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강. 토지를 반납하고 종으로 살아가라 (창 47:13~26절)
창 47:13-26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이 거두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오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진한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가로되 돈이 진하였사오니 우리에게 식물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가로되 너희의 짐승을 내라 돈이 진하였은즉 내가 너희의 짐승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 짐승을 요셉에게 끌어 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곧 그 모든 짐승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식물로 그들을 기르니라 18. 그 해가 다하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고 전지도 황폐치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 전지를 다사서 바로에게 드리니 애굽 사람이 기근에 몰려서 각기 전지를 팖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25.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천지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밖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용도가 있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알리려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면서 성경의 문을 열고 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이는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보이는 이 세상은 허상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이 증거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으로 믿어지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허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허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허상이고 만물도 허상이고,
만물 속에 있는 모든 것이 허상인 것입니다.
그럼 묻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천지 밖에 계시던 하나님이 왜 천지를 만드셨을까요?
어떤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목적이 다하면 이 세상은 철거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을 봅시다.
히 1:10-12절.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하늘도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다 멸망할 것이고,
옷과 같이 낡아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용도가 다하면 폐하여진다는 말입니다.
마치 아파트 모델 하우스와 같이 설명을 다 하고 나면 철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델 하우스는 아파트를 설명하고자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럼 만물을 왜 만드셨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1장과 골로새서 1장을 봅시다.
롬 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골 1:16-17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로마서에서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골로새서에서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럼 만물은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가 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봅시다.
요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태초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 나라를 본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말씀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또한 이 사실을 알려주는 하나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즉 태초에 삼위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자이신 예수님을 말하고,
하나님이신 하나님은 성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면 창세기 1장 1절 이전의 모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태초는 창조의 시작을 말하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고,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원본이고,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인 천지창조로 나타난 이 세상은 복사본이 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만물 밖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필요에 의하여 만물을 창조하십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을 위하여서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필요에 의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만물의 주인이고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그 이름 속에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러라” 라는 뜻입니다.
자기 백성이라 함은 남의 백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땅의 것은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를 천지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의인화하면 하늘에 속한 백성과 땅에 속한 백성이 됩니다.
하늘에 속한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였고,
땅에 속한 백성은 보이는 이 세상에 속하였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이고,
땅에 속한 자는 녹명되지 않은 자라고 합니다.
성경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를 자기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러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자들은 자기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에서는 토기장이와 두 그릇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긍휼을 담는 그릇이고 다른 하나는 진노를 담는 그릇입니다.
긍휼을 담는 그릇을 자기 백성 즉 언약의 후손이라 하고 진노를 담을 그릇은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백성 즉 언약의 후손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 즉 이방인은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들을 위하여 필요한 그릇인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으니 자기 백성이라고 하는 자도 자기 백성이고 자기 백성 아닌 자도 자기 백성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두 부류로 나눈 것은 예수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일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만유의 주십니다.
천국도 예수님 것이고 지옥도 예수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 다 죽어서 하나님께 갔습니다.
여기서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의역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옥에 있는 부자에게도 아버지이고 천국에 있는 나사로에게도 아버지입니다.
이건 마치 집에서 쫓겨난 이스마엘에게도 아브라함은 아버지이고 유업을 이을 이삭에게도 아브라함은 아버지인 것과 같습니다.
부자와 나사로는 둘 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는 존재하는 공간이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하나는 천국에서 살고 하나는 지옥에서 삽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 세상에 셋팀을 해 놓으신 것입니다.
아까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 세상에도 두 부류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것이 언약의 후손과 이방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둘이 섞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둘은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건 마치 천지창조 첫날에 빛이 오심으로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와 구원은 동의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를 심판하는 것을 천지 창조로 이야기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를 통한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이야기를 언약하셨습니다.
이름하여 창세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세전 언약으로 다스리십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언약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요셉의 이야기는 그냥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 속에 장차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일들이 담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창세기를 여기까지 강해해 왔습니다.
이제 그 막바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셉이 온 세상의 토지를 환수하여 바로에게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구속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왜 기근을 통해서 온 세상의 토지를 요셉이 환수를 하고 온 나라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요셉의 종이 되게 하였을까요?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성경은 단편적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의 이야기 속에 많은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담겨 있어요.
마치 하늘의 네 생물처럼 각각의 다른 모습을 띠고 있어요.
에스겔 1장 10을 보면 네 생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네 생물은 동서남북에서 보면 각각 다릅니다.
이건 마치 4복음서와도 같습니다.
4복음서는 다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 이를 사자의 얼굴이고,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데 이를 송아지 얼굴이고,
누가복음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데 사람의 얼굴이고,
요한복음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데 독수리 얼굴입니다.
넷은 하나이면서 각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합니다.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마다 다양한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각각의 성경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과 요셉을 구속사로 볼 때는 야곱은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이고 요셉은 예수그리스도의 입장입니다.
지난 시간 야곱의 바로를 축복하는 장면 속에서는 야곱은 하나님의 입장이고 바로는 성도의 입장인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게 될 이야기 속에 요셉이 세상의 모든 전지를 값을 주고 다 사서 바로에게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요셉에게 은혜를 입고 자진해서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바로는 하나님의 입장에 있고 요셉은 예수님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온 세상을 아버지께 바치는 종말론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사건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도 단편적으로 보면 안 돼요.
