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81강. 지팡이로 뒤바뀐 장자와 차자 (창 48장 1~22절)

정낙원 2026. 4. 7. 22:42

81. 지팡이로 뒤바뀐 장자와 차자 (481~22)

 

48:1-22.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7.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내가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 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12.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야곱이 병들어서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요셉이 이 소식을 듣고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그러자 야곱이 침상에서 일어나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장자와 차자를 뒤바꿔서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적으로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고 장자와 차자를 뒤바꿔서 축복하는 내용 속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야곱이 장자와 차자를 뒤바꾸어서 축복한 일을 믿음으로 지팡이를 의지하여서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행함 속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가 담겨 있음이 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1장의 모든 선진들은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보여 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입장에서 야곱이 행한 일을 탐사해 봅시다.

 

흔히들 사람이 죽을 때가 다가오면 진실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본능 속에 죽으면 신을 만나게 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죽음 앞에 서면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임종시의 언행은 그 사람의 살아온 내용을 함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럼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하는 말과 행동들은 야곱의 일생을 함축하고 있음이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 손에 이끌려서 살아온 인생이기에 자기 인생을 살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야곱은 어미 뱃속에서 이미 운명이 결정되어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정한 운명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각자 정해진 운명을 역사 속에서 살아간 겁니다.

 

마치 영화 속의 배우가 시나리오에 따른 연기를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을 가지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간섭당하게 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삶이고,

야곱의 삶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즉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주어지를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뱃속에서 야곱의 운명을 결정하셨습니다.

이를 약속이라고도 하고 혹은 언약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선택을 입은 것이 됩니다.

이를 언약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일평생 하나님의 언약에 이끌린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행한 일들 속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걸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임종을 맞이하면서 요셉과 그 자식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간섭해 온 하나님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나를 간섭하신 하나님이 너희도 간섭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건 자식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전수해 주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야곱을 간섭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요?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삭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는 하는 과정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간섭해 오셨는지를 자식들에게 쭉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스라엘로서 두 아들에게 지팡이를 의지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설명하느냐,

이들도 언약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후손이면 당연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야 하기 떄문입니다.

 

알다시피 야곱의 가문은 언약의 가문입니다.

야곱의 자식들은 자연히 언약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언약의 후손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자식들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알아도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직접적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다고 해도 기껏 아버지로부터 들어서 알아진 간접적인 앎인 것입니다.

이건 마치 야곱이 아버지 집에서 살 때 알았던 그 수준 밖에 도지 않습니다.

야곱도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하나님만 알았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쫓겨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집에서 쫓겨나서 광야로 갑니다.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합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라고도 하고 하늘의 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벧엘 광야에 있는 야곱을 찾아오는 것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너의 아비가 되어서 동행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야곱이 조상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제부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조상들에게 이야기로만 들었던 그 하나님을 광야에서 직접 만난 겁니다.

이러면 조상의 하나님이 아니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야곱이 아버지 집에서 알던 그 하나님 밖에 모릅니다.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들어온 하나님이에요.

그럼 이들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나님이 너희들을 이렇게 간섭하실 것이라는 것을 장자와 차자가 뒤바뀌는 사건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그 방법으로 장자와 차자를 뒤바꾸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야곱이 요셉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와 차자를 뒤바꾸는 일을 라헬의 죽음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해요.

라헬의 죽음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야곱에 의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인생이 뒤바뀌어지는 것은 신약적 의미로 예수님에 의해 인생이 뒤바뀌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이 뒤바뀌는 모습인 겁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후에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자인 옛 사람이 죽고 차자인 새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자와 차자가 뒤바뀌는 사건은 우리 개인에게 적용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적용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이 뒤바뀌는 이야기가 되고,

역사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약과 신약이 뒤바뀌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육적 의미와 영적 의미 두 가지를 다 이해하셔야 해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영과 육이 뒤바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육의 시대에서 영의 시대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기점으로 세상 역사의 기원도 주가 오시기 전인 BC와 주가 오시고 난 후인 AD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잘 보세요.

이스라엘이 안수를 하지요.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이 오른손은 차자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고서 하는 말이 뜬금없이 라헬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장자와 차자가 바뀌는 일에 왜 라헬의 죽음을 언급할까요?

이것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요셉의 어미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봅시다.

 

48:5-7.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이집트에서 너에게 태어난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아들이다. 내가 그들을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은 아들로 삼겠다. 6. 앞으로 네가 아들을 더 낳게 되면 그들은 네 아들이 될 것이며 또 그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이름으로 유산을 받게 될 것이다. 7.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의 어머니 라헬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너의 어머니는 내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돌아오던 길에 가나안 땅에서 죽고 말았는데 그곳은 에브랏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네 어머니를 에브랏으로 가는 길가에 장사하였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라헬이 누구인가요?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아버지인 요셉의 어머니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에게 안수하면서 라헬의 죽음을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이는 이 두 아들이 바로 요셉과 같이 라헬의 아들로 삼아 버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라헬의 죽음으로 얻어진 야곱의 아들이 되는 겁니다.

 

7절을 보세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의 어머니 라헬 때문이라고 하지요.

이 말은 이 두 녀석은 너(요셉)처럼 라헬이 낳은 아들이라는 겁니다.

너희들은 라헬의 죽음으로 얻어진 아들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라헬이 묻힌 곳을 이야기합니다.

너의 어머니 라헬은 베들레헴에 장사하였다고 합니다.

 

라헬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봅시다.

야곱이 아버지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마치고 벧엘로 귀향합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30년이 걸렸어요.

야곱은 아버지 집을 떠나온 후 타관 객지에서 30년 동안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혹독한 일들을 겪었어요.

야곱은 이를 험악한 세월이라고 하였어요.

 

나그네 생활을 마치고 이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이삭은 헤브론에 살고 있습니다.

헤브론은 조상의 땅으로서 고향인 것입니다.

헤브론은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이에요.

야곱은 지금 조상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향에 다다르자 라헬이 아들을 낳습니다.

이 때 얻은 아들이 베냐민이에요.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었어요.

그러자 야곱이 라헬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지 않고 베들레헴에 장사를 지냅니다.

왜 막벨라 굴에 장사하지 않고 베들레헴에 장사 하였을까요?

여기에 비밀이 있어요.

 

야곱에게 레아와 라헬 두 아내가 있었어요.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그 동네 풍습에는 동생이 언니 먼저 시집가는 것은 결례에 맞지 않은 일이라 라반이 언니인 레아를 야곱에게 먼저 줍니다.

그리고 라헬을 나중에 주었습니다.

레아는 덤으로 얻은 아내인 거예요.

이러면 라헬은 정실부인이 되고 레아는 첩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도 장자와 차자가 뒤 바뀐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하면 막벨라 굴에는 라헬이 들어가야 해요.

왜냐하면 라헬이 야곱의 정실부인이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야곱은 막벨라 굴에는 레아를 장사하고 라헬은 베들레헴에 장사를 하였어요.

이렇게 되면 라헬의 버려짐으로 레아가 구원을 얻은 그림이 그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라헬의 버려짐으로 레아가 조상들의 무덤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마치 예수가 버려지고 성도들이 구원을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레아는 은혜로 조상의 무덤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 그림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인 겁니다.

 

막벨라 굴을 천국이라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버려짐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면 라헬은 예수님을 모형하고 레아는 우리를 모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아들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가짜인 성도들을 양자로 구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이 어떤 곳인가요?

예수님이 태어난 곳이에요.

이러면 라헬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형하고 있는 거예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듯이 라헬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은 겁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을 대신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에 손은 얹고는 느닷없이 요셉에게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은 요셉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성경은 비밀로 가득해요.

그래서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으면 영적인 의미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14-16절을 보세요.

 

48:14-16.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 맞겨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지요.

그리고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는 겁니다.

이러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누가 되나요?

요셉이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요셉을 축복한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을 대신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기업을 주지 않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주신 겁니다.

 

야곱은 지금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야곱을 이스라엘로 간섭해 오신 언약의 하나님을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 자신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인도해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의미로 야곱은 옛 사람으로 장자이고 이스라엘은 새 사람으로 차자에요.

