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글

신비주의를 경계하라

정낙원 2009. 5. 23. 01:56

신비주의를 경계하라

 

 

어저께 어느 목사의 동영상 설교를 들어 보았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자기는 설교를 하면서도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하늘을 뚫고 올라 간다나요.

자기 영은 하늘나라에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해요.

 

혼자 신령한 척 하는 겁니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을 많이 받아서 자기는 영계를 돌아다닌다고 해요.

한마디로 신비주의자에요.

 

교인들에게도 훈련을 받으면 자기처럼 할 수가 있대요.

이 사람은 자기처럼 훈련만 잘 받으면 하나님도 움직인다는 겁니다.

참으로 대단하지요???

 

이 사람 논리대로 라면 예수도 내가 믿을 수가 있고,

믿음도 내가 만들 수 있고,

은사도 내가 따 낼 수가 있어요.

우리가 게을러서 은사를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교인들에게 자기에게 훈련을 많이 받아서 자기처럼 영계를 드나들라는 겁니다.

난 이렇게 영계를 드나드는데 당신들은 뭐하느냐! 이겁니다.

제가 듣기엔 날 따라 올 테면 따라 와봐! 그러고 있는 겁니다.

 

은근히 교인들 기를 죽이고 자기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내 말 잘 들으라는 겁니다.

날 잘 만난 줄 알라는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이정도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 도를 모르는 사람은 다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을 못 떠나요.

 

약 2~30분 정도 들었을 겁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조금 듣다가 말았어요.

더 들어 보아야 뻔해요.

 

저도 과거에 이런 짓을 했거든요.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

이런 것들은 신비주의자들의 고정된 레퍼토리거든요.

그래서 더 들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런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분명히 보고 듣고 해요.

저도 과거엔 보고 듣고 그랬어요.

보거나 듣거나 한 것이 없으면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이런 일을 자랑하지 않아요.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고 마귀가 준 것이라는 게 문제에요.

사람들은 기도하다가 뭔가 신비한 체험을 하면 무조건 하나님이 준 것이라고 믿어요.

마귀가 장난 하는 것을 몰라요.

 

그러니 이상한 음성을 듣거나 이상한 환상을 보면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거룩한 종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에게로 향합니다.

 

성경을 보면 계시를 받은 사람이 있어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계시를 받았는데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받았어요.

그래서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한 겁니다.

 

그래 바울이 계시를 받아서 성경을 기록하였는데 그 성경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이야기를 하지요.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을 하였다고 했어요.

3년 동안이나 계시를 받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신약 성경을 거의 다 쓴 바울이 하는 고백이에요.

 

바울의 고백을 잘 들어보세요.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만 전하겠다고 작정을 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는 말 안하겠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계시의 완결이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칭 기도하다가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고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나와야 하겠지요.

그래야 바울처럼 온전한 계시를 받은 것이 되지요.

 

그런데 혼자 신령한 척하면서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온통 자기 신령한 것만 자랑해요.

약 30분 동안 들으면서 예수님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안 해요.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말을 많아 하는데 예수님 이야기가 없어요.

이건 그 목사가 받은 은사라고 하는 것이 모두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고 마귀가 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랑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글을 쓰게 된 겁니다.

이건 집고 넘어가야겠구나!

성도들에게 알려 줘야겠다고 부랴 부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과거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 된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지요.

일명 휴거파들 말입니다.

그 당시 이장림씨가 전국 곳곳에 다니면서 집회를 할 때입니다.

 

이장림씨가 간증하는 것을 보면 전부 환상을 보고 들었다 라는 것들이잖아요.

이들은 분명히 보고 들었어요.

그러니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물론 과장된 것들이 많지만 일부분은 분명하게 자신이 체험한 것들입니다.

 

저도 그 당시에 흔히 말하는 은사 신앙에 빠져 있을 때였어요.

거의 잠을 안자고 하루에 기도를 12시간씩 할 때였으니 대단한 열심일 때였습니다..

한창 기도 많이 하고 방언에다 통역에다 입신이다 꿈이고 환상을 많이 보곤 했어요.

 

그래서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환상을 보고 하는 것엔 같은 부류에 속하였으니 이장림씨 집회에 참석을 하게 된 겁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멸하면서 나름대로 은혜를 받았어요.

그 당시 제 신앙관에서 은혜 받았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부 엉터리이지만 그 때는 은혜라고 했어요.

 

이장림씨 집회에 참석하고 받은 은혜를 가지고 곧장 교회에서 철야 기도를 들어갔지요.