왜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예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이 있고, 성령의 사역이 있고,
또한 예수님의 삼직 가운데 선지자적 사역이 있고, 제사장적 사역이 있고, 왕적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삼직은 과거적 이야기와 현재적 이야기와 미래적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한 본문 속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성경 해석학이에요.
모든 성경은 예수님 이야기라고 했어요.
사도 바울도 절기나 월삭이나 먹는 것이니 마시는 것이나 모든 것이 장래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의 그림자라고 했어요.
성령이 감동을 주시면 하나의 사건 속에서 다양한 구속사 이야기로 해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성경의 이야기가 너무도 신묘막측해서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울이 고백했어요.
롬 11:33-36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깊디 깊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뉘라서 알 수가 있겠느냐고 탄복을 했어요.
그러니까 설교를 들을 때 오늘은 어디에 포카스를 맞추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해요.
제가 성경을 인간의 이성으로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성경 자체가 예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이성적으로 보면 인간들 이야기로 전락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도 잘못 해석할 것 같으면 집문서를 교회에 바치라고 해요.
실제로 그런 목사들이 있어요.
제가 과거에 알던 어떤 목사는 종말론을 외치면서 교회의 중직자들은 모두 집문서를 교회에 바치라고 하였어요.
이러한 일은 모든 이단들이 하는 짓거리들이에요.
모든 이단들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 미혹해요.
어느 특정한 장소를 말하거나,
어느 특정한 인물을 말하거나,
어느 특별한 체험을 강조하면서 이익을 탐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종말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들이라고 하였어요.
모르면 속아요.
내가 소경이면 소경을 따르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을 구하여야 하는 겁니다.
성경의 올바른 진의를 알아야 속지 않아요.
모든 말씀의 끝자락에 오직 예수만 보여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야 해요.
그 말씀 앞에 티끌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한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이 일어나야 해요.
표피적인 감정선을 건드려서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일어나는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해요.
주님 감사합니다.
주여 고맙습니다.
주의 은혜가 너무도 커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이런 은혜가 지렁이 같은 자에게 임하였는지 유구무언입니다.
주께서 나의 주가 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난 후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엔딩크레딧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과 같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사가 그러해요.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설레이고 감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이야기에요.
오직 자기 백성 구하는 이야기에요.
어느 성경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드러나야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창세기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달려왔습니다.
오늘도 요셉의 토지 환수 사건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약전으로 사는 사람이에요.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받았나요.
형제들의 주가 되고 만유의 주가 되는 축복을 받았어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한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렇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에요.
야곱이 받았던 복을 누가 대신 사는가 하면 요셉이에요.
요셉은 야곱의 2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야곱이 얍복강에서 깨어지고 이스라엘이 되었어요.
그 이스라엘의 삶을 누가 사느냐?
요셉이 사는 거예요.
본문을 31절을 보세요.
창 47:27-31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 칠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 칠세라 29.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야곱이 죽을 때가 가까이 오자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이 오자 야곱은 요셉의 손을 자기의 환도뼈 아래 넣으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죽으면 애굽에 묻지 말고 조상이 있는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야곱이 하나님께 경배를 합니다.
이때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라고 하지요.
야곱이 요셉에게 맹세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맹세를 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왜 야곱으로 요셉에게 맹세를 받고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까요?
그리고 왜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를 하라고 합니까?
환도뼈는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흔적이에요.
이러면 요셉의 맹세가 곧 이스라엘의 맹세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요셉이 하는 일들은 야곱이 하는 일이고,
야곱이 하는 모든 일들은 전체 이스라엘이 하는 일들이고,
전체 이스라엘이 하는 일들은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바로에게 애굽의 모든 토지를 사서 바치고 모든 사람을 바로의 종이 되게 하는 이이야기는 장차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몽땅 구원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모습을 예표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요셉이 토지를 무엇으로 삽니까?
양식으로 사지요.
토지와 양식을 맞 바꾸었어요.
여기서 잠깐
음식과 양식에 대하여 살펴보고 갑시다.
음식과 양식은 영적 의미로 달라요.
음식은 아래서 난 것으로서 육신이 먹는 것이고,
양식은 위에서 난 것으로서 영혼이 먹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을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지요.
떡은 육신이 먹는 것이고 말씀은 영혼이 먹는 것이에요.
쉬운 말로 음식은 땅의 기운을 품은 것으로 땅에서 난 자들이 먹는 것이고,
양식은 하늘의 기운을 품은 것으로 하늘로서 난 자들이 먹는 것이에요.
음식은 옛 사람이 먹는 것이고,
양식은 새 사람이 먹는 것이에요.
음식은 아래 말씀이고,
양식은 위에 말씀이에요.
음식은 율법이고,
양식은 은혜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로 나오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지요.
만나는 광야에 나온 자들이 먹을 양식이에요.
이 양식이 어디로 인도합니까?
가나안으로 인도해요.
가나안에 들어가니까 만나가 그치지요.
왜 그런가요.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해요.
만나가 천국으로 인도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만나를 가지고 자신을 설명했어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어요.
만나를 먹고 가나안에 들어갔듯이
예수를 먹어야 천국에 가요.