하나님이 장자인 야곱을 죽이고 차자인 이스라엘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야곱이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자와 차자가 뒤바뀌는 사건은 야곱이 먼저 경험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장자와 차자를 뒤바뀌는 일을 하세요.

이를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는 것으로 보여 주셨어요.

나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간섭하신 그 하나님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도 간섭하여서 크게 번성시켜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도 중요한데,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애굽에서 태어났어요.

언약의 후손이 살아갈 땅은 가나안이에요.

애굽은 세상을 말하고 가나안은 약속의 땅으로서 천국을 말해요.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와 같아요.

애굽에서 태어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법칙을 몰라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법칙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나안 법칙은 애굽의 법칙과 달라요.

애굽의 법칙은 약육강식의 법칙이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법칙이에요.

약육강식의 법칙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것이고,

장유유서의 법칙이란? 태어난 순서로 서열이 정해진다는 뜻이에요.

 

애굽은 강한 자가 군림하고 약한 자는 지배를 당하는 법으로 다스려지는 곳이에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나라에요.

또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곳이에요.

가나안은 애굽과 완전이 다른 법칙으로 다스려지는 곳이에요.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고 하였어요.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다스려지는 나라에요.

그럼 가나안은 은혜로 다스려지는 곳이란 뜻입니다.

가나안의 법칙은 은혜의 법칙이에요.

 

십자가 도가 가나안의 법칙이에요.

십자가는 세상의 법칙을 뒤바꾸는 법칙이에요.

천국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에요.

가나안은 장자가 차자가 되고 차자가 장자가 되는 법칙으로 살아가는 곳이에요.

 

이 일을 야곱은 체험했어요.

야곱은 옛 사람으로 장자이고 이스라엘은 새 사람으로 차자에요.

얍복강에서 옛 사람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 얍복강에서 겪은 사건은 십자가와 같아요.

그래서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서 새로 입적한 두 아들에게 가나안의 법칙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라고 그랬다고 하지요.

이게 또 비밀인데,,

 

본문을 봅시다.

 

48:8-14.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12.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 맞겨 얹었더라

 

48:17-20.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이스라엘이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고 하지요.

눈이 어두워서 하는 일이라면 누가 하는 일이 되나요?

하나님이 하는 일이 되겠지요.

만약에 눈이 어둡지 않고 밝은 상태로 했을 것 같으면 아 야곱(이스라엘)이 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야곱(이스라엘)은 눈이 어두워서 자식들에게 축복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것도 세상의 법도에 어긋난 비상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믿음으로 했다고 해요.

 

히브리서 11장을 봅시다.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이 지팡이를 의지하고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했다고 하지요.

왜 지팡이를 의지하고 하는가요?

야곱(이스라엘)에게 지팡이는 하나님과 같아요.

지팡이는 하나님이 야곱을 죽이고 이스라엘로 만든 것을 표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이에요.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왜 야곱(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요셉이 야곱의 2기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에요.

요셉은 아버지의 2기 인생을 대신 살았어요.

즉 이스라엘로 산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지고 난 후에 이름이 이스라엘로 개명을 당하지요.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라고 했는데,

그 이스라엘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요셉 속에 담겨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 37장에서 야곱의 약전은 이러하니라 하면서 요셉을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약전이란? 족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력서라고 해도 되어요.

그러니까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자식도 야곱의 자식이 되는 거예요.

그럼 야곱은 아비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언약의 후손들을 통해서 펼쳐지는지를 알려주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아들로 삼아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야곱을 어떻게 간섭해 오셨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야곱과 에서를 잉태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알려주었어요.

이 말은 장자가 차자가 되고 차자가 장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요.

리브가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한 그 언약을 가슴에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삭이 장자의 축복을 할 때 리브가가 중간에서 바꿔치기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계시를 리브가가 받았기 때문이에요.

이삭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는 계시를 몰라요.

그래서 이삭은 세상의 법도대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리브가가 알았어요.

그래서 리브가는 하나님 나라의 법도로 장자와 차자를 뒤바꾸어서 축복을 받도록 조치를 한 것입니다.

 

그게 별미 사건이에요.

이삭은 별미를 좋아해요.

그래서 별미를 먹고 장자의 축복을 한 것입니다.

야곱이 별미를 들고 아버지의 맏 아들 에서로소이다 라고 들어가지요.

이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아버지 앞으로 나가는 것과 같아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 예수님을 앞세우고 나아가라고 하세요.

그럼 우리는 아버지의 맏아들 예수로소이다 라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면 별미를 들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앞세우고 장자의 복을 받는 것을 예표하고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도 이삭이 눈이 어두었다고 해요.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장자와 차자를 바꿔치기했다는 뜻이에요.

야곱이 장자권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리브가 덕분이에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계시를 받은 것은 리브가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리브가가 야곱에게 장자와 차자가 뒤바뀌는 비밀을 전수해 준 겁니다.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그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자식들에게 알려주어야 해요.

그래서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로 장자와 차자가 지팡이에 의하여 뒤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 장자와 차자가 뒤바뀌는 훈련을 받은 겁니다.

이건 야곱의 아들들도 배워가야 해요.

구약이든 신약이든 언약의 후손들은 누구도 예외가 없이 모두 배우고 있는 겁니다.

신앙생활이란? 우리 생각이 십자가에 달리는 거예요.

이걸 옛 사람이 죽는다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하는 겁니다.

 

야곱이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을 때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망하는 꿈이겠어요.

성공하는 꿈이겠어요.

당연히 성공하는 꿈이겠지요.

 

야곱의 성향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배고파하는 형에게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산 자이잖아요.

그런 자가 망하는 축복을 받았겠어요.

당연히 흥하는 축복으로 생각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니 비단 길만 걸을 줄 알았어요.

자기 꿈을 펼쳐보고 싶었던 거예요.

야곱의 꿈이 뭐겠어요.

이름 속에 담겨 있어요.

약탈자에요.

남을 밟고 일어서는 자라는 뜻이에요.

 

누구를 밟고 일어서려고 했나요.

일차적으로는 형 에서이고,

이차적으로는 하나님이에요.

얍복강에서 보세요.

하나님이 축복해 주지 않으면 안 놓아주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병신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하나님을 자기 유익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야곱의 심보가 바로 죄인들의 심보에요.

우린 모두가 야곱과 같은 사고로 예수를 믿어요.

예수 이용해서 자기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겁니다.

그냥 소원 이루어달라고 하면 염치가 없으니까 열심과 충성이라는 복채를 가지고 흥정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 하나님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세상의 사고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우상숭배라고 해요.

우상숭배는 영웅주의에게 비롯되었어요.

영웅주의 사고는 마귀적 사고에요.

 

누가복음 4장을 보세요.

 

4:1-13.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 제안을 합니다.

어떤 제안인가요?

세상의 영웅호걸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버는 재벌을 만들어 주고,

천하만국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하고,

신의 능력을 행사하는 초월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이건 모든 인간들이 꿈꾸는 것이에요.

눈만 뜨면 이걸 얻고자 무한 경쟁으로 달리고 동분서주하고 있잖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마귀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에게 무릎 꿇고 절하면 다 이루어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를 바탕으로 세워졌어요.

그래서 모든 종교의 교리가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사상을 두고 있는 겁니다.

인간들이 정선은 근본으로 두고 있는 겁니다.

종교란? 인간들의 정성과 신의 복을 거래하는 장사에요.

세상 신은 다 오케이 하고 있어요.

그러나 기독교만 달라요.

 

기독교는 복을 얻고자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미 복을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추구하는 복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에요.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라는 놈이 교인들을 미혹해서 둔갑을 시켜 놓은 겁니다.

 

잘 보세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뭐라고 하는가요?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지요.

마귀의 논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면 세상의 영웅호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에요.

이걸로 교회 안에서 미혹하는 겁니다.

 

마귀가 그러는 겁니다.

 

!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신데,

니가 그 아들일 것 같으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누리는 영웅호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하나님 아들 다울 것이 아니냐,

니가 찌질하게 살면 하나님을 망신시키는거야,

그러니 내 말을 듣고 영웅호걸이 되어서 하나님 이름을 빛내 봐,

내가 도와 줄게,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시대 마귀의 말을 목사들이 강단에서 하고 있어요.

