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에덴동산의 두 과실

정낙원 2017. 11. 12. 00:00

◆ 에덴동산의 두 과실 ◆

 

하나님은 만물을 가지고 창세전 언약을 펼쳐 가십니다.

이를 에덴동산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창세전 언약을 모티브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성질이 다른 두 과실이 있었습니다.

먹으면 죽는 선악과와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가 있습니다.

두 과실 속에는 창세전 언약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을 알면 두 과실을 두신 의미도 알 수가 있어집니다.

 

창세전 언약은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속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죄에서 건져냄을 입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는 것이고,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되려면 먼저 죄 아래 가두어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속을 받게 됩니다.

아담도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죄 아래 가두어짐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창세전 언약 속에는 두 언약이 있습니다.

죄 아래 가두는 언약과, 죄에서 구원하는 언약이 있습니다.

이것이 두 과실로 나타났습니다.

 

두 과실은 두 언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는 먹으면 죽고,

생명과는 먹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두 과실을 두 언약으로 말하면 선악과는 죽이는 언약이고, 생명과는 살리는 언약입니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은혜는 살리는 것입니다.

그럼 먹으면 죽는 선악과는 율법을 의미하고,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율법을 옛 언약이라고 하고,

은혜를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순서상 옛 것이 먼저이고, 새 것이 나중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율법이 먼저 주어지고, 은혜가 나중에 주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도 이 원리에 따라서 다스려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갓 창조가 된 아담에게 두 과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줍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아직까지 먹어서는 안 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죽음이라는 옛 언약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선악과나 생명과는 모두가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영생하는 사람에게는 두 과실 모두가 선한 것이지만 영생이 없는 자에게는 선악과는 독이고 생명과는 약이 됩니다.


영생을 가진 자는 죽음을 이긴 자이므로 선악과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다스릴 수 없는 아담에게는 선악과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직까지 영생하는 자가 아닌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죽음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율법은 마치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⑲영화와 같습니다.

영화의 허구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⑲영화를 보아도 되지만,

허구와 실제를 분별치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영화를 보게 되면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허구와 실제를 분간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제한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⑲영화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미를 모른채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지킴이 결국에는 예수를 죽이는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아담이 먼저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선악과를 먹더라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과를 먹지 않아서 아직까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생령인 아담에게는 선악과는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선악과는 사람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합니다.


율법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독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율법도 복음입니다.  

다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모두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죽이는 율법도 살리는 약으로 사용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는 살리는 복음도 죽이는 독으로 사용합니다.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능력을 발휘하지만,

은혜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서기관은 옛 것과 새 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도 약이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약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못 사용하여서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자기 죄를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율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자기 치장을 하였습니다.

율법의 의로 예수를 죽였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라고 주신 율법으로 예수를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울도 율법 아래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예수를 죽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로는 율법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길라잡이로 사용하였습니다.

 

다메섹 이전에는 율법이 독이었지만,

다메섹 이후에는 율법이 약이었습니다.

이처럼 옛 언약 아래 있는 자는 율법은 독이 되지만, 새 언약 아래 있는 자는 율법은 약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 때문에 죽고 어떤 사람은 율법 때문에 살아남을 입습니다.

 

율법으로 자기 죄를 깨닫고 예수에게로 나아가면 살리는 양약이 되지만,

율법으로 자기 의를 치장하면 자기를 죽이는 독이 되고 맙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로되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이 어찌 죄를 알았겠으며,

죄를 몰랐으면 어찌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었으리요.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두 과실은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는 천국의 서기관들처럼 율법과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는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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