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설교

묵시적 교회와 역사적 교회 (성탄특집)

정낙원 2008. 12. 24. 17:25

묵시적 교회와 역사적 교회

 

마 16:15-18=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엊그제 일요일 9시 뉴스에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가 양분되어 서로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상대 진영의 교인들을 끌어내고 교회를 장악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셨지요. 

여러분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아마도 교회를 다니는 한 사람으로서 TV뉴스에 그런 모습이 나오니 안타까웠겠지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마치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싸매고 깊이 감추인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라면 그 모습을 보고 참담함을 느겼을 것입니다.

교회가 왜? 저러느냐고?

저러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일인데! 라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내와 그 모습을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 드디어 교회 허물기 작업을 시작하셨구나! 감사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얼굴을 보니 목사가 어떻게 그렇게 말합니까? 라고 할 수 있느냐 라는 의문스러운 표정이네요.

맞아요.

의문이 들어야 해요.

 

그럼 의문을 갖는 여러분에게 숙제 하나만 던지고 시작합시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를 아시지요.

인간적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사람입니다.

 

국가의 멸망을 예언하다가 얻어맞고 죽임당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가는 이 시대 곧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국가 자체가 교회였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렘 7:1-12=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거하게 하 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8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적질 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하나님도 참으로 잔인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교회에다 보내서 이건 교회가 아니라고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곤 이 교회는 망한다고 했어요.

 

지금식으로 말하면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앞에 가서 예배드리러 가는 교인들에게 여러분 여기는 교회가 아니고 마귀의 소굴입니다 라고 하였어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교회 옆에 있는 즐비한 대형교회들 앞에 가서 한 번 그래 보세요.

그 교회에 들어가는 교인들이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마귀새끼라고 할 것입니다.

 

목사에게 배운게 그거잖아요.

교회를 허무는 놈은 마귀 라고!

 

그럼 지금 예레미야를 보내서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게 하신 하나님이 마귀가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마귀가 완전히 뒤 바뀐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래요.  

세상에선 하나님과 마귀가 완전히 뒤 바뀐 시대예요.

이건 어느 시대나 그랬어요.

세상에선 진짜 하나님은 마귀가 되고 마귀가 진짜 하나님으로 둔갑해 있어요.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죄인들에겐 숨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자기들 지식으로 조합하여 하나님을 만든 것입니다.

죄인의 지식으로 조합된 하나님이라면 어떤 하나님에겠어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겠지요.

성경은 죄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마귀라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안다고 하는 하나님은 전부 가짜 하나님인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이 아니고 허무는 하나님이예요.

상당히 도발적이고 역설적이고 우습지요.

 

아니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야지 어떻게 교회를 허문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돼요?

한국교회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입니다.

 

일반 교인들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제가 말한다고 무조건 동의하지 말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번 기회에 한번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도 얼마든지 가짜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이라고 찰떡 같이 믿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니 예레미야 시대 교인들이 바보가 아니잖아요.

그들이나 지금 교인들이나 뭐가 다릅니까?

다 똑같지!

 

그럼 그 때 교인들이 가짜교회를 교회라고 붙들고 있는 것이나 이 시대 교인들이 가짜교회를 교회라고 붙들고 있는 것이나 뭐가 달라요.

 

그 때 인간이나 지금 인간이나 변한게 아무도 없어요.

다 아담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죄인이니까요?

 

여러분들 신앙생활을 감상주의로 생각하면 안 돼요.

이건 생명의 문제예요. 

생명의 문제란 죽기 살기 싸워야 하는 문제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가서 악착같이 돈 버는 이유가 뭡니까? 

아파도 직장에 가는 이유는 뭡니까?

회사에 가서 상사들에게 오만 소리 다 들어가면서도 지존심도 다 팽개치고 굴욕을 참고 일하는 이유가 뭡니까?

생존을 위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닙니까?

 

돈을 벌어야 가족들이 먹고 살게 아닙니까?

괜히 내 던져도 개도 물어가지 않을 자존심 세운다고 회사 때려치워 보세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온 가족들이 다 굶어 죽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수욕을 참고 견뎌내는 겁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문제가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프면 교회를 안와도 직장은 가잖아요.

