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글

만남 그리고 복음과 죽음

정낙원 2009. 3. 9. 13:15

 

만남 그리고 복음과 죽음

 

 

갑자가 쌀쌀해진 날씨가 맵다.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두터운 겉옷을 입고 장례식을 위해 새벽길을 나선다.

 

3개월 쯤 되었을까 갑자기 집사님의 누님이 간암 말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멀리 공주에 사시는데 몇 년 전에 남편도 암으로 먼저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누님이 43세인데 또 암이란다.

 

시골에서 어린 4 남매를 키우며 바쁘게 살다보니 아파도 변변히 병원에도 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를 해서 어느 때부터인가 배가 불러온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집사님이 공주에서 울산 대학병원으로 모셔 와서 진단해 보니 간암 말기란다.

다른 곳까지 암세포가 펴져서 치유되긴 힘들고 오래 가지 못하겠단다.

본인은 모르고 큰 병원에서 몇 일 입원하면 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단다.

 

병원에서 몇일 입원해 있으면서 진통제를 맞고 있으니 다 나은 줄 알고 퇴원하겠단다.

아마도 두고 온 어린 4 남매 자식들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마침 방학 기간이라 아이들을 울산으로 데리고 왔단다.

자식들이 곁에 두고 마음을 달래고 병원에서 더 치료를 받으라고 하였단다.

 

주일날 집사님이 묻는다.

목사님 본인에게 사실대로 알려 줘야 합니까?

어찌해야 합니까?

 

병원에서 선고가 떨어 졌으면 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금방 낫는 줄 알고 있는데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 망설여지고 난감합니다.

일단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동안 몸을 돌보지 않아서 그러니 더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열심히 치료 받으라고 했습니다.

 

목사인 제 생각엔 회복할 가망이 없다면 사실대로 알려 주는 것이 좋을 듯싶네요.

그나저나 누님이 예수를 믿습니까?

글쎄요!

시골에 있는 순복음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5년 전 매형이 죽고 나서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 집사님이 누님에게 복음을 전해 봤습니까?

이번에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얘기 해 보니 모릅니다.

집사님이 예수님 이야기를 하니 너무 예수 이야기만 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이상하답니다.

그래서 집사님이 누님에게 그럼 우리교회 목사님을 한번 모셔 오겠다고 하니 싫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한 주일 후 집사님에게 누님의 근황을 물어 보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환자를 안심케 하려고 항암 치료를 받느라 고통이 심하단다.

의사는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상태나 워낙 안 좋으니 항암 치료를 해 보아야 별 의미가 없단다.

 

본인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뭔가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집사님에게 묻더란다.

자신의 병증이 어떤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해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차마 말기 라는 말은 못하고 간암이라고만 했다고 한다.

 

그래 그동안 복음은 계속 전해 보았습니까?

 

예!

 

반응이 어떻습디까?

 

아직도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러기를 또 한주가 지났다.

 

 

만남 그리고 복음

 

주일날 집사님이 목사님 한번 심방 해 주세요! 라고 한다.

 

환자가 싫다고 한다면서요.

 

어제 목사님 심방 한번 받자고 하니 아마 심경에 변화가 왔는지 그러라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한번 만나 뵙시다.

주일 예배 후 병원에 가서 보니 배가 만삭된 배이다.

복수가 차서 그렇단다.

첫 느낌이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하다.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많이 아프시지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그져 그렇습니다.

 

통상적인 안부 말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할까 속으로 성령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한다.

 

몸이 아프니 속상하지요.

 

예!

 

그동안 건강하게 산 것이 부럽지요.

몸이 아프고 나니 그동안 너무 몸을 돌보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지요.

 

예!

 

막상 아프고 나니 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 되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럽지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병에 걸려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들지요.

 

예!

 

집사님은 평소에 사람이 왜? 병들고 죽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아니요.

 

지금이라도 한번 생각한다면 집사님은 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고 생각합니까?

죄 때문이지요.

 

그럼 죄인이 병들고 죽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면 아! 내가 죄인이라서 이렇게 병들고 아프고 죽는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겠지요.

그래야 죄인다운 것 아닙니까?

죄인이 건강하고 오래 살고 행복하면 안 맞잖아요.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았지요?

 

예!

 

집사님! 교도소에 누가 갑니까?

죄 지은 사람이 가지요.

그럼 집사님은 죄 지은 사람이 교도소에 가는 걸 안 됐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교도소에 간 사람치고 그래 나 같은 놈은 교도소에 평생 갇혀 살아야 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다 재수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게 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병들고 죽게 되는 것인데도 우린 병들고 죽을 일이 닥치면 재수 없어서 이런 일이 닥쳤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하나님을 원망해요.

 

죄인이 병들고 죽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막상 병들고 죽일 일을 당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스러운 겁니다.

그렇지요.

 

예!

 

집사님! 그동안 건강하게 산 것을 감사해 보았습니까?

 

???

 

당연히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지요?

 

예!

 

집사님 몸이 누구겁니까?

 

???

 

제가 이상한 질문만 하지요.

속으로 뭐 이런 목사가 다 있어!

그런 생각이 들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집사님 마음엔 몸도 안 아프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지요?

 

예!

 

집사님이 만약 집사님 마음 먹은 대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런 병도 안 걸리고 죽지 않고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겠지요?

 

예!

 

그건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인생이 집사님 마음대로 안 살아지지요?

 

예!

 

왜? 인생이 내 마음 먹은 대로 안 살아지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아니요.

 

지금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

 

그건 집사님 인생을 집사님이 주인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내 몸이 내가 주인이 아니니 내 마음 먹은 대로 안 살아지는 겁니다.

집사님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날 나게 해 주세요! 라고 했습니까?

안했지요.

 

그런데 세상에 태어났어요.

그런데 이젠 내 뜻과 상관없이 몹쓸 암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몸이 서서히 죽어 갑니다.

누군가가 집사님 몸을 주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

 

우리는 흔히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도를 하면서도 막상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을 안믿어요.

그래서 나쁜 일을 당하면 억울해 하는 겁니다.

 

집사님은 죽고 사는 문제를 누가 주관한다고 보세요?

 

???