예수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떠나가지요.
그때 떠나간 자들을 일컬어 여러 제자라고 합니다.
이 제자는 자신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따른 자들이에요.
이들에게는 예수는 감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겁니다.
이 일이 있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지요.
너희도 갈래.
그러자 제자들이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 라고 기특한 말을 하지요.
이에 예수님이 이건 너희들이 똑똑하고 잘나서 그런게 아니고 내가 너희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는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 믿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천부께서 심지 않은 자는 다 뽑힌다고 하신 겁니다.
여럿이 돌아간 제자들은 천부께서 심지 않은 자들이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이 되어서 다 돌아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영적 설교를 하면 육적 신자들은 다 떠나요.
떠난다고 섭섭해하면 안 되어요.
양식을 음식으로 먹는 자는 다 떠나요.
이 시대 예수를 땅에 복을 주는 분으로 알고 가르치거나 따르는 자들은 모두가 양식을 음식으로 먹는 자들이에요.
이런 자들은 다 걸려서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나중에 예수님은 이런 자들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양식을 음식으로 막는 자들이 양식을 주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정죄를 해요.
암튼 음식과 양식을 잘 이해하세요.
다시 요셉으로 돌아갑시다.
요셉이 주는 것은 음식이 아니고 양식이에요.
기근 때 먹은 곡식은 창고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에요.
창고란? 하늘을 상징해요.
하늘의 양식이란 뜻이에요.
하늘의 양식을 먹은 자들은 자발적으로 토지도 반납하고 종이 되겠다고 해요.
그래서 요셉이 모든 토지와 사람들을 바로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 이야기로 풀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양식으로 주셨어요.
그것이 구유에 태어나는 표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구유란 짐승의 밥통이에요.
짐승은 죄인을 상징해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죄인인 자기 백성들에게 밥으로 주신 것입니다.
짐승이 예수를 먹으면 사람이 되어요.
누구든지 예수를 먹으면 구원을 받아요.
천국으로 가게 되어요.
예수님이 그러지요.
누구든지 나를 먹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셨지요.
최후에 만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내 살과 피라고 하셨잖아요.
이 땅에 예수님을 양식으로 먹은 자들이 있어요.
그들이 누구인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에요.
이름하여 예수님의 자기 백성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양식을 먹고 짐승에서 사람이 된 자들이에요.
예수를 먹고 사람이 된 자들은 인생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고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에요.
그럼 요셉이 토지를 사서 바로에게 드리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이야기는,
신약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주어서 먹게 하여 구원을 한 우리들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다 자기 피로 사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해요
고린도전서 15장을 보고 갑시다.
고전 15:21~24.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아담 아래서 모든 인간들이 다 죽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안에서 살려냅니다.
예수님을 먹고 살아난 자들을 아버지에게 바치지요.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고 하잖아요.
나라란? 큰 민족을 말해요.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 보낼 때 뭐라고 했나요.
네 후손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서 나오게 된다고 하잖아요.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
하나님이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데리고 와서 이 산에서 나에게 경배케 하라고 하셨어요.
모세가 사명을 받던 산이 호렙인데 이를 하나님의 산이라고 해요.
그래서 모세가 애굽에 가서 언약의 후손들을 몽땅 데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산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시내 산이 호렙산이에요.
시내 산에 당도하자 하나님이 시내 산 위에 강림을 하시잖아요.
모세가 백성들을 하나님께 다 바친 것입니다.
이 모습을 사도바울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고 한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첫 열매라고 하지요.
왜 첫 열매라고 하나요.
첫 열매라 함은 그 다음으로 일어날 열매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맞아요.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예수를 통해서 죽었다가 살아나는 자들이에요.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죽었어요.
그런데 수 많은 밀 알들을 생산해 내신 것입니다.
이게 농사에요.
농부가 한 알갱이를 심어서 수 많은 열매들을 거두어요.
하나님이 농부세요.
그 씨는 예수에요.
예수를 어디에 심느냐,
자기 백성들에게 심어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밭인 겁니다.
예수가 심겨진 밭을 하나님이 농부가 되셔서 가꾸는 겁니다.
이걸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밭이라고 하는 겁니다.
밭이 좋아서 좋은 밭이 아니고 하나님이 관리하기 때문에 좋은 밭인 겁니다.
우리 모두가 길가 밭이고 돌작 밭이고 가시밭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중에 하나를 선택에서 개간을 하고 돌을 제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산물을 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다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첫 열매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첫 열매가 수많은 다른 열매들을 낳는 겁니다.
예수님 안에서 다른 열매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첫 열매는 장자라는 개념이에요.
예수님이 장자에요.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난 자들을 장자라고 해요.
장자가 장자를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자들의 나라에요.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가 있어요.
천국은 장자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에요.
모세가 애굽에서 빼내온 자들을 장자라고 해요.
하나님은 장자들에게 유업을 주세요.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두 장자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을 물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장자로 보내서 장자들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로 낳아진 자들은 모두가 장자인 겁니다.
예수님이 자기와 똑 같은 자를 낳은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게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기 위해서 죽은 거예요.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였잖아요.
그럼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는 나중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는 바로 자기 백성들이에요.
