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강. 환도뼈의 유언 (창 47장 27-31절)
창 47:27-31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 칠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 칠세라 29.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
파란만장한 야곱의 일생도 이제는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야곱은 임종이 가까워지자 요셉을 불러서 유언을 합니다.
그 유언이 자신을 애굽에 묻지 말고 조상들이 있는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오늘은 야곱의 죽음과 환도뼈의 유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죽음이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걸 열조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흙을 ‘아파르’라고 하는데 이는 먼지라는 뜻입니다.
먼지란 없음이라는 뜻이에요.
아담에게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없음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원래 없었어요.
없었는데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아담을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오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요?
언약입니다.
언약이 먼저이고,
아담이 나중인 것입니다.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언약이 완성되는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 있어 죽음은 없음으로 돌아가는 끝이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연세가 많이 드신 어른이라 할지라도 오래 산다고 해야 좋아하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개똥 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고 하겠어요.
죽음을 안고 사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죽음은 저주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죽음의 문제를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죽음은 저주가 될 수 없어요.
즉 천국 백성에게는 저주가 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귀향하는 것이므로 기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 사람은 저주로 받아들일 것이고,
죽음을 하늘나라에서 안식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복으로 여길 것입니다.
여기에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서 죽음을 바라보는 사관이 바뀌어야 해요.
어떤 관으로 봐야 하는가 하면 언약적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야곱의 유언 속에 담겨 있어요.
야곱은 장자권을 받기 전에 아버지 집에서 유복하게 살았어요.
고생 없이 살았단 말이죠.
아버지 이삭이 거부였으니까요.
아버지 집에서 살 때에는 평안했어요.
엄마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식 사랑이 달라요.
아버지는 강한 놈을 사랑하고 엄마는 약한 놈을 사랑해요.
이건 아버지와 엄마의 속성이 달라서 그래요.
부성애와 모성애는 다르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우성인자인 자식으로 가문을 이어가고자 하고,
어머니는 열성인자인 자식에게 정을 더 쏟게 되어 있어요.
이게 이삭의 집안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에서는 강한 들사람으로서 사냥꾼이었어요.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집안을 지키려면 강한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아버지인 이삭은 장자인 에서를 더 좋아했어요.
그러나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어요.
종용하다는 말은 마마보이라는 뜻이에요.
엄마 주변을 맴돌면서 살았어요.
이를 성경은 장막 사람이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에서와 야곱은 어미 태로부터 운명이 결정되었어요.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어요.
이건 이들의 잘남과 못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에요.
마치 토기장이가 두 가지 그릇을 만든 것과 같아요.
그릇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고 토기장이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야곱과 에서는 두 그릇과 같아요.
야곱과 에서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펼쳐가는 창세전 언약이라는 드라마에 캐스팅이 된 배우와 같아요.
이걸 예수님식 표현으로 너희와 저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비밀을 말하면서 너희에게는 허락이 되었으나 저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너희는 예수님이 선택을 한 제자들이고 저희는 선택하지 않는 자들이에요.
세상에는 두 부류가 있어요.
너희에 속한 자들과 저희에 속한 자들로 나누어져 있어요.
이걸 야곱과 에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을 가지고 언약을 펼쳐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사랑받은 야곱은 무기력하고 미움 받은 에서는 강하고 힘이 넘쳤어요.
이 모습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자기 백성들을 다뤄가는 모습이에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자들은 야곱처럼 못난 자들이예요.
약하고 천한 자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 가시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사울을 따르는 자와 다윗을 따르는 자들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사울에게는 잘난 자들이 따랐고
다윗에게는 못난 자들이 따랐어요.
사울은 잘난 자였고 다윗은 못난 자였어요.
잘난 자 곁에 잘난 자들이 있고,
못난 자 곁에 못난 자를 두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윗은 못난 자에요.
그런데 그를 따르는 자들도 못난 자에요.
다윗을 따르겠다고 아둘람 굴에 모인 자들을 보세요.
요즘 말로 루저들이 따랐어요.
못난 놈 곁에 잘난 놈들을 붙여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잘난 놈 곁에 잘난 놈들을 붙여 놓고 못난 놈 곁에 못난 놈들을 붙여 놓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못난 놈들을 가지고 일을 해 가세요.
왜 그런가 하면 못난 놈들이 한 일은 자기들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남기기 위해서에요.
잘난 놈들이 하면 자기들이 잘나서 했다고 자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는 에서같이 잘난 놈은 필요가 없어요.
야곱같이 못난 놈이라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 초림으로 오셨을 때 에서와 야곱처럼 두 부류가 있었어요.
잘나고 깨끗한 바리새인들은 에서와 같은 자였고
못나고 더러운 세리와 창기들은 야곱과 같은 자였어요.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의인으로서 1등 시민이었고,
세리와 창기들은 더러운 죄인으로서 3등 시민이었어요.
유대인들은 천국은 1등 시민인 바리새인들이 가고,
지옥은 3등 시민인 세리와 창기들이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고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렸어요.
바리새인과 같은 아브라함의 본 자손들은 천국에서 쫓겨나고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어요.
이건 경천동지 할 일이에요.
이건 바리새인도 놀라고 세리와 창기들도 놀랐어요.
세리와 창기들은 자신들은 지옥 가는게 맞고
바리새인은 천국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기준으로 그런 생각을 했나요?
율법이에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켰고 세리와 창기들은 율법을 안 지켰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들의 기준을 뒤 엎어버린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율법의 기준이 아니고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로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인 겁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해서 죽인 겁니다.
암튼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 인간들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성경은 인간의 지혜로는 해석 불가에요.
세상 관원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몰라요.
그게 십자가 사건으로 나타난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비밀이에요.
그래서 멸망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하는 겁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에서와 야곱 이야기도 보셔야 해요.
에서를 일컬어서 유명한 사냥꾼이라고 하지요.
그 당시에 유명한 사냥꾼이라고 하는 것은 영웅호걸이라는 말이에요.
스스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영웅호걸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나 야곱은 그렇지 않아요.
야곱은 집에 있었을 때는 엄마의 사랑을 받았어요.
그런데 장자권 축복을 받고나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왜 탐을 냈나요?
아버지 유산 때문이에요.
장자는 가문을 이어가는 자에요.
이삭을 백배나 축복을 받았다고 하지요.
이건 재벌이란 말이에요.
장자가 되면 거부인 아버지 집을 상속받는 겁니다.
야곱은 그것을 노린 거예요.
만약에 장자권을 받으면 집에서 쫓겨난다고 했으면 안 받아요.
야곱이 어떤 자인가요?
몸은 허약하지만 머리는 쌩쌩 돌아갔어요.
얼마나 약삭 빠른 놈인데요.
그런 자인데 장자의 축복을 받으면 집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알았으면 아버지가 장자권을 준다고 해도 안 받을 놈이에요.