이 시대 교회가 무당 잡교가 된 것은 모두가 마귀의 전술에 넘어갔기 때문이에요.

교회마다 교회의 정체성을 세상 가치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양복 입은 박수 무당들이 굿 판을 벌리고 있는 겁니다.

교인들은 복채를 내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소원성취의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증거를 교회가 크고 교인들이 많은 것으로 이해 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보세요.

교회 안에 이세벨과 발람의 교훈을 쫓는 자가 있다고 하잖아요.

이세벨과 발람은 모두가 돈을 쫓아서 우상숭배한 자들이에요.

이러한 곳을 사단의 회라고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정체성을 보세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잖아요.

한마디로 세상 것으로 배부름을 입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예수님이 문밖에 계신 겁니다.

직설적으로 기복주의와 신비주의를 전하는 교회 안에 예수님이 없어요.

우상숭배로 가득하니 계실 수가 없는 겁니다.

목사들은 무당이고 교인들은 굿하러 교회에 오는 겁니다.

 

이건 이 시대 교회만 그런게 아니에요.

이미 구약 교회에서도 보았던 풍경이에요.

그리고 이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들이 모두가 소망하는 것들이에요.

 

야곱도 마찬가지에요.

야곱도 이 꿈을 이루고자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겁니다.

벧엘 광야에 하나님이 찾아와서 너와 동행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의 꿈을 이루어 주시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한 겁니다.

 

창세기 28장을 보세요.

 

28:20-23.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잘 보세요.

감사해서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나요?

아니면 자기에게 복을 주면 드린다고 하나요?

조건이 뭔가요?

자기 꿈을 이루어 주면이에요.

먹고 입고 마실 것을 주고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하지요.

이게 뭔가요?

자기에게 복을 주면 하나님이고 복을 안 주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사기꾼이 어디에 있나요.

이 놈이 야곱이에요.

야곱이 곧 우리들이구요.

야곱은 우리의 자화상이에요.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 야곱은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는 꿈을 꾸고 있고,

야곱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영웅호걸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이걸 동상이몽이라고 해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 국물부터 먼저 마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 속에 있는 그 탐욕을 부수어가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사건으로 나타난 겁입니다.

이걸 복이라고 해요.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장자가 받은 복이에요.

지팡이를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지팡이는 하나님과 같아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너는 나를 힘 삼고 살아야지,

너의 힘을 믿고 살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게 언약의 후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모두가 이스라엘로서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지금까지 자기를 간섭해왔던 하나님을 소개해주는 겁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애굽에서 태어났지요?

애굽의 사고는 어떤 건가요?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고,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 구조에요.

 

그런데 리브가가 받은 것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구조에요.

이게 하늘나라 법칙이에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구조입니다.

이게 가나안의 법칙인 겁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애굽에서 살아갈 자들이 아니고 가나안에서 살아갈 자들이에요.

그러자면 애굽의 법칙을 버리고 가나안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그걸 장자와 차자를 엇바꾸어서 안수하는 것으로 보여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지금 손이 잘못되었어요.

오른 손이 차자에게 있고 왼 손이 장자에게 올려져 있어요.

장자와 차자가 바뀌었어요.

그러자 이스라엘이 나도 안다라고 하는 겁니다.

 

19절을 보세요.

 

48:19-20.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나도 안다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겁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왜 그런가요?

너희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우리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애굽적 가치를 죽이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장자가 차자가 되고 차자가 장자가 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는 낮추고 낮은 자는 높이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들을 인간의 방식으로 살지 못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장자란? 힘을 상징해요.

힘이란? 재물일 수도 있고 권세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걸 믿고 살아가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서를 보세요.

에서를 특이한 사냥꾼이라 하고 들사람이라고 하지요.

에서는 자기 힘을 믿고 살았어요.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어요.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하였어요.

에서의 삶이 비언약 백성들인 애굽의 장자들의 삶이에요.

에서의 이러한 삶 때문에 부모님이 탄식을 하지요.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에요.

언약의 후손들이 에서처럼 자기 힘을 의지하고 자기 맘대로 살아가면 탄식을 하세요.

 

그러나 야곱은 달라요.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야 해요.

그렇게 운명이 지워졌어요.

철저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는 힘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삶인 것입니다.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에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려고 힘을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간섭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는 죄악이 드러나게 되어요.

왜냐하면 죄인은 눈에 보이는 힘을 붙잡고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이게 불순종이에요.

 

늘 하는 말이지만 믿음은 믿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드러나요.

그래서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환경으로 밀어 놓고서 믿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믿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죄가 고발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광야에요.

 

광야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광야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가나안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땅이에요.

그래서 광야에서 애굽의 사고로 살고자 하는 출애굽 1세대들을 모두 죽인 것입니다.

 

출애굽을 한 후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12지파 족장들을 불러서 가나안 땅을 미리 정탐케 하였어요.

12 지파 중에 10 지파는 환경을 보았어요.

10 지파 족장들은 가나안의 거인족을 보고서 기겁을 하였어요.

돌아와서는 백성들을 선동했어요.

 

열 지파 족장들이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곳에는 거인 족들이 살더라,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 떼 같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밥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절대 못 이기겠더라,

그러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백성들을 부추기는 겁니다.

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아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우리 힘으로 살았느냐,

애굽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어서 온 것이 아니냐,

그럼 가나안도 우리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믿을까요?

두 사람 말을 믿을까요?

열 사람 말을 믿을까요?

당연히 숫자가 많은 쪽의 말을 믿지요.

그래서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한 겁니다.

 

동일한 곳을 보고도 두 부류로 갈리지요.

열 지파는 환경을 보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어요.

 

여호수아와 갈렙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니까,

열 지파 족장들이 야! 미친놈아 네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우리는 모두 거인 족을 보았는데,

너희 눈에는 거인 족으로 안 보이더냐,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했잖아,

그러니 믿고 들어가자고 하는 겁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환경을 보지 않고 약속을 믿고 들어가자고 했어요.

그러나 열 지파 족장들은 환경을 보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으로 들어갔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열 지파 족장들과 그들의 말을 들은 자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못 들어갔어요.

다 광야에서 죽었어요.

 

왜 환경을 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사람들은 하나도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였나요.

가나안도 믿음이 없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광야나 가나안이나 믿음으로만 살 수 있는 곳이에요.

광야는 가나안에서 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열 두 지파가 똑같이 봤는데 열 지파는 환경만 봤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봤단 말이죠.

그래서 실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에요.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인도자로 들어간 것이에요.

 

이러면 실제 들어간 사람은 갈렙 하나뿐이에요.

이걸 십일조라고 해요.

그래서 구원은 십일조가 받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십일조를 다른 말로 맏물이라고 하고 장자라고도 해요.

천국은 장자들이 들어가는 곳이에요.

장자는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요.

 

십일조란? 전리품이에요.

전리품은 여호와의 전쟁으로 얻어진 것을 말해요.

갈렙은 신앙의 승리자에요.

갈렙이 가진 믿음은 갈렙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에요.

그러니 갈렙은 하나님이 남겨 주신 전리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하는 거예요.

십일조는 하나님 것이니까 너희가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 의미로 모든 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 족장인 갈렙만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간 겁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에요.

유다 지파는 장자 지파이구요.

이러면 장자만 들어간 것이 되는 겁니다.

맞아요.

장자만 천국에 가요.

그래서 하늘에 장자들의 총회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갈렙은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어요.

믿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간 겁니다.

천국도 믿음으로 가요.

예수를 믿는 자들이 들어가요.

예수는 아무나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고 믿기 싫다고 해서 안 믿는 것이 아니에요.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는 믿어지게 하셨고,

녹명되지 않은 자들은 믿어지지 않도록 하셨어요.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선물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주세요.

그래서 전리품인 겁니다.

 

우리는 전리품이에요.

예수님이 마귀와 싸워서 빼앗은 전리품이에요.

예수님은 전리품을 아버지에게 드렸어요.

아브라함이 전리품으로 얻은 롯과 그 가족들을 하나님에게 드렸듯이

예수님이 전리품으로 얻은 성도들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은 전리품의 인생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야곱과 얍복강에서 전쟁을 하고 얻은 자이기 떄문입니다.