베드로가 너희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라고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나라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야곱을 애굽에 왜 내려 보냈느냐?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에요.
아브라함 언약에 의할 것 같으면,
그 후손이 이방에 나가서 큰 나라를 이루어 오기로 되어 있어요.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보낸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애굽에서 그들이 400년간 종살이하다가 큰 나라를 이루어서 나왔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큰 나라를 만들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고 복음이 증거 된다고 하신 겁니다.
성령이 온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신 겁니다.
고린도전서 15장를 다시 보세요.
고전 15:28절.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물을 아버지께 바칠 때가 오지요.
이러면 예수님도 아버지 앞에서 종이 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사명을 다 감당하고 장자로서 보고를 하잖아요.
그럼 아버지는 만유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들은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나요.
주라고 부르지요.
이렇게 되면 예수님은 형제들의 주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누구의 뜻을 좇아서 이 땅에 오셨나요.
아버지의 뜻을 쫓아서 이 땅에 오셨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낳은 것이 무슨 일인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만유의 주가 되게 하는 일인 거예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게 하신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시죠.
그럼 예수님 입장에서 하나님은 뭐가 되나요.
주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유의 주가 되는 일을 하신 거예요.
주란? 머리를 말해요.
모든 만유가 누구의 것이 되느냐?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지요.
지금 요셉이 그 일을 하는 거예요.
요셉이 애굽의 양식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로 바로의 종으로 삼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모든 나라가 바로의 종이 되어 버렸어요.
이렇게 되면 바로가 만유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바로는 하나님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바로와 요셉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는 일은 전부가 예수님께서 하는 일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해 내느냐,
요셉을 통해서 보여주셨어요.
어떤 방식으로 구원해 내시느냐?
요셉에게 귀속시킴으로 구원을 해내는 겁니다.
요셉은 자신이 준비한 양식으로 모든 백성들을 샀어요.
예수님도 자신의 살과 피로 우리를 샀어요.
예수님의 살과 피로 팔린 자들은 종이 된 겁니다.
그래서 성도를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 겁니다.
종은 주인의 운명에 동참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버려짐의 삶이에요.
버려짐의 삶을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해요.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을 잃어버린 양이라고 해요.
구원은 잃어버렸던 것을 되 찾는 것이에요.
잃어버렸다는 것은 원래 주인의 것이란 말입니다.
이걸 요셉 이야기로 해 봅시다.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바로에게 돌려주었지요.
그럼 원래 그 토지는 누구 것인가요.
바로의 것이죠.
바로의 것인데 이놈들이 자기들 것인줄 알고 살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근을 보내 가지고 곡식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까 곡식은 음식이라고 했지요.
음식은 흙에 속한 자들이 먹는 거에요.
음식이 끊기자 요셉의 양식을 먹이신 것입니다.
요셉의 양식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 먹는 거에요.
요셉의 양식을 먹은 자들은 죽었다 살아난 자들이에요.
음식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양식으로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양식을 먹고 보니 그동안 자기들 땅이라고 여긴 것이 전부 바로의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바로에게 바친 겁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도 자기들 것이 아니고 바로의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이젠 우린 바로 왕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자청하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 동안에 자기 토지라 생각하고 개간해서 먹고 살고 있었는데,
기근이 들고 보니까 자기들은 바로의 것을 먹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토지를 몽땅 바로에게 돌려드리고 자신들도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한 겁니다.
하나님은 기근으로 백성들이 실존을 알려준 것입니다.
백성들은 기근을 통해서 자기 실존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 기근이 복이 되겠지요.
맞아요.
기근이 복인 겁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그럼 이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것인 줄 알고 살았어요.
우리가 하늘의 양식인 예수를 먹고 보니까 우리가 그동안 먹고 입고 마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하고 우리의 재물을 연보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레 25장과 학개서 2장을 봅시다.
레 25:23절.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학 2:8절.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토지는 하나님이 것이라고 하고,
또한 은과 금도 하나님 것이라고 하지요.
이 말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인간들이 아나요?
몰라요.
자기들 것인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알려주는 일을 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보낸 것과 마찬가지에요.
요셉을 통해서 애굽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누리던 모든 것이 바로 왕의 것이란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잘 살 때는 몰랐는데 기근을 당하고 나니까 알게 된 것입니다.
기근을 당하고 요셉이 제공한 양식을 먹고 보니까 땅도 바로 왕 것이고 자신도 바로 왕의 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당신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나요.
예수 믿기 전에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차압된 인생을 살아가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바로의 종으로 사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제 2막으로 가 봅시다.
백성들이 토지를 헌납하고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제 땅도 사람도 다 바로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주어서 농사를 짓게 합니다.
이러면 온 백성들이 다 바로의 농사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알게 하려고 요셉은 백성들에게 농산물의 1/5을 세로 바치라고 합니다.
1/5을 바치라고 한 것은 주종 관계를 각인시키고자 함이에요.
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라는 겁니다.
너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도움으로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1/5은 십일조와 같은 의미에요.
최초의 십일조 사건을 살펴봅시다.
창세기 14장을 봅시다.
