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강. 토지를 반납하고 종으로 살아가라 (창 47:13~26절)
창 47:13-26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이 거두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오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진한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가로되 돈이 진하였사오니 우리에게 식물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가로되 너희의 짐승을 내라 돈이 진하였은즉 내가 너희의 짐승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 짐승을 요셉에게 끌어 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곧 그 모든 짐승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식물로 그들을 기르니라 18. 그 해가 다하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고 전지도 황폐치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 전지를 다사서 바로에게 드리니 애굽 사람이 기근에 몰려서 각기 전지를 팖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25.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천지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밖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용도가 있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알리려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면서 성경의 문을 열고 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이는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보이는 이 세상은 허상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이 증거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으로 믿어지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허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허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허상이고 만물도 허상이고,
만물 속에 있는 모든 것이 허상인 것입니다.
그럼 묻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천지 밖에 계시던 하나님이 왜 천지를 만드셨을까요?
어떤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목적이 다하면 이 세상은 철거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을 봅시다.
히 1:10-12절.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하늘도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다 멸망할 것이고,
옷과 같이 낡아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용도가 다하면 폐하여진다는 말입니다.
마치 아파트 모델 하우스와 같이 설명을 다 하고 나면 철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델 하우스는 아파트를 설명하고자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럼 만물을 왜 만드셨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1장과 골로새서 1장을 봅시다.
롬 11: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골 1:16-17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로마서에서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골로새서에서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럼 만물은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가 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봅시다.
요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태초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 나라를 본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말씀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또한 이 사실을 알려주는 하나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즉 태초에 삼위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자이신 예수님을 말하고,
하나님이신 하나님은 성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면 창세기 1장 1절 이전의 모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태초는 창조의 시작을 말하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고,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원본이고,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인 천지창조로 나타난 이 세상은 복사본이 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만물 밖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필요에 의하여 만물을 창조하십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을 위하여서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필요에 의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만물의 주인이고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그 이름 속에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러라” 라는 뜻입니다.
자기 백성이라 함은 남의 백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땅의 것은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를 천지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의인화하면 하늘에 속한 백성과 땅에 속한 백성이 됩니다.
하늘에 속한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였고,
땅에 속한 백성은 보이는 이 세상에 속하였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이고,
땅에 속한 자는 녹명되지 않은 자라고 합니다.
성경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를 자기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러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자들은 자기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에서는 토기장이와 두 그릇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긍휼을 담는 그릇이고 다른 하나는 진노를 담는 그릇입니다.
긍휼을 담는 그릇을 자기 백성 즉 언약의 후손이라 하고 진노를 담을 그릇은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백성 즉 언약의 후손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 즉 이방인은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들을 위하여 필요한 그릇인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으니 자기 백성이라고 하는 자도 자기 백성이고 자기 백성 아닌 자도 자기 백성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두 부류로 나눈 것은 예수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일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만유의 주십니다.
천국도 예수님 것이고 지옥도 예수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 다 죽어서 하나님께 갔습니다.
여기서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의역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옥에 있는 부자에게도 아버지이고 천국에 있는 나사로에게도 아버지입니다.
이건 마치 집에서 쫓겨난 이스마엘에게도 아브라함은 아버지이고 유업을 이을 이삭에게도 아브라함은 아버지인 것과 같습니다.
부자와 나사로는 둘 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는 존재하는 공간이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하나는 천국에서 살고 하나는 지옥에서 삽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 세상에 셋팀을 해 놓으신 것입니다.
아까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 세상에도 두 부류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것이 언약의 후손과 이방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둘이 섞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둘은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건 마치 천지창조 첫날에 빛이 오심으로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와 구원은 동의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를 심판하는 것을 천지 창조로 이야기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를 통한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이야기를 언약하셨습니다.
이름하여 창세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세전 언약으로 다스리십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언약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요셉의 이야기는 그냥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 속에 장차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일들이 담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창세기를 여기까지 강해해 왔습니다.