그런데 야곱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 내가 장자가 되면 형님보다 더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온 것은 집에서 쫒겨 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이건 야곱이 바라던 바가 아니에요.
야곱이 그린 그림이 아니란 말입니다.
야곱은 완전히 그림을 잘못 그린 겁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리려던 그림을 완전히 찢어버리고 꿈에서라도 생각지 못한 그림을 그려가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각과 완전히 정반대의 그림을 그려가신 겁니다.
구약의 장자권은 신약의 구원과 같아요.
장자가 아버지 집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나,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나 영적인 의미로는 같아요.
그럼 장자권을 받고 난 후 일어난 야곱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후 집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후 이 세상의 기득권을 박탈당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나면 기득권을 빼앗기는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세상의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어요.
나그네와 외국인이 된단 말입니다.
이것은 고난이에요.
예수 믿는 것이 달리 고난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인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간섭해 가세요.
우리는 세상의 주류로 살고 싶은데 하나님은 비주류로 밀어내요.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라고 세상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야 세상 사람들과 사이좋게 잘 살고 싶어해요.
세상 사람들과 사이좋게 살려면 가치관이 맞아야 해요.
세상 사람들은 이생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내생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에요.
이생과 내생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가치관이 달라요.
존재 양식이 달라요.
그래서 하나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해요.
마치 광야에 나와서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아요.
그럼 혼나는 거에요.
이 놈이 왜 썩을 것을 구하느냐고,,, 혼낸단 말이죠.
으앙~~
그럼 어쩌라고,,,
애굽에 돌아간다고 해도 안 보내줘요.
일수불퇴에요.
구원은 취소되지 않아요.
울면서 가야 되는 길이에요.
하나님은 광야에서 애굽에 음식을 그리워하는 놈들은 다 죽여요.
그것이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옛 사람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과 같아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집에서 쫓겨나지요.
광야에 나오니까 하나님이 찾아오는 겁니다.
야곱은 한 번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어요.
부모로부터 들었을 뿐이에요.
그러니 남의 하나님인 겁니다.
그런데 집에서 쫓겨나 광야로 나오니까 하나님이 찾아온 겁니다.
내가 너희 조상들을 간섭한 하나님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내가 너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동행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자 야곱이 그동안 조상으로부터 들었던 하나님을 이제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수입이 생기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동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라요.
하나님이 동행한다고 하니 이제부터 잘 지켜주겠지 라고 생각한 겁니다.
지켜주긴 잘 지켜주세요.
그런데 그 지켜주심이 야곱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지켜주니 문제인 겁니다.
이런 걸 동상이몽이라고 해요.
하나의 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하면 형님보다 더 잘살게 해 주실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 부푼 꿈을 가지고 외갓집이 있는 하란으로 갑니다.
드디어 외삼촌 라반을 만납니다.
외삼촌 집에서 종살이하면서 장가도 갑니다.
아내도 4명이나 얻고 자식도 12명이나 낳습니다.
요셉을 낳자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겁니다.
14년 동안 종살이 하면서 자기 것이 없었는데,,
요셉을 낳고부터 자기 재산불리기를 합니다.
6년 동안 온갖 술수를 다 써서 재산 불리기에 성공합니다.
거부가 되어서 귀향 길에 오릅니다.
이제 형님을 만나도 꿀리지 않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금의환양 한다고 생각하고 얍복강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강만 건너면 고향 땅 근접이라고 설레고 있었는데
에서가 군사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겁을 합니다.
불같은 에서의 성격을 잘 알기에 두려움이 엄습하는 겁니다.
그래서 뇌물 작전을 폅니다.
1중대 2중대 3중대로 나눠서 짐승을 보냅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보냅니다.
자기는 맨 나중에 가려고 꾀를 쓴 겁니다.
짐승과 자식들을 다 보내고 나니 하나님이 떡하니 가로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날 도와주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환도뼈를 위골시켜 버립니다.
쉬운 말로 절름발이로 만든 것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었으니 도망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겁니다.
하나님이 지팡이 하나 주면서 앞으로 이것 의지하고 살어, 라고 하면서 앞으로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해, 그러는 겁니다.
결국 절름발이가 되어서 귀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싫튼 좋튼 하나님만 붙잡고 살아야 할 신세가 된 것입니다.
절뚝발이가 되어서 형 에서를 만납니다.
그리고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합니다.
형님 얼굴을 보니 마치 하나님 얼굴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온갖 알랑방귀를 뀝니다.
에서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동생을 보니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앞으로 잘살으라고 하고는 돌아갑니다.
형이 돌아가자 어휴 죽을 뻔 했네, 하면서 한 시름을 놓습니다.
그리고 진행하다가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세겜에 또 머물게 됩니다.
세겜에서 10년을 삽니다.
그러다 딸 디나가 세겜 족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세겜의 족장이 야곱을 찾아와서 우리 서로 사돈이 되어서 잘 살아보자고 하는 겁니다.
야곱이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서 그러자고 합니다.
이에 자식들이 반발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미쳤어요!
딸 내미가 강간을 당했는데 그 집구석하고 사돈을 맺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자식들이 반발을 하는 겁니다.
자식들이 화가 나서 그 동네 남자들을 다 죽여버리고 야반도주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벧엘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벧엘로 돌아오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맙니다.
유모도 죽고 라헬도 죽고 아버지 이삭도 죽어버립니다.
아버지 장사를 지내고 나자 에서는 자신이 쌓아온 터전인 세일산으로 돌아갑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난 갈테니,
니가 이 집 맡아서 잘 가꾸라고 합니다.
이제 그럭저럭 사는가 싶었는데,
자식들끼리 쌈박질이 나서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말이 팔아버리는 것이지 실제로는 죽인 것과 같아요.
자식들이 요셉의 옷을 찢고 거기다 짐승의 피를 발라서 야곱에게 갖다주면서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하잖아요.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야곱은 편할 날이 없었어요.
힘든 일만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기근이 듭니다.
기근이 들자 자식들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서 양식을 사 오라고 합니다.
양식 사러 간 자식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요셉이 죽은 게 아니고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요셉이 야곱을 애굽으로 모셔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느냐고 자식들 말을 믿지 않았어요.
설상가상으로 막내 아들 베냐민이 볼로 잡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요셉이 사라지고 없을 때 라헬의 아들이라고 그 녀석 하나 뿐인데 이 놈이 애굽에 양식 사러 갔다가 볼모로 잡혀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힌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냅니다.
그 날밤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자식들 말이 맞으니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는 겁니다.
나도 너랑 함께 갈 테니 식솔들을 다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는 겁니다.
이에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애굽에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자식이 애굽의 총리이니 17년 동안 애굽에서 잘살았어요.
겉 보기에는 야곱의 말년은 해피엔딩이었어요.
그런데 야곱이 유언을 하는 것 보니까 그렇지만도 않아요.
야곱에게 있어 애굽은 이방 나라에요.
죽을 때가 되니 조상들이 묻혀 있는 가나안이 그리운 겁니다.