 

집사님을 이 세상에 보낸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이겠지요.

그래 맞아요.

하나님이 집사님이나 나나 모든 인간들을 이 세상에 보냈어요.

 

그럼 하나님이 태어나게 했으면 하나님이 데려가기도 하겠지요.

왜냐하면! 사람을 나게도 하시고 데려가게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그렇지요.

 

예!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요.

한 번도 내 몸이 하나님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지 않는 일들을 당하게 만들어서 깨닫게 만듭니다.

물론 이 사실은 성도만이 알수 가 있어요.

 

때로는 병들게 하고, 때로는 사고를 당하게 하고, 때로는 자식들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잡다한 사건과 사고들로 골치 아프게 만들고 하나님을 찾게 만듭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성도는 비로서 하나님을 찾아요.

 

그리곤 아! 내 인생이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요.

그것도 그 당시뿐입니다.

돌아서고 나면 또 내가 나를 관리하고자 해요.

 

집사님! 기도 많이 하지요?

많이 하지 않더라도 기도는 하지요?

 

예!

 

언제 기도하게 됩니까?

편안할 때입니까?

무슨 문제가 있을 때입니까?

문제 있을 때이지요?

왜? 평상시엔 하나님을 찾지도 않다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합니까?

그건 하나님께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면서도 그 문제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아주 나쁜 사람들이지요.

그런 생각이 안 듭니까?

 

듣고 보니 그렇네요.

 

맞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 생각으로 판단해요.

하나님도 들러리입니다.

 

평생 내 뜻대로 인생이 살아진다면 하나님 찾을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내 것이다! 라고 시비를 거는 겁니다.

하나님이 시비를 걸면 아픔으로 다가와요.

 

지금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시비 걸고 계신 겁니다.

너! 왜? 날 잊고 사느냐? 시비건 거라고요!

이해되시는가요?

 

아마 생소한 말이라 언뜻 납득이 안 갈 겁니다.

제가 가고 나서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집사님은 교회 다닌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약 5년 정도 되었습니다.

 

질문의 강도를 조금 더 가하기로 했다.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순간 당황스러워 하더니 아무 말 없이 그냥 씩 웃는다.

다시 물었다.

 

집사님 예수님이 어떤 분인 줄 아세요?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셨고,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

 

아니!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내가 왜? 믿어야 합니까?

그것도 한국 사람도 아닌 유대인을 말입니다.

내가 예수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

 

말이 없다.

 

집사님! 성도가 죽으면 어디 갑니까?

 

천국요.

 

그럼 천국엔 누가 갑니까?

 

예수 믿는 사람요.

 

그럼 다시 묻겠는데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한참 있다가 저 교회 다니는데요.

 

그래요 저도 집사님이 교회 다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묻는 건 교회 다니는 것을 묻는게 아니고 예수를 믿느냐를 묻는 겁니다.

내가 왜? 예수를 믿는지 아느냐? 이 말입니다.

집사님이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알 것 아닙니까?

 

눈치를 보니 아마도 처음 들어보는 질문인가 보다.

 

그래서 재차 교회 다니는 것하고 예수 믿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를 다녀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죄가 사해집니다.

집사님이시라면서요.

 

예!

 

그럼 집사님이 만난 예수가 있을 것 아닙니까?

집사님이 만난 예수님을 저에게 한번 얘기해 보세요?

난 예수님을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게 있을 것 아닙니까?

난 이래서 교회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 라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한참을 생각 하더니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주 처음 당하는 생소한 질문이라서인지 난감해 한다.

 

이런 질문을 받고 보니 지금까지 생각 없이 막연하게 교회 다녔다는 생각이 들지요?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예수 믿느냐고 물으니 당황스럽지요?

 

끄덕 끄덕!

 

잠시 후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단다.

자기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는 교회 다니면 당연히 예수 믿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막상 목사님이 예수 믿느냐고 물으니 할 말이 없단다.

 

이왕 시작한 것 한 번 더 채근해 보기로 한다.

 

그럼 집사님은 자신이 죄인인 것은 아세요?

 

???

 

그럼 죄가 무엇인줄은 아십니까?

 

???

 

속으로 안 되겠다 싶었다.

멀찍이 서 있는 집사님 내외에게 눈을 힐끗하니 씩 웃는다.

마침 병실에 혼자 있는 터라 마음껏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사람이고 또 언제 만날 수 있겠는가 싶어서 더 충격요법을 쓰기로 했다.

집사님 제가 좀 심한 말을 하여도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집사님의 신앙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 이해하세요.

더 도발적으로 묻습니다.

 

집사님은 예수를 왜? 믿습니까?

아니! 집사님!

집사님은 예수도 모른다.

죄도 모른다.

 

그럼 지금까지 뭘 믿었습니까?

교회는 무엇 하러 다녔습니까?

교회 다닌 지 5년이 되었다면서요?

 

제가 보기엔 집사님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 다니는 교인입니다.

교인과 성도는 다릅니다.

 

교회 다니는 것하고 예수 믿는 것은 다릅니다.

성도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교인은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죽으면 천국에 가지만, 교회 다니는 교인은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성도를 구원하지 교회다니는 교인은 구원하지 않아요.

 

집사님께서 혹시 지금 죽는다고 한다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들고 믿어집니까?

솔직하게!

 

???

 

이건 자존심이고 체면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세요.

믿어지지도 않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에게 자존심 상한다고 믿어지지도 않는 것을 믿는다고 해 놓고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솔직하게 집사님 심경을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답을 해 보세요.

내가 집사님을 추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집사님의 신앙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야 신앙 이야기를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사님! 천국엔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

 

그래요 맞아요.

천국엔 예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예수님을 모르잖아요.

예수님은 못 만났잖아요.

예수님이 어떤 분 인줄 모르시잖아요.

집사님! 예수님이 신랑이고 신자를 신부라고 하는 것은 알지요.

이런 말은 목사님들이 늘 하는 말이잖아요?

 

예!

 

천국에 가면 예수라는 신랑이 기다리겠지요?

 

예!

 

그럼 집사님은 예수라는 신랑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

 

아니! 예수님이 신랑인데!

집사님은 지금 예수님을 모르잖아요?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잖아요?