은사주의자들은 속칭 은혜가 충만 하면 계시가 잘 열린다고 해요.

그래서 집회 끝나자 말자 철야 기도를 하게 된 겁니다.

한참을 기도하는데 갑자기 환상을 보게 된 겁니다.

은사주의자 말대로 영안이 열린 겁니다.

 

그런데 환상이 참 이상하더라고요.

이장림씨가 수많은 사람들을 하늘에서 끌어다가 큰 우물 속으로 던지는데 그 우물이 똥통이었어요.

 

똥통이란? 비 진리이고 지옥이라는 뜻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교인들을 똥통 속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꼭 태풍에 과실이 낙과하듯이 하늘에서 똥통 속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어째서 휴거를 외치는 사람이 교인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지옥으로 데리고 가지!

의아해 하는데 갑자기 환상 중에 미혹이다!

미혹이다!

그러는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 이 놈이 가짜구나!

거짓이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드는 겁니다.

그러더니 제가 그 똥통 속에 빠진 사람들을 사다리를 놓고 다 끄집어내는 겁니다.

이장림이가 똥통으로 집어넣으면 전 똥통에 빠진 교인들을 끌어 올리고 있어요.

 

그 당시 저도 휴거론을 주장 하지는 않았지만 부정은 하지 않았어요.

분명히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 보면 있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미혹이라는 환상을 보고 난 후부터는 저건 가짜라고 했지요.

이렇게 되면 이장림이 하고, 저 하고는 전혀 다른 계시가 되는 거지요.

누구 계시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자기가 본 것을 의지했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하지요.

사람들은 신기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어느 시대이고 마귀는 항상 초월적인 신기한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겁니다.

 

지금도 천국 갔다 왔다고 간증을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는 이유가 다 신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그런 체험을 한번 해 봤으면 하는 바램으로 호기심으로 모이는 겁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저에게 조금 전에 말한 환상을 거짓이라고 하면 전 수용하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제가 분명하게 경험한 사실이기 때문이에요.

 

분명히 경험 된 것을 아니라고 말하라고 해서 아니라고 말할 순 없는 겁니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분명한 사실은 그대로 변하지 않고 제 머릿속에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이것 말고도 제 머리 속에는 그 당시 보았던 많은 환상들이 또렷이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분명하게 진리가 아님에도 하나님께서 환상이나 신비한 일들 일어나게 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지 안 믿는지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신 13:1-3=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꿈꾸는 자들을 일으킨다고 하지요.

분명히 이적과 기사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럴지라도 이들의 말을 청종치 말라고 하지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언약)을 믿는지 안 믿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럼 선지자들이 꿈이나 이적들은 진리가 아니란 말이지요.

진리가 아니란 말은 비 진리란 뜻입니다.

 

신 13:5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찌니라”

 

비 진리이기 때문에 선지자의 꿈은 악이라고 하면서 꿈 꾸는 자를 죽이라고 한 겁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원리가 하나 나옵니다.

꿈이 무엇을 방해 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눈을 떼게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눈을 떼게 하는 그 어떤 것도 다 비 진리 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하여도 정신을 빼앗기지 말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가 신비한 체험들을 가질 수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체험을 진리화 하여서는 안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관심을 가져선 안 돼요.

 

진리는 오직 하나님 언약이에요.

하나님 언약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 맺은 새 언약만이 진리인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뭡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이지요.

자기 백성을 어떻게 죄에서 구원하셨습니까?

그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구원했지요.

 

그럼 이 땅에 진리란? 오직 하나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 자기 백성들이 죄사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외 다른 것은 모두가 비진리입니다.

 

죄사함과 영생을 주지 못하는 것은 진리가 될 수 없어요.

환상이 죄사함을 주지 못해요.

내가 은사를 체험하였다고 죄사함이 주어지지 않아요.

 

내가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것이 죄사함을 주지 못해요.

인간의 열심과 충성이 죄사함을 주지 못해요.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금 많이 한다고 죄사함이 주어지지 않아요.

 

죄사함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만 주어져요.

그러므로 설교 시간엔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여야 해요.

그 외 다른 것을 말하면 그건 죄악이에요.

 

그러니 설교 시간에 자기가 체험한 것을 진리처럼 말하면 안 되는 겁니다.

목사는 자기 이미지 관리를 하면 안돼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위해서라면 자기는 사라져야 해요.

예수를 위해서라면 만물의 찌끼가 되어도 감사하여야 해요.

