 영생 할까봐서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을 합니다.

죄인이 추방당해 사는 곳이 이 세상이에요.

 

생명과가 있는 에덴동산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감추어져 있어요.

이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몰고 오는 것입니다.

이걸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데 감추어져 있던 에덴동산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 실과가 있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피조 세계이지만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는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이걸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고 합니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는 말은 같은 역사이지만 다른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은 피조 세상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아요.

하지만 악인과 의인이 함께 섞여서 살아가는 이 세상과 악인과 의인이 분리가 되어서 살아가는 세상으로서는 다른 것입니다.

 

천년왕국은 악인은 들어갈 수가 없어요.

오직 의인만 들어가요.

그러므로 이 세상과 천년왕국은 피조의 역사 속에 있는 세상이지만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죄와 사망의 나라였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죄가 없는 나라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죄 아래 있는 곳이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죄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다시 사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없으니까 천년왕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나무의 수한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수 강가에서 자라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으니까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수와 생명나무 실과만 먹고 사니까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다고 하지요.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성경의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화면이 예수그리스도가 계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무대가 이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주인공에 따라서 옮겨지듯이 성경의 배경도 예수라는 주인공에 따라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걸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으로 예수님의 이야기가 이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자연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이야기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진 듯 있다가 천 년 후가 되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 속에 존재하였던 모든 사람들이 살아나는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고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는 백보좌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가 역사 속에서 하신 일들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 때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해주셨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난 후부터는 성경 이야기가 이 세상 이야기는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죄와 사망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이제 성도들은 새로운 몸으로 처음 하늘과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옮겨져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를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왜 새 하늘과 새 땅을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과 같다고 할까요?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랑과 신부로서 한 몸으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어린 양의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9-11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왜 신부를 거룩한 성으로 말하는가요?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어린 양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라고 하였어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에요.

이는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천년왕국에서는 모두가 한 몸이에요.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차별이 없어요.

하나님이 모두의 하나님이듯이 어린 양도 모두의 신랑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린 양의 신부를 건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 양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장을 봅시다.

 

엡 2:20-22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도를 일컬어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성전이라고 하지요.

건물마다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은 12 사도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서 지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 예루살렘 성이 12 사도들의 기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계 21:14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하늘 예루살렘 성의 성벽에는 12 기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 어린 양의 12 사도들의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12 사도들은 모든 성도를 대표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예루살렘 성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봅시다.

 

출 15:17절.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잘 보시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는다고 합니다.

주의 기업의 산이 어디인가요?

하늘에 있는 시온 산이에요.

시온 산이 바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을 뭐라고 하나요?

주의 처소라고 하지요.

성소라고 하지요.

 

성소란 집을 말해요.

그러니까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인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백성들을 신약 식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거룩한 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 예루살렘 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어린 양의 아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 예루살렘 성이 12가지 보석으로 지어졌어요.

보석과 보석이 벽돌처럼 서로 연결하여서 성을 지은 것입니다.

12 가지 보석은 구약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상징하고 있어요.

구약의 12 지파는 신약의 12 사도를 상징하고 있구요.

12 사도는 모든 성도들을 대신하는 자들이에요.

이러면 12가지 보석은 모든 성도들을 총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보석이에요.

 

보석은 변하지 않아요.

영원해요.

성도의 구원이 영원해요.

성도들이 보석처럼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보석이란? 불순물이 전혀 없는 것을 뜻해요.

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 정금이라고 합니다.

정금을 다른 말로 거룩이라고 합니다.

 

창세전 언약이 뭔가요?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것이잖아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거룩한 자입니다.

 

히브리서 2장을 봅시다.

 

히 2:11-12절.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거룩하게 하는 자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라고 하지요.

형제라고 하지요.

거룩하게 하는 자는 예수그리스도이고,

거룩함을 입은 자들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이 둘이 하나에서 난 하나에요.

아담과 하와처럼 한 몸이에요.

쉬운 말로 예수님도 보석이고 우리도 보석이에요.

예수님은 참 보석이고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보석이에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늘 예루살렘의 모퉁이 돌로 삼으셨어요.

 

베드로전서 2장을 봅시다.

 

벧전 2:4-10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하지요.

보배로운 산 돌이란?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산 돌로 무엇을 하나요?신령한 집을 짓습니다.

 

신령한 집이란? 신이 거하는 집이란 뜻입니다.

이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신령한 집의 모퉁이 돌로 삼으셨어요.

성도들이 그 옆에 하나 둘씩 벽돌처럼 연결이 되어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거하는 집을 짓기 위함입니다.