사람이 늙으면 고향이 그리워지잖아요.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내가 죽으면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유언이란? 마지막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말입니다.
유언을 아무런 말이나 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말을 해요.
내가 너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이죠.
야곱은 요셉에게 유언하는데 나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 선영에 하라고 합니다.
선영이란? 조상이 있는 곳이에요.
나를 이 땅에 묻지 말고 우리 조상이 있는 그 땅에 나를 묻어달라는 겁니다.
비록 애굽에 내려와서 살았지만 야곱의 의식 속에는 조상들이 묻혀 있는 가나안 땅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몸은 비록 애굽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늘 가나안에 있었던 겁니다.
이산가족들을 보세요.
육신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한다잖아요.
고향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보고 싶은 거예요.
야곱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가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애굽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 되는 거지요.
야곱이 바로를 축복할 때 내가 여기에 우거하러 왔다고 말하지요.
우거라는 말이 뭐냐?
정한 때까지 내가 신세 좀 지다가 돌아갈 거라는 뜻이에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의 고향은 천국이에요.
천국에서 이 세상에 잠시 우거하러 왔어요.
정한 때가 되면 다시 돌아가야 해요.
그래서 성도가 죽으면 소천했다고 하는 겁니다.
소천이란? 하늘로 돌아갔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이 땅에 야곱처럼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왔어요.
야곱이 가나안에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했잖아요.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했잖아요.
이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에요.
그 언약을 야곱이 이루는 겁니다.
야곱의 몸이 죽어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우리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과 같아요.
지금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에요.
단순히 구원하는 것만 목적일 것 같으면 구원하는 즉시 데려가면 되어요.
그런데 구원해 놓고 이 세상에 정한 기간 살게 하였어요.
언약적으로 보면 우린 이미 창세전에 구원이 된 사람이에요.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구원이 된 자들이라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언약은 하나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실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처럼 잠시 애굽이라는 이 세상으로 버려짐을 당하였어요.
그러다가 다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본래 하나님 나라에 살 자들이에요.
그런데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 세상으로 보내심을 입었어요.
그러다가 예수님에 의하여 교회로 빼내심을 입었어요.
교회는 고센 땅과 같아요.
애굽이면서 가나안이에요.
고센은 애굽과 가나안 경계에 있어요.
교회가 그러해요.
교회는 세상과 천국의 경계 지역이에요.
야곱은 고센에서 가나안의 삶을 살았어요.
그것이 목축업 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라는 경계 지역에서 땅의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요.
애굽 사람들이 목축업을 하는 야곱의 가족을 더러워했듯이 세상 사람들도 예수 믿는 자들을 재수 없다고 해요.
어쩔 수 없어요.
서로 간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웠어요.
교회는 하나님 나라 원리로 다스려져요.
그것이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해요.
우린 역사 속에서 이 원리를 배워가는 것이에요.
구원받으면 바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으로 불러 놓아서 하나님 나라 존재 양식인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 후에 바로 가나안에 안 집어 넣은 거예요.
광야에서 애굽의 가치관을 죽이고 가나안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겁니다.
가나안의 가치관은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는 가치관이에요.
교회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육적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로 살아가는 가치관을 배워가는 것이에요.
가나안에 살려면 가나안 땅의 성질을 알아야 살 수가 있어요.
가나안 땅은 애굽과 달라요.
애굽은 자기 맘대로 농사짓고 사는 땅이지만,
가나안 땅은 내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하늘만 바라보아야 해요.
파종을 하고 하늘만 쳐다 보아야 해요.
하나님이 때를 따라서 비를 주세요.
이 믿음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 힘으로 살던 자들은 바로 가나안에 넣지 않고 광야라는 중간 과정을 거치게 만든 거예요.
그래서 광야를 교회라고 하고 거예요.
광야에서 무엇을 하느냐?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을 배워가야 해요.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광야에 나오니까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애굽에서는 말씀을 주시지 않았어요.
말씀은 광야에 나와야 주세요.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구나를 배우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배우는 것에요.
오늘도 만나주셔서 사는군요.
오늘도 은혜 주셔서 사는군요.
이것을 알아가는 겁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나왔으면서도 계속 애굽의 습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애굽의 습성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 땅이 토해 내요.
그래서 광야에서 애굽에서 태어난 1 세대들은 몽땅 다 죽이는 거예요.
1 세대들은 떡으로 사는 세대에요.
2 세대들은 말씀으로 사는 세대에요.
이걸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 옛 사람은 떡으로 살고 새 사람은 말씀으로 사는 것과 같아요.
교회에 나와서 우리 옛 사람이 죽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무덤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핏값으로 밭을 하나 샀어요.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잖아요.
예수님이 힘없이 죽자 양심에 가책받고 그 값을 제사장에게 갖다 주고 자살했어요.
근데 제사장은 이 돈은 재수 없는 돈이니까 성전에 두면 안 되니까 그 돈으로 아겔다마 라는 피밭을 하나 샀어요.
그리고 그 밭을 나그네들의 무덤으로 삼아 버렸어요.
예수님의 피값으로 무덤을 산 겁니다.
그게 교회에요.
교회가 무덤이에요.
옛 사람이 죽어서 장사 되는 곳이에요.
우리는 다 여기서 옛 사람이 죽임을 당해야 해요.
애굽의 사람이 다 여기에 묻혀야 해요.
애굽의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교회 생활 제대로 안하면 안 되어요.
교회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에요.
자기 백성들을 돌보고 훈육하는 곳이에요.
칼빈 같은 사람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했어요.
저는 동감해요.
100% 동의한다니까요.
교회가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하늘의 방식을 깨달아가는 거예요.
교회는 일이 먼저가 되면 안 되어요.
먼저 은혜를 가르쳐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으셔야 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받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섬길 때 산 제사가 되는 겁니다.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해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에서 나고,
말씀은 그리스도로 나는 거예요.
말씀은 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깨뜨리는 것이 있고 세우는 것이 있어요.
예레미야 1장을 봅시다.
렘 1:9~10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웁니다.
그리고 그 입에 말씀을 주십니다.
먼저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말씀을 주세요.
즉 죽이는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건설하고 심는 말씀을 주세요.
먼저 죽이고 나중에 살리는 겁니다.
이게 구원의 수순이에요.
옛 사람을 먼저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살려내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는 것과 똑 같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율법 신앙을 부수는 거였어요.
그것이 성전을 척결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예수님이 성전을 향하여 강도의 굴혈이고 장사하는 곳이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겁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시지요.
이건 외식 신앙을 말해요.
마음에도 없는 것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전을 무너뜨린 겁니다.
그리고 새로 지었어요.
보이는 성전에서 보이지 않는 성전으로 바뀐 겁니다.
성도가 성전이 된 겁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것으로서 너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하였어요.
이제는 짐승으로 드려지는 제사 시대는 끝이 났어요.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해요.
