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예수 안과 예수 밖

정낙원 2008. 7. 25. 17:19

◈ 예수 밖의 나와 예수 안의 나 ◈

하나님은 이 세상을 예수님 중심으로 다스려 가신다.

이는 세상 자체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나님도 자기 중심으로 인식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한다고 하셨다.

성경은 성도를 일컬어 아브라함 후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을 성도들이 곡해를 한 나머지 자기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즉 누군가가 날 괴롭히거나 피해를 입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벌을 주어야 되고, 나에게 유익을 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날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여야 참 하나님 답다 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선택한 아브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의 축복을 받고 거부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가지고 성도 개인에게 적용하여서는 안된다.

성도를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란 뜻이다.

성도는 존재론 적으로는 자기가 없고 예수님의 것이다.

예수 안에서 나를 보면 나라는 존재는 없고 오직 예수님의 것으로만 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 중심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게 된다.

12제자들이나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것으로 살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복음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희노애락 모두를 복음적으로 이해를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옥에 갇히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고난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흔적이라고 증거하였다.

바울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면 내 모든 형편이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서 자신을 보게 되면 나라는 존재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내게 좋은 일이면 복이라고 하고 나쁜 일이면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나는 항상 육신의 행복함을 꿈꾸기 때문에 좋은 일만 생기기를 소망한다.

내게 좋으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면 내 육신 중심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 중심으로 본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단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잘 증거되기를 소원한다.

나로 살면 만사가 불만이 되지만 예수님의 것으로 살면 만사가 감사가 된다.

예수 안에는 저주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것으로 사는 성도에겐 저주란 없다.

실패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영생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망하여도 망한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겐 환경의 좋고 나쁨이 있을 수가 없다.

바울은 믿음으로 받으면 범사에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환경으로 인하여 슬프다고 하는 자는 예수 밖에서 자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예수 안에 있으니 복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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