이제 그 막바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요셉이 온 세상의 토지를 환수하여 바로에게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구속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왜 기근을 통해서 온 세상의 토지를 요셉이 환수를 하고 온 나라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요셉의 종이 되게 하였을까요?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성경은 단편적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의 이야기 속에 많은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담겨 있어요.
마치 하늘의 네 생물처럼 각각의 다른 모습을 띠고 있어요.
에스겔 1장 10을 보면 네 생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네 생물은 동서남북에서 보면 각각 다릅니다.
이건 마치 4복음서와도 같습니다.
4복음서는 다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 이를 사자의 얼굴이고,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데 이를 송아지 얼굴이고,
누가복음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데 사람의 얼굴이고,
요한복음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데 독수리 얼굴입니다.
넷은 하나이면서 각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합니다.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마다 다양한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각각의 성경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과 요셉을 구속사로 볼 때는 야곱은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이고 요셉은 예수그리스도의 입장입니다.
지난 시간 야곱의 바로를 축복하는 장면 속에서는 야곱은 하나님의 입장이고 바로는 성도의 입장인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게 될 이야기 속에 요셉이 세상의 모든 전지를 값을 주고 다 사서 바로에게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요셉에게 은혜를 입고 자진해서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바로는 하나님의 입장에 있고 요셉은 예수님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온 세상을 아버지께 바치는 종말론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사건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도 단편적으로 보면 안 돼요.
왜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예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이 있고, 성령의 사역이 있고,
또한 예수님의 삼직 가운데 선지자적 사역이 있고, 제사장적 사역이 있고, 왕적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삼직은 과거적 이야기와 현재적 이야기와 미래적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한 본문 속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성경 해석학이에요.
모든 성경은 예수님 이야기라고 했어요.
사도 바울도 절기나 월삭이나 먹는 것이니 마시는 것이나 모든 것이 장래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의 그림자라고 했어요.
성령이 감동을 주시면 하나의 사건 속에서 다양한 구속사 이야기로 해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성경의 이야기가 너무도 신묘막측해서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울이 고백했어요.
롬 11:33-36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깊디 깊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뉘라서 알 수가 있겠느냐고 탄복을 했어요.
그러니까 설교를 들을 때 오늘은 어디에 포카스를 맞추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해요.
제가 성경을 인간의 이성으로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성경 자체가 예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이성적으로 보면 인간들 이야기로 전락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도 잘못 해석할 것 같으면 집문서를 교회에 바치라고 해요.
실제로 그런 목사들이 있어요.
제가 과거에 알던 어떤 목사는 종말론을 외치면서 교회의 중직자들은 모두 집문서를 교회에 바치라고 하였어요.
이러한 일은 모든 이단들이 하는 짓거리들이에요.
모든 이단들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 미혹해요.
어느 특정한 장소를 말하거나,
어느 특정한 인물을 말하거나,
어느 특별한 체험을 강조하면서 이익을 탐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종말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들이라고 하였어요.
모르면 속아요.
내가 소경이면 소경을 따르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을 구하여야 하는 겁니다.
성경의 올바른 진의를 알아야 속지 않아요.
모든 말씀의 끝자락에 오직 예수만 보여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야 해요.
그 말씀 앞에 티끌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한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이 일어나야 해요.
표피적인 감정선을 건드려서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일어나는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해요.
주님 감사합니다.
주여 고맙습니다.
주의 은혜가 너무도 커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이런 은혜가 지렁이 같은 자에게 임하였는지 유구무언입니다.
주께서 나의 주가 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난 후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엔딩크레딧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과 같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사가 그러해요.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설레이고 감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이야기에요.
오직 자기 백성 구하는 이야기에요.
어느 성경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드러나야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창세기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달려왔습니다.
오늘도 요셉의 토지 환수 사건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약전으로 사는 사람이에요.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받았나요.
형제들의 주가 되고 만유의 주가 되는 축복을 받았어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한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렇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에요.
야곱이 받았던 복을 누가 대신 사는가 하면 요셉이에요.
요셉은 야곱의 2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야곱이 얍복강에서 깨어지고 이스라엘이 되었어요.
그 이스라엘의 삶을 누가 사느냐?