 

그러니 누가 환상을 보았다거나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거나 하는 말에 홀리지 마세요.

간증 좋아하지 마세요.

간증은 그 사람이야기일 뿐이에요.

간증은 진리가 아니므로 새겨들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누가 천국 갔다 왔다 라는 말에 정신을 놓고 넘어가지 마세요.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마시고 추종하지도 마세요.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홀리는 자는 거의가 가짜에요.

 

그러니 목사가 천국가서 예수님 만나고 왔다고 해도 의미를 두지 마세요.

그걸 절대화 진리화 하지 말란 말입니다.

설령 여러분 중에 환상을 보거나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여도 그것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의지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어요.

 

진짜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기가 본 것을 남에게 자랑하거나 말하지 않겠지요.

그걸 계시화 하지 않겠지요.

 

진짜 구원 받은 성도라면 예수님의 십자가만 말할 겁니다.

진짜 그 속에 성령이 계시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보았고 들었다는 것을 의지하지 말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기가 본 것을 의지한다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자기가 본 것을 의지하다가 망한 사람들 이야기가 구약에도 있어요.

 

이런 일들은 이미 구약시대에도 있어 왔어요.

어느 시대이고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럼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들어 봅시다.

 

렘 23:25-32=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았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들이 “몽사” 를 가지고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예레미야에게 가르쳐주고 계신 겁니다.

 

몽사란? 꿈인데 이 시대로 말하면 환상을 보았다거나 천국과 지옥에 갔다 왔다거나 하는 신비한 체험을 말합니다.

 

그런데 27절에 보면 몽사는 하나님 뜻이 아니고 그들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걸 표준 새 번역 성경에선 그들의 마음속으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몽사란? 한마디로 자기들 말이고, 사람의 말이란 뜻입니다.

사람의 말이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지요.

죄인의 말이니까요.

 

그런데 이 놈들이 몽사를 가지고 뭘 하는가 보니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하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몽사가 왜? 무서운가 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셨어요.

그럼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한다는 것은 지금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잊게 한다는 겁니다.

 

신비주의가 왜? 악한가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밀” 이라고 하고, 몽사는 “겨” 라고 하지요.

몽사는 “겨” 라는 겁니다.

 

“밀” 이란? 양식을 말하고,

“겨” 란? 찌꺼기란 말입니다.

 

그러니 몽사는 찌꺼기 같이 버려져야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무가치한 것이란 말입니다.

 

“밀” 을 먹으면 배가 불러도,

“겨” 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요.

“밀” 은 구원의 능력이 되는데,

“겨” 는 구원의 능력이 없어요.

 

몽사는 구원의 능력이 없어요.

그러니 몽사를 붙잡다간 큰일 납니다.

신비주의는 겨와 같이 구원의 능력을 주지 못해요.

구원의 능력은 밀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주어져요.

 

그런데도 목사들이 무가치한 것을 가지고 교인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몽사로 교인들을 자기 수중에 묶어 두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꿈 꾸는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한 겁니다.

죽여서 악을 제하라고 엄중히 명한 겁니다.

 

신명기대로 한다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자들이 버젓이 강단에서 몽사를 가지고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큰 진리라도 되는냥 떠벌리고 자랑하고 있는 겁니다.

교인들은 꿈꾸는 자를 주의 종이라고 따르고 그것들을 부러워하고 있어요.

배가 부르지도 못할 겨를 먹이고 있는데도 따른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

나는 “생명의 떡” 이라고!

신비로운 체험에서 생명의 능력이 나오지 않고, 예수님의 살과 피에서 생명이 나와요.

예수님은 분명히 내 살과 피를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어요.

 

그러니 예레미야가 말한 “밀” 이란? 곧 예수님의 살과 피인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사함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만 주어져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증거하지 않는 그 어떤 기적이나 환상이나 신비적인 체험이라 할지라도 겨같이 날아갈 것들이니 붙잡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겨 같은 몽사를 가지고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겁니다.

교인들도 그래요.

분명히 몽사를 말하는 자를 따르지 말라고 했는데도 따른다는 것은 그들도 가짜란 말입니다.

둘 다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 따르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거짓 선지자들에게 몽사를 주어서 거짓 신자들을 미혹하게 하였어요.

진리에 속하지 않는 자들을 걸러 내기 위해서 그래요.

그럼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세우는 이유가 밝혀졌어요.

이는 거짓 신자들을 추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의 증거를 들어 봅시다.