집사님은 낯선 사람하고 살겠어요?

예수님이 누구 신 줄도 모르는 분이 어떻게 예수라는 신랑하고 산단 말입니까?

 

신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예요.

예수가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냥 성경에서 말하는 그 예수님이 믿어져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의심이 가야 하는데 의심이 가지 않고 믿어져요.

 

성령께서 반드시 믿어지게 해 줍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가 죄인이고.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져요.

천국 가는 것도 믿어지고 성경이 술술 믿어져요.

이렇게 믿어지는 것을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 그 속에 예수님이 계세요.

 

집사님 속에 지금 예수님이 계신 것 같습니까?

예수님이 안 믿어지세요?

 

???

 

예수님이 어떤 분이세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집사님 남편이 5년 전에 돌아가셨지요?

그 남편이 지금도 마음속에 또렷하게 그려지지요.

10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남편은 마음 속으로 그려지겠지요.

 

전혀 낯설지가 않지요.

그건 남편과 실제로 살아 보았으니 속속들이 알수 있는 것이잖아요.

누가 집사님에게 남편에 대해서 물으면 이렇고 저렇고 대답할 것 아닙니까?

 

나는 집사님 남편을 본적도 만난 적도 없으니 몰라요.

누가 저에게 집사님 남편에 대해서 물으면 난 당연히 모른다고 해요.

난 집사님 남편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저하고 집사님 하고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동생이 나가는 울산목양교회 정낙원 목사입니다.

이제 우리 둘이 분명히 만났지요.

 

예!

 

집사님 절 만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몰랐어요?

당연히 몰랐지요.

다만 동생이 말하기 때문에 그런 분이 있는가 생각만 했겠지요?

그런데 이제 만났어요.

똑똑히 봤어요.

그렇지요?

 

예!

 

그럼 누가 집사님에게 울산목양교회 정낙원 목사를 물으면 대답해 줄 수 있겠지요?

만난 경험이 있으니까요?

아니 분명히 보고 만나고 대화하고 했잖아요.

누가 저를 물으면 집사님은 저를 보았으니 남에게 말해주는게 전혀 어렵지가 않겠지요.

 

예!

 

맞아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그래요.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분명하게 남에게 말해 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말하는데 전혀 어렵지가 않아요.

만났으니까요?

 

만났다는 것은 그 속에 이미 사진처럼 콱 찍혀 있어요.

이제 제 얼굴이 집사님 마음 속에 찍혀 있어요.

제가 여기에 없어도 이젠 집사님 속에는 내 얼굴을 사진처럼 담겨져 있어요.

 

정낙원 목사 그러면 아! 그 양반! 이렇게 생각나겠지요.

지금 눈감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럼에도 제가 그려지지요.

그렇지요.

 

예!

 

누가 울산목양교회 정낙원 목사는 키도 작고, 못생겼고 그러면 집사님은 뭐라고 하겠어요.

아니라고 하겠지요.

왜? 그래요.

집사님이 만난 울산목양교회 정낙원 목사는 키도 크고 잘생겼잖아요.^^.

그지요.

 

제가 잘 안 생겼습니까?

전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잘생기고 못 생기고는 주관적인 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키가 큰 것은 뚜렷하잖아요.

그런데 누가 나를 말하면서 키가 작다고 하면 집사님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분명이 집사님이 만난 정낙원 목사는 키가 큰 사람이었으니까요.

 

저 역시도 그래요.

집사님을 만났기 때문에 누가 김성옥 집사 그러면 아! 그 사람!

그 예쁘장하게 생긴 분! 그러면서 내가 마음속에 찍어 놓은 사진이 떠오르겠지요.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그래요.

예수님을 분명히 만난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예수님을 만나고 본 사람은 그 마음과 생각 속에 예수님에 대한 잔상이 찍혀 있어요.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이 믿어진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믿어지는 예수님은 전혀 어렵지 않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럼 누가 집사님이 알고 있는 예수와 다른 예수를 말하면 그건 아니 라고 말할 수가 있어져요.

 

지금 보세요.

 

전 분명하게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는데 집사님은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하라고 하니 말을 못하는 거잖아요.

막상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니 어떻더라고 머뭇거리게 되잖아요.

어떻게 생겼더라?

어떤 분이더라?

예수님이 낯설게 느껴지는 겁니다.

 

집사님은 교회라는 건물은 분명히 보았고 그곳에 다녔기 때문에 교회를 말하라고 하면 낯설지 않은데, 예수님은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제가 예수님 만났느냐고 물으니 당황스럽고 재미없고 낯선 겁니다.

 

지금 제가 성경이 말하는 그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목사들이 말하는 그런 예수 말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

사람마다 예수가 다 달라요.

그러니 자기가 알고 있는 예수를 다 내어 놓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와 같은가 확인하여야 해요.

성경이 말하는 예수와 자기가 내어 놓은 예수가 같아야 그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그 예수님은 우리가 애쓰고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나지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은 그냥 자기가 알아서 불쑥 찾아옵니다.

마치 제가 집사님을 불쑥 찾아 왔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서 만나 주시면 그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되어 있어요.

내가 믿기 싫다고 해도 불쑥 찾아오신 예수님은 떠나지 않아요.

그냥 우리 속에서 진치고 살아요.

그러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자기를 찾아온 예수님을 말하게 되요.

 

제가 집사님에게 예수님을 마음속에 쏙 넣어 줄 수가 없어요.

그건 예수님이 알아서 들어가세요.

제가 이렇게 찾아 온 것은 집사님이 죽으면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해야 하는데!

제 마음이야 집사님이 천국에 갔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천국엔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 가는 곳이니 그 예수님을 집사님이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전 다만 집사님을 천국에 데리고 가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소개하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와서 만나 준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줄 알아요.

내가 딱히 무슨 나쁜 짓을 해서 죄인이 아니라 내 자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져요.

예수님이 찾아오면 예수님께서 심어준 죄관이 따로 생겨요.

 

그래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죄와는 전혀 다른 죄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 깨달아져요.

그리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는지도 알게 되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도 믿어져요.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이해가 안 되지요?

 

예!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도 듣고 보니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우리 목사님은 이런 말을 안 해 주던데!

