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역설적 은혜

정낙원 2008. 7. 24. 22:09

 

역설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사람들은 날마다 현재보다 더 좋은 나를 위하여 소망하며 살아간다.

 

지금은 비록 부족하여도 앞으로 점진적으로 더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좋은 사람의 평가기준은 세상 가치로서의 윤리적의고 도덕적인 규범이다.

 

세상은 누가 더 윤리적이고 누가 더 도덕적이냐 로서 더 나은 사람이냐 아니냐로 판단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사조가 교회 안에까지 침투하여 진리인냥 자리잡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마다 더 착한 사람을 생산해 내기에 바쁘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마치 교회의 능력이 착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교인들 또한 신앙생활을 더 착한 사람이 되어가는 샅바 싸움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고 세상적인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인간은 본질 자체가 죄인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죄인이란? 무엇을 하여도 죄를 생산해 내는 공장이라는 말이다.

 

즉 인간에게서는 하나님이 바라는 의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예수를 믿어도 동일하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몸이 바뀌지 않는다.

 

몸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생산해 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신앙생활이란? 개과천선하는 것이 아니고 에수를 믿는 것이다.

 

교회란?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곳이다.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다 함은 예수님의 희생을 근거로 존립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항상 예수님의 희생이 묻어 나와야 한다.

 

예수님의 희생이 묻어 나온다 함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고백되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선 그 어떤 인간도 온전한 인간이 없다.

 

모두가 죄인일 뿐이다.

 

 

좋은 신앙이란? 얼마나 예수님의 피 뿌리심에 은혜를 아느냐로 판단된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죄인임을 모르는 자에겐 예수님은 본 받을 선생이지 구주가 아니다.

 

죄인임을 알면 예수님은 구주가 되지만 모르면 본받아야 할 선생이나 위인으로 간주된다.

 

 

세상에선 예수님을 인류의 큰 공헌을 한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교회에선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죽어주신 주와 그리스도로 본다.

 

주와 그리스도란? 믿고 섬길 하나님이지 따르고 본받을 위인이 아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 때문에 죄사함 받음에 감사한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에 은혜는 스스로가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만 능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성도 안에서 자신의 불가능성을 깨닫도록 하신다.

 

즉 나는 어쩔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또렷하게 깨닫도록 일을 하신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성령은 성도를 더 죄인 됨을  드러내는 일을 하신다.

 

종교는 인간을 긍정하지만 복음은 인간을 부정한다.

 

자신이 죄 없다 하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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