교회보다 직장을 우선시 하는 것은 직장은 현실이고 교회는 허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신앙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지금 율법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정신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교회오기 싫은데 손님이라도 찾아오고 몸이라도 아프면 얼씨구 웬 찬스 라고 쾌재를 부르잖아요.

안 보아도 뻔해요.

 

쿵하면 담장 너머 호박 떨어지는 소리이고, 교회 안 오면 아 잘 됐다! 만세 부르는거 다 압니다.

직장보다 더 중한 신앙생활은 우리는 그렇게 후 순위로 밀어 놓고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예수님은 누구시고, 교회는 무엇이고, 신앙생활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엔 별 신경을 안 쓰잖아요.

 

그건 신앙생활을 취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예레미야에게는 자기 목숨보다 진짜 교회와 가짜 교회를 세상에 까발리는 것이 더 급했어요.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죽건 말건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을 교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중했다고요.

이건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는 것을 우리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짜 교회와 가짜 교회를 알리는게 우리가 먹고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담스럽지요.

 

야! 이거 예수 믿는 것도 호락 호락 하지 않네! 

그래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그렇게 호락 호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사는 문제인데 어찌 호락 호락 하겠어요.

눈에 불을 켜고 살펴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은 목숨 걸고 믿는 것이지 취미 생활 하듯 믿는게 아닙니다.

동호회 모임 갖듯이 그리우면 갔다가 싫어지면 떠나가는 그런 것이 아니예요.

보이지 않는 마귀와 피 터지게 싸우는 일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서바이벌 게임이라고요.

 

여러분이 지금 옆에 있는 대형 교회 앞에 가서 예레미야 같이 한 번 해 보세요.

여러분 이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마귀 소굴입니다 라고 한번 해 보시라구요.

어떤 대접이 돌아오는지,,,

그 교회 교인들이 가만있지 않아요.

죽이려고 달려들어요. 

가만있으면 자기가 지금 마귀를 섬기고 있는 꼴이 되는데 누가 가만있겠습니까?

 

몇 년 전에 서울 만민교회 이재록 목사의 비리를 고발한 MBC 방송국에 그 교회 교인들이 쳐 들어가서 조정실을 장악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자기들 교회 방송 내 보내지 말라고 했잖아요.

교인들이 왜? 그랬겠어요?

만약 그 교회를 교회 아니라고 하면 자기가 지금까지 공들여온 것이 뭐가 되겠어요.

 

예레미야의 말대로 교회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헛 지랄한 것뿐이잖아요.

이렇게 되면 얼마나 쪽팔리겠어요.

자기 신앙의 청춘을 거기다 다 바쳤는데,,,

 

엊그제 방송에 나온 그 교회 교인들이 왜? 피 터지게 싸웠을까요?

그 교회에다가 자기 정성을 다 갖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교회 주주들이예요. 

돈 갖다 바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싸우지 않아요.

왜냐하면! 거기 아니라도 교회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다 돈 투자한 사람들은 그 교회를 붙잡아야 되요.

거기서 자손대대로 주주 행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에겐 그냥 교회가 아니라 자기 살점이고 자기 피예요.

그래서 박 터지게 싸우는 겁니다.

 

교인들이야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목사는 그러지 말아야 하지요.

그런데 목사가 더해요.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자기 밥 벌어 먹는 평생직장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들 같이 편한 직업이 없어요.

아직까진 목사 그려면 사람들이 존경해 주잖아요.

뭔가 신비스럽고 고상하지요.

거기다가 빈둥거리며 놀아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없지요.

교인들은 목사가 낮잠을 자면 아 우리 목사님 밤새기도 했나보다 라고 생각해요.

기도는 무슨 기도입니까? 밤새 잤는데,,,

거기다가 월급 많이 받지요.

대형 교회 목사들 월급이 장관들 수준이랍니다.

그런데 누리는 것은 장관이 아니고 대통령입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 집단에선 신입니다.

신!

고무신 운동화 말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누가 그걸 빼앗기려고 하겠어요.

멱살 잡고 싸워야지요.

대가리 빵구 나더라도 짐승처럼 싸워야지요.

상대방을 안 죽이면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그러니 조폭을 동원해서라도 지켜 내려고 하는 겁니다.

살벌하지요.