야곱을 죽이고 이스라엘로 전리품으로 챙긴 겁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전리품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전리품은 자기 것이 없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에요.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살아가는 것에는 자기 것은 없고 오로지 요셉이 기근으로부터 이긴 양식을 먹고 산 것입니다.

요셉의 양식은 기근으로부터 이긴 전리품과 같아요.

 

남들은 기근에게 다 졌어요.

그러니 양식이 다 떨어진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기근 속에서 양식을 창고에 비축해 두었어요.

기근이 들자 창고에 비축해 둔 양식을 먹은 겁니다.

요셉은 기근은 이긴 것입니다.

요셉의 양식은 기근으로부터 이긴 전리품과 같은 것입니다.

창고에 들어갔다고 나온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으로 오신 것과 같아요.

예수님이 우리의 양식으로 오신 겁니다.

그러니 요셉의 양식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야곱은 양식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어요.

요셉이 준비한 양식을 먹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양식을 다 끊어버리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양식이 다 떨어지자 비로소 애굽의 요셉에게로 내려간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요셉의 것으로 살았어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자기 힘으로 사는 자가 복된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자가 복된 것인가요.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자이지요.

자기 힘으로 사는 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여야 해요.

그러나 하나님의 것으로 먹고 사는 자는 수고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을 법이라 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을 은혜라고 해요.

이러면 야곱에게 있어 얍복강 사건은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얍복강에서 자기 힘이 꺾인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요.

야곱에게 지팡이는 은혜의 상징이에요.

 

그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임종을 맞이하면서 요셉의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지팡이의 비밀을 알려주고 떠나는 겁니다.

자식들에게 지팡이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것입니다.

지팡이 의지하는 인생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인 겁니다.

 

이게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에요.

하나님이 야곱에게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동행하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야곱에게는 힘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잖아요.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동행한다는 것을 안다면 힘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도리어 힘을 축척하려고 했어요.

야곱이 스스로 힘을 버리는가요?

아니에요.

더 갖고자 하였어요.

야곱은 독자적으로 힘을 버릴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강제로 야곱의 힘을 빼앗는 것으로 간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을 간섭하여 자기 뜻대로 살아지지 않으니까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야곱이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이 복된 인생입니까?

자기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의지하고 산 것이 복된 인생입니까?

야곱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산 것이 복된 인생이죠.

진짜 믿습니까?

진짜로?

그럼 여러분들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못 살아요.

 

우린 지팡이보다 보이는 힘을 의지해요.

우리는 여전히 교회 와서 보이는 힘을 달라고 원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원함과 상관없이 간섭하세요.

우리의 인생은 날마다 하나님께 차압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차압해 왔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간섭을 했기 때문에 요만큼 이 자리에 서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겁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시고,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이 떡으로 사는 우리를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리로 인도해 오신 것입니다.

일을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겁니다.

 

인간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인간은 생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들을 강제로 간섭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복이고 아픔이에요.

하나님의 복은 역설적으로 아픔으로 주어져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다양한 고난에 동참한 것입니다.

믿음이 그들을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지요.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작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찾는 이가 많다고 하였어요.

우리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길 원해요

그런데 믿음이 좁은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의 뜻대로 인생이 살아지지 않는 것이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이에요.

이건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끌고 가기 때문에 가고 있는 거예요.

 

야곱이 지금 그 인생 살아왔음을 간증하고 있는 겁니다.

이 길은 나만 걷는 길이 어니고 너희들도 걷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애굽에서 태어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알려주는 거예요.

너희는 애굽의 힘을 믿고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사는 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세상에서 나의 것으로 택함을 입은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하였어요.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면 고난은 자명한 겁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어요.

자기들 식으로 해석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나라가 되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로 서로 다투었던 겁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봅시다.

 

20:20-28.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을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정권을 잡을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되면 자신들은 당연히 한 자리씩 차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청탁을 하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 말을 들으니까 잠시 후면 예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 아들들에게 좋은 자리 하나씩 달라고 하는 겁니다.

 

21절 보세요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세상의 이치로 보면 이건 무리한 부탁이 아니에요.

세상 나라로 따지면 제자들은 개국공신들이에요.

개국공신들은 자연히 요직을 차지하게 되어 있어요.

요한의 어머니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나라를 로마와 같은 나라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되면 예수님은 당연히 왕이 될 것이니까,

왕이 되면 자기 아들들에게 고관대작 자리를 하나씩 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24절 보세요.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제자들이 두 형제들을 보고 분히 여기지요.

왜 분히 여기나요?

그건 다른 제자들도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제자들도 한자리 잡아볼까 그런 사고를 다 갖고 있는 겁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나라를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3년 동안 따라 다닌 제자들의 모습이 이래요

모두가 세속적 가치관을 가지고 예수를 따른 겁니다.

이런 마음은 야곱의 마음이에요.

그럼 예수님께서 이들의 그릇된 사고를 깨트려 주어야 하겠지요.

야곱처럼 환도뼈를 분지르고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힘없이 돌아가신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자 다 도망을 치지요.

이건 제자들이 바라는 그림이 아니거든요.

예수님이 멋지게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고 당당하게 다윗처럼 왕이 되어야 했어요.

그런데 자신들의 바램과는 달리 십자가에 달려서 힘없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리다툼을 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크게 오해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나라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나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걸 내가 너희에게 친히 보여 주려고 왔다고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요 섬기러 왔다고 하는 겁니다.

 

너희들 봐라,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와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왕인 내가 너희들을 섬기지 않았느냐,

이게 하나님 나라 법칙이란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는 마귀적 사고이고 이 세상 나라 가치관이므로 하나님 나라에는 합당치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수 하나님 나라 법칙으로 사셨어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모습으로 사신 겁니다.

 

그것이 28 말씀이에요.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피조물은 창조주의 도움을 입고 산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거예요.

피조물이 창조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창조주가 피조물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는 겁니다.

그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것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섬김으로 구원을 받았고, 지금도 구원을 받고 있으며, 장차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지켜주세요.

 

로마서 5장을 봅시다.

 

5:6-10.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하지요.

이 말은 우리가 구원이 뭔지도 모르고,

또한 구원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 아들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셨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나요?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지요.

이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는 반드시 구원을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고

현재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장차 구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삼 시제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이건 구원이 미완성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시작과 끝이 있는 역사 속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타임라인의 시제로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구원을 삼 시제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삼 시제로 살아가고 있어요.

 

태어나고,

자라가고,

늙어가는 것이에요.

 

이걸 아이들아,

청년들아,

아비들아 라고 해요.

 

이건 토막 토막으로 잘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일직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우린 이걸 인생이라고 해요.

구원이 인생과 같아요.

그래서 구원이 삼 시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과거 시제로 구원을 받았다,

현재 시제로 구원을 이루라

미래 시제로 구원을 이룰 것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여정이에요.

출애굽한 것은 과거 구원으로 단회적인 것으로서 구원을 받았어요.

광야 40년은 현재 진행형이므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입성은 미래 구원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므로 구원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 구원은,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이는 예수님의 삼직 가운데 선지자직에 해당이 되는 것이에요.

현재 구원은, 예수님의 부활 후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의 삼직 가운데 제사장직에 해당이 되는 것이에요.

미래 구원은, 장차 예수님의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님의 삼직 가운데 왕직에 해당되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에요.

항상 오늘 날로 계시는 영생하는 하나님이세요.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섬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자기 백성들을 세초부터 세말까지 눈동자같이 지켜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애굽의 총리 아들이에요.

총리의 아들이라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난 권력자들이에요.

무소불의의 막강한 힘을 가졌어요.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어요.

이들 속에는 애굽적 가치인 힘의 법칙이 심겨 있어요.

애굽적 가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에요.

애굽적 가치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그 신은 다른 하나님이 되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광야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뭔가요?

십계명을 주었지요.

십계명의 첫 계명이 뭡니까?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에요.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신관을 바꿔주는 일을 하신 겁니다.

애굽에서는 힘을 주는 신으로 배웠어요.

그런데 광야에 나와서 알게 된 신은 힘을 빼앗아 가는 신인 겁니다.

여기에 신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겁니다.

