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강해

7강. 속건제와 이웃 사랑 (레위 5:14-6:7)

정낙원 2018. 4. 22. 13:28

7강. 속건제와 이웃 사랑 (레위 5:14-6:7)

 

모든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건 제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동시적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의 제사이지만,

속건제는 하나님께도 드리고 이웃에게도 용서를 구하는 제사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죄에 대한 제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손해배상은 이웃에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건제는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배상하는 제사입니다.

그냥 배상하는 것이 아니라 20%를 추가해서 갚아주는 것입니다.

일종의 가중 처벌법입니다.

 

죄 값은 하나님께는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용서받고,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죄는 그 값을 배상함으로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20%를 추가로 배상하라는 것은 법으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법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은혜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법 아래서는 인색함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서는 넘침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속건 제사 속에는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속건제는 마지막 제사입니다.

번제를 지나서 죄사함 받은 자들이 어떻게 이웃과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으니 그 용서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면서 서로 관대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서 온 세상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를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에게 지은 죄를 하나님에게 속죄하라는 것은 이웃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면 짓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웃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출 22:21-24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약자 보호법을 주셨습니다.

동네에 가난 한 자들이 있으면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가난한 자로 살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부한 자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약자들을 두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약자들은 바로 이스라엘 자신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약자들을 돌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돌보심을 입고 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속건 제사는 이웃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이익을 더해주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오리(五里)를 가자고 하면 십리(十里)를 동행하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웃과 법으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는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럼 사랑이 본질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죄가 사랑을 법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법이 인간들 속에 자리 잡으면서 인간들은 이웃을 헤치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서 죄를 없애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속건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사 53:10-11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려고 친히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는 속죄 제물로 드려졌고 이웃에게는 속건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마음에 법을 제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심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하나님과 가로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또한 이웃 간의 담도 허물어졌습니다.

비로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위하여 재물을 내어 놓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움켜잡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자 움켜잡은 손을 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비로소 새 언약 안에서의 속건 제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평화는 법이 사라져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서만 평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지는 곳입니다.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는 곳이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로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하나님은 사랑이 편만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소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이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부요한 자로서 가난케 되심은 평균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고후 8:9-1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 14.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가 일면식도 없는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 힘에 넘치는 연보로 도운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는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난케 되심은 가난한 자로 서로 평균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예루살렘 교회에 나누어 준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가난 속에서도 힘에 넘치는 연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20%를 더하여서 배상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속건 제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많이 지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잔치를 베풀거든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초청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많이 나누어주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나누어주면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눔을 입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속건 제사 속에 예수님의 생명(삶)을 담아 놓았습니다.

 

속건제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옛 언약은 도적질하는 것이 죄였지만,

새 언약은 나누어주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도적질 안한 것이 자랑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남을 구제하라고 하십니다.

 

엡 4:25-28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을 외면치 말라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나누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가 대신 짐을 져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자라는 것을 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범죄치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이웃도 함께 범죄치 않도록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원금보다 많이 배상함으로 이웃에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차별이 없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에서 드려지는 속건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