목사가 그렇고 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아주 아주 더러운 놈들이 다 모인 곳이 교회예요.

인간 말종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고 쓰레기 같은 놈들이 목사들이예요.

 

자기 밥그릇 빼앗아 가면 짐승처럼 돌변하는 것이 목사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교회를 밥그릇 지키는 것처럼 지키려고 싸우는 겁니다.

 

목사가 밥그릇 지키듯이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사수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마귀의 궤계에 농락당하지 않도록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군사라고 하는겁니다.

군사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키고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빈둥거리고 놀라고 군사로 뽑지 않았어요.

그러니 복음을 아는 성도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진도개처럼 싸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게 진리를 지켜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에 살벌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어제까지 호형호제 하던 사람도 진리에서 이탈하면 원수가 되는게 복음에 세계입니다.

바울이 그랬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살다가 죽었어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검을 주려고 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평화롭고 조용하던 집안이 예수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고 아비와 자식이 싸우고 어미와 딸이 싸우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운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일전에 예수님은 가정 파괴범이라고 했던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여러분들이 가정애 행복은 안중에 없어요.

가정에 행복을 중시하는 분이 가정에 평화를 깨는 칼을 주시겠어요?

예수님에겐 진리가 더 중요해요.

진리란 다름 아닌 하나님 약속이에요.

하나님께선 이 땅에 하나님 약속 하나를 남기고자 올인했어요.

 

하나님 앞에선 집안이고, 가족이고, 교회고, 목사고, 장로고, 집사고 중요하지 않아요.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만 중요해요.

그러니 예레미야를 보내고, 에스겔을 보내고, 이사야를 보내고, 엘리야를 보내고, 모세를 보내고,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고 해서 너희들이 가짜 교회를 만들고 가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고발하다가 맞아 죽으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레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다고 한다면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죽을 각오로 하나님의 약속만 전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교인들은 왜? 교회를 신주단지처럼 붙잡고 있는지 알아보아야지요.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알아야지요.

 

오늘은 교회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과 가다가 뜬금없이 묻습니다.

애들아!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예수님은 선지자이고 선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는데? 

이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했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흡족해 하시면서 그래 맞다.

잘 보았다! 라고 칭찬을 했어요.

 

그러면서 제자들이 우쭐 할까봐서 그런데 너희들이 내가 하나님이라고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어서 알게 된 것이다! 라고 가르쳐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선지자라고 하는데 너희들은 나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너희들이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보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됐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신앙 고백하는 자들을 교회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교회란? 무엇이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자이고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였어요.

즉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곳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생겨났으니 이젠 내가 이 땅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난 이제 죽어도 되겠구나! 라고 하신 겁니다.

이제 나를 세상에 알릴 자들이 생겨 났으니 난 이제 하나님께로 가도 되겠다고 하신 겁니다.

이제부터 교회인 너희들이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곤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늘나라 아버지 집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 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건물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제 뉴스에 나온 서울에서 박 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은 무얼 놓고 싸웁니까?

부동산이라는 건물이지요.

전혀 신앙과 상관없는 싸움이지요.

 

아니 교회란?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서요? 

그렇다면 부동산 놓고 싸울 것이 없잖아요!

 

여러분 같으면 그냥 교인들 보고 예수 믿는 사람 이쪽으로 서시고, 건물 믿는 사람 이쪽으로 서세요! 라고 하면 될 것 아닙니까? 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아요.

왜? 그런고 하니 교회라는 건물만 붙잡으면 교인들은 얼마든지 모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이게 인간의 종교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 내곤 제일 먼저 뭘 가르쳤습니까?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라고 하지요.

 

이 말은 지금 너희들 속엔 다른 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즉 가짜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짜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보이는 형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형상이란? 신을 고정화 시킨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처럼 절간에 모셔 놓고 섬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신을 모셔 놓는다는 신전이 생긴 겁니다.

인간들이 사는 곳마다 신전이 다 있어요.

마을마다 다 있고 없는 동네가 없어요.

사람들은 신전에 일 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면서 올 한 해도 무탈하게 잘 지켜 달라고 동네잔치를 벌려요.

그래야 신이 그 동네를 지켜준다고 믿는 겁니다.

 

이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앙이예요.