 

살후 2: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보세요.

악한 자가 임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에 따라서 임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 악한 자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 모든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함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도 적그리스도가 온갖 기적으로 나타난다고 했어요.

 

그러면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사람은 다 따라가요.

바울은 이런 사람은 진리에 사랑을 받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신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셨다고 하잖아요.

하나님께서 마귀를 통하여서 거짓 것을 추수하려고 기적으로 일하시고 계신 겁니다.

왜냐하면!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모르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모르는 자는 모두가 불의(不義)한 자입니다.

 

그러니 몽사를 좋아하는 자는 전부 불의(不義)에 속한 가짜라는 겁니다.

 

불의(不義)란? 의(義)가 아니란 말이지요.

의(義)가 없다는 말이에요.

의(義)가 없으면 전부 지옥으로 가요.

 

신앙생활은 의(義)에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의(義)가 없으면 인정하지 않아요.

그럼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義)는 어디에 있습니까?바로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이지요.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 것은 전부 불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전부 몽사에 속한 것이 되요.

그럼에도 몽사를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교인들로부터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몽사를 말하는 자들이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것은 모두가 복 받고 잘 살 것이라는 말을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렘 23: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신비주의자들은 나쁜 말을 하지 않아요.

예레미야 시대에는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했어요.

이 시대로 말하면 축복 받는다는 말을 한다는 겁니다.

 

가짜 목사들은 항상 백성들을 기쁘게 하는 말만 합니다.

교인들의 마음을 사야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장래 자식이 유명해 진다거나,

부자가 된다거나,

 

하나님이 너무 너무 당신을 귀하게 사랑하고 있다거나 하는 말들로 귀를 즐겁게 해 줘요.

그러니 은사주의자들 곁에는 사람들이 북적 거리는 겁니다.

자기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 몰려드는 겁니다.

 

소망을 주는데 얼마나 좋아요.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복 받고 자식도 잘 된다고 하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어요.

자기 말만 들으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건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 더 악한 길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죄를 지적해 줘야 하는데 죄를 지적하진 않고 좋은 말만 해 준다는 겁니다.

 

신약 식으로 말하면 육신의 소욕은 악한 것이라고 해 줘야 하는데 도리어 육신의 소욕을 채워주겠다고 해요.

땅을 바라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게 하여야 하는데 땅을 바라보게 만들어요.

인간의 탐욕이 죄라고 지적을 해 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탐욕을 채워주고 있는 겁니다.

 

알다시피 예레미야 선지자가 받은 계시는 이스라엘이 멸망당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예레미야가 받은 계시를 봅시다.

 

1장 입니다.

 

렘 1:10-16=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증거케 한 말씀은 이 나라가 망한다는 겁니다.

10절을 보면 다 때려 부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이스라엘을 바벨론에게 망하게 한 후 포로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이스라엘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려고 북방에서 강대한 나라를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16절에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기 때문에 심판하겠다고 합니다.

심판이란 인정사정이 없어요.

 

그래서 북방에서 끓는 가마와 같은 아주 흉악한 놈들을 불러들이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 시대 말로 조폭들을 불러서 작살을 내겠다는 말입니다.

조폭이 바벨론이에요.

 

예레미야의 예언은 한마디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70년 동안 종살이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 오셔서 유대인들을 저주한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예레미야는 예수님처럼 눈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겁니다.

멸망을 말하니 자연적으로 미움을 받게 되지요.

 

이걸 사도 바울 식으로 말하면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마음을 얻기 위해서 평안을 말했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망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자연히 이스라엘을 망한다고 하는 예레미야는 이단이 되고 만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 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라고 알려 주는 겁니다.

백성들에게 몽사를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마귀의 종이라고 알려 주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하는 도적놈들이라고 말해 주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이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일러주었어요.

 

렘 23:33-34=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34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에 벌하리라 하셨다”

 

누가 예레미야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합니까? 라고 하거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다고 말해주라고 해서 그런다고 말하라는 겁니다.

 

이 시대적으로 말하면 정 목사 당신은 왜? 한국교회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말합니까? 라고 말하면 하나님이 한국교회는 이단이라고 말해 주라고 해서 그런다고 말하라는 것과 같아요.

 

제가 한국교회를 절간이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증거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는 예수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곳이잖아요.

그럼 예수님의 교회라고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 증거해야 되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래야 예수님의 피로 세운 교회가 맞지요.

 

누가 이 교회는 뭡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핏값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라고 해야지요.