요셉이 사는 거예요.
본문을 31절을 보세요.
창 47:27-31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 칠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 칠세라 29.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야곱이 죽을 때가 가까이 오자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이 오자 야곱은 요셉의 손을 자기의 환도뼈 아래 넣으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죽으면 애굽에 묻지 말고 조상이 있는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야곱이 하나님께 경배를 합니다.
이때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라고 하지요.
야곱이 요셉에게 맹세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이 맹세를 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왜 야곱으로 요셉에게 맹세를 받고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까요?
그리고 왜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를 하라고 합니까?
환도뼈는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흔적이에요.
이러면 요셉의 맹세가 곧 이스라엘의 맹세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요셉이 하는 일들은 야곱이 하는 일이고,
야곱이 하는 모든 일들은 전체 이스라엘이 하는 일들이고,
전체 이스라엘이 하는 일들은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바로에게 애굽의 모든 토지를 사서 바치고 모든 사람을 바로의 종이 되게 하는 이이야기는 장차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몽땅 구원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모습을 예표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요셉이 토지를 무엇으로 삽니까?
양식으로 사지요.
토지와 양식을 맞 바꾸었어요.
여기서 잠깐
음식과 양식에 대하여 살펴보고 갑시다.
음식과 양식은 영적 의미로 달라요.
음식은 아래서 난 것으로서 육신이 먹는 것이고,
양식은 위에서 난 것으로서 영혼이 먹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을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지요.
떡은 육신이 먹는 것이고 말씀은 영혼이 먹는 것이에요.
쉬운 말로 음식은 땅의 기운을 품은 것으로 땅에서 난 자들이 먹는 것이고,
양식은 하늘의 기운을 품은 것으로 하늘로서 난 자들이 먹는 것이에요.
음식은 옛 사람이 먹는 것이고,
양식은 새 사람이 먹는 것이에요.
음식은 아래 말씀이고,
양식은 위에 말씀이에요.
음식은 율법이고,
양식은 은혜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로 나오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지요.
만나는 광야에 나온 자들이 먹을 양식이에요.
이 양식이 어디로 인도합니까?
가나안으로 인도해요.
가나안에 들어가니까 만나가 그치지요.
왜 그런가요.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해요.
만나가 천국으로 인도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만나를 가지고 자신을 설명했어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어요.
만나를 먹고 가나안에 들어갔듯이
예수를 먹어야 천국에 가요.
예수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떠나가지요.
그때 떠나간 자들을 일컬어 여러 제자라고 합니다.
이 제자는 자신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따른 자들이에요.
이들에게는 예수는 감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겁니다.
이 일이 있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지요.
너희도 갈래.
그러자 제자들이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 라고 기특한 말을 하지요.
이에 예수님이 이건 너희들이 똑똑하고 잘나서 그런게 아니고 내가 너희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는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 믿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천부께서 심지 않은 자는 다 뽑힌다고 하신 겁니다.
여럿이 돌아간 제자들은 천부께서 심지 않은 자들이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이 되어서 다 돌아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영적 설교를 하면 육적 신자들은 다 떠나요.
떠난다고 섭섭해하면 안 되어요.
양식을 음식으로 먹는 자는 다 떠나요.
이 시대 예수를 땅에 복을 주는 분으로 알고 가르치거나 따르는 자들은 모두가 양식을 음식으로 먹는 자들이에요.
이런 자들은 다 걸려서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나중에 예수님은 이런 자들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양식을 음식으로 막는 자들이 양식을 주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정죄를 해요.
암튼 음식과 양식을 잘 이해하세요.
다시 요셉으로 돌아갑시다.
요셉이 주는 것은 음식이 아니고 양식이에요.
기근 때 먹은 곡식은 창고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에요.
창고란? 하늘을 상징해요.
하늘의 양식이란 뜻이에요.
하늘의 양식을 먹은 자들은 자발적으로 토지도 반납하고 종이 되겠다고 해요.
그래서 요셉이 모든 토지와 사람들을 바로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 이야기로 풀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양식으로 주셨어요.
