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예수그리스도가 주신 안식을 누리고 지켜라

정낙원 2017. 10. 22. 15:22

◆ 예수그리스도가 주신 안식을 누리고 지켜라 ◆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신 것은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함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그의 나라에서 세세토록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이 완성 된 상태를 안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안식하셨다고 합니다.

언약의 완성지점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입니다.

 

천국의 안식은 역사 속에서 엿새 동안 일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일하셨나요? 예수님이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기백성들을 구속하는 일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7일 동안의 창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날 참 빛이신 예수님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어둠에 오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의 아들들을 불러내고 그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다 채워지면 추수하여 곡간에 들이십니다.

이것이 일곱째 날 안식일로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일은 하나님이 보낸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도 여호와의 안식에 동참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신부가 신랑의 집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식의 반대는 수고와 슬픔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를 어디에서 쉬게 해 주셨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심으로서 언약의 후손들을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쉼을 주셨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이 안식의 세계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 것입니다.

 

왜?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는가요?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주어지는 안식이 곧 창세전 언약의 완성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율법을 가지고 인간의 행위를 참소하는 일을 합니다.

 

여기에 걸려들면 구원의 즐거움을 상실하게 됩니다.

내 꼬라지를 보면 법에 걸려들어 두려워지고 예수를 바라보면 쉼을 누립니다.

마귀는 인간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눈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선악과로 생명과를 가리는 일을 하였듯이 지금도 마귀는 율법으로

안식을 빼앗아 가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으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알려주시고 믿어지게 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재 안식을 누리고 지키는 것입니다.

현재 안식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고 장차의 안식은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조 7일의 일곱째 날 안식은 장차 천국에서 주어지는 안식을 예표하는 그림자입니다.

 

실제의 안식은 역사 바깥 하나님 나라에서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영적인 안식을 주셨고,

예수님의 재림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누림을 갖는 실제적인 안식을 주십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일곱째 날 안식으로 모여서 여덟째 날 안식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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