그 집은 예수로 낳아진 자들이 예수와 함께 짓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전이라고 하고 성도도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에베소서 2장을 봅시다.

 

엡 2:20-22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도를 그리스도의 모퉁이 돌 옆에 벽돌이라고 하지요.

성도 하나 하나가 벽돌이 되어서 건물을 만들어 갑니다.

이걸 한 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몸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에요.

성전 안에 누가 들어오신다고 하나요?

어린 양입니다.

 

보석으로 지어진 그 성에 하나님이신 어린 양이 들어오지요.

이러면 어린 양이 신랑이 되고 그 성을 만든 모든 성도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무엇으로 들어오는가요?

빛으로 들어오지요.

그럼 보석들은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빛이신 어린 양의 빛을 받아서 보석들이 그 빛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창세전 언약의 완성 지점인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고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에요.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빛이고 등이고 그의 신부들이 그 빛을 발하는 빛들이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다고 하지요.

 

22-23절.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해와 달이 쓸데없다는 말은 해와 달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용도가 필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천년왕국은 역사에 속한 곳이므로 해와 달이 있지만 어린 양이 빛이고 등이니까 해와 달이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낮이면 전깃불이 필요가 없는 것과 같아요.

 

이게 창세기에서는 일곱째 날 안식일로 나타난 것입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이 없습니다.

해와 달의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은 피조 세계이므로 해와 달이 있어요.

그러나 해와 달의 빛이 필요치 않아요.

왜냐하면 그곳은 원초적인 빛이신 하나님 자신이 빛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은 참 빛이고 해와 달은 가짜 빛이에요.

왜 해와 달이 있지만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가 없는가 하면 일곱째 날이나 천년왕국은 역사에 속한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피조 바깥의 세상입니다.

피조 바깥의 세상은 해와 달이 필요 없어요.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피조 세계의 해와 달의 빛이 있지만 그 빛이 필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0장을 봅시다.

 

사 60:20-22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사야는 두 구조로 되어 있어요.

1장부터 39장까지는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40장부터 66장까지는 회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회복 속에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주어지는 회복과 예수님의 재림으로 주어지는 회복이 동시적으로 담겨 있어요.

60장은 초림으로 주어지는 회복을 말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재림으로 주어지는 회복이 이중적으로 함께 들어가 있어요.

 

위에 언급한 내용은 재림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에요.

천년왕국에서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는 해가 지지 아니하고 달이 물러가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는 피조물의 빛인 해와 달의 빛이 필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원초적인 빛인 여호와 하나님이 빛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빛이란? 참을 말합니다.

의역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란? 모든 것을 밝히 아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빛의 아들은 어둠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는 세상 지혜에 속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 지혜는 마귀의 지혜에요.

 

이게 피조물의 빛인 것입니다.

피조물 속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담겨 있어요.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니고 유추해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해와 달이 주는 빛으로는 껍데기만 알 수가 있어요.

즉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천년왕국에서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아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누구를 통해서 알지 않고 다이렉트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빛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빛을 받아서 비추는 발암체로 알아진 지혜는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 자체이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물의 덮음같이 충만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 해와 달을 만드십니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시고 달로 밤을 주관케 합니다.

해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입니다.

이는 하나님(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이 해와 같아요.

그럼 제자들은 달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라는 빛을 받아서 어두운 세상에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라는 참 빛을 드러내 주는 피조의 빛인 것입니다.

 

율법과 은혜를 달과 해로 표현할 수가 있어요.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해와, 해로부터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달은 율법과 은혜 같아요.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하지요.

장차 오는 좋은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주어지는 대속의 은혜입니다.

 

율법으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는 그림자에요.

온전한 것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더 이상 율법으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가 필요치 않아요.

진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듭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성경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겠지요.

이러면 성경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해와 달빛과 같아요.

천년왕국에 가면 성경은 필요치 않아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해와 달빛과 같고 하나님은 참 빛과 같아요.

참 빛을 만나니까 가짜 빛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빛이신 하나님이 계신 천년왕국에서는 하나님은 빛이라고 알려주는 일을 하는 해와 달의 비췸이 더 이상 쓸데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은 새 언약과 옛 언약과도 같아요.

옛 언약은 그림자이고 새 언약은 실상입니다.

 

예레미야 31장을 봅시다.

 

렘 31:31-3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는 장차 새 언약이 주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을 전제로 말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어떤 것인가요?하나님이 남편이 되어서 곁에서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곁에서 도와주었는데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곁에서 도와주는 방법 대신 이제는 그 속에 들어가서 돕겠다고 합니다.

