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종교인과 신앙인

정낙원 2008. 7. 24. 22:16

종교놀음하는 인간과 말씀듣는 인간

 


종교놀음하는 인간들은 늘 새로운 먹이감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와 같은 자들이다.

목사는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군중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고객들이 식상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날마다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일찍이 에스겔 선지자가 이를 알고 미리 고발하였다.

겔 33장 30-33절 =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32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말씀을 취미로 여기는 자들은 새로운 말씀을 듣고자 나온다고 한다.

 

나아 오는 이유는 말씀을 양식으로 먹기 위함이 아니고 음악감상 하듯이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찾는 자" 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말씀은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먹고 배부름을 얻게 하는 밥이고 양식이다.

종교인들은 늘 새로운 말씀을 즐기는 자들이다.

종교인들의 특징은 새로움이 없으면 식상해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사는 자가 있고, 교훈으로 듣는 자가 있다.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사는 자는 늘 그 말씀으로 배불러 하고 힘을 얻는다.


늘 동일한 말씀을 들어도 또 감사하며 또 감격하며 행복해 한다.


마치 삼시 세끼 일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맛 있게 먹으면서 행복해 한다. 

그러나 새로운 말씀 듣는 것을 취미로 여기는 자들은 밖에서 사 먹는 외식과 같이 금방 질려 버리고 또 좋은 것 없는가 하고 찾아 나서게 된다. 

 

만족함이 없다.

온갖 화학 조미료로 맛을 내는 음식점들의 음식은 당장 먹을 땐 맛이 있는 것 같아도 계속하여 먹으면 질려 버리게 된다. 
 

그래서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또 새로운 맛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하는 종교인들은 식도락가들처럼 항상 새로운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마치 어린아이가 늘 새로운 장난감을 사 달라고 하듯이,,,

종교인들은 뭔가 새롭고 신선하면 신비함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말씀은 갖고 놀다 싫증나면 버리는 장난감도 아니고, 한 두번 먹고 질려 버리는 식당 음식도 아니다.

말씀은 항상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어지는 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먹으면 배부르게 하는 밀이지, 풍조에 날아가는 겨가 아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얻어 먹었다고 고백하였다.

타관객지 나오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옛날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된장찌게가 최고임을 나이 들면 알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도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어머니가 끓여주는 된장찌게와 같다.

 

그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품은 늘 그리운 것이다.


달콤하게 입맛을 사로잡는 화학조미료 가득 넣은 음식을 찾으려 하지 말고, 구수한 된장찌게와 같이 또 다시 먹고 싶어지는 십자가의 도만 먹으라.

 

'주보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  (2) 2008.07.25
성질대로 살아라  (1) 2008.07.25
팔자 고치기  (1) 2008.07.24
역설적 은혜  (1) 2008.07.24
평범함의 축복  (1) 200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