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버림과 고난 그리고 되찾음

정낙원 2008. 7. 25. 17:18

◈ 버림과 고난 그리고 되찾음 ◈

구원이란 찾김 받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구원사건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약속하기를 너희 후손들을 사대만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셨다.

창 15장 13-16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속에는 현재의 땅에서 버림받았다가 사백년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즉 잠시 버림받았다가 다시 찾아내신다는 말이다.

또한 아브라함 언약 속에는 버림과 동시에 핍박을 받아야 할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버림받고 이방에게 핍박받게 하는 이유는 핍박하는 이방을 징치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이런 이스라엘의 구원 사건 속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겨져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이 세상으로 보내심(버려짐)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엄청난 고난을 당하셨고 급기야는 십자가에서 죽이심을 당하셨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늘나라로 불러 들이셨다.

이제 예수님을 죽인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징치당하여야 할 운명에 놓여져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세상은 장차 불로 심판 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이 불로 심판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이스라엘을 핍박한 애굽을 징치한 것과 같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모습을 신약의 성도들에게 적용해 보면 이 세상에서의 성도에 운명은 고난 당하기 위하여 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마 10장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신다고 하시면서 파송하셨다.

한마디로 죽으라고 보내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방인들과 총독들에게 증거를 삼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제자들을 핍박당하게 해놓고 제자들을 핍박한 자들을 왜? 내 제자들을 핍박하였느냐? 라고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받아야 할 자로 존재하고 있다.

성도는 세상에서 행복이 박탈당하여 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한다는 것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모름지기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행복하고자 하는 탐심이 곧 죄라는 것이라고 설교하여야 한다.

이런 설교를 하면 환영받기보단 오히려 쫓겨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목사가 된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만약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다.

당연히 세상에서 행복하고자 하는 자도 성도가 아니다.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할 자들이다.

이를 성경에선 건축자들에게 버림받은 돌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버림당한 자들을 천국에 성전을 짖는 보석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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