그럼 그 목사님은 예수님을 안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니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겁니다.

맨날 복 받는다는 소리만 하지요.

 

예수를 모르니 입만 열면 보이는 교회에 충성하면 복 받는다고 하지요.

목사가 예수 안 믿는다고 하니 우습지요?

아마 당황스러울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집사님을 당황스럽게 하려고 도발적으로 물은 겁니다.

기분이 나쁘면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말해 보라는 뜻에서 말한 겁니다.

 

집사님은 지금까지 교회만 죽자 살자 다녔지 예수를 믿은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겁니다.

속았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

 

???

 

기분 나쁘지요.

이제 제가 가고 나면 욕도 나오고 짜증도 날 겁니다.

그리고 은근히 고민도 생길 겁니다.

내가 진짜 예수 믿는지 진지하게 고민이 될 겁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환자를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자고 했다.

많이 힘들었지요.

죄송합니다.

너무 기분 나쁘게 해 드려서!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환자의 손을 꼭 잡고)

 

하나님 아버지 여기 불쌍한 한 집사님이 암으로 누워있습니다. 난 하나님에 것인데 지금까지 내 것으로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몰랐습니다. 건강할 때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는데 막상 병들고 보니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부디 이 불쌍한 영혼에게 마음에 빛을 비취사 예수그리스도가 믿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저의 마음에 복음에 광채를 비춰 주셨듯이 여기 있는 이 집사님에게도 복음에 광채가 비춰지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병을 통하여서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하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혹시 제가 가고 난 다음에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하면 동생에게 말하세요.

언제든지 달려 올테니까!

 

다행히 1인실이라서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 한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1차 만남은 여기서 끝났다.

 

돌아오기 전에 동생 집사님에게 내가 가고나면 슬쩍 떠 보라고 했다.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해 보라고 하라고 살살 달래라고 부탁하고 돌아 왔다.

 

돌아오면서 내가 너무 심하게 했나!

 

그 다음 주일날 집사님에게 물었다.

누님이 뭐라 하더냐?

 

솔직히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무슨 밀인지 모르겠단다.

근데 목사님이 다녀가시고 난 다음에 공주에 있는 교회에서 목사님과 집사님 여러분들이 문병을 왔다 갔다고 한다.

와서 예배도 드리고 위로하고 갔단다.

 

그런데 공주에 있는 목사님이 다녀가고 난 다음에 내가 자기교회 목사님 하고 다르단다.

자기 교회 목사님이 하는 말은 왠지 거짓말 같고 입발림 소리 같단다.

내가 한 말은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데 자기교회 목사가 한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단다.

그럼 언제 다시 한 번 더 심방 가겠다고 해 보라고 했다.

 

환자가 병원에 있는게 힘이든지 퇴원하자고 해서 집사님 집에 모셨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더 치료 할 것이 없으니 차라리 집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났다고 그러더란다.

 

그리고 집에서 약 2주 정도가 지났다.

상태가 더 악화가 되어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한다.

간간히 복음을 말하니 이젠 관심을 갖는단다.

 

다시 입원한지 약 1주일 정도 지나서 집사님이 목사님 한 번 더 오시라고 할까 물었단다.

그러니 목사님을 한 번 더 보게 해 달라고 하더란다.

 

 

두 번째 만남 그리고 복음

 

그래서 지난번 만난지 약 한 달 후가 되어서 다시 만났다.

가서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거의 산송장이다.

 

전에 항암치료 한다고 약물을 투입하였더니 머리가 다 빠지고 얼굴은 지난번 보다 반쪽이었다.

금방이라도 임종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도 의식은 또렷해서 대화는 할 수가 있었다.

 

집사님 안녕하세요.

많이 힘들지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라고 한다.

반가워하는 기색이다.

 

집사님 지난번에 제가 다녀가고 난 다음에 욕을 많이 했지요.

무슨 목사가 위로는 안 해주고 고민거리들만 잔뜩 주고 간다고 욕을 했지요.

그래 고민 좀 많이 했습니까?

 

예!

 

집사님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세요.

예! 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6인 병실이라서 이번엔 지난번 1인실처럼 큰 소리로 말할 수가 없다.

또 오래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라서 핵심만 전하기로 했다.

주로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할애 했다.

 

사람이 죄인인 것은 죄인을 조상으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집사님이 김씨인데!

집사님이 김씨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잖아요.

조상이 김씨니까 집사님도 김씨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도 죄인을 조상으로 두었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은 죽어야 해요.

사람이 죽는 것은 다 죄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난 죄인이 아니야! 라고 말해도 다 죽어요.

죽는다는 것 자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죽으면서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죄는 우리가 해결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죄 아래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면 죄와 상관이 없는 죄 밖에 계신 분이라야만 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어떻게 처리하셨는가 하면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시켜서 처리하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자기 백성들도 같이 죽었어요.

아까 인간이 죄인이 된 것은 조상이 죄인이라서 그렇다고 했지요.

 

그럼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도 조상이 의인을 두면 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 없는 예수님을 의인의 조상으로 보내신 겁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가 의인입니다.

 

그런데 조상을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잖아요.

조상이 우리보다 앞서 있으니 우린 선택권이 없고 조상이 우리의 선택권이 있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해야 예수님 족보에 올라가요.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상 때문에 죄인이 된 것처럼 이젠 반대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라는 조상 때문에 의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자기 백성들도 몽땅 죽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죽을 때 나도 죽은 겁니다.

집사님도 죽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수를 조상으로 두고 있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이 사실이 믿어지게 해 줘요.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져요.

 

죄인이 죄 사함 받는 것은 착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게 되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을 해도 의가 안 돼요.

의는 죄 없는 분만이 생산해 낼 수가 있어요.

그러니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니 다 죄인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에게선 의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는 오직 죄 없는 예수님에게서만 나와요.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피 흘리셨다는 것이 믿어지고 난 예수님의 피 흘리심 때문에 용서 받았다는 것이 믿어져요.

 

그러니 집사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든지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 예수님이 집사님 대신에 죽었다는 것을 믿느냐고 물어요.

그런데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 받은 사람만 할 수가 있어요.

