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비밀스러운 십자가

정낙원 2008. 7. 24. 21:51

 

세상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십자가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는 옳고 그름을 판단 하는 기준이 다르다.

 

어둠은 어둠의 법으로서 판단하고 빛은 빛의 법으로서 판단을 한다.

 

예수님의 세계를 빛이라고 한다.

 

반대로 이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한다.

 

어두움이란?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빛의 세계에서 판단하는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니 세상 지혜로는 아무리 죄다 의다 하여도 어둠에서 아는 죄이고 의일 뿐이다.

 

빛에 속한 예수님의 십자가에 도는 세상 지혜로 알 수 없다.

 

인간들이 안다고 하는 십자가는 어둠안에서 인간 입장에서 아는 십자가 일 뿐이다.

 

이는 소경에게 무지개 색깔을 논하는 것과 같다.

 

마치 빛 아래서 색종이를 가지고 무슨 색인지 알아맞히라고 하면 

 

자기 색을 분명하게 맞힐 수가 있지만 어두운 곳에서 알아맞히라고 하면 모르는 것과 같다.

 

빛 아래선 분명하게 여러 색이지만 어두움 아래서는 다 동일한 색일 수밖에 없다.

 

바울은 율법 아래서 신앙을 판단하였을 때에는 예수를 핍박하였다.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믿어서 열심하였던 것이다.

 

율법이 곧 어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빛을 만나고 보니 자신이 어둠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은 율법적 판단으로 자신들은 빛에 거하여 밝히 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들의 판단에 의해서 예수가 틀렸다고 정죄하여 예수님을 죽였다.

 

그것도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인 것이다.

 

바울은 그것이 마귀의 일일 줄이야,,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유대인들은 인간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옳고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둠에 속한 유대인들이 말씀을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지키고자 하였다.

 

난 이제부터 죄 안짓고 착하게 살고 말씀대로 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어두움일 뿐이다.

 

말씀을 지키겠다는 것은 가상한 일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말씀을 지켜 낼 수가 없는 죄인임을 모르는 것을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하셨다.

 

이는 마치 어둠 속에 있으면서 색종이의 색깔을 알아맞히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소경이 색종이를 들고 색깔을 알아맞힌다고 한다면 눈뜬 사람이 뭐라 하겠는가.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소경이라고 하였다면 죄가 없을 텐데 본다고 하니 죄가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 없는 자만이 지킬 수가 있다.

 

죄인이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자기가 소경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

 

그런데 세상이 빛이라고 하는 예수님을 오히려 어두움이라고 죽여 버렸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옳다고 천명해 주셨다.

 

이제 예수를 죽인 세상은 어둠이라는 것이 들통이 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세상 지혜로는 알 수가 없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만 알아보게 하시려고 비밀로 두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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