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글

불의한 청지기 비유

정낙원 2012. 6. 23. 11:51

 

이 글은 어떤 분이 메일로 질문하신 내용을 간략하게 답한 글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눅 16:1-13)

 

 

모든 비유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비유는 15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비유입니다.

그러니 앞의 비유를 또 다시 해석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16장 앞의 비유는 탕자 비유입니다.

 

탕자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여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어울리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바리새인들을 향한 고발의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예수님이 죄인들을 영접하는 것을 탄핵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잃은 양과,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탕자 비유를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죄인이 회개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회개는 우리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내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이란? 잃어버려진 자들을 주인이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원 속에는 주인의 공로만 오롯이 담겨져 있게 됩니다.

그리할 때 찾아짐을 당한 자들은 세세토록 주인을 찬양하게 되지요,

이렇게 찾아짐을 당한 자들이 찬양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럼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도 앞에 비유인 탕자 비유를 재해석하는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탕자 비유에서 탕자는 죄인을 상징하고 맏아들은 바리새인을 상징합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근거로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입니다.

율법은 자신이 법을 지킴으로서 의를 추구합니다.

 

그럼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는 주인 몰래 빚진 자들을 탕감해 주는 불의를 행한 종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적 신앙으로 보면 불법을 행하는 자이므로 마땅히 탄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리어 비유에서 불법을 저지른 종의 지혜를 칭찬합니다.

 

비유에서 보면 주인이 가만히 보니까 종이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고를 통지합니다.

해고 통지를 받은 종이 가만히 궁리 하다가 이왕 해고 당할 바에는 주인의 소유를 더 허비하는 식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이걸 주인이 보고 지혜롭다고 한단 말입니다.

종이 하는 짓도 나쁜 짓이지만!

주인이 그걸 지혜롭게 본다는 것도 비상식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에 복음에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은 주인이 바라보는 “허비”입니다.

 

주인이 무엇을 허비라고 하느냐 입니다.

주인의 물질을 손해가 되게 하는 것이 허비이냐!

아니면 주인의 자비와 은혜를 가리는 것이 허비이냐! 입니다.

 

여기서 부자는 하나님을 상징입니다.

그럼 부자에게 빚진 자들은 죄인들이겠지요.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이걸 부자이야기로 상고해 봅시다.

어떤 부자가 고을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한단 말입니다.

(여기서 부자가 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힌트하는 것은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을 지혜롭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일하는 하인들에게 곡간을 열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끼지 말고 마음껏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자의 은덕을 입기를 바랐습니다.

하인들이 주인의 명 대로 고을 사람들에게 곡식과 재물을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어떤 종이 자기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나누어주는 것을 허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쬐끔씩 주는 겁니다.

자기 딴에는 주인의 재물을 아끼고자 인색을 베풀었습니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고리대금업을 합니다.

많은 이자를 받아서 주인이 은혜를 베푸는 일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일을 합니다.

물론 종은 이자를 받아서 주인의 재산을 불리고자 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건 주인이 바라는 바가 아니에요.

 

이 모습을 주인이 보았을 때 옳음일까요?

그름일까요?

그름이겠지요.

 

칭찬을 할까요?

책망을 할까요?

당연히 책망을 하겠지요.

 

주인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혜를 입기를 바랐습니다.

주인은 재물에 관심이 없어요.

주인의 관심은 자신의 자비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널리 베풀어지는 것이에요.

그런데 종이 자기 생각으로 물질을 아껴서 주인의 인색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주인이 보시기에 허비입니다.

 

허비란? 손해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자비를 베푸는 부자에게 있어 손해란 무엇인가요?

돈이 축 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부자의 자비로운 은혜성을 가리는 것입니까?

당연히 은혜성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종을 불러서 해고 통지를 합니다.

너는 물질로 나의 자비로움을 도리어 인색함으로 드러내고 있는 자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자 해고 통지를 받은 종이 주인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다 탕감을 해 줍니다.

사람들에게 주인의 은혜를 베풉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그 놈 참 지혜롭군!

그래 그것이 내 마음이야! 라고 칭찬을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가 죄인임을 모릅니다.

그래서 율법을 주어서 너희는 죄인이라고 고발합니다.

 

그 율법을 바리새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럼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죄인들을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놈들이 도리어 율법으로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죄 아래서 신음하는 자들을 풀어 주려고 오셨어요.

하나님은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통하여서 죄를 탕감 받고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은혜 입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를 탕감 받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럽니까?

율법입니다.

 

마치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처럼 자기 의로 동생이 아버지의 긍휼을 입는 것을 막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돈 잃어버린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서 비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탕진한 재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이 더 기쁩니다.

아버지는 집을 떠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 아들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종이 되어서 돌아온 탕자를 위해서 잔치를 벌린 것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행위가 허비로 보였습니다.

급기야 아버지의 처사가 틀렸다고 탄핵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근거로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는 것이 틀렸다고 탄핵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맏아들처럼 아버지 명(율법)을 어김없이 지킨 것이 아버지에게 영광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아버지 명을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아버지 명을 지킬 때마다 자기 의가 차곡차곡 마일리지 쌓이듯이 쌓입니다.

급기야 쌓인 의가 힘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대항하기에 이릅니다.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고 살아온 맏아들이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재물을 탕진하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차라리 종으로 살겠다고 돌아온 탕자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부채를 탕감해 준 지혜로운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허비입니다.

율법으로 예수님 앞으로 불러내야 함에도 도리어 방해를 하고 있으니 주인의 것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허비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불의한 청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불의한 청지기가 어떻게 주인으로부터 지혜로운 자라고 칭찬을 듣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율법으로 사람들을 내 앞으로 불러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부채를 예수님이 탕감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본 비유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것과 동시에 제자들에게 율법을 어떻게 행사하여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유의 끝에 율법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 비유의 해석이 다양한데 다양한 해석도 은혜로 취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전 이렇게 은혜를 받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