 

애굽의 신은 인간들로부터 섬김을 받았어요.

광야에 나와서 알게 된 신은 어떤 하나님인가요?

자기 백성들을 섬기는 하나님이세요.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듯이 자비와 사랑으로 지켜주시는 분이에요.

이 모습을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 주었어요.

그래서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하고자 다투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나라이고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져 주는 그런 나라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도 광야 백성들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목사들은 제자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애굽적 가치를 쫓아가고 있어요.

교회 안을 보세요.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섬김받고자 하지 섬기려 하지 않잖아요.

이건 다른 예수를 배웠기 때문이에요.

 

교회가 하나님 나라 법칙으로 세워지지 않고 세상 나라 법칙으로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교회 큰 걸 자랑하고 교인들이 많이 모인 것을 자랑하고 교회에 유명 인사들이 나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교회가 아니에요.

세상 나라이지 하나님 나라가 아니에요.

교인들도 애굽 사람이지 가나안 사람이 아니에요.

교인들이 애굽적 가치로 모였으니 교회도 애굽의 법칙으로 다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세요.

신의 자리에 앉아 있어요.

모두가 거드름을 피우고 왕 노릇하고 있어요.

세속적 가치로 가득해요.

마치 예수님을 탄핵하던 제사장들과 율법사와 서기관들과 같아요.

목사들이 예수를 죽이고 있어요.

모두가 강한 자가 되었어요.

 

우리도 강한 자로 살고 싶어 해요.

강한 자가 되어야 대접을 받기 때문이에요.

힘을 가져야 무시당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세상의 직위가 그대로 교회 안에서도 통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발언권에 세고 가난한 자들은 발언권을 주지 않잖아요.

이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종말의 교회를 음녀라고 하고,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구약 교회와 똑 같아요.

바벨론에 멸망 당할 때 모습 그대로에요.

예루살렘이 우상숭배로 가득했듯이 교회가 세상이 되어 버렸어요.

 

이대로 두면 안 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를 체질하는 일을 벌리는 겁니다.

구약에 이방 나라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때렸듯이 지금은 세상 정권을 들어서 교회를 정화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는 하늘에 있는 가나안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얍복강 사건이 교회도 일어나야 하고 교인들에게도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라야 일어나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유기시켜 버려요.

그냥 그대로 두어서 세상과 열심히 간음하라고 내버려 두는 겁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면 반드시 깨트리고 지팡이를 주실 겁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할 일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요셉의 두 아들에게 힘의 법칙으로 살지 못하도록 장자를 차자 되게 하고 차자를 장자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야곱이 안수하면서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절대로 힘 의지하고 살지 말아라,

강한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자들임을 깨닫게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 가세요.

역설적인 방법으로 간섭하세요.

모든 성경이 이를 말해주고 있어요.

하나님의 복과 저주가 뒤바뀌어져 있어요.

예수 믿는 성도는 고난 당하고 예수 안 믿는 교인들은 만사형통해요.

 

성도와 교인은 달라요.

성도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셨듯이 하늘로부터 난 자들이고,

교인은 스스로 예수를 따라다니는 군중들이에요.

성도는 하나님께 낳아주시는 것이지만,

교인은 스스로 결정해서 교회를 다녀요.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간섭당하지만

교인은 하나님이 유기시켜 놓았어요.

세상 관점으로 보면 성도는 저주받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교인들은 축복받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적게 모이는데 거짓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형교회들이 인본주의로 반기독교적인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외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무리들과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종교 혼합주의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을 봅시다.

 

9:1-1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9.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11.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 겁니다.

그 놈이 무저갱을 열어버려요.

그러자 큰 풀무의 연기가 올라와서 해와 공기를 어둡게 만들어요.

어두워지니까 황충이 나와서 전갈의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해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이건 비진리로 진리를 가리는 것이에요.

 

이것은 교회 안의 이야기에요.

별은 하늘에 떠 있어야 해요.

그런데 별이 하늘에서 떨어졌어요.

별은 주의 종들을 말해요.

목사들을 말해요.

하늘에 떠 있어야 할 별이 땅에 떨어진 겁니다.

이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임금이 있는데 그 이름을 아볼루온이라고 합니다.

이는 지옥의 사자에요.

마귀에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에요.

가짜 목사들이에요.

 

하나님이 이 놈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는가 하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이니한 자들을 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맞지 않았다는 말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는 육적 신자라는 말이에요.

성도가 아니고 교인들이에요.

이 놈이 교인들을 후리고 다니는 겁니다.

쉬운 말로 거짓 말로 강도질을 하는 겁니다.

 

황충의 모양을 보세요.

머리에는 금 같은 면류관을 썼어요.

금이 아니고 금 같은 거에요.

이건 짝퉁이란 말이에요.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하지요.

이건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란 뜻이에요.

사람이면 사람이라고 하지 사람 같다고 하지 않아요.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사람 같다고 하는 겁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에요.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다고 하지요.

이건 영광을 가졌는데 가짜 영광이라는 뜻이에요.

이빨은 사자 이빨 같다고 하지요.

이건 잔인성을 말해요.

그리고 전갈과 같은 꼬리로 사람들을 해하고 있지요.

꼬리는 거짓 선지자를 말해요.

한마디로 이 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다 거짓이에요.

거짓으로 무장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놈이 거짓 면류관을 쓰고 왕 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이 놈이 누구 같은가요?

이 시대로 보면 세속적 가치로 목회를 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이에요.

여기서 대형교회라 함은 인본주의로 혼합주의로 세워진 교회를 말해요.

사람의 수를 힘으로 삼고 목회하면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에요.

큰 교회라고 다 틀렸고 작은 교회라고 다 옳지 않아요.

교회가 크고 작다는 것 보다 어떤 사고로 목회를 하느냐가 중요해요.

인본주의로 작은 교회를 목회해도 황충이에요.

 

금번 서울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를 보았잖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짓으로 가득한 자를 칭송하고 있잖아요.

거기에 모인 자들이 누구인가요?

교단의 총회장들이 70명이 모였다고 해요.

그런데 교회 폐쇄법을 만든 자를 찬양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썩어도 이렇게 썩었을 줄을 몰랐어요.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아요.

이런 놈들이 땅에 떨어진 별들이에요.

이건 마치 예수를 죽이려고 모인 70명의 산헤드린 공회원과 같아요.

이런 놈들을 일컬어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땅의 임금들이라고 해요.

무슨 일을 하는지 보세요.

 

앞선 8장을 보세요.

 

8:10-12.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물 샘에 떨어지지요.

그 이름을 쑥이라고 합니다.

쑥 물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겁니다.

이 놈들이 진리를 가리는 일을 해요.

그래서 해도 어두워지고 달도 어두워진다고 하는 겁니다.

 

종말을 일컬어 흑암이 깊은 때라고 해요.

죄악이 관영한 시대라고 합니다.

지금이 죄악이 관영한 흑암의 때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하고 있는 시대에요.

 

하나님은 땅에 떨어진 별들을 가지고 육적 교인들을 추수하는 겁니다.

육적 교인들은 진리에 대한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에 다 속아 넘어가는 겁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힘을 쫓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교회가 대형화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보셨잖아요.

반 기독교 단체인 WCC 총회와 WEA 총회를 하잖아요.

교인들은 그렇게 반대하는 데에도 보란듯이 하고 있어요.

이런 곳에 목사들이 4천명이나 참석했다고 해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 떼가 모이듯이 썩은 무리들 속에 타락한 목사들이 모이는 겁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해요.

이들은 목이 곧은 자들로서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마이동풍이에요.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해도 말을 안들어요.

귀머거리 독사가 귀에 붙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구약의 인간들이나 신약의 인간들이나 똑같아요.

그래서 구약 교회의 타락을 신약 교회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겁니다.

구약 교회의 타락을 봅시다.

 

에스겔 8장을 보세요.

 

8:1-18. “제 육년 유월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2. 내가 보니 불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편 에 그 투기의 우상이 있더라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11.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3.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준 예루살렘의 모습은 우상천지였어요.

70명의 장로들이 방안 벽에 그려진 각양의 곤충과 짐승의 우상들에게 향을 피우고 있어요.