교회에서 뭐합니까? 라고 물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라고 해야지요.

그래야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교회답지요.

 

알다시피 성도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에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할 때 자기 대신 오신다고 했어요.

성령이 예수님 대신 오셔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겁니다.

 

성도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 것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은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성령을 은사로 주신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증거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핏값으로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여야지요.

그런데 이 시대 교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엔 관심이 없어요.

자기 먹고 사는데 만 정신이 팔렸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알고자 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단이지요.

 

십자가를 증거하면 공격하는 자들을 보면 하나 같이 다 이런 말을 해요.

당신들은 너무 한국교회를 부정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너무 폐쇄적이다 라고 해요.

맞아요.

 

복음은 폐쇄적이에요.

양보나 타협을 허락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인간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누구든지 내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겁니다.

 

왕의 아들에 혼인잔치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모두가 쓸어 버려요.

너희가 장가를 갔든지, 시집을 갔든지, 취직을 했든지, 가게 문을 열어야 하든지 고려치 않아요.

누구든지 내 아들에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면 죽이겠답니다.

이것 같이 독선적이고 폐쇄적인게 어디 있겠어요.

 

복음은 당연히 폐쇄성을 띄고 있어요.

폐쇄성이 없는 것은 복음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너무도 폐쇄적인 분이세요.

요즘 말처럼 열린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너희들을 버리고 망하게 한다는 말은 곧 예수님이나 세례요한처럼 유대인은 끝장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사도바울과 같이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율법 종교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럼에도 목사들이 교인들을 십자가에 죽이지 못하는 것은 뭔가 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식으로 말하면 양털을 깎으려고 하는 겁니다.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

 

교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고자 함입니다.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뜯어 낼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신비스러운 것으로 교인들을 끌고 가는 것은 인간의 열심을 끄집어내려는 것입니다.

 

신비주의나 은사주의는 항상 열심과 충성을 강조합니다.

 

기도 많이 하라거나,

교회에 충성하라거나,

헌금 많이 하라거나 해요.

 

인간 쪽에서 하나님을 움직이라고 해요.

신비주의 끝에는 항상 인간의 열심과 정성이 있어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은사주의자들에겐 은혜성이 없어요.

 

신비주의엔 예수님의 대속이나 십자가 피나 은혜가 없어요.

이들은 언약을 몰라요.

오로지 열심과 충성만 강조해요.

 

열심과 정성이 부족하면 그것도 신앙이냐고 비아냥거려요.

자기 열심과 정성을 비례하여서 따내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은사주의자들이 아주 무례하고 건방진 겁니다.

반말 짓거리 툭툭하면서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아주 시건방져요.

 

아니면 지나치게 겸손한 척해요.

속에는 이리가 들어 있어도 겉으론 순한 양처럼 행세해요.

하지만 자기 말 안 들으면 안면몰수하고 냉정하고 무자비해요.

저주를 끌어 붙고 악담을 서슴치 않고 난리를 칩니다.

입에 떡을 물려주면 자비롭지만 입에 떡을 안 주면 짐승처럼 광포해져요.

떡이 뭔지는 알지요.

돈입니다 돈!

 

신비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피나 은혜를 말 할 수가 없어요.

그건 신비주의가 바라는 신앙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에 의미를 알면 인간의 열심과 정성을 말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죄라고 규정하기 때문이에요.

 

바울의 증거를 들어봅시다.

 

골 2:14-23=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의문에 쓴 증서를 다 십자가에 도말시켰다고 하지요.

의문에 쓴 증서란? 율법입니다.

즉 율법 신앙 전체에요.

 

율법 신앙은 뭡니까?

 

인간의 열심과 정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잖아요.

이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도말시켰어요.

인간의 열심과 정성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일을 끝냈다는 말입니다.

 

그 의문에 쓴 증서 속에 보면 신비주의가 들어가 있어요.

 

18절에 보면 천사 숭배니 자기가 본 것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바울은 이런 것을 맛보지도 붙잡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모두가 자의적인 숭배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의적이란? 스스로 생각하고 지어낸 말이란 말입니다.

예레미야가 말했듯이 자기 마음으로 지어낸 말이라는 겁니다.

환상을 보고 꿈을 꾼 것을 억지로 자기 입맛에 꿰맞추는 겁니다.

 

실제로 은사주의자들은 그래요.

체험하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라고 해요.

저도 과거 은사에 빠져서 헤맬 때 그랬어요.

누가 뭐라고 하면 해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라고 시건방을 떨었어요.