창 14:1-20절.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 년에 배반한지라 5. 제 십사 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9. 곧 그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14.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 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당시 소돔 땅에서 부족들끼리 연합하여 두 편으로 나누어져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속한 연맹이 패하여서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 소식을 아브라함이 듣고 자신의 집에 있는 가병 318명을 데리고 가서 포로로 잡혀간 모든 사람과 재물과 롯을 찾아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맞이하고 축복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한 전쟁의 의미를 알려줍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전리품 중에서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전리품은 전쟁에서 이긴 자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리품을 하나님에게 드린 것은 이 전쟁은 하나님의 하신 전쟁이 되는 거지요.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전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리품을 하나님에게 드린 것입니다.
이게 최초의 십일조입니다.
이 이야기가 430년 후 출애굽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가나안 땅에 살게 합니다.
이 때 가나안 땅을 공짜로 분배해 줍니다.
그러면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합니다.
십일조는 출처를 알게 하려는 것이에요.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말은 십일조만 하나님 것이 아니고 몽땅 하나님의 것임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십일조는 감사의 예물이지 자기들 생색내는 것이 아니에요.
백성들이 바로에게 1/5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1/5을 낼 때마다 바로의 것으로 산다는 고백을 해야 하는 겁니다.
결국은 이 사건을 통해서 너희들은 너희들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왕의 것으로 살고 있음을 알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세요.
너희들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거예요.
이 사실은 하늘의 양식을 먹은 자들만 알아요.
땅의 음식을 먹는 자들은 몰라요.
쉬운 말로 위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알고,
거듭나지 못한 육에 속한 자들은 몰라요.
양식은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난 자들이 먹고,
음식은 육에 속한 법 아래 있는 자들이 먹어요.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신앙생활을 감사로 하지 않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하는 것입니다.
법 아래 있다가 기근과 같은 일들을 통해서 자기 실존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면 그 때 감사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거예요.
로마서 12장을 봅시다.
롬 12: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는 1장에서 11장까지 교리를 말해주고 있어요.
너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어요.
인간들의 행함으로 얻어내는 율법의 의가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았다고 알려줍니다.
인간의 행위로 얻어진 구원이면 자랑 할 것이 있지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면 자랑할 것이 없고 감사 뿐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를 너희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라고 합니다.
이를 직역하면 너희가 살아가는 삶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 자체가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산 제사의 제물은 당연히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겁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영적 예배인 거예요.
그게 산 제물인 겁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섬기고 봉사하는 헌신이 곧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산 제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토지를 분배받은 자들만이 할 수가 있어요.
우리 몸이 토지와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 몸을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것이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토지의 소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토지를 분배 받아서 먹고 사는 것을 아는 자만이 토지의 소산물의 1/5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치면서도 자기 생색을 낼 수가 있을까요?
없어요.
도리어 감사가 나오겠지요.
신명기 26장을 봅시다.
신 26:1-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12.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서 맏물을 거두면 그 거둔 것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이렇게 고백하라고 알려줍니다.
우리는 본래 유리하는 백성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애굽에서 빼내서 이곳으로 인도하여서 이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렇게 농사를 지어서 농산물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 농산물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 고백하라고 합니다.
맏물이란? 십일조와 같아요.
그럼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맛난 음식들을 만들어서 그 동네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축제를 벌립니다.
고아나 과부와 나그네들과 함께 축제를 벌이는 거예요.
이러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을 먹고 마시면서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에요.
교회가 이러해야 해요.
세상에서 열심히 일 하세요.
그리고 교회에 왔을 때는 한 주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내가 직장 생활한 것도 내 것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했습니다.
봉사를 해도, 헌금을 해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것을 안 받아요.
하나님의 것을 달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꺼 내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이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아는 사람만 내어놓은 거예요.
하나님이 주셔서 얻어진 것을 아는 자만이 감사하므로 내어놓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께 받은 것을 모르는 자는 절대로 내놓지 못해요.
그걸 인색해서 못 내어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신약의 연보는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걸 잊으면 그 땅에서 살 수가 없어요.
이걸 예수님은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로 말씀하셨어요.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동네 사람 모두를 초대했어요.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자들이 자기 일 때문에 불참을 합니다.
그러자 왕이 군대를 보내서 다 쓸어 버렸어요.
이걸 윤리적으로 보면 안 되어요.
당시에 왕은 그 동네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어요.
그럼 그 동네 사람들은 왕의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거절하였어요.
이는 왕의 은혜를 모르는 처사에요.
왕의 은혜를 모르는 자는 그 동네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죽여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천국은 누가 가고 지옥은 누가 가나요.
천국은 은혜를 아는 자가 가고,
지옥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가요.
지금 보세요.
애굽에 기근이 들었는데 누구 때문에 사는 건가요.
요셉이 준비한 양식 때문에 살고 있잖아요.
바로가 주는 양식 때문에 살잖아요.
그동안은 몰랐는데 기근이 들자 비로소 자신들이 그동안 바로 왕의 은혜로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바로 왕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제 요셉은 그들을 은혜 아래 머물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토지를 무상으로 주고 1/5 세경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백성들은 영원히 이 구조 아래서 살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1/5 세경을 내면서 도리어 감사하게 되는 겁니다.
세경을 바치면서 우리를 살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라고 하게 된단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면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창 47:22절.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바로는 모든 백성들의 토지를 사 들였어요.