지금 예레미야가 그런단 말이죠.
예레미야는 성전 입구에 서서 성전에 예배하러 가는 자들에게 이거 성전 아니다 라고 했어요.
이건 가짜라고 했어요.
예레미야는 잠시 후에 하나님이 이 성전을 쓸어버린다고 했어요.
예레미야 1장을 다시 봅시다.
렘 1:11-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두 가지 환상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었고,
다른 하나는 북방에서 끓는 가마를 보여주었어요.
살구나무는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에요.
그래서 봄의 전령이라고 해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나무인 거예요.
일명 부활의 나무라고도 해요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살구나무예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가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려면 지금 있는 시대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너뜨려야 되지요?
그래서 북방의 끓는 가마를 보여주신 겁니다.
북에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뭐라고 하나요.
북방에 나라를 불러서 예루살렘을 무너뜨린다고 하는 겁니다.
북방의 나라가 바벨론이에요.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끓는 가마 붓듯이 완전히 쓸어버린다는 거예요.
왜 쓸어버리겠어요?
우상숭배의 전당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이건 예수님의 초림 때 모습이기도 해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왜 쓸어버리겠어요?
외식의 전당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무너뜨리는 겁니다.
마치 재개발하려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겁니다.
새로운 뉴 타운을 건설하려면 기존의 집들은 다 철거를 해야 해요.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철거 대상이었어요.
하나님이 봤을 때 전부 거짓인 거예요.
그래서 청소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는 겁니다.
뉴타운 건설을 예레미야에게 알려준 겁니다.
새로운 나라는 어떻게 만드느냐?
바벨론에게 포로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계획인 겁니다.
이걸 예레미야가 본 거에요.
그래서 가서 외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쓸어버린다고 하더라.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가서 70년 동안 교화시켜서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
이 사실을 성전에 제사하러 가는 자들에게 선포를 했어요.
그러자 난리가 난 겁니다.
저 놈 이단이라고,,
예레미야가 이단 소리 들었어요.
지금도 똑 같아요.
그 시대나 이 시대나 똑 같아요.
복음 속에는 옛 것을 무너뜨리고 새 것으로 세우는 것이 담겨 있어요.
그걸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빼내서 고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광야 속에서 애굽의 모든 습관을 죽여 버리고 가나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광야에서 배웠던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배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요?
자기 백성을 은혜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태어난 1 세대들은 광야에 나와서도 애굽에서 살았던 방식으로 살고자 하다가 다 죽임을 당하였어요.
애굽의 삶의 가치관은 떡이에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이에요.
이걸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삶이라고 하였어요.
광야에서 태어난 2 세들은 애굽의 삶을 몰라요.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만 먹고 살았어요.
매일 아침이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거두러 나갔어요.
만나를 거두면서 무얼 배웠겠어요.
아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는 것이구나를 배운 겁니다.
이 사실을 배우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인가요?
신명기 11장을 봅시다.
신 11:10-17절.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 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13.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가나안은 애굽과 다르다고 하지요.
애굽에서는 너희 맘대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았지만
가나안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애굽은 물을 저축하여서 농사를 지었지만 가나안은 산악지대이므로 물을 저축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씨를 뿌려 놓고 하나님만 믿고 쳐다보라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이 때를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어서 농사를 지어주신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애굽은 믿음이 없이도 살 수 있지만 가나안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너희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2 세들은 이를 광야를 통해서 배워왔어요.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신다는 것을 배운 겁니다.
신명기 8장으로 가봅시다.
신 8:2-3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가르친 것이 무엇인가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땅이란 겁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 이걸 훈육 받은 거예요.
사람의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배운 겁니다.
그 배운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대로 행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땅에서 장수하고 살지만
그렇지 않고 너희들 힘으로 살고자 하면 쫓겨나게 될 것이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잘 먹고 잘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유언을 하면서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겁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살 사람이 아니고 가나안에서 살아갈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는 죽어서 가나안으로 가지만 너희는 살아서 가나안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우리는 애굽에서 살 자가 아니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거들랑 나를 여기다 묻지 말고 우리 조상들이 있는 그곳에 나를 묻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건 너희들도 결국 나 따라서 가나안에서 살아가야 할 자들이라는 거예요.
자식들에게 정체성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세요.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이 나요.
창세기 50장에 야곱의 죽음과 요셉의 죽음을 같이 증거하고 있어요.
요셉이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고 나서 따라서 요셉이 죽어요.
요셉의 죽음이나 야곱이 죽는 것이나 똑 같은 의미예요.
창세기 50장을 봅시다.
창 50:12-14절.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을 좇아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22-26절.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일백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이 그 형제들과 함께 야곱을 가나안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곤 요셉이 야곱처럼 형제들에게 유언을 하는 겁니다.
요셉이 죽으면서 형제들에게 뭐라고 하는가요?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요셉이나 야곱이나 똑 같은 의미예요
야곱이 요셉에게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하게 하는 것은 환도뼈가 의미하는 것을 요셉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환도뼈가 부러진 것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부러짐을 당했어요.
그리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뺏겨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그게 이스라엘이에요.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애굽 땅에서 17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이스라엘로 요셉에게 유언을 하는 겁니다.
요셉에게 네 손은 내 환도뼈에 대고 맹세를 하라고 합니다.
이에 요셉이 맹세를 합니다.
이스라엘로 요셉의 맹세를 받는 겁니다.
요셉이 맹세를 하자 야곱이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경배를 하였어요.
왜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경배를 하나요?
야곱은 개인의 이름이지만 이스라엘은 국가의 이름이에요.
이스라엘 속에 큰 민족이 담겨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것이 되는 겁니다.
그 큰 민족을 누가 데리고 나오는가 하면 요셉이에요.
요셉은 야곱의 2기 인생인 이스라엘로 산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의 낳은 두 아들을 자기 자식으로 삼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두 아들에게 각각의 지파를 삼아 버려요.
요셉 속에서 두 지파가 나온 겁니다.
이건 장자를 말해요.
이스라엘은 장자에게 두 몫을 주었어요.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으면서 낳은 두 아들을 야곱의 아들로 입적시켰어요.
그리고 그 둘을 두 지파로 만들었어요.
이러면 13 지파가 되는 거지요.
왜냐하면 요셉에게 두 지파가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버리는 것입니다.
레위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아요.
레위가 빠지면 12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2기 인생인 이스라엘을 살았다고 하였잖아요.
이러면 야곱의 모든 아들은 요셉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 됩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환도뼈에 손을 얹고 맹세한 것은 곧 야곱의 모든 아들들 즉 12지파가 다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12지파를 대표해서 우리가 애굽에서 살지 않고 가나안으로 올라가겠습니다 라고 아버지에게 맹세를 한 것입니다.
요셉이 그러는 거예요.
아버지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아버지 유언대로 형제들을 잘 챙겨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갈게요.
그러니 편히 쉬세요.