이게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곁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누가 알려주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았어요.

 

이건 직접적인 앎이 아니고 간접적인 앎이에요.

그러니 온전치 않는 것입니다.

희미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이 주어지면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직접 알게 되어요.

 

34절을 보세요.

 

34절.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때가 이르면 하나님을 누구를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직접 알게 된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새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세요.

그래서 새 언약이 주어지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간접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지 않고 직접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해와 달빛이고,

새 언약은 하나님의 빛이에요.

해와 달빛은 사진과 같고 하나님은 실물과 같아요.

이 세상에서는 해와 달이 알려주는 빛(지혜)으로 하나님을 알았어요.

그러나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요.

그러니 사진(세상 지혜)이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그런 곳이에요.

그래서 천년왕국에서는 간접적인 빛은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해와 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봅시다.

 

계 21:16-17절.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예루살렘 성은 네모가 반듯하다고 합니다.

장과 광과 고가 같다는 말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같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이 역사 속에서 나타났어요.

 

그게 성막입니다.

성막은 모세가 하늘에 있는 식양을 따라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성막은 하늘 예루살렘 성의 축소판인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집이에요.

성막은 뜰과 성소와 지성소라는 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네모가 반듯한 곳이 한군데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성소에요.

 

하늘 예루살렘이 바로 지성소라는 뜻입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차례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 때 대제사장은 에봇 위에 12가지 보석으로 된 흉패를 입고 들어갑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구원한 모든 성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매일 드나드는데,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만 들어갑니다.

일 년에 단 하루 들어간다는 것은 역사 바깥에 있다는 뜻입니다.

 

성소는 시간의 흐름이 있는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에 속한 세계를 상징하고,

지성소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일곱째 날에 속한 세계를 상징하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천년왕국은 창조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와 같이 네모가 반듯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네모가 반듯한 성읍을 에스겔이 보았어요.

에스겔 48장을 보면 성신이 지은 성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합니다.

이는 ‘여호와가 그 가운데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모습이 광야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어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12 지파가 진을 치고 사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광야 40년은 성막이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하였어요.

이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처럼 온전한 곳이 아니란 뜻입니다.

 

온전한 성전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어집니다.

이것이 고정된 솔로몬 성전으로 나타났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천년왕국의 모습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이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갔어요.

이게 여호와 삼마의 모습이에요.

 

천년왕국은 노는 곳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서로 죽고 죽이는 죽음의 삶을 살았지만 천년왕국에서는 의와 거룩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로 실패한 것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된 것을 실재적인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계 21:24-27절.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 흩어져 살다가 안식일이나 정한 절기가 되면 성전으로 모입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는 땅의 왕들이 만국의 영광을 가지고 성으로 들어와서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합니다.

이건 지금 우리가 엿새 동안 일하다가 주일을 일곱째 날로서 교회로 모이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장차 천년왕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나타난 교회의 모습이 천년왕국에서 실재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의 교회 생활이 천년왕국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 땅에서의 교회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줄을 알 수가 있겠지요.

교회에서 창자 주어질 천년왕국에서의 삶을 미리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충 대충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교회 생활을 귀히 여기게 되어 있어요.

 

교회 생활을 등한시 여긴다는 것은 옳은 신앙이 아니에요.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교회를 떠난 신앙은 죽은 것이에요.

그건 관념이지 실제가 아니에요.

관념은 마귀적인 것이고 실제는 하나님 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교회 생활을 충실히 하게 되어 있어요.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어요.

 

교회 생활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같아요.

밥을 먹는 것은 일하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은혜를 주시느냐?

일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섬길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반드시 교회를 섬기게 되어 있어요.

 

디모데후서 3장을 봅시다.

 

딤후 3:12-17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전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합니다.

이는 은퇴를 앞둔 바울이 어린 디모데 목사에게 교회를 세워가는데 조언을 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수많은 이단들과 싸웠어요.

 

대표적인 이단이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입니다.

특히 영지주의 이단은 성경을 헬라 철학으로 공교하게 해석하여서 성경을 인문학으로 변질을 시켜 버렸어요.

여기서 이원론 사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구원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어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하면서 육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으므로 육신의 쾌락을 쫓아가면서 양심으로부터 오는 거리낌을 해소하고자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게 이 시대 복음 알면 막 살아도 된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여기에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사람은 훅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를 알고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 된다고 하였어요.

교회 안에 영지주의자들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믿음 없다고 하면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것을 폄훼하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인다고 하지요.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합니다.

내가 너에게 가르친 진리가 무엇인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성경을 어떻게 가르쳤느냐?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도 있지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배웁니까?