즉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는 겁니다.

담무스는 바벨론 신으로 바알과 같이 풍요를 주는 신이에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 25명이 동방 태양에게 경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도 기가 차서 탄식을 하는 겁니다.

 

70명의 장로들이 부활절 연합예배에 모여서 거짓으로 가득한 자를 칭송한 교단 총회장 70명과 같아요.

그러니 구약에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 한국 교회 안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교회가 바벨론에게 망한 것처럼

신약의 교회도 음녀 바벨론에게 망하고 있는 겁니다.

음녀가 땅의 임금들과 음행을 하고 있어요.

주의 종이라고 거들먹거리면서 거룩한 척 세상 정권과 간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림 때도 마찬가지에요.

참 감람나무 비유를 보세요.

예수님이 오셔서 외식으로 가득한 원 가지인 구약 교회를 잘라냈다고 하지요.

그리고 이방인을 접을 붙였어요.

그런데 종말이 되면 이방인 교회가 또 구약 교회 행사 머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 교회도 구약 교회처럼 잘려 나가게 되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요?

마귀가 미혹하기 때문이에요.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못한 것을 알기에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진리를 가리는 일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으로부터 인() 맞지 않은 자들을 어떻게 미혹하는가요?

세상 것으로 미혹해요.

예수님을 시험하던 것으로 해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로 미혹해요.

 

누가복음 4장을 보면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라고 해요.

얼마 동안 떠난다는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들을 시험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난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아요.

즉 쑥물을 먹이는 그런 목사들을 따르지 않아요.

쑥물을 먹이는 목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가짜 신자라는 뜻이에요.

 

마귀는 지금도 미혹하고 있어요.

번영신학으로 미혹하고 기복주의로 미혹하고 신비주의로 미혹해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고 하고,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하고,

예수 믿으면 능력을 행한다고 해요.

 

마태복음 7장을 보세요.

 

7:15-23.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양의 탈을 쓴 이리를 조심하라고 하지요.

이 놈들이 예수님 앞에서 뭐라고 하는가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하지요.

그러자 주님이 난 너희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하면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합니다.

 

이들은 선지자가 아니고 선지자 노릇을 한 자들이에요.

가짜란 말입니다.

이 놈들은 주의 이름을 팔아서 먹고 산 자들이에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로서 황충들이에요.

속은 황충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천사와 같아요.

그러니까 양의 탈을 쓴 이리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리는 양을 잡아 먹고 사는 자들이에요.

교인들 등쳐먹는 자들이에요.

 

유유상종으로 모이게 되어 있어요.

가짜는 가짜끼리 모이고 진짜는 진짜 끼리 모이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유유상종으로 단을 묶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 신자들은 세상에서 잘 살아요.

그러나 영적 신자들은 고난을 받아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 땅에서 비주류로 살게 했어요.

이름하여 나그네와 외국인이에요.

나그네와 외국인이라는 말은 기득권이 없는 자이고 떠날 자라는 뜻이에요.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 아닌 자를 지옥으로 끌고 가라는 사명을 받았어요.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미혹한 뱀을 저주하셨지요.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셨지요.

흙이란? 육을 말해요.

육적 신자들을 땅엣 것으로 미혹해서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일을 하는 겁니다.

 

누구를 가지고 하나요?

땅에 떨어진 별들을 가지고 해요.

이 놈들이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참람한 일들을 행한 자들이에요.

거기에 참석한 놈들은 다 대형교회를 꿰차고 있어요.

그런 놈을 따르는 교인들도 유유상종으로 똑 같아요.

 

참 신자는 그런 무당들을 따르지 않아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르지 땅에 떨어진 별을 따르지 않아요.

하늘에 떠 있는 별은 하늘의 것을 말하고,

땅에 떨어진 별은 땅의 것을 말해요.

 

교회 안에 두 부류가 있어요.

하늘에 속한 영적 성도들이 있고,

땅에 속한 육적 교인들도 있어요.

각자 따르는 목자들이 달라요.

 

육에 속한 자는 소경이니까 무당 노릇하는 소경을 인도자로 두고 따르는 것입니다.

신천지와 같은 다양한 이단에 빠진 자들이나 무당 목사들을 따르는 교인들이나 똑같아요.

모두가 소경이기 때문에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 세상 신이라고 하지요.

왜 그런가요?

하나님이 마귀에게 이 세상을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땅을 주고 어떻게 했나요?

저주하지요.

이 땅은 저주받은 곳이에요.

이 땅이 지옥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은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지진을 일으키는 겁니다.

우리 뜻대로 살아지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각양의 사건으로 땅에 미련을 두지 말고 떠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과 반대로 일해요.

사람들을 이 땅에 붙잡아 두는 일을 하는 겁니다.

땅을 못 떠나게 하는 겁니다.

이 땅에 붙잡아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 따습고 배 부르게 해 주어야지요.

이 땅에서 천국처럼 살게 해 주어야 안 떠나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땅이 지옥이니까 떠나는 것이 복아고,

마귀의 백성들에게는 이 땅이 천국이니까 안 떠나게 하는 것이 복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못하도록 원치 않는 일들을 일으켜서 떠나도록 등 떠미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마귀는 자기 백성들은 땅을 못 떠나도록 부귀영화를 주고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주어서 땅에 코 박고 붙박이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떠나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백성 아닌 자들은 이 땅에 붙박이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은 역설적으로 두셨어요.

천국은 지옥처럼 보이고 지옥은 천국처럼 보이게 하였어요.

눈에 비늘이 떨어지지 않으면 몰라요.

 

무저갱에서 올라온 사자가 마귀를 상징하는데,

마귀는 지옥 갈 백성들을 이 땅을 떠나게 할까요?

못 떠나게 할까요?

못 떠나게 하겠지요.

그래서 마귀는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미혹을 하는 겁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마귀가 주는 이 땅의 복이 전부인지 알고 다 넘어가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일하세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의 힘을 빼앗아 감으로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기득권들을 박탈당하는 삶을 살도록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어지고 미워지도록 하는 겁니다.

야곱이 그런 인생을 살았어요.

야곱만 그런게 아니고 그 후손들도 그 길을 걷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땅에서 육신이 편한 삶을 누리고 싶어해요.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세상에서 잘 살아야 복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오는 겁니다.

지금 제자들같이 예수님 앞에서 나왔어도 예수님으로 덕을 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나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꿈을 완전히 깨트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오해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 땅에 부귀영화를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나는 너희를 세상에서 하늘로 빼내려고 왔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땅에 복을 얻고자 따르고 있지 않느냐,

그건 너희들이 오해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역시 제자들과 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교회 오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들이 마귀적인 사고라는 것으로 드러나고 깨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교회는 이 땅에서 복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 말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곧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에요.

 

그래서 종말의 교회를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음녀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음녀는 붉은 빛 옷을 입고 각종 보석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들고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면서 사치와 연락을 즐기고 있어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를 문밖으로 내 보내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지요.

이는 영적 상태가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입고 마시는 것에 올인한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교회는 극심하게 더 세속화가 되고 타락을 할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흑암이 깊을 때 예수님이 재림을 하세요.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는데 신앙은 점점 더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세상에 잘살수록 세상 것을 더 추구하게 되어 있어요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을 편하게 해 주어요.

편한 것 싫어하는 인간은 없어요.

인간은 편한 것 못 이겨요.

신앙은 언제 타락하는가 하면 편안할 때에요.

구약 이스라엘의 타락은 항상 등 따습고 배부를 때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이 시대 땅에 떨어진 별들이 비진리인 땅의 말인 쑥물로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을 주겠다고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 교인들은 그걸 복음이라고 여겨요.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강도의 굴혈이 되었어요.

초림 때만 그런게 아니고 재림 때도 마찬가지예요.

초림은 재림의 그림자에요.

영적 상태가 동일해요.

 

인간들은 어느 시대이고 모두가 동일한 사고를 가지고 살아요.

죄가 그렇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눈을 감기 전에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총리의 아들이라는 프리미엄도 다 버리고 언약의 후손이라는 이 정체성을 잃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너희들은 애굽의 사고로 살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인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장자와 차자를 뒤바뀌어서 안수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그럼 그 이야기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인가요?