바닷가이면 고기 많이 잡아 풍어 되게 해달라고 빌고 농사지으면 농사 잘되어 풍년이 되게 해달라고 빌어요.

혹시 신전이 없으면 당상 나무를 섬기든지, 돌을 섬기든지 그래요.

신이 어딘가에 내려 와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신을 형상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액세서리나 마스코트 같은 장신구 있지요.

그게 다 신을 형상화한 부적들입니다.

신을 축소 시켜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특히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에겐 없으면 안되는 것들입니다.

그것 없으면 불안해요.

자동차 앞에다 염주를 걸거나 십자가를 거는 이유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걸 애굽 신앙이라고 해요.

애굽 신앙은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는 모습으로 섬기는 겁니다.

이게 범신론이 되었어요.

만물 속에 신성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만물은 곧 신과 같다는 것입니다.

 

애굽이란? 세상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이런 신앙을 배운 겁니다.

명분상으론 하나님 백성인데 하나님은 애굽 식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에 나와서 제일먼저 한 것이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서 다 죽이라고 합니다.

이 놈들은 다 죽이고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서 빕니다.

하나님 만약에 이 백성들을 여기서 다 죽이면 이방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자기 백성들을 데리고 가다가 다 몰살 시켰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내 목숨을 담보로 이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의 목숨을 담보로 3천명만 죽이고 나머진 다 모세 속에 복속시켜 버립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은 모세 손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그리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율법 속에는 여러 가지 규례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막입니다.

 

성막이란?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성막을 주신 겁니다.

 

성막은 이동식 텐트와 같은데 이것은 광야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성전으로 바뀝니다.

이젠 고정화 되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성전이 여호와의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성전을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름이란? 인격이란 뜻이지요.

즉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는 장차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분이 오실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동식 성막에서는 제사장을 세워서 관리하게 합니다.

이 때는 제사장이 제사를 담당했어요.

광야에서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따로 있었어요.

왕은 하나님 자신이고, 선지자는 모세였고, 제사장은 아론이었습니다.

왕은 선지자인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모세의 말이 곧 하나님 말인 겁니다.

그러면 모세는 제사장에게 지시를 해요.

제사장은 모세의 지시대로 제사를 지냅니다.

 

이게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여 성전이 세워지면서 왕에게 통합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왕을 세워서 이 삼직을 다 통합시켜 버립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왕은 왕이면서 선지자이고 제사장이었어요.

 

물론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있지만 모두가 왕에게 소속된 궁중 선지자이고 궁중 제사장입니다.

왕의 업무를 도와주는 정도일 뿐입니다.

실제적 선지자나 제사장은 왕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큰 행사 때는 왕이 직접 행사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제사장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축복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선지자 노릇한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백성들을 다스렸으니 왕 노릇한 거구요.

 

왕이란? 백성을 다 책임져 주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왕에게 다 복속시켜 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할 때 왕에 제도를 다 알려 준 것입니다.

 

삼상 8:9-17=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10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11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왕이 세워지면 너희들은 그에게 십일조를 내야하고 자식들은 군인으로 징집당하고 전토는 몰수당하고 여자들은 음식과 왕을 수종들어야 한다고 한 겁니다.

종이 된다고 하지요.

 

종이란? 자기 주권이 주인에게 박탈당한 자입니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왕에게 종이 된다고 했으니 이스라엘의 운명은 왕의 수중에 들어간 겁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죽고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 하고만 상대하면 되요.

 

한마디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왕 한 사람 수중에 다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이젠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합니다.

왕이 잘하면 복을 받고, 왕이 잘못하면 저주를 받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 제도를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 사상을 담아 놓은 겁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백성들을 책임지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하고만 따진다는 것을 예표적으로 왕의 제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건 차차 부연 설명 드릴게요.

 

아까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곳이라고 했지요.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성전을 왕에게 맡겼다는 것은 곧 왕과 여호와의 이름과 동일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실 분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란 말입니다.

이해되시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고 로마 식민지에 있으면서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주의 이름으로 오실 메시야인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망한 것은 다 왕이 잘못해서 망했잖아요.

왕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니 하나님이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을 모두 멸망시킨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왕에 대한 천추의 한이 맺혀 있는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이번엔 하나님이 진짜 다윗과 같은 왕을 보내주어서 로마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메시야 대망 사상이예요.