 

체험이란 자기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화된 진리가 아니에요.

그래서 이런 말을 사람의 명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들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들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 부패로 돌아간다고 하는 겁니다.

 

부패한다는 것은 썩을 것이란 말입니다.

죽은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신비주의를 말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을 현혹시키고자 자기가 지어낸 말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지어낸 말이니 부패하고 썩은 말이지요.

썩은 말이란? 마귀의 말이란 말이에요.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지 죽은 말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생명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에서 나오지요.

예수님의 피가 생명이에요.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말하지 않는 것은 다 가짜라고 말하는 겁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다 신비주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신비주의는 절간에 중들도 해요.

그런데 그 어느 것도 생명을 주지 못해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지 못해요.

 

죄와 사망으로부터 이기게 해 주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몽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몽사를 말하는 자는 하나님이 보내지도 않은 가짜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이야기 하게 되어 있어요.

참과 거짓의 분별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해요.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 하나 할게요.

 

여러분! 죄사함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아요.

죄사함은 예수님의 피로서만 주어져요.

그러니 하나님 붙잡으면 안돼요.

예수님을 붙잡아야 해요.

신앙생활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요?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통성기도 할 때 주여! 삼창을 하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 중에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주여! 삼창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님 보다 더 높으신 분인데!

그러니 예수님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라고 해요.

이건 하나님께서 아들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께선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어요.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만민이란? 신자와 불신자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만민 중에서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을 갈라냅니다.

이렇게 갈라내는 것은 심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모두에게 영생을 주시지 않고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에게만 영생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다고 하는 겁니다.

즉 성도들에게만 예수님 안에 있는 아버지를 알게 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섬기는 겁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는 겁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신 걸 믿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영생을 누가 줍니까?

아버지가 줍니까?

아들이 줍니까?

아들이 주지요.

 

그래서 성도가 받는 영생은 예수님의 살과 피에서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예수님을 그냥 예수라 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란 메시야이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란 창조주란 말이에요.

 

그럼 하나님께서 주신 자들은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겠지요.

영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 것 아닙니까?

영생이 예수님에게서 주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입니다.

 

그럼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은 누구를 믿겠습니까?

당연히 예수님을 믿지요.

아버지를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섬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을 아니까 예수님을 아버지를 섬기듯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예수님을 아버지처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섬기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 속에 예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수의 영이 그 속에 계셔야만 할 수가 있어요.

성령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누구의 설교를 듣더라도 그 목사가 하는 설교가 진리에 속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아는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판단하세요.

 

진리의 영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

아까 잠간 말씀드렸지만 기독교는 아들을 믿는 것이지 아버지를 믿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엔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감추어져 계세요.

성령도 아들을 증거하지 아버지를 증거하지 않아요.

그러니 성령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증거하지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이라는 말은 수 없이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리스도의 영을 못 받았기 때문이에요.

이게 거짓 목사나 거짓 신자들의 특징이에요.

 

신비주의자들의 말을 자세히 들어 보세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몰라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 이야기를 말 못하는 겁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못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 담긴 비밀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말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다 알아요.

절간에 중도 알고, 정화수 떠다 놓고 비는 할머니도 알아요.

저기 길가에 앉아서 나물 파는 할머니도 하나님을 알아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오직 예수 안에서 구원 받기로 작정 된 성도만 알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는 겁니다.

 

골 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나님의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온 것인데 이제 성도들에게 나타냈다고 하지요.

하나님이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비밀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는 성도만이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를 안다는 것은 육적인 예수가 아니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난 예수에요.

육적인 예수는 모든 사람이 다 볼 수가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직 성도들만 볼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다 보고 만지고 했어요.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나타나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성도라면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기적을 베풀고 병을 고치는 그런 예수가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해 주셨다는 예수를 말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만난 사람은 십자가 지신 예수를 말할 수밖에 없어요.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예수의 영이 그 속에 없기 때문이에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니 제자들이 다니면서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기에 바빴어요.

 

은사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영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예수를 말하는 겁니다.

다른 영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해도 복주는 예수로 말하는 겁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설령 예수님 이야기를 한다고 하여도 그건 관념적으로 툭툭 던지는 밑밥이에요.

 

케이블 TV를 틀고 목사들이 설교를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들이 누구 이야기를 하는가?

예수님 십자가를 초점으로 말하는 목사가 없어요.

모르기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이들은 예수를 몰라요.

그져 안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에요.

이 하나님을 구약에선 다른 신이라고 합니다.