 

성령이 믿어지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믿어지게 해 주면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고 나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 때문에 용서받고 구원받는 다는 것이 술술 믿어지게 되어 있어요.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세요?

 

예!

 

아니 제 체면 생각하지 말고 집사님의 솔직한 마음을 말해 보세요.

제가 지난 번 와서 말할 땐 뭐가 뭔지 잘 몰랐는데 이젠 제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세요.

 

예!

 

의심이 안 가세요.

 

예!

 

아니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믿어지세요.

 

예!

 

제가 말하는게 듣기 싫지 않으세요?

 

아니요.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제 혼자 속으로 아니 이럴 수가!

진짜 이 분이 예수가 믿어진단 말인가?

괜히 믿어지지도 않는데 지난번처럼 뭐라고 할까봐서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은 아닐까?

분명히 지난번 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감지 할 수가 있다.

 

내가 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확인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본인이 믿어진다고 하면 믿는다고 믿어 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난번에 이야기 할 땐 당황하고 불편한 기색들이 역력했는데 지금은 사뭇 다르다.

수긍한다는 눈빛이다.

물론 내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겠지만 뭔가 하나님께서 간섭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지난 번엔 귀찮아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뚜렷했는데 지금은 분명 다르다.

 

6인실이라 커텐 하나 사이로 다른 환자들에게 문병 온 사람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린다.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어서 귓속말로 집사님 항상 이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저도 예수님이 믿어지게 해 주세요.

내가 죄인이고 내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주셨다는 것이 믿어지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피가 나를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는 능력이라는 것이 믿어지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셔야 해요.

알았지요.

 

예!

 

꼭 잡은 손을 힘을 더 가하면서 집사님 힘내세요!

머리를 끄덕인다.

 

 

돌아오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차를 타고 오면서 기도한다.

주여 감사합니다.

저 분이 지금까지 들은 것들이 믿어지게 해 주소서.

내게 복음을 깨닫게 해 주셨듯이 저 집사님에게도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믿어지게 해 주소서.

 

주일날 집사님에게 물었다.

 

어떠냐고!

많이 달라졌단다.

기력이 없어서 말은 못하지만 복음을 전하면 좋아하고 듣는단다.

뭔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시간 나는 데로 의식이 잇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세요.

그러지 않아도 아내인 박 집사님과 돌아가면서 말한다고 한다.

 

 

세 번째 만남 그리고 죽음

 

그리고 약 열흘 후 오후 4시쯤에 김 집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제 밤부터 갑자기 황달이 오기 시작하더니 숨이 가빠진다고 목사님 다시 한 번 와 주세요! 라고 한다.

직감적으로 이제 때가 된가 보다! 라는 생각이 스친다.

알았습니다.

곧장 갈께요!

 

달려가니 1인실에 옮겨져 있었다.

집사님이 제가 복음을 전하기 좋게 하려고 6인실에서 1인실로 옮겨 달라고 했단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단다.

약 30분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가 도착하고 보니 비몽사몽간이다.

혈압이 높은 수치는 50이고 낮은 것은 아예 잡히지 않는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아마 하루를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간호사가 가슴을 꼬집고 눈에 불을 비춰도 반응이 없다.

숨만 가쁘게 몰아쉰다.

 

간호사가 그런다.

사람의 기관 중에 가장 늦게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력이란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다 알아 듣는단다.

할 말이 있으면 다 하라고 한다.

 

제가 집사님 손을 꼭 잡고 이마에 손을 얹으면서 집사님 접니다.

정낙원 목사입니다.

알아보겠어요.

 

제 말이 들리면 손가락을 한번 움직여 보세요.

제가 잡고 있는 손에 손가락을 까딱하면서 손에 움직임이 전달된다.

올 커니 듣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집사님! 많이 힘들지요.

미동이 없다.

그럼 제가 하는 말 잘 듣고 믿어지면 손가락을 까닥하세요?

알았지요.

 

손가락이 가딱하며 움직인다.

 

이제 집사님은 천국 갈 때가 다 되었어요.

예수님이 집사님 보고 싶다고 데리고 가려나 봐요.

두렵지 않지요.

마음이 평안하지요. 

예수님 품으로 간다는 게 믿어지나요.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온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것 잘 들으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쪽에 강도 둘도 함께 달렸어요.

둘 다 평생 강도짓 하다가 지금 예수님과 같이 죽게 되었어요.

 

예수님하고 같이 십자가에 죽어가면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 조롱당하고 고난당하는 모습들을 다 보았어요.

같이 달려서 죽어가는 왼쪽에 있는 강도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을 했어요.

그런데 우편에 있는 강도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이 믿어졌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하는 왼편에 달린 강도에게 야 이 나쁜 놈이 너와 나는 평생 동안 나쁜 짓만 하고 살았으니 이렇게 죽는 것은 마땅하지만 여기 있는 이 분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죽어가고 있는 분이라고 나무랐어요.

기억나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에게 주여 주님에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했어요.

구원해 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강도는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본 겁니다.

그래서 주여 나를 구원해 달라고 한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강도에게 네가 오늘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어요.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천국에 데리고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강도는 자기 행위로 본다면 지옥에 가야해요.

그런데 천국에 갔어요.

 

지난번에 제가 말씀 드린 것 기억나세요.

천국엔 우리 행위로 가는 곳이 아니고 자기가 죄인인줄 알고 예수님이 내 대신에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간다고 했지요.

기억나세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지금까지 집사님이 어떻게 살아왔든 지는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다만 집사님에게 네가 예수를 믿느냐고 만 물어요.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때 온 세상에 하나님이 죽음에 천사들을 보내서 애굽에 장자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했지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가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기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바르라고 했어요.

 

죽음에 천사들이 집집마다 들이닥쳐서 장자를 죽일 때 그 집에 피가 발라져 있으면 통과했어요.

하나님께서 문에 피가 발라진 집은 들어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모세의 말을 듣고 어린양을 잡아서 문에다 피를 바른 집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어요.

그 속에는 도적놈도 있을 것이고, 사기꾼도 있을 것이고, 도박한 놈도 있을 것이고, 빈둥거리고 놀던 백수도 있을 것이고, 술 쳐 먹고 바람피운 놈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아주 착한 놈들도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행동을 보지 않고 다만 피만 보았어요.