그런데 유독 제사장들의 전지는 사지 않았어요.
왜 그런가요.
제사장들은 이미 바로의 녹을 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바로가 주는 것으로 살았어요.
자신들은 바로의 은혜를 입고 살고 있음을 알아요.
그래서 바로가 제사장들의 전지는 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것을 빼앗아서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주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고 하였어요.
이게 천국이에요.
천국은 은혜는 아는 자는 더 풍성해지고 은혜를 모르는 자는 쫓겨나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남기는 일을 하세요.
그래서 잃어버렸다가 되찾아짐을 당하는 일로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지요.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다스려왔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일하셨던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가 아들을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것으로 나타나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같은 길을 걸었어요.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죽이지요.
이건 아브라함이 죽는 것과 같아요.
이삭 대신에 숫양이 죽었지요.
그건 이삭이 죽은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예요.
이삭도 장자의 축복을 했는데 그가 야곱이잖아요.
장자의 축복을 했는데 집에서 도망가라고 축복했습니까?
집에서 살라고 축복했습니까?
집에서 살도록 축복했잖아요.
그런데 집에서 살았나요 쫓겨났나요?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야곱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것이 되는 거예요.
야곱도 마찬가지에요.
야곱의 장자가 누구인가요?
야곱의 약전에 요셉이 올려져 있지요.
이는 요셉이 장자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요셉이 어떻게 되었나요.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것으로 나타나지요.
왜 이렇게 일을 하는가요.
모두가 은혜를 남기기 위함이에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간섭하느냐?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방식으로 일을 하세요.
잃어버렸다가 되찾음이 될 때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종의 자리에 서게 되는 거예요.
로마서 11장을 보세요.
참 감람나무 비유를 보면 원 가지를 잘라냈다가 다시 접붙이지요.
잘려 나간 그 자리에 이방인을 접붙였어요.
그런데 이방인이 교만 하자 잘라내고 그 자리에 잘려 나간 원가지를 다시 접붙임을 하십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된 가지는 모두가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오로지 은혜를 남기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은혜에요.
은혜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어요.
지금 애굽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를 말해주고 있어요.
요셉이 예수님을 상징한다면 바로는 하나님을 상징해요.
이러면 애굽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은혜를 아는 것이에요.
탕자 비유를 보세요.
둘째가 집을 나가버립니다.
집 떠난 둘째는 객지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탕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종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로 대우를 합니다.
그리고는 반지를 끼워주면서 집안을 맡깁니다.
탕자는 종의 자세로 집안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종처럼 일을 하겠다는 거예요
종은 자기 기득권이 없어요.
이 모습이 성도의 모습이에요.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왕의 종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구원이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아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버려짐을 당한 자들이에요.
이들을 찾으려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잃어버려진 자들을 찾아내서 구원을 하십니다.
이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을 보세요.
맏아들은 은혜를 몰라요.
맏아들은 잃어버린 경험이 없어요.
그러니 은혜를 모르는 겁니다.
은혜를 모르니 아버지가 하는 일에 반기를 드는 겁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탕자를 아들로 받아 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불충이에요.
만약 맏아들이 집안을 다스리게 되면 법으로 다스려요.
그러면 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살아야 해요.
그래서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집안을 밑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아들임에도 종으로 사는 곳이에요.
법으로 살지 않고 은혜로 살아가는 곳이에요.
내가 종이 될 때 은혜를 구하게 되어요.
이럴 때 진짜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을 봅시다.
빌 2:5~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너희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지요.
예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요?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것이에요.
어떻게 낮추고 비웠나요?
아들임에도 종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들로 취급을 해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들로 산 것이 아니고 종의 자세로 살았어요.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종의 자세로 살았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예요.
아들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교회 안에서 종의 자세로 섬기는 자들이에요.
종으로 섬겨야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들인 자는 종으로 섬기게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이 말을 잘 이해하세요.
자기의 권리를 다 내려 놓은 겁니다.
섬김이란 무엇인가요?
자기 비움이에요.
예수님이 그러시지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것이라고 하셨지요.
십자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에요.
이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요.
신앙생활은 우리의 의지나 각오로 행하는 것이 아니에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할 수가 있어요.
이를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봅시다.
갈 4:1~7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나님께서 유업을 이를 아들을 잠시 종으로 두셨다고 하지요.
이것은 우리 이야기에요.
원래 아들인데 이 세상에서 종으로 두신 것입니다.
율법 아래 두었다가 정한 때가 되어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옮겨주세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값을 다 치르시고 죄(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던 자를 은혜 아래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을 보내주어서 아들의 자위를 회복시켜 주신 겁니다.
원래 아들인고로 아들의 영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아들의 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해요.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아들의 지위를 회복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가요?
장차 아들의 나라에서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하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이걸 역사 속에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연습하는 겁니다.
미래의 천국은 현재 속에서 미리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아들의 영을 받은 자들이 종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집 떠나서 무엇을 그리워했나요?
양식이에요.
먹을 것이 없어서 그리워했어요.
만약에 먹을 것이 있었다면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지 않았어요.
만약 먹을 것이 있었다면 절대로 안 돌아와요.
먹을 것이 없으니까 돌아온 겁니다.
