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육의 일과 영의 일

정낙원 2008. 7. 24. 19:17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

 

 

성경은 인간 세계를 일컬어 육이라 하고, 하나님 세계를 영이라고 한다.

 

인간이 하는 일은 육적인 일이 되고, 하나님이 하는 일은 영적인 일이 된다.

 

인간에게선 영적인 일이 나올 수가 없고 예수님에게는 육적인 일이 나올수가 없다.

 

영적이다 육적이다 라는 것은 누가 하느냐를 두고 하는 말이지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시면 다 영적인 일이 되고, 인간이 하면 다 육적인 일이 되고 만다.

 

영적으로 사세요! 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라는 뜻이다.

 

성도가 영적으로 사는 것과 육적으로 사는 것은 누구에게 소속되어 사느냐로 논한다.

 

육적으로 사는 것과 영적으로 사는 것은 주인의 문제이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면 육적인 삶이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살면 영적인 삶이다.

 

육적인 일은 반복이 되지만 영적인 일은 반복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일평생 반성을 반복적으로 하며 살아간다.

 

육은 이렇게 살아선 안되지 라고 돌이키지만, 그러나 그 상황이 되면 또 그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은 일평생 엘리베이터 타듯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산다.

 

교회에 충성하고, 술 먹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것은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은혜 받는 일은 인간이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행사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가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은혜를 따내려고 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사모할 뿐이다.

 

육에 사람은 충성과 열심히 나오지만 영에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나온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육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면 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쪽에서 은혜 받는 비결이라는 말은 육이 만들어 낸 발상이지 신앙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영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행사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인간이 마음 먹는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인간이 마음 먹어서 믿어지는 예수라면 그 예수는 가짜 믿음이고 가짜 예수이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믿음은 언제든지 내가 포기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시는 믿음은 내가 포기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은 인간의 행함의 여부와 상관없이 취소 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은 예수를 믿을 수 없도록 해 놓으셨다.

 

믿을 수 없도록 해 놓으셨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일이 인간의 본성과 반하도록 해 놓으셨다는 말이다.

 

인간은 본성은 자기에게 좋고 편한 것은 하고자 하지만, 피해를 주는 것은 피한다.

 

인간이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뜻과 반하고 인간의 소원을 거두어 가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소원을 빼앗아 가 해체를 시키신다.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한다.

 

땅이란? 인간을 말하고 불을 던진다는 것은 죽인다는 뜻이다.

 

살고자 하는 것인 인간의 본능인데 죽이겠다고 하는데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인간들은 가정에 행복을 위해서 예수를 믿지만 예수님은 가정에 분란을 일으키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면 아무라도 믿을 수가 없는 영에 일이다.

 

 

 

'주보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 인생과 미래 인생  (1) 2008.07.24
인간은 죄를 못 이긴다  (1) 2008.07.24
비밀스러운 십자가  (1) 2008.07.24
당신이 믿고 있는 예수는?  (1) 2008.07.24
지독한 사랑  (1) 200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