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팔자 고치기

정낙원 2008. 7. 24. 22:10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

 

 

 

죄란?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날마다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살고자 한다.

 

죄인은 자기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눈만 뜨면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관계망을 넓혀 가고자 한다.

 

그러나 십자가란? 나를 해체시키고 세상으로부터 죽이는 것이다.

 

예수남의 십자가 속에는 성도들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

 

 

구원이란? 기존의 것으로부터의 단절이며 새로운 것으로의 이입을 말한다.

 

즉 육의 세계에서 단절되는 것이고, 영의 세계로 이입이 되는 것이다.

 

아담의 족보에서는 빠져버리고 예수님의 족보로 옮겨지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소속을 교체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자리에서 예수님의 자리로 편입하는 것이다.

 

“아담의” 관계 망에서, “예수님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는 것은 육의 관계망을 끊고 예수님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이고 모친이라고 하였다.

 

 

이는 육의 관계망을 끊고 하나님의 관계망 속으로 편입된 자가 예수님의 형제란 뜻이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진다는 의미보다 육의 관계 망에서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든다면 이는 마치 인테넷 상에서 횡행되어지는

 

각종 동호회 모임에서  회원 탈퇴를 하면 동호회라는 관계망에서 끊어지는 것과 같다.

 

 

지옥이란? 육의 관계망을 지속하는 것이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것은 

 

세상의 관계망을 그대로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옥에 가서도 세상에 있는 형제들을 염려하고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지옥이란? 육이고 땅이다.

 

땅에 일을 생각하면 아무리 고상하여도 지옥의 일이다.

 

반대로 천국이란? 육의 관계망에서 단절된 것을 말한다.

 

천국에서의 나사로는 세상의 관계망에서 완전히 끊겨진 채로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성도는 날마다 육의 관계망을 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으로 육의 관계망이 끊어질 때 천국이 되지만, 세상에 연결되어 있으면 지옥이 된다.

 

신앙생활을 하여도 육의 관계망이 끊어지지 않으면 지옥이 된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성령세례를 받음으로서 육의 관계망에서 끊어졌다.

 

성령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육신의 부모와 형제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는 길 까지 나아간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율법의 관계망으로부터 단절되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육신의 고향으로부터 떠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바울이 율법으로 단절된 것이나 아브라함이 부모 친척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곧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이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모두가 기존의 육의 관계 망에서 비롯된다.

 

여자들이 시집을 가면 시집이라는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희비가 생겨난다.

 

성도의 팔자도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과 전혀 다른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 시집이라는 관계망 속에

 

희비를 강요받게 되는 것과 같이 성도들도 예수님의 희비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희비에 공유되어 사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의 관계망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기뻐하는 일에 함께 기뻐하고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는 일에 함께 아파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관계망 속에서는 세상 것으로 인한 희비가 없다.

 

오직 복음으로 인한 희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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