누구든지 피만 발라져 있으면 살아났어요.

하나님께서 피가 발라진 집은 그 집 장자 대신 어린양을 대신 죽인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이 대신 죽어서 살아 난 겁니다.

 

그런데 그 어린양이 바로 신약에서 예수님이예요.

예수님이 내 대신 죽은 것을 아는 사람이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집사님! 예수님께서 집사님 대신에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세요?

집사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이 믿어지냐 이 말입니다.

 

까딱!

 

그러면 집사님은 조금 있으면 예수님 품에 안겨요.

천국에 간단 말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예수님이 보좌에서 일어나서 스데반이 오는 것을 환영했어요.

천사들을 보내서 스데반을 영접하라고 했어요.

 

이제 집사님도 스데반처럼 천사들이 영접하러 올 겁니다.

이제 집사님은 세상의 수고를 그치고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가세요.

 

자식들 걱정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기를 테니까 염려하지 마시고 평안히 가세요.

알았지요.

 

손이 약간 떨린다.

 

갑자기 심장 박동수가 높아진다.

70이던 심장 박동이 130으로 높아진다.

긴 숨을 내쉰다.

뭔가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는가 보다.

 

급히 간호사를 부른다.

갑자기 심장 박동수가 높다고 하니 마음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 요동이 치는가 보다 라고 한다.

한참이나 지나서 다시 70으로 돌아온다.

 

약 1시간 정도 지켜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젠 미동이 없다.

아마도 혼수상태로 빠진 모양이다.

 

급히 연락을 받고 형제들이 하나 둘씩 온다.

병실이 좁아서 더 있기가 뭣해서 나왔다.

 

집사님이 따라 나온다.

집사님 준비 합시다.

아마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네요.

이젠 장례식 문제를 생각할 때입니다.

 

그래 운명하시면 어디다 모실 겁니까?

문상 오실 분이 많습니까?

올 사람이 없단다.

가족들뿐이란다.

 

그런데 집사님 형제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기독교식으로 하고 싶은데요.

형제들이 반대하지 않겠어요.

 

꼭 보면 평상시엔 코빼기도 안 보이던 것들이 죽고 나서 장례식에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인간들이 있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겁니다.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라서요.

 

뭣보다 누님이 예수님을 믿었으니 기독교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분란 생기지 않도록 잘 의논하세요.

형제들이 굳이 반대하면 그들 의견대로 하세요.

죽은 사람 놓고 분쟁 생기지 않게 하세요.

 

그나저나 오늘 안 죽고 내일 죽으면 3일장을 하면 주일날이 장례식인데 어찌합니까?

그럼 주일 예배 후 오후에 해야지요.

주일날 안 걸리게 오늘 돌아가셨으면 좋을 텐데!

 

오늘 밤 11시쯤에 돌아가시면 참 좋은데!

그러면 장례식장에 오래 있을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집으로 돌아오니 8시다.

 

9시 반쯤 휴대폰 문자로 어떠냐고 물었다.

아까와 다름이 없단다.

속으로 오늘을 넘기면 여러 가지 번거로우니 하나님 빨리 데려가세요! 라고 해 본다.

 

 

11쯤에 전화가 왔다.

10시 38분에 운명하셨단다.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가셨어요.

온 가족들이 지켜보았습니까?

예! 전화로 전해 오는 음성이 우는 음성이다.

 

아주 편하게 가셨습니다.

자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 진정하시고 이젠 장례 준비를 해야지요.

그래 장례문제는 의논했습니까?

예! 교회 식으로 하고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장례식 그리고 복음

 

그래서 형제들만 모인 가운데 장례식을 치뤘다.

모두 세 번의 설교를 하였다.

 

입관 때 온 가족들이 시신 앞에 섰다.

관에 들어가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보실 분들은 다 보라고 했다.

어떤 분을 울고 불고 한다.

 

입관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다.

이제 문상 실에 가서 예배를 드리자고 모였다.

형제들이 6남매라서 모인 식구가 약 20명이 된다.

 

 

여러분 사람이 왜? 죽습니까?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죽는 것은 자기 몸에 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토기장이라고 하고 인간은 토기라고 비유합니다.

토기란 그릇입니다.

그릇이란 무엇을 담기 위하여 만든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토기처럼 뭔가를 담고자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먹으면 영생하는 것과 먹으면 죽을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먹으면 영생하는 것을 생명과라고 하고 먹으면 죽는 것을 선악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으면 죽을 선악과는 절대로 먹지 말고, 먹으면 영생할 생명과를 반드시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인간들을 꾀서 먹으면 죽을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안 먹고 생명과를 먹었으면 어땠을까요?

죽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저와 여러분이 죽는 것은, 오늘 여기 관 속에 들어가 있는 김성옥 집사님도 조상을 잘못둔 탓입니다.

죽은 조상을 두었기 때문에 줄줄이 다 죽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선악과 따 먹지 않았어요.

하지만 죽어요.

 

그건 모두가 아담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그래요.

모든 인간이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죽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셨어요.

어떻게 살리느냐 하면 아담의 원리로 합니다.

 

아담을 조상으로 둔 사람은 모두가 죽는 것처럼 죽지 않는 조상을 한 사람을 세우는 겁니다.

아담처럼 죽지 않으려면 그 조상 되는 분은 아담의 후손으로 오면 안 되겠지요.

만약 아담의 후손으로 인간 쪽에서 온다고 하면 그 사람도 아담의 죽음이라는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도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죽지 않게 해 주는 조상이 될 수가 없어요.

죽지 않는 조상이 되려면 아담의 후손이 아닌 분이 와야 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이 아닌 죄가 없는 분을 한분을 보내 주셨어요.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가 없어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죽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 한 것은 죽음이 예수님을 가두어 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아담의 후손만 가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니 가두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모든 인간은 죽으면 다 무덤에 묻혀서 시체가 썩고 흙으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몸은 안 썩고 살아났어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몸은 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이 땅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왔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로 가신 겁니다.

 

땅에서 난 것은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에서 난 것은 하늘로 돌아가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으니 땅에 묻히지 않고 하늘로 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죽지 않는 조상이 된 겁니다.