아니에요.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에요.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친히 삶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3년 동안 가르쳤는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못 알아먹는 겁니다.

 

왜 못 알아먹는 겁니까?

아직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성령이 임해야 예수님이 사셨던 그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성령이 예수님의 운명으로 성도를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육으로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니까 전부 도망가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니까 꿈이 다 깨어져 버린 겁니다.

쉬운 이야기로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자마자 예전에 하던 본업으로 돌아갔어요.

그게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는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베드로도 형제들도 고기 잡으러 본업 찾아간 겁니다.

 

이 모습은 제자들의 신앙이 허구였음을 고발해 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들은 출세를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다닌 겁니다.

예수님이 정권을 잡으면 출세할 것이라 믿고 따른 거예요.

그런데 정권은 커녕 힘없이 죽어버렸어요.

그러니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좋은 말씀을 하였어도 당사자가 죽고 없어졌으니 부도 수표가 되고 만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다 찾아 가지요.

고기 잡던 베드로를 찾아가서 너 날 끌까지 지켜준다며,

죽는 데까지 따라간다고 큰 소리쳤잖아,

그래 놓고 출행랑을 치냐,

이 의리 없는 놈아,

그래 날 앞에 두고 저주하고 부인하니까 기분이 좋더냐,

그것도 세 번씩이나,

에라이 이 몹쓸 놈아,

이건 제가 하는 말이고,,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반하고 도망갈 줄 알았어요.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지켜주겠다고 장담을 할 때,

아니야,

너 오늘 밤 날 세 번 부인할 거야,

그리고 하나님이 목자를 치면 양 떼들이 다 도망을 갈 것이라고 하였어,

너희가 나를 떠난 것은 의리가 없어서도 아니고,

배신 한 것도 아니야,

육으로는 나를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줄 터이니 그 분이 오면 너희들은 내 안에 거하게 하실 것이야,

그러니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올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

성령이 오면 그 때 너희들은 나를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

그 분이 너희 안에서 나를 따르도록 너희 인생을 차압하실 것이기 때문이야,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의 인생은 모두 예수님의 것으로 차압을 당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어요.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는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하였어요.

그럼에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핍박받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하였어요.

 

성령이 임하자 그동안 보지 못한 풍경이 초대교회 안에서 일어났어요.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위하여 재물을 내어놓는 겁니다.

그동안 모으고 쌓고 움켜쥐고 살던 자들이 성령이 임하니까 손을 펴고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고 내어놓는 겁니다.

그 누구도 자랑하지 않았어요.

 

율법 아래서는 재물은 힘이었어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그동안 힘으로 여겼던 재물이 힘이 아니란 것을 안 것입니다.

아 이 재물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었구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겁니다.

모두가 차별이 없는 그런 나라가 임한 겁니다.

이게 교회에요.

하나님이 교회는 이런 곳이다 라고 샘플로 보여 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해요.

성령이 성도들 안에 하나님 나라를 몰고 오신 겁니다.

바울이 그러지요.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지요.

무슨 말인고 하니 성령이 임하면 세상의 물질적 가치로 살게 하지 않고 하늘의 영적 가치로 살아가게 하신다는 뜻이에요.

 

성령이 우리를 어떻게 간섭하겠어요?

이 땅에서 힘 있는 강한 자로 살게 하겠어요?

아니면 자기를 비워서 오히려 나누고 섬기는 쪽으로 간섭하겠어요?

나누고 섬기는 쪽으로 간섭을 하겠지요.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세상의 욕심이 사라지는 겁니다.

욕심이 사라지고 자기 것을 내어 놓는 바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자꾸만 거꾸로 생각하는 거예요.

마귀가 우리 속에서 자꾸만 바보같이 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안 하는데 왜 너만 바보같이 섬기고 봉사하느냐,

바보같이 내어놓지 말고 실속을 챙기라고 속삭여요.

그러다 보니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손이 오그라들고 인색해지는 겁니다.

하늘나라 방식으로 살다가 보니 손해를 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손을 펴고 살았는데,

교회 오래 다니다 보니 손을 펴고 섬기는 것이 바보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나이도 들고 살아가기도 힘이 드니까

이제부터라도 움켜잡아야 되겠다고 펴진 손을 오그라 들게 하고 만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고발당하면 도리어 살아봐라 그게 그렇게 되는가,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겁니다.

믿음 없음을 모르고 말씀에 태클을 걸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마음은 점점 강퍅해지고 손은 인색해지고 천국은 저 멀리 가 있고 세상은 이만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늬만 교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야곱에게 안수를 받기 전에는 장자와 차자였어요.

애굽의 원리대로 장유유서로 살았어요.

그런데 안수를 받고 난 후에 장유유서가 뒤바뀌고 만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기분이 좋겠지만 므낫세는 어떻겠어요.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요셉도 마찬가지예요.

아버지가 하는 일이 옳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 장자와 차자가 바뀌었어요.

이거 잘못되었는데요 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야곱은 나도 안다 라고 하면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알고 그랬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요셉은 아버지 입장에서 애굽식대로 하고 싶었어요.

큰 자식에게 좋은 걸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건 모든 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에요.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의 입장에서가 아니고 하나님 입장에서 축복하고 있는 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지팡이를 의지하고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나를 간섭해 온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게 하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요셉아! 이 놈들은 네 아들이 아니고 이젠 내 아들이잖아,

그럼 내가 나를 간섭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어쩌겠니,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그렇게 간섭을 해 가실 것이니까,

내가 아비가 되어서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 놈들이 앞으로 살다 보면 하나님이 나를 간섭하셨듯이 이 놈들도 간섭을 하실 터인데,

그럼 이 놈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야 실족하지 않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내가 눈 감기 전에 나를 간섭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 놈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깊디 깊은 사랑인가요.

험한 세상을 이기게 하려는 아버지의 아픈 사랑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간섭을 하세요.

우린 모두가 그렇게 간섭을 당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눈이 둔감해서 그렇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간섭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간섭해 오셨고 또한 간섭을 해 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이 시대 교회 이야기로 해봅시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흘리고 교회를 세우셨어요.

교회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낳아진 자들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부모에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겠어요?

똑같이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사고를 가르칠 것 아니에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고,

또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 제물로 주려 하심이라고 하셨잖아요.

이 말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너희들도 이러한 삶을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섬기는 자로 만들어 간다는 뜻이에요.

요한복음 맨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요?

 

요한복음 21장을 봅시다.

 

21:15-18.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도망을 간 제자들을 찾아가시지요.

왜 찾아갑니까?

이 놈들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에요.

12 제자들 속에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제자들이 자기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들이에요.

이들에게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효력을 주어야 하잖아요,.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찾아가서 아침 밥을 해서 먹이신 것입니다.

조반을 먹이신 후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에 내 어린 양들을 먹이고 치라고 하시지요.

양을 먹이고 치라는 말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잘 가르치고 잘 따라 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조반을 먹이신 줄 아세요.

이제 새로운 날이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육의 시대에서 영의 시대로 바뀐 겁니다.

떡으로 살던 시대에서 말씀으로 사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새 아침이 밝은 겁니다.

그럼 새로운 일을 해야지요.

 

무슨 일을 하나요.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법칙인 장자가 차자를 섬기고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지는 일을 해야지요.

이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예수님)의 힘으로만 할 수가 있어요.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힘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인생은 차압하고 가나안의 인생으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인생은 법으로 사는 것으로서 힘의 법칙으로 사는 것이고,

가나안의 인생은 은혜로 사는 것으로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에요.

 

성령이 그렇게 간섭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띠 띠고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띠 띠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성령이 예수님과 우리를 한 몸으로 묶어 버리겠다는 말씀이에요.

 

이게 법궤를 싣고 벧세메스로 올라가는 두 마리 암소에요.

법궤가 두 마리 암소를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울면서 가는 길이에요.

소들은 좌로나 우로나 가고 싶은데,

등에 올라탄 예수님이 그 길이 아니고 이 길이야 라고 데리고 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띠 띠지 않으면 우린 곁길로 가고 말아요.

예수님이 함께 띠를 띠고 가기 때문에 천국으로 가서 기쁨으로 찬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원하는 길은 죽는 길이겠어요.