조상님들 만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할아버지하고 한 약속을 요셉이 다 이루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세요.
그러자 야곱이 그래 고맙다,
그리곤 자식들을 각자의 분복대로 축복을 하고는 난 이제 피곤하니 한 숨 자야 하겠다고 하고 긴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환도뼈의 유언 속에 담긴 내용이에요.
중요하니 다시 말합니다.
환도뼈가 어떤 건가요.
야곱이 집 떠나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종살이하면서 얻은 모든 것을 몰수 당하는 사건인 겁니다.
환도뼈를 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 야곱을 죽였다는 뜻이에요.
야곱이 누구인가요?
탐욕이 가득한 꾀돌이잖아요.
온갖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자에요.
이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에요.
가나안에서 보면 하란은 이방 나라에요.
야곱이 이방 나라에서 이방 방식으로 재산을 모은 겁니다.
하나님 백성은 그러면 안 돼요.
가나안에 와서 하란 방식으로 살면 안 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란에서 돌아오는 야곱을 얍복강에서 죽이는 일을 하신 겁니다.
그것이 환도뼈 사건인 겁니다.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 방식으로 살면 안 돼요.
지금 야곱의 자식들이 어디에 있나요?
애굽이잖아요.
가나안에서 보면 애굽은 이방 나라에요.
이건 마치 야곱이 집을 떠나 하란에서 사는 것과 같아요.
그럼 야곱의 자식들로 애굽 방식으로 살 것이잖아요.
애굽방식으로 가나안에서 살 수가 없어요.
애굽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그 놈은 죽어야 해요.
그래서 모든 자식을 대표한 요셉을 자기의 환도뼈에 손을 엊고 맹세를 시킨 겁니다.
절대로 애굽 방식으로는 가나안에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받은 겁니다.
쉬운 말로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거에요.
그래서 나중에 요셉이 죽으면서 형제들에게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한 겁니다.
여기서 잠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어가는 방식을 한 번 살펴보고 갑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두 가지가 담겨 있어요.
구원이란? 빼내심을 입는 거예요.
즉 옮겨짐을 당한다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애굽에서 빼내심을 입었고,
신약에서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빼내심을 입었어요.
빼내심을 입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으로 옮겨진다는 뜻이에요.
세상 나라에서 하늘 나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사는 방식이 달라요.
존재 양식이 완전히 달라요.
세상 나라는 움켜잡는 방식으로 살지만,
하늘나라는 손을 펴는 방식으로 살아요.
애굽은 모으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가나안은 주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곳이에요.
이건 야곱의 인생과 이스라엘의 인생이 다른 것과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 인생을 자꾸만 태클을 거는 겁니다.
태클을 걸어서 삶의 방식으로 바꿔주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도뼈 사건은 늘 반복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게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창조가 두 텀으로 일어나지요.
먼저 갈라내고 나중에 채우는 것으로 나타나잖아요.
갈라내고 채움을 입을 때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 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 이루어지면 안식하게 되어요.
두 가지 구원이 있어요.
갈라내는 구원이 있고,
채우는 구원이 있어요.
구원이 둘이라는 말이 아니고 두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예로 들면 애굽에서 빼내는 구원이 있고,
광야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훈련받고 채우는 구원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오면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와 사망의 권세이고,
은혜는 의와 생명의 권세에요.
율법의 사람이 죽고 은혜의 사람으로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건 구원의 서정이에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오고,
애굽에서 광야로 나아오고,
세상에서 교회로 나아오고,
구약에서 신약으로 나아가고,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애굽에서 빼내심을 입는 구원이 있고,
가나안 사람으로 살아가는 구원이 있는 거예요.
모두가 옛 것의 죽음으로 통해서 새 것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갈라내는 창조와 채워지는 창조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애굽에서 살던 습성들을 빼내 버리고 하늘의 습성으로 살도록 배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당부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지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하셨지요.
물과 성령은 두 세례를 말해요.
물 세례는 옛 사람이 죽는 것이고,
성령 세례는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에요.
이건 구원의 순서에요.
먼저 죽는 것이고 나중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세요.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고서는,
2절의 모습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한다고 하지요.
이건 죄 아래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그 죄 아래 있는 이 세상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신이 운행을 한다는 것은 뭔가 하실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 일이 뭔가요?
3절 이하부터 나타납니다.
3절에 빛이 있으라 합니다.
이 빛은 해와 달이 만들어지기 전의 빛이에요.
이는 이 세상의 빛이 아니란 말입니다.
원초적인 빛을 말해요.
이를 요한복음에서 참 빛이라고 합니다.
그 참 빛이 이 세상에 오셨어요.
그 분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 창조의 첫날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 됩니다.
창조 첫날의 빛이 무슨 일을 하는가요?
빛과 어둠을 나누는 일을 하시지요.
이는 천지를 가르는 일을 하시는 거예요.
즉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갈라내시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에서 언약의 후손들은 광야로 빼내 오시는 것과 같아요.
이를 신약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와 저희로 갈라내는 것과 같아요.
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허락 되었고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고 하지요.
이러면 두 민족이 섞여 있다가 예수님에 의해서 갈라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걸 심판이라고 합니다.
맞아요.
구원이 이렇게 주어져요.
구원은 예수님에 의해서 빼내심을 입는 거예요.
둘이 섞여 있다가 예수님이 저희들 속에서 너희를 빼내신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자기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뭔가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러라 이지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만 구원하세요.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빼내서 교회로 옮겨 놓으신 거예요.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을 은혜 아래로 옮겨 주신 겁니다.
우리가 봤을 때 흑암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니까 빛이 나오더란 말이죠.
우리 눈에는 모두가 다 같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오시자 다 같은 인간이 아니고 속성이 전혀 다른 두 인간이 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너희와 저희가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갈라진 겁니다.
이게 십자가상의 두 강도로 나타났어요.
이걸 심판이라고 해요.
저희 속에 너희들을 빼내놓고 너희들을 죽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세상의 방식인 어둠을 죽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난 인간을 죽이고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를 하시는 겁니다.
이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해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의 속상들을 주입 시키는 일들을 하는 거예요.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겁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옛 사람이라는 원주민을 쫓아내는 가나안 전쟁을 하시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말하는 가나안 전쟁은 표상이에요.
가나안 전쟁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보여주고 있어요.
여기에 모세와 여호수아 두 지도자가 있어요.
모세는 애굽에 있던 자들을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광야로 끄집어내는 일을 하였어요.
이것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을 하신 것을 예표하고 있어요.
그러니 모세는 육체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 하였어요.
요단강 동편까지 인도하고 바톤을 여호수아에게 인계하고 모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죽었어요.
여호수아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과 같아요.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지요.
이건 성령이 우리 안에 옛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까 여호수아의 가나안 전쟁이 지금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가나안 7족속이 있어요.
이 놈들이 옛 사람이라는 거인족이에요.
이들이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생각과 우상을 숭배케 하는 죄의 원흉들이에요.