그것이 구유에 태어나는 표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구유란 짐승의 밥통이에요.
짐승은 죄인을 상징해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죄인인 자기 백성들에게 밥으로 주신 것입니다.
짐승이 예수를 먹으면 사람이 되어요.
누구든지 예수를 먹으면 구원을 받아요.
천국으로 가게 되어요.
예수님이 그러지요.
누구든지 나를 먹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셨지요.
최후에 만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내 살과 피라고 하셨잖아요.
이 땅에 예수님을 양식으로 먹은 자들이 있어요.
그들이 누구인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에요.
이름하여 예수님의 자기 백성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양식을 먹고 짐승에서 사람이 된 자들이에요.
예수를 먹고 사람이 된 자들은 인생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고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에요.
그럼 요셉이 토지를 사서 바로에게 드리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이야기는,
신약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주어서 먹게 하여 구원을 한 우리들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다 자기 피로 사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해요
고린도전서 15장을 보고 갑시다.
고전 15:21~24.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아담 아래서 모든 인간들이 다 죽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안에서 살려냅니다.
예수님을 먹고 살아난 자들을 아버지에게 바치지요.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고 하잖아요.
나라란? 큰 민족을 말해요.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 보낼 때 뭐라고 했나요.
네 후손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서 나오게 된다고 하잖아요.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
하나님이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데리고 와서 이 산에서 나에게 경배케 하라고 하셨어요.
모세가 사명을 받던 산이 호렙인데 이를 하나님의 산이라고 해요.
그래서 모세가 애굽에 가서 언약의 후손들을 몽땅 데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산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시내 산이 호렙산이에요.
시내 산에 당도하자 하나님이 시내 산 위에 강림을 하시잖아요.
모세가 백성들을 하나님께 다 바친 것입니다.
이 모습을 사도바울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고 한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첫 열매라고 하지요.
왜 첫 열매라고 하나요.
첫 열매라 함은 그 다음으로 일어날 열매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맞아요.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예수를 통해서 죽었다가 살아나는 자들이에요.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죽었어요.
그런데 수 많은 밀 알들을 생산해 내신 것입니다.
이게 농사에요.
농부가 한 알갱이를 심어서 수 많은 열매들을 거두어요.
하나님이 농부세요.
그 씨는 예수에요.
예수를 어디에 심느냐,
자기 백성들에게 심어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밭인 겁니다.
예수가 심겨진 밭을 하나님이 농부가 되셔서 가꾸는 겁니다.
이걸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밭이라고 하는 겁니다.
밭이 좋아서 좋은 밭이 아니고 하나님이 관리하기 때문에 좋은 밭인 겁니다.
우리 모두가 길가 밭이고 돌작 밭이고 가시밭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중에 하나를 선택에서 개간을 하고 돌을 제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산물을 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다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첫 열매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첫 열매가 수많은 다른 열매들을 낳는 겁니다.
예수님 안에서 다른 열매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첫 열매는 장자라는 개념이에요.
예수님이 장자에요.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난 자들을 장자라고 해요.
장자가 장자를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장자들의 나라에요.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가 있어요.
천국은 장자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에요.
모세가 애굽에서 빼내온 자들을 장자라고 해요.
하나님은 장자들에게 유업을 주세요.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두 장자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을 물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장자로 보내서 장자들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로 낳아진 자들은 모두가 장자인 겁니다.
예수님이 자기와 똑 같은 자를 낳은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게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기 위해서 죽은 거예요.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였잖아요.
그럼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는 나중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는 바로 자기 백성들이에요.
베드로가 너희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라고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나라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야곱을 애굽에 왜 내려 보냈느냐?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에요.
아브라함 언약에 의할 것 같으면,
그 후손이 이방에 나가서 큰 나라를 이루어 오기로 되어 있어요.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보낸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애굽에서 그들이 400년간 종살이하다가 큰 나라를 이루어서 나왔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큰 나라를 만들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고 복음이 증거 된다고 하신 겁니다.
성령이 온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신 겁니다.
고린도전서 15장를 다시 보세요.
고전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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