 

메시야만 와봐라!

이 로마 놈들 그 때는 작살내겠다고 속으로 울분을 토하면서 식민지 생활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 골수분자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메시야를 보내 달라고 기도해요.

 

메시야란? 구약의 왕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들을 책임져줄 왕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어요.

동방박사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황금과, 몰약과, 유향 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리지요.

이는 황금은 왕을 상징하고, 몰약은 선지자를 상징하고, 유향은 제사장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구약의 왕이 선지자이고, 제사장이었잖아요.

 

그러니 지금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에게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상징하는 세 가지 예물을 드림으로서 예수님 당신은 구약에 예언 되었던 왕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 하실 때 백성들로 하여금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여! 라고 찬송을 부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 때는 성령이 그렇게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은 다윗과 같은 왕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왕이란 말입니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세우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 나라가 해방된다는 기대심리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이제 됐다.

이제 로마 너희들 죽었다 그랬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로마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으니 속았다고 죽여 버린 겁니다.

왕도 아닌 놈이 왕 행세를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예수님을 왕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른 왕을 고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육적인 왕을 바란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낼 왕입니다.

왕은 왕인데 완전이 다른 왕이지요.

 

유대인들이 성경을 육적으로 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고통당하는 것이 로마 때문인 줄 알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고통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란 겁니다.

그래서 죄에서 구원할 왕을 보내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왕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사정없이 죽여 버린 것입니다.

 

지금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예수를 죽여요.

인간들이 바라는 구세주는 욱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구세주예요.

이 땅에 소원을 들어주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들이예요.

 

이 시대 교인들이 유대인들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만든다는 교회가 전부 가짜 교회인 것입니다.

이 가짜 교회가 진짜 교회를 죽이는 겁니다.

 

중요한 말이니 잘 들으세요.

 

구약의 성전이 뭐라고 했지요.

여호와의 이름을 안치하기 위한 곳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셨어요.

그럼 예수님이 곧 성전이 되는 셈이지요.

맞잖아요.

 

성전에 이름을 안치 한 것은 곧 “한 사람” 을 모셔둔 것이나 같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성전에 지금까지 모셔 두었던 그 “여호와” 라는 분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보이는 건물이라는 성전이 이젠 예수라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진짜 성전이니 이젠 모델 하우스를 철거하라는 말입니다.

진짜 성전이 왔으니 가짜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없어지면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 있던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도 없어지겠지요.

왜냐하면!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모두가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 있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진짜 성전이 왔으니 그들도 다 사라져야지요.

 

그래서 동방박사가 유대인의 왕 앞에 가서 지금 유대인의 왕이 나셨는데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은 겁니다.

이는 넌 가짜 왕이야! 라는 말이지요.

이제 진짜 왕이 왔으니 넌 꺼져! 이 말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자리를 양보 하겠어요.

 

그러니 헤롯왕의 예수님이 난 때를 기준으로 두 살 아래 어린아이들은 다 죽인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에게 내가 진짜 제사장이니 너희들은 가짜이니 꺼져! 라고 하니 이 놈이 누구 밥그릇을 빼앗느냐! 고 죽인 것입니다.

 

율법사와 서기관들도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전문가들인데 예수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냐! 고 죽인 것입니다.

지금식으로 너 목사 안수 어디서 받았어! 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내가 진짜 성전이니 이 가짜 성전을 헐어! 라고 하니 이 놈이 미쳤나! 하고 예수님을 죽인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당시 기득권층으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왕도 부정하고 제사장도 부정하고 선지자도 부정하니 살 까닭이 없지요.

그 당시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는 죽어 마땅한 인물입니다.

아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데 어찌 살려 두겠어요.

이런 사람을 살려두면 세상 질서가 붕괴 되어요.

그러니 빨리 세상으로부터 격리 시켜야 해요.

그래서 속전 속결로 죽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해가 됩니까?

 

길게 안하고 짧게 요약해서 설명하니 어렵지요.

하도 설교가 길다고 하니 줄이려니 내가 더 죽을 지경입니다.

핵심을 집고 넘어 왔으니 핵심만 이해하세요.

 

지금까지 다 이해하셨다고 치고 진도 나갑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교회 이야기 해 봅시다.