예수님께서 그러시지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왜 더럽게 밥을 먹느냐고 탄핵을 하는 겁니다.
이에 예수님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알려 주셨잖아요.
안에서 나오는 게 뭔가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생각과 같은 것들이라고 하잖아요.
이 놈들이 우리를 힘들게 해요.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서 여호수아처럼 가나안 전쟁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전쟁이 지금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니까요.
뭐가 여러분을 힘들게 하나요?
외부 환경인가요?
아니에요.
우리 안의 죄에요.
우리 몸은 죄의 숙주에요.
죄가 우리 몸을 가지고 그 성질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답을 아는데 정답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보고 미운 겁니다.
내가 미워요.
죄들이 드러나면 우리 마음은 지옥이 되어요.
그래서 아파도 죄와 싸우는 전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은 힘든 거예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어요.
육체의 소욕이 이기면 우리 몸은 죄를 그려내게 되고,
성령의 소욕이 이기면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생산해 내요.
신앙은 감상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를 죽이는 것이에요.
자존심을 죽이고,
욕심을 죽이고,
세상에 대한 미련도 죽이는 겁니다.
옛 것이 뽑혀질 때마다 우린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요.
마치 아이들이 주사 맞기 싫어서 우는 것과 같아요.
그래도 맞아야 해요.
그래야 병에서 나음을 입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도는 환도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이 아파요.
아파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겁니다.
아무리 애굽이 좋다고 해도 떠나야 하는 겁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총리의 프리미엄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어요.
요셉이 죽을 때 형제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그들은 대략 400년을 애굽에서 살았어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서 자기들을 핍박하니까 그제서야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한 겁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유언하면서 환도뼈에 손을 넣게 한 것은 너희들도 애굽에 분깃이 없으니까 나와 같이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총리라 할찌라도 너의 기업은 여기에 없다는 겁니다.
너의 인생은 나에게 차압당한 인생이니 내가 가는 곳에 너도 따라와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야곱을 애굽에 장사를 지냈으면 그 후손들은 명절 때가 되면 어디로 가겠어요.
애굽 땅 무덤에 갈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명절이 되면 어디로 가나요?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잖아요.
조상님들 산소가 있는 곳에 가잖아요.
만약에 요셉이 야곱을 애굽에 장사를 지냈을 것 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명색이 총리 아버지인데 돌 무더기에 안장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피라미드로 무덤을 만들 것이 아니에요.
애굽의 왕들이 죽으면 피라미드를 만들어 주잖아요.
총리 체면이 있는데 자기 아버지 무덤을 그 정도는 해 줄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겠느냐 이 말이에요.
그럼 야곱의 후손들은 가나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명절 때가 되면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애굽의 피라미드 앞에서 제사를 지낼 것이 아니에요.
조상이 애굽에 있으니 가나안에 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니냔 말입니다.
야곱은 이걸 알고 있기에 나를 애굽에 장사지내지 말고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묻혀 있는 선산에 묻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야 명절 때가 되면 자식들이 가나안으로 올라와서 조상님들께 문안을 드릴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너는 내 환도뼈에 손을 넣고 맹세를 해라,
아버지 뜻대로 가나안에 장사를 지내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나무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를 한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남자는 의무적으로 일 년에 3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어요.
그게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에요.
이 세 가지 절기는 명절이에요.
유월절은 봄 절기이고,
오순절은 여름 절기이고,
초막절은 가을 절기에요.
영적으로 보면 유월절 봄 절기는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절기예요.
오순절 여름 절기는 부활 후 50일째 성령강림이 일어난 절기예요.
초막절 가을 절기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절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삶을 일생으로 살았어요.
그 당시에는 다 걸어 다녔잖아요.
봄 절기에 먼 길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다시 여름 절기로 올라가야 해요.
여름 절기 지내고 돌아오면 다시 가을 절기로 올라가야 해요.
그러니 이스라엘은 일 년 내내 예루살렘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맞아요.
그게 성도의 인생이에요.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지요.
그것이 영적 예배라고 하잖아요.
무슨 말인고 하니 삶 자체를 예배로 살라는 겁니다.
코람데오!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삶인 겁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보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도 있지만
애굽에서 올라오는 것도 있어요.
즉 내려가는 언약도 있고 올라오는 언약도 있는 겁니다.
야곱은 아브라함 언약을 위하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겁니다.
야곱 속에 이스라엘 전체가 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야곱은 자식들을 가나안으로 올라오게 하려고 애굽에 묻히지 않고 가나안에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고향 찾아오라는 겁니다.
너희들 고향은 애굽이 아니고 가나안이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왜 예수님 무덤이 없는지 아세요?
무덤이 있으면 우리는 그 무덤에 찾아가서 제사를 지내요.
그럼 우상 숭배가 되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신 겁니다.
이 땅이 애굽이라고 한다면 하늘나라는 가나안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애들아, 내가 있는 하늘을 바라보고 살으라고 하는 겁니다.
너희의 고향은 이 세상에 없고 하늘에 있다고 알려주시는 겁니다.
성도는 늘 하늘의 고향을 생각하고 살아야 해요.
하늘에 있는 본향이라고 하지요.
히브리서 11장을 봅시다.
히 11:8-16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이 누구인가요?
이스라엘의 조상이잖아요.
그런데 그 조상이 어디에 있다고 하나요.
하늘에 있다고 해요.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람을 찾아가서 가나안으로 빼내 오십니다.
말씀을 쫓아서 마침내 그 땅으로 왔다고 합니다.
이건 말씀이신 예수님이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끌고 온 겁니다.
가나안에 오니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늘을 쳐다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늘에 한 성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아브람아 내가 너에게 주고자 한 땅은 저 하늘에 있단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나그네로 살다가 이리로 오렴!
너의 후손들도 모두가 이리로 올라 오려므나!
이에 아브람이 가나안에서 나그네로 장막 생활을 한 겁니다.
아브람이 이 땅에 돈을 주고 산 땅이 딱 하나 있어요.
그게 막벨라 굴이에요.
막벨라 굴이 뭔가요?
무덤이에요.
가족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 들어가서 안식할 집이에요.
이건 예수님이 핏값으로 아겔다마라는 피 밭을 하나 산 것과 같아요.
그 피밭을 나그네들의 무덤을 삼았어요.
그 무덤이 바로 교회에요.
교회는 나그네들이 안식할 무덤이에요.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다 묻어버리는 곳이에요.
우리가 엿새 동안 세상에서 일을 하다가 일곱째 날에 교회로 모이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모이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지키고 있는 겁니다.
주일은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는 날과 같은 거예요.
주일이란? 주님의 날이란 말이에요.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이에요.
이러면 매일이 주일과 같은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시간과 공간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 밖으로 나가 묵시 속에 계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하나님은 항상 계시는 겁니다.
이를 오늘날이라고 해요.
주기도문을 할 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잖아요.
오늘 날이란? 묵시에 속한 날을 말해요.
