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에덴동산에서 흐르는 네 강

정낙원 2017. 11. 19. 13:49

◆ 에덴동산에서 흐르는 네 강 ◆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강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확대 되어서 나타납니다.

알다시피 에덴동산은 창세전 언약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에덴동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 이야기인 것입니다.

네 강(江)도 그냥 강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 이야기인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에덴동산의 강 이야기를 구약에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잠시 보여 주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자에게 알려 주셨고,

사도 요한에게는 천국의 모습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성신으로 지어진 성전 문지방에서 나오는 물을 보았습니다.

그 물이 온 세상으로 흐르면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나라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강을 보았습니다.

강물이 가면서 달마다 생명나무 실과들을 맺습니다.

달마다 과실을 맺는다는 것은 영생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생명수 강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영생하는 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물을 일컬어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면 에덴동산의 네 강은 성령을 말하고 있음으로 밝혀졌습니다.


성전과 어린 양의 보좌와 성도의 심령이 에덴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그곳이 에덴이고 성전이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결국 에덴동산의 강물 이야기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일하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강이 에덴동산에서 흐를 때는 이름이 없었는데,

에덴동산 밖으로 나와서는 각각의 이름으로 흐릅니다.

 

이름이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럼 이름이 없는 에덴동산은 창조주가 사는 세상을 의미하고,

이름이 있는 에덴동산 바깥은 피조물이 사는 세상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름 속에는 이름을 주신 분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잘 보여 주었습니다.

강이 이름을 가지고 흐른다는 것은 이름이 담고 있는 일들을 한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인격을 나타냅니다.

강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은 강이 인격이라는 뜻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흐르는 네 강도 각자의 이름에 맞는 일을 합니다.

 

첫째 강은 “비손”으로서 이는 “풍성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고,

둘째 강은 “기혼”으로서 이는 “터져 나간다” 는 뜻을 담고 있으며,

셋째 강은 “힛데겔”로서 이는 “화살처럼 빠르다” 라는 뜻을 담고 있고,

넷째 강은 “유브라데”라고 하는데 이는 “달콤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네 강의 뜻을 종합하여 해석하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충만케 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강의 흐름은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서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성령은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도 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게도 하십니다.

그리고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아가면서 천국을 맛보게도 하십니다.

 

성령도 네 강처럼 성도에게 다양한 일들을 하십니다.

성령을 불 같다, 기름 같다, 바람 같다, 비둘기 같다 라고 다양하게 말하는 것도 모두가 성령의 다양한 사역과 은사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사역적인 것이 있습니다.

사도나 목사나 교사도 성령의 은사로 행하는 것입니다.

 

엡 4:7-12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둘째로, 직분적인 것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고 가르치고 권면하고 구제하는 것도 성령의 은사로 행하는 것입니다.

 

롬 12:4-8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셋째로, 성품적인 것으로도 나타납니다.

사랑과 자비와 온유와 같은 성품도 성령의 은사로 행하는 것입니다.

 

갈 5: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도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가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입니다.

지체마다 하는 일이 다르듯이 성도마다 받은 은사들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어서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십니다.

 

고전 12:4-7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간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강의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네 강의 근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한 부모에게서 낳고 한 성령을 마신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빌 2:1-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동일하게 부름을 입었기 때문에 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서로 섬기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을 예표하므로 사자와 어린 양의 함께 놀듯이 서로 평화 하여야 합니다.

 

강물이 가는 곳마다 보석들을 생산해 냅니다.

보석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 예루살렘 성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은 12 가지 보석으로 지어졌습니다.

그 보석들을 일컬어 어린 양의 신부들이라고 합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일차씩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 때 12가지 보석이 달려 있는 옷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12가지 보석은 12지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2가지 보석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12지파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장차 천년 왕국이 끝이 나면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아버지에게 바치는 때가 옵니다.

 

고전 15:22-24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에덴동산의 강가에 보석들이 생산이 된 것은 성령께서 성도들을 보석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일컬어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강이 사방으로 흐르면서 각각의 이름으로 흐릅니다.

이름은 다를지라도 그 근원은 동일합니다.

그럼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다툴 일은 아닙니다.

본질적인 면이 같으면 비본질적인 것으로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난 자들이 다 이러합니다.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다양하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고 하여서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보석이 12가지이듯이 성도들의 신앙 모습도 각양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투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화목하면서 사랑하며 섬기십시오.

왜냐하면, 성도들은 하늘 예루살렘 성의 보석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석은 모두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좋은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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