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선악과와 다른 눈

정낙원 2015. 7. 27. 11:57

◆ 선악과와 다른 눈 ◆

 

선악과는 아담에게 다른 눈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다른 눈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눈을 가지고 나니까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하게 됩니다.

 

죄인을 일컬어 소경이라고 합니다.

소경이란?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르는 자를 말합니다.

죄인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면 죄의 신앙을 낳게 됩니다.

 

죄인을 일컬어 죽은 자라고 합니다.

성경은 법 아래 있는 자를 죽은 자라고 합니다.

법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이는 하나님으로 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은혜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는 두려운 하나님으로 보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발가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는 발가벗음이 수치로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발가벗은 자를 죽이는 분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두려운 하나님으로 보이자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아담은 자기 마음에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자기 방식으로 수치를 가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이는 아담 안에서 발가벗으면 하나님께 죽임 당한다는 법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은 순전히 자기들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발가벗음이 수치라고 여겨지면 가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불안해서 못 삽니다.

결국 아담은 자기 안의 불안감을 자기 식으로 해소하고자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 입은 것입니다.

이것이 죄에요.

 

죄는 하나님과 다른 눈을 갖게 하였고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죄인들은 자기 식으로의 이러면 하나님이 좋아 할 거야!

혹은 저러면 하나님이 싫어 할꺼야! 라는 법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수치를 가리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너희들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수치를 가려 주시는지를 보라고 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란 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으란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되면 하나님께서 수치를 이렇게 가려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 합니다.

너희들은 스스로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곤고하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발가벗고 있는 눈먼 소경이라고 합니다.

 

너희 딴에는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실상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눈에 안약을 사서 발라 보라고 했습니다.

눈을 뜨게 해 주는 안약이 무엇인가요?

 

이는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발가벗음을 수치다 아니다 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수치는 하나님께서 친히 가려 주신다고 합니다.

어떻게 가려 주시나요?

이는 죄인을 위하여 의로운 분의 죽음을 통해서 가려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누구인가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새 언약을 믿으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에 수치를 예수의 피로 가려주신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이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자를 누가 송사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피가 넉넉히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눈을 가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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