그러니 항상 오늘 날이 되는 겁니다.
오늘도 오늘날이고, 내일도 오늘날이고, 모래도 오늘날이에요.
오늘날은 하늘의 날이에요.
영생하는 날인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나라로 가신 겁니다.
영생의 나라에서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신 겁니다.
하늘로부터 각양 좋은 은사들을 보내 주세요.
그 은사로 세상을 이겨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보내 주신 은사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게 하는 겁니다.
너희가 살 곳은 하늘에 있는 본향이니 이 세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하세요.
이건 야곱이 요셉에게 내가 있는 가나안을 그리며 살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비록 몸뚱이는 애굽에 있지만 가나안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살라고 하는 겁니다.
정한 때가 되면 하나님이 너희를 애굽에서 빼내서 조상들이 묻혀 있는 이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잠시 우거하다 떠날 곳이니까 애굽에 너무 투자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린 모두가 이 세상에서 외국인이고 나그네들이에요.
고향을 그리며 살아가는 순례자들인 겁니다.
이 시대 성지 순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여행을 가잖아요.
그냥 여행을 가면 괜찮아요.
그런데 성지 순례를 간다고 해요.
성지란 없어요.
우리의 성지는 하늘에 있어요.
굳이 성지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핏 값을 주고 산 교회가 성지에요.
하나님은 이 땅에 하늘나라를 모형하는 것으로 교회를 세워주셨어요.
교회는 예수님의 핏값으로 세워진 곳이에요.
교회가 막벨라 굴이고,
교회가 가나안이에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지요.
그러자 교회가 생겨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날마다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도들로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자체가 삶이었어요.
얼마나 좋았으면 날마다 모였겠어요.
그 날마다가 바로 오늘날인 겁니다.
초대 교회는 오늘날로 살았어요.
교회는 하늘나라를 모형하고 있어요.
그래서 하늘나라의 존재 양식인 은혜로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면서 천국의 맛을 누려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 매인 경기를 하기 전에 연습 경기를 하잖아요.
가수들이 공연을 하기 전에 리허설을 하잖아요.
리허설은 본 공연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연습경기는 본 게임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연습 경기나 리허설은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해요.
실제로 경기를 뛰고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일곱째 날을 상징하는 주일에 교회로 모이는 것은 천국 생활의 리허설인 겁니다.
하늘나라 선수들이기 때문에 모이는 겁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만이 날마다 교회로 모여서 위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아래로는 형제들과 교제하면서 천국을 맛보았던 겁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뭐라고 하나요?
위로부터 났다고 하잖아요.
위가 어딘가요?
하늘이에요.
하늘로부터 난 자들은 하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로 모이게 되어 있어요.
현재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 천국도 못 누려요.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미래 천국을 현재 속에서 누리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않으면 교회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야지만 할 수가 있어요.
교회가 그렇게 중요한 곳이에요.
그런데 마귀라는 놈은 교회를 동호회 모임으로 전락시켜 놓았어요.
동호회 모임이 되다가 보니까 자기 사정이 먼저이고 시간이 남으면 교회에 오는 겁니다.
아니에요.
교회는 시간을 내서 오는 것이지 시간이 남으면 오는 것이 아니에요.
삶의 우선 순위가 교회여야 해요.
교회 생활이 기뻐야 하고,
교회에 모이는 것이 설레어야 하고,
교회에 오면 마음이 평안해야 해요.
내 집처럼 편안해야 해요.
오면 가기 싫고 가면 오고 싶어지는 곳이라고 해요.
교회관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를 가늠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 애인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시간이 설렘으로 기다려지잖아요.
마음이 쿵쾅거리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잖아요.
눈을 감아도 보이고 눈을 떠도 보이잖아요.
그게 사랑이에요.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예수님과 연애하는 것과 같아요.
예수님이 우리 신랑이에요.
교회는 신랑 만나러 오는 날이에요.
하도 속을 썩이는 신랑하고 살고 있으니 신랑이라고 하니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은데,,,
애인이라고 하세요.
애인을 뛰엄 뛰엄 만나고 싶은가요 매일 만나고 싶은가요.
매일 만나고 싶지요.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지잖아요.
그게 사랑이에요.
앞으로 교회에 오실 때는 애인 만나러 온다고 생각하고 오세요.
설렘으로 기쁨으로 오시란 말이에요.
찬송을 부를 때도 목청 높여 가면서 부르고,
서로 섬길 때에도 기쁨으로 섬기고,
봉사할 때도 감사함으로 하셔야 해요.
신명기 26장을 보세요.
신 26:1-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12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13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2세들에게 가나안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에요.
너희가 들어가서 살 땅은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는 땅이다.
그러니 범사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가나안에 들이는 것은 복을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농사를 지으면 가장 좋은 것을 광주리에 담아서 성전의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이렇게 고백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래 땅도 없는 이리저리 유리방황하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셔서 이렇게 좋은 땅으로 인도해주셔서 이렇게 좋은 농산물을 얻게 되었다고 감사하라고 했어요.
이건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하라고 합니다.
그럼 제사장은 그 농산물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서 동네 잔치를 벌리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축제를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어요.
그럼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모습으로 나타난 겁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겁니다.
그것이 교회에요.
교회의 소속은 하늘나라에요.
하늘나라 법칙으로 세워진 곳이에요.
그래서 성령강림이 일어나자 그동안 손을 움켜지고 살던 사람들의 손이 펴져서 재물을 교회에다 내어 놓는 겁니다.
그 누구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유무상통하였어요.
그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던 현상들이 나타난 겁니다.
사도들은 그걸 가지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교회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맛본 겁니다.
교회는 세상의 가치가 발붙이면 안 되어요.
세상에서는 신분의 차별이 있어요.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을 수 있어요.
높고 낮은 자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세상의 조건으로 차별이 있으면 안 되어요.
너도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았고 나도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았어요.
너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왔고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모였어요.
모두가 동등한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은혜 공동체라고 하는 겁니다.
모두가 한 형제인 겁니다.
명절날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알콩달콩 정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고가 없어요.
형제는 세상의 가치로 판단하지 않아요.
형제는 오로지 사랑으로 대하는 관계에요.
명절 때 자식들 모이면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을 수 있어요.
잘났다고 해서 못난 동생 무시하면 부모 마음이 좋지 않지요.
우리 하나님이 그래요.
형제들끼리 차별을 하면 아파하세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건가요.
자기를 비워 종으로 섬긴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 받은 자가 섬기는 곳이에요.
은혜 받아서 왕노릇하라는 것이 아니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를 간섭해 가는 거예요.
인간은 생래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 하고 자기 영광을 챙기고 싶어해요.
그게 애굽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사람을 죽여 버리고 거기다가 예수의 형상을 심어주는 거예요.
예수의 형상이 심어질 때마다 나는 자꾸 비워지고 죽어지는 거예요.
예수님 형상이 뭡니까?