아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은데,
종들도 풍성하게 먹고 사는데,,
탕자는 먹을 것 찾으러 온 거예요.
그리고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합니다.
이건 오늘 본문에서 백성들이 바로에게 우리를 종으로 써주세요 한 것과 같아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살아야 할 민족들이에요.
가나안 땅은 어떤 땅인가요.
은혜의 땅이에요.
가나안 땅에 살려면 은혜를 알아야 해요.
그런데 모른단 말이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 보낸 겁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지요.
종노릇하다가 구원을 받았어요.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어요.
원래 자리로 되돌아와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은혜 입은 아들이지만 종의 자세로 살아야 되겠지요?
그게 신명기 26장이에요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렇게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라고 하잖아요.
가나안 땅에서 종의 자세로 사는 거예요.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다가 은혜 아래로 옮겨졌어요.
율법 아래서 종 노릇했어요.
그러다가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믿음을 선물로 주셨어요.
믿음을 선물로 받고 보니 예수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믿는 척을 하였지 믿지 않았어요.
믿는척 하는 것과 믿음은 달라요.
믿는척 하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셔야지만 하는 거에요.
내가 믿으면 율법이고,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시는 것은 은혜에요.
하나님은 먼저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게 하였다가 은혜 아래로 옮겨주었어요.
종에서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인 자들을 종으로 섬기게 하셨어요.
종으로 섬기는데 은혜로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 종 노릇하다가 은혜 아래로 옮겨지고 보니 그 은혜가 너무도 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종처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구원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제가 진짜 은혜를 받으면 율법주의자가 된다고 하는 거예요.
율법주의가 된다는 말은 진짜 율법주의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율법이 담고 있는 그 정신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사랑해 보세요.
그 사람 말 듣고 싶은가요?
안 듣고 싶은가요?
듣고 싶어지지요.
사랑한다고 하면서 말 안 듣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의 속성이 사랑하는 사람의 종이 되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나요.
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신앙을 순종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죄가 뭔가요?
불순종이에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말을 안듣는 거에요.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이 왜 혼난 줄 아세요?
아버지께 대꾸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하는 일에 토를 다는 거예요.
그건 자기 생각이 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 집에서 살면서 자기 생각을 가지면 안 되어요.
그럼 아버지와 충돌을 해요.
선악과가 뭔가요?
그것 먹으면 누구같이 된다고 했나요.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지요.
그럼 사사건건 충돌해요.
하나님과 생각이 다르면 함께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겁니다.
죄는 불순종이라고 했어요.
그럼 의는 무엇인가요.
순종이에요.
순종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는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가정 속에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셋팅해 놓았어요.
그게 부모와 자식 관계에요.
부모는 지시하는 위치이고 자식은 순종하는 위치에요.
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자식이 말을 안 듣는 겁니다.
바로 왕과 백성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1/5을 안 줘도 돼요.
바로 왕은 그것 없어도 살아요.
그럼에도 바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받고자 함이에요.
그것 받치면서 순종을 요구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 23절~26절 봅시다.
23-26절.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25.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요셉이 전지를 다 받고 난 후에 다시 돌려줍니다.
그 밭에 심을 종자까지 줍니다.
그리고 소출의 1/5을 바로에게 상납하라고 합니다.
바로는 그것 안 받아도 사는데 지장 없어요.
그럼에도 받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배경을 알려주고자 함이에요.
1/5을 바치라는 것은 돈이 탐나서가 아니고 은혜를 알라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이 없어도 괜찮아요.
연보를 안 받아도 괜찮아요.
그럼에도 예물을 드리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가르치고자 함이에요.
예물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어야 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로 구원을 했어요.
아들로 구원받은 자는 그 은혜가 너무도 커서 종의 마음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착해요.
그런데 그 착함이 아버지에게 목을 세우는 것으로 나타난단 말입니다.
이게 죄에요.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고 긍휼을 원해요.
제사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고 충성한 거에요.
긍휼은 아버지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아는 거에요.
제사는 자기 목소리를 높이게 하지만 긍휼은 입을 닫게 만들어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말 잘 듣고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이 목을 잘 세워요.
교회에서 누가 분란을 일으키느냐?
중직자들이 분란을 일으켜요.
목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분란을 일으켜요.
자기 의가 있기 때문이에요.
에덴동산을 누구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어야 하나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어야 하지요.
아담이 자기 생각을 가지게 되면 자기 보기에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래서 쫓아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주장을 꺾어 버리기 위해서 죽였다가 살려내는 방식으로 일을 하세요.
그것이 율법 아래 두었다가 은혜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구원의 서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진행이 되는 겁니다.
옛 사람이 죽을 때는 자기 주장이 있는 사람이 죽어요.
그리고 살리심을 입는 사람은 자기 주장이 없는 사람으로 살려내세요.
에베소서 5장을 봅시다.
엡 5:22~33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남편과 아내를 그리스도와 교회로 비유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지요.
왜 복종이라는 말을 쓰는 줄 아세요?
복종은 토 달지 말라는 거예요.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뭐냐?
날마다 자기 주권을 빼앗기는 일들을 당하는 거예요.
니 소리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하는 대로 하라는 거예요.
이게 가정 속에서 보여주는 거예요.
부모는 지시하는 위치이고 자식은 복종하는 위치에요.