 

이제부터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납니다.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의 유전자를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유전자를 가진 자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 죽듯이, 예수님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 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모든 인간은 아담의 몸으로 태어납니다.

땅에서 났잖아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왔는데 인간은 땅에서 났잖아요.

그러니 비록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이 몸뚱이는 땅에 돌려주어야 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겐 죽음이 없는 몸을 줍니다.

 

성경에 보면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장막을 주신다고 했어요.

마치 헌집하고 새집을 바꾸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믿는 사람을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잔다고 하는 겁니다.

잔다는 말은 깨어난다는 말입니다.

죽을 몸을 주고 죽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잔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기 관 속에 누워있는 김성옥 집사님은 죽은게 아니고 자는 겁니다.

아까 보셨잖아요.

주무시고 계시잖아요.

 

예수님께서 나사로 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잔다고 깨운 적이 있어요.

인간적으로 보면 나사로는 분명하게 죽었어요.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몸이 썩어서 냄새가 났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은게 아니고 잔다고 하니 다 비웃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에 가서 나사로야 하고 부르니 죽었던 나사로가 꽁꽁 묵인채 강시처럼 통통 튀어 나왔어요.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이게 안 믿어지지요.

그런데 사실이에요.

이건 샘플로 보여준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전부 이런 식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사로를 시청각교제로 사용한 겁니다.

 

그러니 김집사님은 죽은게 아니고 자고 있는 겁니다.

황당하지요.

그래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황당해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믿어지고 받아 들여져요.

여러분이 안 믿어지는 것처럼 믿어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잖아요.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있으면 믿어지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닙니까?

나는 안 믿는데 너는 왜? 믿느냐 그러면 안돼요.

아! 난 안 믿어져서 안 믿는데, 저 사람은 믿어지니 믿는가 보다 해야지!

나는 안 믿어지는데 너는 왜? 믿느냐 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건 마치 난 남자인데 넌 왜? 여자냐 그러는 것과 같아요.

난 백인인데 넌 왜? 흑인이냐 그러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예수가 믿어지는 사람도 있고,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잇는 겁니다.

세상엔 예수님을 조상으로 둔 사람이 있고, 아담을 조상으로 둔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을 조상으로 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이 믿어져요.

하지만 아담을 조상으로 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이 안 믿어져요.

 

그러니 믿어지는 사람은 믿어지는 것으로 살고, 안 믿어지는 사람은 안 믿어지는 것으로 사는 겁니다.

여러분이 저 보고 목사님은 예수를 왜? 믿는데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러면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왜? 예수를 인 믿습니까? 라고 묻는 것과 같아요.

 

제가 여러분에게 왜? 예수가 안 믿습니까? 라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그야 예수가 안 믿어지니 안 믿는 것이지요.

그럼 여러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예수를 왜? 믿습니까? 라고 하면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야 예수가 믿어지니 믿는 것이지요.

 

제 눈에는 여기 누워 있는 김 집사님은 자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분의 눈에는 어떻게 보입니까?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은 것으로 보이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란색 안경으로 보면 다 노랗게 보이고 까만 안경을 쓰고 보면 다 까맣게 보여요.

자기 안에 죽음이 있는 사람은 다 죽은 것으로 보이고, 자기 안에 생명이 있는 사람은 다 산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말한 것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겁니다.

맞아요.

안 믿어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믿어지게 만들어 버렸어요.

성령이 오면 이상하게 믿어져요.

안 믿어져야 하는데 믿어진단 말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안 받은 사람들 눈에는 미친놈으로 보이는 겁니다.

전혀 이성적으로 맞지 않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황당하지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것이 황당하지요.

여기 김성옥 집사님이 잔다고 하니 우습지요.

 

여러분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것이 안 믿어지지요.

안 믿어지니 천국이야기를 하면 니가 죽어 봤나! 죽어 봐야 알지!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황당하지가 않아요.

지극히 정상으로 들려요.

 

제가 처음에 김성옥 집사님을 만났을 때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했어요.

두 달 전입니다.

그 때 죽어 봐야 알겠다고 했어요.

이건 안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열흘 전과 임종하기 전에 제가 예수님 이야기를 해주니 믿어진다고 했어요.

죽기 전에 제가 물어 보았어요.

집사님 지금 죽으면 예수님에게 간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믿어지면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라고 하니 까딱했어요.

전 믿는다는 싸인으로 보아요.

 

그래서 전 김 집사님이 죽은게 아니고 잔다고 하고 천국에 갔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을 위로하려고 하는게 아니고 제가 느낀 것을 말하는 겁니다.

처음 2개월 전에 보았을 땐 분명히 예수를 안 믿었어요.

안 믿겨 졌어요.

그러니 죽어 봐야 알지라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 박 집사님이나 동생이나 제가 예수님 이야기를 시간 날 때마다 전했어요.

제가 세 번 만났어요.

처음엔 안 믿었어요.

나중엔 믿어진다고 했어요.

본인이 예수가 믿어진다고 하는데 누가 말리겠어요.

 

그럼 김 집사님은 죄의 몸으로 살다가 이젠 죄 없는 몸을 입기 위해서 제대한 것과 같아요.

죽음은 마치 군인이 제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군인이 제대하는 것 같이 기쁜게 어디 있습니까?

내일 모래 제대인데 야! 너 앞으로 삼년만 더하고 가라고 하면 미쳐버립니다.

 

지금 집사님은 세상에서 제대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대하고 이젠 쉬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울고 불고 할 필요가 없지요.

아니 본인은 지금 천국에서 예수님과 평안하게 쉬고 있는데 우리가 아이고 아이고 하면 어찌합니까?

 

세상에 많고 많은 종교가 있지만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종교는 기독교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선 장사 지낼 때 찬송을 부르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기뿐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건 세상 수고를 마치고 제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기 관 속에 들어 있는 집사님이 슬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는 우리가 더 슬픈 사람들입니다.

 

지금 집사님이 그럴 겁니다.

야들아 미안하다 나만 먼저 와서!

너희들 고생 좀 하다가 와라! 그러고 있어요.

너희들 예수 믿어야 된다고 말 할 겁니다.