 

인간에게 복주는 우상이란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가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눈을 가려서 소경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셔야지만 알 수가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눈에 보이면 증거하는데 전혀 어렵지가 않아요.

예수님의 십자기 피 이야기를 하라고 해서 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 속에 예수의 영이 있어야만 할 수가 있어요.

 

물론 작심하고 의도적으로 말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출일구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를 많이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십자기 피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과거 율법 아래 있을 때 제 설교를 녹음을 하고 모니터링을 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몰랐으니 당연히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이야기만 했지요.

율법 아래 있었으니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만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십자가를 증거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테잎을 듣게 되었어요.

전 엄청 충격을 받았어요.

그 목사님의 설교와 제 설교를 비교하니 그 목사님의 설교엔 온통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인데 제 설교엔 온통 하나님 이야기였어요.

어떻게 그렇게도 예수 이야기가 인색한지 그 목사 설교 테잎과 비교해서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고민에 빠졌어요.

난 왜? 예수님 이야기가 안 나올까?

왜? 내겐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까?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말이 입에서 머뭇거리기만 하지 뱉어내려고 하면 안돼요.

 

그래서 제가 결론을 낸 것이 아! 그 목사의 믿음과 내 믿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와 그 목사님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결국 내가 가짜였다는 것이 들통이 난 겁니다.

 

물론 이런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간섭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내가 가짜라는 것을 안 겁니다.

가짜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곧 진짜란 말입니다.

 

진짜 가짜들은 자기가 가짜라는 것을 몰라요.

즉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입니다.

지금도 은사주의자들은 자기가 가짜라는 것을 몰라요.

진짜인줄 알아요.

몽사를 받았기 때문에 진짜라고 믿는 겁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종말에 예수님 앞에 종들이 와서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좇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난 너희들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는데 불법을 행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나를 떠나라고 합니다.

 

불법이 뭡니까?

불법이란 비 진리에요.

예수님 반대편은 불법이고 비 진리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식으로 말하면 능력을 행하는 은사주의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앞에 나와서 자기들이 능력 행한 것은 영웅담처럼 자랑하고 있는 겁니다.

 

성도는 영웅담이 나오면 안돼요.

성도에겐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이 나와야 해요.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다는 고백이 나와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고맙고 자랑스럽고 감사하여야 해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게 되어 있어요.

몽사를 말하는 자들은 자기 안에 몽사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만 쏟아냅니다.

 

이런 상태를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해요.

아! 저 사람은 설교 시간에 몽사를 말하는 것을 보니 겨에 속한 가짜이구나!‘

아! 저 사람은 입만 열면 예수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 진짜 예수쟁이가 맞구나!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맨 영화 이야기만 하고,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은 입만 열면 스포츠 이야기만 하잖아요.

 

어제 밤에 허구연 야구 해설 위원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을 해서 하는 말을 들었어요.

자기는 아침 8시에 방송국으로 출근 한답니다.

그러면 미국 프로야구를 온 종일 본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엔 일본 프로야구를 보거나 한국 프로야구를 본다는 거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 야구를 해설하려면 온 세계의 야구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주 지극히 당연한 말이에요.

야구 해설위원이니 야구에 미쳐서 사는게 당연 한 겁니다.

 

그걸 보고 있는 저에게 하나님이 뒤통수 탁 치면서 저에게 묻는 것 같았어요.

정 목사 너도 저 사람처럼 자기 분야에 미쳐서 사나?

혼잣말로 내가 그래도 명색이 목사인데!

목사는 예수를 증거하라고 세움을 입은 자인데!

그런데 나는 과연 왠 종일 예수에게 미쳐 사느냐! 자문해 봤어요.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예수에게 당연히 미쳐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거든요.

야! 내가 순 엉터리이고 사기꾼이구나!

그러니 하나님께서 저렇게 야구에 미쳐서 사는 사람을 통해서 내 죄를 고발하는구나!

 

야구에 미쳐서 살면 야구 이야기가 쉽게 나오고,

예수에 미쳐 살면 예수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에 미치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 이야기만 하고,

신비주의에 미치면 신비주의만 말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은사주의자들 입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겁니다.

단 하나 그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과거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피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은 그땐 예수 밖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성령을 못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모른 겁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말하지 못하는 것도 다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못 받으면 십자가 피를 말하는 것이 거북스러워요.

이는 몽사와 십자가는 서로 모순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예수님만 믿으라고 하잖아요.