성공해서 권세 부리는 길이겠어요.

권세 부리는 길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라는 것은 권세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지는 길이에요.

예수님처럼 죽는 자리로 이끌려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띠 띠고 간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 일이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그대로 실제로 일어나 버렸어요.

성령이 띠가 되어서 베드로를 끌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는 겁니다.

그 보혜사 되신 성령님이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세요.

왜 오셨겠어요.

우리를 예수님의 가신 길로 끌고 가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성령이 끌고 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와 있는 거예요.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 속에서 예수님 십자가 사건을 재현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날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입나다.

우리 꿈이 깨어진 자리에 하나님 나라의 법칙들을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1서에 보면 신앙의 여정을 인간의 인생으로 표현을 하였어요.

 

아이들이 나오고,

청년들이 나오고,

아비들이 나와요.

 

인생은 아이로부터 시작해서 아비로 끝이 나요.

 

아이들의 특징은 꿈을 꾸어요.

청년들의 특징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아비가 될 것 같으면 인생무상을 깨닫게 되어요.

꿈도 성공도 일장춘몽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요.

인생이 늙으면 힘이 빠지는 거예요.

늙고 병들면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요.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요.

그래서 늙고 병들면 전능자를 찾게 되어 있어요.

이게 복이에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그렇게 간섭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꿈을 주었다가 그 꿈들이 깨어지는 아픔들을 겪게 하세요.

승승장구 일취월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둘씩 빼앗기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세요.

 

좋은 신앙은 어떤 것이냐?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이 가장 좋은 신앙이에요.

이 일들이 언제 일어나는가 하면 다 빼앗기고 난 후에 일어나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속에서 이 땅에 의지할 힘이 될 만한 것들을 하나둘씩 차압해 가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도록 하세요.

아버지 도와주세요 라는 긍휼의 자리로 우리를 밀어 넣으시는 겁니다.

긍휼의 자리로 밀어 넣었을 때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눈이 어둡고 다 죽어가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삼아서 새로운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야곱의 실력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간섭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의지하고 했다고 하는 겁니다.

야곱이 자식들에게 축복하는 것조차도 자기가 한 실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실력임을 드러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야곱이 이스라엘로 임종하는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간섭해 오셨고 지금도 간섭해 가고 있는 중이에요.

사람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하여 내게 하신 후에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임종 때 하는 일이나 말들이 가장 진실하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알던 장로님 한 분이 임종시에 하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장로님은 교회를 건축하면서 물심양면으로 교회 일을 많이 하셨어요.

수석 장로님이다 보니 자신의 뜻을 많이 피력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교인들과 불협화음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이것이 갈등 요인이 되어서 서로 간에 반목과 갈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 와중에 장로님이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겁니다.

몇 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온 겁니다.

병문안을 갔더니 제 손을 잡고서 간청을 하는 겁니다.

당시 제가 열심히 특심하던 때였으니 장로님이 귀하게 본 모양이에요.

 

정 집사,

내 말을 좀 들어 줄 수가 있겠는가 하고 묻는 겁니다.

그럼요.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서 마음에 묻어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동안 교회 일을 하면서 교인들과 일어난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때는 교회 일이 신앙의 전부라 생각하여서 자기주장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다른 분들과 다툼을 많이 했다고 하는 겁니다.

 

임종을 앞두고 보니까 참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더라는 겁니다.

아버지 앞에 선다고 생각하니 살아온 인생이 너무도 초라하고 부끄럽다는 겁니다.

자기 딴에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자기 공명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감정적으로 부딪힌 교인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한분 한분 불러줄 수 있겠는지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이야기해서 서로 화해하도록 하였어요.

제가 그 곁을 지켜 보았는데 서로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하였어요.

아 우리 하나님은 마음에 맺힌 것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다 풀고 데려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암이 온 몸으로 전이가 되어서 손을 쓸 수가 없으니까

주치의께서 더 이상 병원에 있어도 소용이 없으니 집으로 가서 임종을 맞이하라고 하여서 반 강제로 퇴원을 한 겁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몇 일 계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소천 할 때 제가 곁에서 지켜 보았는데,

제가 손을 잡고 장로님 그동안 험악한 세월을 살아오시느라 애쓰셨는데 이제 주님 품에서 평안히 쉬세요 라고 하니 눈을 껌뻑거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셨어요.

 

제가 장로님의 임종을 보면서 하나님께 참 감사를 했어요.

죽음 앞에 자존심도 다 내려놓게 하여서 화해를 시키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주께서 우리를 이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세상에서 맺힌 한() 들을 다 풀게 하고서 데려가시는구나!

 

전도서에 보면 잔치 집에 가지 말고 초상 집에 가라고 하지요.

이는 죽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너희들 날 만나야 하잖아!

세상에서 맺힌 것들은 다 풀고 오라는 겁니다.

 

천국은 사망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우스갯말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던 것들을 가지고 천국 문에 서면 삐 삐 삐 하면서 당신은 이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해요.

그래서 죽기 전에 다 회개케 하시는 겁니다.

원망도 섭섭함도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다 내려놓고 데려가시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가 되어요.

그래야 하나님이 영혼을 받으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지요. 스데반도 그랬어요.

그럼 우리도 그래야지만 하는 겁니다.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끝자락에는 용서와 사랑이 나와야 해요.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긍휼의 자리 밖에 없어요.

은혜 밖에 없어요.

주여 종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라는 것이 신앙고백으로 남아야 해요.

그 긍휼의 자리에 앉히기 위하여 버려짐의 자리로 등 떠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에 보면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을 삼았다고 합니다.

아골 골짜기가 어떤 곳인가요?

아간과 그 가족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가 불태워진 곳이에요.

아간이 무슨 죄를 지었나요?

여리고 성에 있던 시날산 외투와 은과 금을 훔친 것이었어요.

 

여리고는 향기라는 뜻으로 이 세상을 상징해요.

세상이 무너져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우리 안에 여리고의 것들을 탐하는 것이 있어요.

그것들을 가지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가 없어요.

여리고의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재물이에요.

 

예수님께서 네 주인이 누구냐 라고 하면서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그러지요.

재물을 하나님과 동등 선상에 놓은 것은 인간의 마음을 주장하기 때문이에요.

라오디게아 교회가 재물을 신으로 섬겼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문밖으로 내 쫓은 것입니다.

 

재물이 죽어야 해요.

그래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좌정하세요.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좌정해 계셔야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빼앗아 가는 것이 세상 것들이에요.

이걸 아골 골짜기에 불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은 삼십을 받았어요.

그런데 에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예수님 몸 값으로 받았던 은 삼십을 제사장에게 갖다 주고 목 메달아 죽었어요.

제사장들은 이 돈은 부정한 것이라 하고 성전에 두지 않고 밭을 하나 샀어요.

그 밭을 아겔다마 피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피밭을 나그네들의 무덤을 삼은 겁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핏 값으로 세워진 곳이에요.

교회가 나그네들의 무덤이에요.

무덤은 장사지내는 곳이에요.

교회는 광야처럼 옛 사람을 다 장사지내야 하는 곳이에요.

우리 옛 사람이 아간과 같아요.

시날 산 외투를 탐하는 자들이에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은 모두가 시날 산 외투와 같아요.

교회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묻어야 하는 곳이에요.

아간이나 야곱이나 우리 옛 사람이나 다 같아요.

내가 여리고 물품을 탐하는 아간이고,

내가 세상의 것을 움켜쥐고자 하는 야곱이에요.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하늘 문이 열려요.

여리고 물품들이 아골 골짜기에 불태워져야 하늘에 소망의 문이 열려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힘을 삼고자 하는 것들은 하나둘씩 차압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지팡이 신앙을 안수한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일을 시작하신 이가 끝날까지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띠 띠고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있는 바 족한 줄 알고 감사함으로 이스라엘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곱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로 들려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야곱을 죽이고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우리는 못하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 인생의 주관자가 되셔서 우리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우리 인생을 간섭해 주세요.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 주신 천국을 빼앗기지 말고 누리게 하여 주세요. 장자와 차자가 뒤바꾸어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멘으로 받게 하시고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라도 요동치 말고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