자기 자신이 대속물로 내어주고 형제를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각해 가시는 것입니다.
야곱아! 너는 내 것이라 하시고는 뭐라고 하던가요?
조성해 간다고 하지요.
조성해 간다는 말은 조각가가 조각을 한다는 말이에요.
톱으로 썰고 대패로 깎고 끌로 파내면서 조각을 할 때마다 우리의 모든 살점이 뜯겨 나가는 아픔을 겪게 되어요.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 있다니까요.
그것이 고난이에요.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는 말은 개 고생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자기 안에 심겨진 언약에 이끌려서 살다보니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야곱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야곱의 이름은 기각당하고 이스라엘로 살아가도록 간섭을 당한 것입니다.
그게 험악한 세월이에요.
야곱의 이름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차압당한 인생을 살다보니까 험악한 세월을 지낸 겁니다.
우리도 다 그런 인생을 살고 있어요.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에게 심겨 있기 때문이에요.
언약이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살게 하니까 그것이 곧 험악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속에서 옛 것인 세상 것은 제하시고 새 것인 하늘의 것을 채워가시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하늘의 사람으로 조각을 해가는 거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이 아픈 겁니다.
그 아픔 속에 하나님의 흔적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서 기뻐하세요.
마치 조각가가 조각품을 다 만들고 이리저리 보면서 흡족해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천국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하는 겁니다.
영광이 뭔가요?
빛을 받았을 때 되돌려주는 것을 영광이라고 해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되돌려줄 때 영광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잖아요.
그 은혜가 교회 안에서 형제를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걸 영광이라고 해요.
그런 것이 나타날 때 하나님께서 아 저 녀석이 내 것을 잘 사용하고 있구나 하며 기뻐하세요.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알지요.
어떤 집에 청지기가 있는데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리가 들려서 어느 날 주인이 불러서 해고통지를 합니다.
해고통지를 했더니 해고 받은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몽땅 불러 놓고 탕감해주는 일들을 하는 거예요.
잘 보세요.
주인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허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해고통지를 시켰어요.
그런데 이 놈이 빚진 자들을 불러서 탕감을 해주는 겁니다.
이러면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는 것이 되잖아요?
그런데 주인이 어쭈 저 놈이 지혜롭네,
그런단 말이에요.
무슨 주인이 그래요.
자기 재산을 불려 줄 때는 허비한다고 하고,
자기 재산을 남에게 다 퍼주는데 지혜롭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해고통지를 철회하고 계속 근무를 하라고 하는 겁니다.
이건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이해 불가에요.
주인이 바보에요.
그럼 이 주인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해요.
이 주인이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로 삼았어요.
하나님의 집 청지기는 재산을 불리기 위한 청지기입니까?
아니면 주인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나눠주기 위한 청지기입니까?
나눠주는 청지기죠.
근데 이 청지기는 재산 불리는 청지기 노릇을 한 거예요.
이게 주인이 보기에 허비가 되는 겁니다.
주인의 이름을 먹칠하는 일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주인이 야 이놈아 나는 이 동네에 은혜와 자비가 풍성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니가 왜 나를 고리대금 업자로 만들어서 사람들로부터 욕먹게 하느냐 라고 역정을 내시는 겁니다.
네가 아끼는 것이 아끼는 것이 아니고 나를 욕되게 하니까 이 집에서 살 자격이 없다고 해고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우리 주인은 너무나 자비로운 분인데 내가 인색하게 만들어 놓았구나,
그래서 빚진 자를 불러서 전부 탕감해주는 거예요.
주인이 비로소 그렇지 내 집에 사는 종일 것 같으면 내 얼굴을 먹칠하지 말아야지 하며 그 청지기를 칭찬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집의 청기지들이에요.
하나님은 교회를 크게 키우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긍휼이 풍성하기를 바라세요.
교회는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것들을 맛보아야 해요.
그게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용서에요.
세상에서 힘든 사람들이 교회 와서 위로를 받고 가야 돼요.
인간적 위로가 아니고 내가 비록 세상에서 잘 살지 못하더라도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이기게 해 주어야 해요.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기쁨을 얻고 가야 해요.
우리를 원래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에요.
그런데 은혜를 받고 보니까 마음이 넉넉해지는 겁니다.
마음이 넉넉하니 손을 펴서 섬기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받은 그 은혜를 형제들에게 돌려주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그랬잖아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놈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냐?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천국을 사랑해요?
교회에 소망이 없는데 무슨 천국에 소망이 있어요?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해요.
교회는 천국의 모형으로 주었어요.
모이기를 힘써야 해요.
자꾸 오고 싶어져야 해요.
보고 싶어야 되고 만나고 싶어야 돼요.
말씀만 듣고 가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으로 살아가야 해요.
말씀이 양식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밥을 먹으면 그 힘으로 살듯이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섬기게도 하고 봉사하게도 하고 베풀게도 하세요.
이걸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이라고 해요.
말씀을 정리합시다.
야곱은 자기 후손들에게 고향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애굽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기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은 가나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애굽에 정착하려고 하지 말고 애굽을 떠날 생각을 하고 살라고 합니다.
내가 먼저 가나안으로 갈 터이니 너희들도 따라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골로새서 3장을 찾아 보고 마칩시다.
골 3:1~5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느냐,
그럼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건 자동적으로 찾게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귀소본능이라는 말이 있지요.
위로부터 난 자는 위를 생각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부모는 자식 생각을 하고 자식은 부모 생각을 하게 되어 있어요.
이건 본능에 속하였어요.
야곱이 가나안에 있으면 자식들은 자연히 가나안을 바라보게 되어 있어요.
너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보고 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출애굽을 시키는 겁니다.
육적 출애굽은 한번 하면 되지만 영적 출애굽은 날마다 해야 해요.
왜냐하면 죄 아래서 난 이 육신은 매일 애굽을 지향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날마다 만나를 주면서 애굽의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그게 영적 출애굽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날마다 애굽의 사고가 죽임을 당하고 하늘의 사고로 덧입는 일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야곱은 자기 시체를 가나안에 묻으라는 것으로 알려주는 거예요.
너희들은 애굽의 사람이 아니고 가나안 사람이다
너희는 땅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내가 먼저 가 있을 터이니 나중에 따라오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출애굽을 할 터이니 너희도 출애굽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야곱이 먼저 가나안으로 올라갔으니,
그 후손들도 400년 후에 야곱이 묻힌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요.
우리를 낳아주신 분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우리 부모에요.
예수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그리고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성령이 예수님이 계신 그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겁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그러니 힘내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곧 오십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던 자를 아버지가 계신 선산이 어디인지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살이가 돌고 돌아가는 광야 생활 같은 길이지만 그 끝은 아버지가 계신 집이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만물들이 징조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준비를 잘 하도록 도와주세요. 험악한 세월이 복된 인생임도 알게 하여서 세상을 소풍처럼 가볍게 살다가 주님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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