 

모든 것을 거져 주는 것이잖아요.

죄사함도 거져 주고,

믿음도 거져 주고,

구원도 거져 주고,

영생도 거져 주고,

천국도 거져 주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은 열심을 다하여서 은사를 받아내야 해요.

은사주의자들에겐 기도는 필수적이에요.

은사주의자들이 제일 강조하는게 기도에요.

한결 같이 기도 많아 하라고 해요.

기도해야 성령 충만 받고, 은사 충만 받는다고 해요.

꼭 무당들이 영력을 받으려고 계룡산에 들어가서 산 기도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십자가와 모순이 되지요.

십자가는 모든 것을 공짜로 주는데 은사는 내 노력으로 내 열심과 정성으로 받아내야 하잖아요.

 

은사주의자들의 말을 들어 보세요.

오로지 열심을 내라, 충성해라 뿐이에요.

전부가 하라! 하지 말라! 는 명령들뿐이에요.

 

모두가 자기 몸을 학대하고 고행케 만들어요.

이 사람들 특징은 평범함을 못 참아요.

기도를 해도 뭔가 특별하게 해야 해요.

 

남과 비교해서 더 고난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이 기도 한 시간 하면 지가는 한 시간 반은 해야 되요.

그래서 항상 특별 특별을 좋아해요.

 

산 기도 다니고,

365일 철야하고,

열심내서 전도하러 다니고, 교회 일이라면 종처럼 해요.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해야 더 신령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그랬다니까요.

 

은사 은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목이 쉬어 있지요.

왜? 그럽니까?

고래 고래 소리 질러 기도하기 때문이에요.

성경에 보면 부르짖으라고 했으니 부르짖는다는 겁니다.

부르짖으면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 준다고 했으니 부르짖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비밀이에요.

예수님은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비밀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은사주의자들은 예수님에 대하여서는 알려고 하지 않고 신비적인 것들을 추구해요.

이게 전부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부르짖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따 내겠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웃기는 코미디입니까?

 

은사란 말이 뭡니까?

거져 주는 선물이라는 말이잖아요.

선물은 주는 쪽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지 받는 쪽에서 달라 말라 할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은사주의자들은 열심히 기도해서 은사를 받으라고 하잖아요.

이게 모두가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접근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인간의 생각은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한다는 마귀가 주는 사상이에요.

 

땅에서 지극정성으로 빌면 하나님도 감동해서 준다는 겁니다.

결국 세상 종교와 같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열심을 끄집어내는 것은 전부 가짜라고 보면 틀림이 없어요.

 

성도가 토해내는 열심은 강요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가 깨달아지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와요.

이걸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이라고 해요.

그러니 교인들에게 열심을 내라 충성해라 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저 역시도 때로는 성도들이 복음을 빙자하여 아무것도 안하려고 빤질거리면 화가 나서 열심 내라고 할 때가 있어요.

이는 열심을 끄집어내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의 악함을 고발하는 차원에서 말을 하는 겁니다.

 

설교의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목적이 있지, 교인들이 충성을 끄집어내는데 있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그 깊으신 사랑을 깊이 깊이 알아가야 해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안에서부터 뭔가 울컥하는게 터져 나와요.

눈물도 쏟아지고 감사도 쏟아지고 열심도 쏟아져 나와요.

 

이걸 성령의 은사라고 해요.

 

갈 5:22-2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성령이 은사로 작용하면 그 동안 안하는 짓을 합니다.

사랑이 나오고,

희락이 생기고,

화평이 나오고,

오래 참음이 나오고,

내게 없던 것들이 터져 나와요.

 

그래서 금지 할 수 없는 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법이란? 통제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법이 작동하면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도 죽여져요.

물론 그 때 뿐이지만!

 

이런 은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지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겁니다.

깨달으라는 겁니다.

은혜가 깨달아지면 감동과 감사가 물밀듯이 밀려와서 나로 하여금 가만히 있게 하지 않아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고 능력으로 다가 와요.

 

이런 감사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 겁니다.

주여! 고맙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 천하디! 천한 것을 위해 십자가에 죽어 주셨군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맨 날 다른 길고 가는데도 예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울러 매고 당신의 우리 속으로 밀어 넣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것이 깨달아진다면 그 마음은 천국이 되는 겁니다.

부디 이 천국 안에서 마음 푹 놓고 사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눈 앞에 에수님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우리를 꾈 수가 있겠습니다. 신기한 것을 좇아가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천국도 있고 영생도 있고 감사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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