성경 속에는 믿음으로 살다간 선진들의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어떤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성경이 그러한가! 성경을 상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성도들이 그렇게 살았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지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칭 복음 안다고 하면서 내가 교회인데 교회 갈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하고, 예수님이 기도하는데 우리가 기도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라면서 아무 것도 안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있어요.

 

영지주의자들은 똑똑한 자들이에요.

이성적으로는 그들의 논리를 이기지 못해요.

공교하게 지은 말로 미혹을 한다는 것은 그럴듯하게 이성에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교인들의 귀에는 솔깃하니까 다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처럼 육체의 쾌락을 쫓아가는 부담감을 다 해소해 주는데 얼마나 좋아요.

 

그러지 않아도 하기 싫은데 복음 알면 교회 안 가도 되고,

성령 교회에 왔다고 하여도 기도 안 해도 되고,

봉사 안 해도 되고 헌금 안 해도 되고,

막 살아도 된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처럼 좋은 복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그러한 부류들끼리 모여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사람들에게 거치는 자들이 되어서 참 복음을 가리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한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귀지 말라고 했어요.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인본주의 사상이 홍수를 이루고 있어요.

초대교회와 다름없어요.

그러므로 늘 경계하고 내가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해요.

제발 성경을 상고하세요.

그래야 인간의 교훈과 풍조에 휩쓸리지 않아요.

 

운동선수가 연습도 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건 사기에요.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연습 없이는 좋은 경기를 펼칠 수가 없어요.

 

교회는 성도로서 훈련받는 곳입니다.

말씀에 다스림을 받아야 해요.

생명의 자람처럼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구습을 버리고 새 것을 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자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만이 들어 올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거룩한 성에는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지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만이 들어온다고 하지요.

이는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만 들어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이 그 땅에 합당치 않는 자들은 토하여 내었듯이,

천년왕국도 그 땅에 합당치 않는 자들은 토해내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거짓말 하는 자와 속된 자와 가증한 자들은 거룩한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만 들어갈 수가 있어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은 예수의 생명을 가졌어요.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원함이에요.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걸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가 거짓말하는 것이고 가증한 것이고 속된 것입니다.

생명은 정직해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납니다.

 

그 속에 예수가 있는 성도는 예수의 생명이 자연적으로 유출되게 되어 있어요.

예수의 생명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입술로는 말하나 삶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니에요.

믿음은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사는 것은 분리될 수가 없어요.

하나에요.

 

천년왕국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에요.

실재하는 곳이고 사실이에요.

그러므로 천년왕국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실재이고 사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건 없는 것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은 내어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은 내어놓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구약에 보면 성막을 지을 때 여호와로부터 감동을 입은 자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바치더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여호와의 안식일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속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속에서 일하지 않은 자는 여호와의 안식일에 참예 할 수가 없어요.

여호와의 안식일은 여호와께서 일을 하셔서 여호와의 집을 지은 사람만이 참예할 수가 있어요.

그것이 성막을 짓는데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에 감동을 입은 자들이 예물을 바치더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교회에서 헌신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교회 생활을 등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딛 1:10절.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라”

 

약 1:22절.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예수 20년 믿었다, 30년 믿었다, 신앙의 경력을 자랑하지 말고 열매를 내어놓으세요.

교회 목사다, 장로다, 권사다, 교회의 직분을 자랑하지 말고 열매를 내어놓으세요.

예수는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성도의 행함은 일이 아니에요.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행위에요.

각자 받은 것만큼 토해내게 되어 있어요.

은혜를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내어놓고 적게 받은 자는 적게 내어놓아요.

 

나는 속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비 없는 구름은 아닌지,

물 없는 샘은 아닌지,

열매 없는 가을 나무는 아닌지,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복음이 나를 이끌고 예수그리스도의 길로 인도하는가요?아니면 내가 복음을 가지고 자기 게으름을 합리화시키고 있는가요?

 

복음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어요.

택한 자에게는 복음이 예수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게 하고,

택한 자가 아니면 복음으로 마귀의 열매를 맺게 하여서 넌 아니라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곧 오십니다.

잘 익은 열매를 거두어서 곡간에 들이려고 오십니다.

새들이 와서 과실을 상하지 못하게 눈 부릅뜨고 신앙생활을 하세요.

신부가 예쁘게 단장하고 신랑을 설렘과 기쁨으로 기다리듯이 기다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때를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주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빼앗기지 않도록 은혜로 굳게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달음질 하여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 안에 늘 거하게 하여서 세상 것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