 

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었잖아요.

그러니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곤 이젠 죽어도 되겠다고 했지요.

 

제자들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왕이라는 것을 안 것이지요.

그럼 교회란? 예수님을 왕으로 알고 믿는 사람들이란 말이 되지요.

 

그래요. 

교회란?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구약적 개념으로 메시야이고 곧 왕이란 말입니다.

 

아까 왕이 무엇하는 분이라고 했지요.

백성을 책임지는 분이라고 했지요.

 

그럼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님 속으로 자기가 들어간 것이 되겠지요.

나라는 존재는 없고 오직 예수님의 운명 속에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보지 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약속만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뭘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뭘 하셨는가를 깨닫고 감사하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약속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성전도 다 없앴다고 했지요.

 

그럼 지금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성전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예수님이 왕이고 제사장이고 선지자이고 성전이잖아요.

이해되는가요?

 

목사를 제사장이라거나 선지자라거나 하면 안 돼요.

만약에 그런 놈이 있으면 교회서 내어 쫓아야 되요.

그놈은 사기꾼입니다.

 

목사는 예수님이 왕이고 제사장이고 선지자라는 것을 알리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오늘 교회 이야기 하니까 교회로 해석해 봅시다.

 

그럼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는 교회를 교회로 봅니까?

안 봅니까?

안 보겠지요.

보이는 교회에 의미를 두겠습니까?

안 두겠습니까?

안 두겠지요.

 

보이는 교회에 의미를 둔다는 것은 그 사람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성도가 아니고 교인이지요.

성도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교인은 교회를 믿는 사람입니다.

보이는 교회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아직도 구약 사람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시간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왕으로 믿느냐 안 믿느냐로 판단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아직 그 사람은 주전 즉 예수 오시기 전 구약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교회를 교회라고 사수하는 겁니다.

 

그 사람은 교회가 아직도 구약의 성전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고 교회를 지키는 사람은 아직까지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건물을 성전이니 교회 라고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보건데 이 시대 목사들이 성전을 건축한다고 돈을 갈취하는 것은 전부가 다 사기 치는 것입니다.

 

그 놈들은 구약 사람이예요.

아직 예수님을 못 만난 놈들입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제사장 노릇하고 선지자 노릇하고 왕노릇하는 겁니다.

 

교인들이 바보이니까 성전건축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경이니 소경 목사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성전이라고 돈을 냈으니 그 교회를 붙잡지 않겠어요?

 

목사들 세계에서 회자되는 말이 있어요.

교인들 붙잡아 두려면 어떻게 하든지 꼬이든지 사기 치든지 헌금하게 해서 교회 건축하는 거라고 해요.

교회만 건축되면 자기돈 거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죽어도 그 교회 안 떠난다는 겁니다.

 

목사들은 인간의 종교성이 어떤지 아는 전문가예요.

 

그럼 목사들이 교회를 붙잡고 있는 이유가 풀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성전을 두어야 거기서 제사를 지내지요. 

목사는 교회에서 밥 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교회라는 신전을 가지고 있어야 교인들이 와서 제물을 바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보이는 교회만 붙잡고 있으면 손님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사수하기 위해선 박 터지게 싸워야지요.

목사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라는 직장에서 쫓겨 날 순 없잖아요.

교회에서 쫓겨나면 어디 가서 뭘 해먹고 삽니까?

배운 도적질이 그것 밖에 없는데,,,,

 

목사가 신학교 처음 나왔을 때는 사명감이랍시고 복음만 전한다고 설쳐 댑니다.

그때는 아직 인생이 무엇이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래요.

 

한마디로 사명감 충만했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 줄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그러나 목회라는 것이 의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닳고 닳은 6천년 묵은 이무기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예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부양가족이 생기고 근력이 떨어져 보세요.

그 때부터 교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 여기가 내 밥 줄이구나!

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현실은 냉엄합니다.

내 교인 만들기냐?

아니면 다른 교회로 빼앗기느냐?

헌금이라도 좀 하는 사람이 다른 교회로 옮긴다고 하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돈 나가는게 뻔히 보이는데 가만있겠어요.

 

처음엔 점잖을 떨다가도 안 되겠다 싶으면 온갖 소리로 비방을 해댑니다.