부모들은 자식이 부모의 말에 반항하는 것을 가장 싫어해요.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권위의 문제에요.
어른과 아이는 보는 관점이 달라요.
이해하는 폭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를 달리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걸 가지고 부모에게 덤벼 들면 안 되어요.
그럴 때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왜 덤비느냐고 전선이 바뀌어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왜 부모에게 덤비느냐가 되어 버려요.
아이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해요.
아이 속에는 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에요.
법이 뭐냐?
옳음 그름의 문제로 부모에게 덤비는 겁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부모에게 목을 세우는 것을 죄로 여기는 거예요.
그걸 불효라고 해요.
우리가 살아가다가 보면 우리 뜻대로 인생이 안 살아져요.
왜 그러느냐?
우리의 주인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이사야 43장을 보세요.
사 43:1-3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야곱아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창조하고 조성했다고 하잖아요.
창조라는 말은 낳았다는 것이고,
조성한다는 말은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간다는 말이에요.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물 가운데도 집어넣고 불 가운데도 집어넣어서 만들어 간대요.
야곱의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야곱의 인생은 차압당하여서 살아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작품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을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하지요.
여호와는 목자가 되시어서 때로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 한다고 하잖아요?
야곱식으로 말하면 물 가운데와 불 가운데에요.
이건 극과 극이에요.
그래서 고난인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간섭해 가세요.
우리의 원함과 상관없이 인도해 가세요.
그런데 완성품으로 만들어져요.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풍랑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물 퍼낸다고 난리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는 겁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일어나서 풍랑을 꾸짖지요.
그러자 잠잠해지는 겁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이 분이 도대체 뉘기에 풍랑이 말을 듣는가?
풍랑이 예수님의 말에 순종을 했어요.
이러면 예수님이 풍랑의 주인이라는 말이 되지요.
맞아요.
예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인이에요.
만물은 다 아는데 유독 모르는 종자들이 있어요.
그게 인간이에요.
예수님이 깨어나서 뭐라고 하던가요?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지요.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야 이놈들아 너희들이 내가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르니까 난리를 치는 게 아니냐.
제자들은 예수님하고 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몰라요.
그래서 예수님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만물을 가지고 알려주는 일을 하신 겁니다.
나중에 성령이 임하고 나서 제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온 세상에 전하였어요.
예수의 증인이 되어서 살았어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것의 모형이에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데 풍랑을 만날 수 있어요.
우리의 원함대로 인생이 살아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어려울 때 기도해도 안 되요.
고난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도 여전히 고난의 행군인 거에요.
그럼 아 이게 하나님의 뜻이구나 해야 되는데,
우린 그렇지 않아요.
될 때까지 기도해요.
그렇게 배워 왔어요.
이걸 고집이라고 해요.
목이 곧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필요하면 기도 안 해도 들어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40일 금식기도 백날 해도 안 들어주세요.
제발 부탁드리는데,,
물흐르듯이 사세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가는 것이라 여기고 순응하세요.
우리가 용을 쓴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은 철회되지 않아요.
그냥 그려러니 하고 사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믿고 사세요.
그게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풍랑 속에서 가장 좋은 신앙은 같이 자는 겁니다.
예수님과 같이 자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자면 나도 잘란다 하고 자세요.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배워가는 거에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는 겁니다.
아는 것만큼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어요.
아가서에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를 보고 가시밭에 백합화라고 해요.
하나님이 우리를 가시밭에 백합화로 심어 놓은 겁니다.
왜 가시밭에 심어 놓았나요?
바람 불면 찔리라고 해 놓았어요.
들에 바람은 늘 있어요.
우리 인생이 그래요.
늘 아픔이 있어요.
백합화는 가시에 찔리면서 향기를 통해내요.
바람이 불 때마다 쿡쿡 찌르면 백합화는 아픈 거예요.
그게 백합화의 운명이에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조합해 놓았어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차압해 가고 있어요.
우리의 원대로 아니고 하나님의 원대로 간섭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신앙이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어요.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이 만들어 오신 겁니다.
그래서 죽을 때가 오면 주여 종을 이제 평안히 놓아 주시는군요 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로 인도해 주세요.
사사기를 보세요.
롤러코스트 인생이에요.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배부르면 하나님을 떠나고,
떠나면 매 맞고,
매 맞으면 돌이키고,
돌이키면 복주고,
복 받으면 또 떠나고,
떠나면 또 때리고,
때리면 잘못했다고 빌고,
빌면 용서해 주고,,,
이게 인생 싸이클이에요.
잘하고 싶지만 잘 안되는 것이 인생이에요.
정답을 알면서도 정답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이에요.
그래서 바울처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줄꼬 탄식하는 겁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정답대로 사는 몸으로 바꿔주세요.
정답대로 사는 그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걸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바로에게 우리는 스스로 당신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으니,
그 은혜의 자리에 머물게 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이걸 차압 당한 인생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차압당했어요.
우리 것이란 아무 것도 없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겁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어요.
바울이 말년에 나의 나 된 것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의 그늘 아래서 감사하며 살아갔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지금까지 지나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었는데 우린 그동안 불평불만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으시고 보듬어 주신 그 은혜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그 은혜 아래 머물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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