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아담아! 너는 누구냐?

정낙원 2017. 11. 5. 15:22

◆ 아담아! 너는 누구냐? ◆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한 것은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아담도 이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죄인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하나님 아들만드는 언약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흙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흙에 속한 사람은 흙에서 나서 떡을 양식으로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흙에서 나서 예수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먹고 살다가 하늘로 가게 됩니다.

 

처음 지음 받은 아담은 흙에다 생기(生氣)를 담고 있는 생령(生靈)이었습니다.

 

생령이란? "네페쉬 하야" 라고 하는데,

이는 그냥 산 존재를 말합니다.

영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흙에서 나온 생명체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지음을 받은 각종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며 바다의 고기들도 생령이라고 합니다.

피조된 모든 생물을 생령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생물인 짐승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생물인 짐승에게는 생기가 없지만 사람에게는 생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기란? "니스마트 하임"이라고 하는데,

이는 생명을 알아보는 기운을 뜻합니다.

생명을 감지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영생하는 자가 아니고 영생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

생령인 아담은 영적 존재가 아니고 영적 존재가 되도록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

생령인 아담은 생명과를 먹어야 영적 존재가 되고 영생하는 자가 됩니다.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는 영적 존재가 되어야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기를 주신 것은 그 생기를 통하여서 생명과를 먹고 영적 존재가 되어서 영생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아담이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는 자가 되는 것은 죄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는 엘로힘 하나님으로 나타났지만,

2장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로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이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하고,

여호와 하나님 언약을 이루시는 구원하는 하나님으로서 성자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왜 1장에서는 성부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2장에서는 성자 하나님으로 나타나는가요?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을 통해서 언약하신 창조의 내용인 갈라내고 채우는 일들을 성자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오셔서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부께서 계획하신 것을 성자께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실제 인류 역사는 2장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2장 이후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7일 창조의 일을 영적으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인 사람으로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1장의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짐승과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기를 가진 자이고, 짐승은 생기가 없는 자입니다.

사람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를 말하고,

짐승은 마귀의 자녀로서 땅에 속한 자들을 말합니다.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는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자,

이를 알게 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담 속에 있는 생기와 베드로 속에 있는 믿음은 같은 의미입니다.

믿음은 생기와 같이 생명을 알아보는 능력입니다.

 

아담은 생기를 통해서 생명과 속에 영생이 들어 있음을 알고 생명과를 먹고 영생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뱀의 미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내고 생명과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정한 때가 되어서 그 아들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보내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건져 내시고 영생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라도 예수를 주라 시인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부류의 인간들이 예수를 따릅니다.

 

떡을 얻고자 따르는 자들이 있고,

생명의 말씀을 듣고자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면서 나를 먹는 자는 영생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들이 “이 말은 어렵도다”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이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갈래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라고 하면서 예수를 따릅니다.

 

떠나가는 무리들은 생기(믿음)가 없는 짐승들이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생기(믿음)를 받은 아담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생기(믿음)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본 것입니다.

 

구원이란? 땅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흙에 몸을 벗어 버리고 하늘에 몸을 덧입고 하늘나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떡에 가치로 살던 자들이 말씀에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떡이 아니라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아담아 넌 누구냐?

 

나는 누구인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나의 양식은 무엇인가?

떡인가?

말씀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늘인가?

땅인가?

 

내 안에 그려진 임금의 화상은 누구인가?

가이사인가?

하나님인가?

 

마귀가 예수를 찾아 와서 묻습니다.

너 하나님 아들이라면서,

하나님 아들이 그래서 되겠나?

세상에서 성공해서 부귀영화를 누려야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마귀야 너 뭘 모르고 있구나.

하나님의 아들을 떡에 가치로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야!

 

세상 부귀영화는 너 같은 짐승들이나 쫓아가지,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거야!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나?

지금 무얼 쫓아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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