비방하는 목적은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함입니다.

다른 교인들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전술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미지 관리하던 것들이 다 날아갑니다.

복음 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턴 교회 지키기에 몰입하는 겁니다.

서서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짐승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안면 몰수 합니다.

하루아침에 변하면 눈치를 채니 교묘하게 물을 탑니다. 

교인들이 종교성을 자극하여 행함을 강조하게 되고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선 교회 박살내기 운동을 벌리십니다.

 

교인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떠납니다.

 

그러면 목사는 교인들 단속에 나섭니다.

교회 지키기 하는 자들의 제일 처음 시도하는 것이 교인을 사유화 하는 것입니다.

사유화 한다는 것은 외부와 차단하는 일입니다. 

교인들을 소경 만들기 작전에 돌입하는 겁니다.

특히 라이벌 교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 쪽 교회 교인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감시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밥그릇을 빼앗아 가면 가만 두지 않고 싸움을 겁니다.

드디어 짐승의 먹잇감 챙기기 본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목사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를 통하여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무리들은 다 동일합니다. 

장로들이나 안수 집사들이나 권사들도 매 마찬 가지입니다.

기득권 세력들은 절대로 보이는 교회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왜? 거기에 자기 명예와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한을 교회 안에서 풀어야 하는 한풀이 공간이 교회이거든요.

교회가 사교(邪敎)화가 되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교회를 허무는 일을 단행하시는 겁니다.

교회를 허문다는 것은 보이는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로 성도들 빼낸다는 뜻입니다.

보이는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로 빼내는 제 2의 출애굽을 단행하십니다.

 

이는 마치 구약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불러들이고서 하늘에 있는 본향을 향해 살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에 땅은 하늘에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결국 가나안 땅은 허상이고 진짜 가나안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겁니다.

 

이처럼 보이는 교회로 불러들이고선 교회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하늘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이 곧 교회라고 알려 주십니다.

예수를 믿는 네가 바로 교회라고 알려 주십니다.

그러니 보이는 교회를 붙잡지 말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살라고 합니다.

 

흔히 유식한척 원문을 동원하여 교회는 “에클레시아” 라고 하면서 불러냈다고들 합니다.

세상에서 교회로 불러냈다고 합니다.

맞아요.

 

원문은 불러낸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보이는 교회로 불러 낸 것이 아니고 예수 안으로 불러 낸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로 불러냈다고 가르치면 같은 지평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방만 옮긴 것이 되요.

즉 땅에서 땅으로 옮겨진 것일 뿐입니다.

 

지평이란 말은 층이란 말입니다.

쉽게 말할께요.

홍수가 나서 물에 잠기면 1층부터 잠기겠지요.

그러면 1층 전체를 한 지평 아래 있다고 합니다.

지평이 다른 2층은 물이 안 잠기지요.

 

똑 같은 아파트인데도 지평이 즉 지층이 다르면 전혀 다른 세상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한 교회 안에서도 땅에 속한 사람이 있고 하늘에 속한 사람이 있어요.

교회에 와서도 땅을 집착하면 세상이나 교회나 한 지평인 겁니다.

보이는 것을 붙잡으면 땅에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들어온 자들 속에서 하늘로 불러내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불러내는 것은 땅에서 하늘로 불러내십니다.

다른 세계로 불러낸단 말입니다.

땅과 하늘은 다른 세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는 교회로 불러 들여서 예수 안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 안에 두 부류가 생깁니다.

보이는 교회를 붙잡는 자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붙잡는 자가 생기지요.

 

보이는 교회를 붙잡는 자는 교회 사수하기에 집중하고,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한 자들은 보이는 교회에 별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그냥 짐승에게 고깃점 하나 던져 주고 서로 쌈박질하면서 실컷 쳐 먹으라고 합니다.

 

뉴스에 나온 교회처럼 서로 보이는 부동산 교회를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우다가 둘 다 지치면 지나가던 개(마귀)가 어부지리로 두 놈 다 쳐 먹는 겁니다.

 

보이는 교회는 역사적 교회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교회를 묵시적 교회라고 해요.

 

묵시적이란 말은 쉬운 말로 영적 교회라고 합니다.

영적 교회란 영에 속한 교회란 뜻입니다.

