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인정머리 없는 하나님

정낙원 2008. 7. 25. 17:20

 

◈ 죄를 들추어내시는 하나님 ◈

사람의 심리는 잘못한 것은 잊고 싶어하고 잘한 것은 기억하고 싶어한다.

잘못된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상해지지만 잘한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다.

왜? 잘한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잘못한 것을 생각하면 불쾌해지는가?

이는 사람의 기분이 자기 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란?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곳이다.

법 아래 있는 인간들은 두 사람만 모여도 서열이 정해지게 된다.

법이 서열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모인 곳이면 자연히 서열이 정하여지게 된다.

서열은 의로 정해진다.

의란? 옳음이다. 즉 누가 더 옳은 사람이냐에 따라서 우열이 가려진다.

그런데 인간의 본능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자 한다.

높아지려면 상대 보다 높은 의에 점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의 마일리지이다.

누구 의가 더 많으냐 이다.

상대방 보다 많은 의를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적게 가지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가 좋은 의를 내어놓으려고 경쟁을 한다.

잘못한 것은 감추고 잘한 것은 자랑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신앙에 있어선 잘못을 많이 들추어진 사람이 좋은 신앙이 된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깊이 알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이 탕감 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고 적게 탕감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하셨다.

즉 자기의 죄를 얼마나 깨닫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용서하심에 대한 감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많이 탕감 받음을 아는 자는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게 되고, 적게 깨닫는 자는 적게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약하게도 성도들의 죄를 낱낱이 들추어내시는 일을 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주의 자리에 앉히기 위함이다.

모든 무릎을 예수 앞에 끓게 하여 주 라고 고백하도록 하신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려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고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기쁨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악하다는 것을 고발해 내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말씀이 다가 올 때마다 우리의 죄는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하나 하나 벗겨진다.

과거엔 죄인 줄도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죄로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죄를 많이 안다는 것이다.

종국엔 모든 것이 죄로 드러나게 된다.

비로서 내겐 의가 없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 유구무언이 된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감사가 나온다.

과거엔 허물을 감추고 싶었는데 이젠 드러내고자 한다.

왜? 그럴까?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만 예수는 구세주가 된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기뻐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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