아마도 예수님에게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믿어지게 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예수 안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죽으면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안 죽을라고 안 죽을라고 그래요.

죽는다 하면 재수 없다고 화를 내요.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는다고 하면 슬퍼하지 않아요.

 

성경에 보면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돌에 맞아 죽었어요.

왜? 돌에 맞아 죽었느냐 하면 예수님 이야기 한다고 그랬어요.

지금 저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러니 이게 안 믿어지는 사람들이 저 새끼 미친놈이라고 해서 돌로 쳐 죽였어요.

 

그런데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하나님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고 했어요.

저 사람들도 나처럼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으면 이런 짓을 안 할 것인데 모르니 이런 짓을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스데반 집사는 죽으면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긴 겁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안 되지요.

그런데 전 이해가 되요.

여기 김 집사님도 박 집사님도 이해가 되요.

 

제가 이번 장례식을 통해서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눈이 열려서 나처럼 예수님이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부디 예수님이 믿어지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길 기도합니다.

 

 

장례 그 후

 

그 이튿날 새벽 6시 반에 발인 예배를 드리고 장지로 향했다.

화장장에 가니 날씨가 너무도 춥다.

관을 화구 앞에 두고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다.

 

부활에 대하여 설교 했다.

그리곤 빈소가 차려진 곳에 추위를 피하고가 옹기 종기 모였다.

한 열평 남짓한 곳에 빈소가 네 군데를 마련해 놓았다.

다행히 우리는 제일 먼저라서 아직까지 다른 빈소가 비어있다.

 

가족들과 형제들 틈에 석여서 언니나 동생의 죽음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 저것 소감을 물어 보았다.

곁에 있는 둘째 셋째 막내 누나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런 장례식은 처음이란다.

분명히 동생이 죽고 언니가 죽었으면 슬퍼져야 할 텐데 목사님 설고를 듣고 그렇게 기쁘단다.

목사님 말씀대로 잔다고 생각된단다.

그래요?

 

속으로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암튼 눈치를 살피니 다들 좋아하는 눈빛이고 나쁜 기색은 없는 듯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문상객들이 들이닥친다.

빈소가 총 4개인데 한쪽엔 원불교 식으로 치르고, 그 옆엔 불교식으로 치르고 있다.

 

처음엔 원불교에 쪽 사람들이 빈소를 차렸다.

스님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고 했다.

종을 흔들면서 곡을 하는 상주들에게 사람의 혼령은 발에서부터 빠져나가는데 맨 나중에 머리에서 빠져나간단다.

그래서 사흘간 구천을 떠돌면서 보는데 상주들이 너무 애통해 하면 좋은 곳이 못 간단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한 무리가 더 들이닥친다.

이번엔 불교다.

그런데 여기 스님은 아무런 말이 없고 염불만 외운다.

스님의 염불에 맞추어서 상주들은 곡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고! 아이고! 대성통곡하면서 한 무리가 또 들이닥친다.

전통 유교식이다.

좁은 공간에 기독교, 원불교, 불교, 유교가 다 모인 셈이다.

참 좋은 볼거리가 생겼다.

 

맨 나중에 들이닥친 유교식 쪽 아주머니가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가슴을 치며 곡을 한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더니 땅에 풀썩 주저앉으면서 방성대곡한다.

 

아이고! 인호 아부지요!

아이고! 인호 아부지요!

우야꼬! 이를 우야꼬!

인호 아부지요! 인호 아부지요!

이를 우짜면 좋노!

아이구! 아이구!

쭉 둘러선 상주들이 따라서 아이고! 아이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의 일행들이 웃는다.

왜? 저러느냐? 라고 한다.

난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한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빈소를 4개나 차려 놓은 터라 울고 불고 하니 더는 있지 못하고 나왔다.

이제 화장이 마쳤다는 기별이 왔다.

가족들이 화구 쪽에 가서 뼈를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분쇄하여 유골함이 담는다.

 

어떤 분은 성옥아 잘 자라! 고 한다.

천국에서 편희 쉬어라 라고 한다.

 

얼굴들을 쭉 둘러보니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다.

참으로 이상하다.

보통 보면 울고불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어째서 미동도 하지 않는가?

이 분들은 설교를 어떻게 받아 들였기에 이렇게도 대범해진 것일까?

 

유골을 공주 납골당으로 보내지고 나도 그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부터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가까운 교회로 나가세요.

 

여기저기서 예! 라고 한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분명히 기분나빠하고 화를 내야할 일인데!

 

차 안에서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참으로 이상하지!

어째서 사람들이 그렇게 기뻐하느냐이다.

내 설교를 알아먹어서 기쁜 것인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튿날 주일에 집사님과 대화한다.

그래 모두들 잘 가셨습니까?

 

아니요.

모두 집에서 자고 갔습니다.

아니 금방 간다고들 하지 않았습니까?

예! 장례 전에는 그랬는데 장례를 치르고 나니 하룻밤 자고 간다고 전부 저희 집에서 잤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장례를 교회 식으로 치러서 섭섭하지 않다고 하진 않던가요.

아니요.

 

자기들은 너무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설교에 너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

 

하나도 슬프지 않고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목사님 자랑을 그렇게 하더란다.

너희 교회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도 잘생기고 그렇게 말씀을 잘하느냐 라고 칭찬이 자자하단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그러면서 누나들이 꼭 목사님께 드리라고 했다고 하면서 금일봉을 내어 놓는다.

집사님은 교회에 오느라고 배웅은 못하였지만 헤어지면서 누나들에게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하더랍니다.

부디 그렇게 되어지길!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하여서 이렇게 복음이 증거가 되는구나! 를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이 생각난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증거케 하려고 3개월 전에 간암 말기 환자를 울산으로 보내셨구나!

복음 듣고 천국에 인도하시려고 그러셨구나!

또 장례식을 통하여서 형제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려고 그러하셨구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 눈은 봄으로서 복이 있고,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어찌 측량할 수가 있으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하심이여!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 정하신 이치이니 이다! 아멘.

 

석 달 동안 아니 사흘간 벌어진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주여! 저들에게 복음에 광채가 마음속에 비추어지게 해 주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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