영이란? 육(땅)과 반대 되는 말입니다.

 

육에 반대는 예수님이예요.

 

아담은 육이고 예수님은 영입니다.

그래서 육이라고 하면 아담 안에 속한 자를 말하고 영이라고 하면 예수님 안에 속한 자란 뜻입니다.

그러니 영적이란 말은 예수님께 속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담(육)을 공격하면서 다가오십니다.

예수님 당시를 가지고 설명하면 보이는 성전은 육입니다.

예수님은 영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오셔서 보이는 성전 즉 육을 깨부수는 겁니다.

 

이건 가짜이니 헐어버리라고 하신단 말입니다.

그럼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면 네가 지금까지 생각하던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가오는 겁니다.

 

인간은 보이는 신전을 갖고 싶어 하니까 하나님은 보이는 신전을 허물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교회가 깨어져야 보이지 않는 교회가 보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교회를 교회라고 의미를 두지 마세요.

이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겁니다.

 

엄밀히 말해서 신약에서의 교회란 장소적인 의미 밖에 없어요.

예배 처소라고 하면 맞는 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이 모여서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어느 한 집에서 모이기가 불편하니까 장소를 마련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이는 장소에 큰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되겠지요.

전 개인적으로 교회가 돈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돈이 모이면 그 돈에 눈독이 들어갑니다.

돈 때문에 싸우게 되요.

처음엔 복음 복음 하였지만 눈에 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면 삼킬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목사라도 예외 일수 없어요.

 

그러니 교회가 돈을 모으는 것은 장차 교회를 박살낼 폭탄을 장치해 놓는 것과 같아요.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저 옆에 달동 주공 옆에 가면 중형교회가 하나 있어요. 

주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 교회도 건축을 하였는데 약 50명 정도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교회를 지으면서 분란이 일어나고 하다가 교회를 다 지을 지음에 교인들이 다 나갔어요.

그래서 목사가 교회를 팔려고 내어 놓았어요.

아주 싼 값으로 내어 놓았데요.

십 수 년 전인데 그때 돈 3억을 받기로 하고 내 놓았어요.

목사는 교인들이 나갔다고 좋아했어요.

이제 내 돈 되겠구나! 한 것이지요.

그런데 나갔던 교인들이 이 소문을 듣고 다시 들어 온 겁니다.

그래서 맨날 싸운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목사가 돈 얼마를 받고 나갔다고 해요.

 

또 여기오거리에 있던 교회이야기입니다.

 

거기는 교회 건물을 팔고 저 천상인가 어디에다 좋은 교회를 지었어요.

교회를 지을 때는 목사와 장로가 죽이 척척 맞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 짓고 나선 장로라는 인간이 목사보고 오지 말래요.

우린 다른 목사님 청빙해서 교회 하겠다고,,,

그 목사는 돈 몇 푼 받지도 못하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헛물만 켜다가 말았지요.

목사가 화병이 나서 몸져누웠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모르겠네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가 복음을 모른채 보이는 교회가 교회인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교회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것도 다 돈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교회에다 투자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서로 필요한 만큼 서로서로 부담하여서 조금 부족한 듯 하면서 살아야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야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하고 반가워지는 것입니다.

 

뭉터기 돈 다발을 가지고 있어 보세요.

다 도적놈 같이 보여요.

사람은 안 그러려고 하는데 돈이 그렇게 만듭니다.

돈 때문에 그 좋던 사이가 멀어지고 으르렁 거리는 짐승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전 깨달은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는 돈을 주지 않고 복음을 주고,

마귀가 사랑하는 교회는 복음을 주지 않고 돈을 주는 것을 알았어요.

 

이번 성탄절에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신가?

 

그리고 교회가 도대체 무엇인가? 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상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묵시적 교회와 역사적 교회에 대하여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소경이 아니라야 제가 거짓말을 못합니다.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말씀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래야 목사나 성도가 서로 모니터링을 하게 되요.

 

서로 눈이 밝아야 허튼 짓을 하지를 않습니다.

 

부디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 속에 왕으로 자리하고 계신 것을 믿고 감사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가짜교회가 진짜 교회로 둔갑하여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시대에 눈을 열어 주시고 귀를 열어 주셔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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