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글

어느 장례식 풍경

정낙원 2008. 8. 25. 01:43

어느 장례식 풍경

 

손아랫 동서가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다.

연락을 받고 밤새 서울로 올라갔다.

도착하여 보니 동서가 다니던 교회에서 나온 집사님들이 장례준비를 위해서 분주하다.

 

처제에게 상황을 들어 본다.

사업에 실패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그러니 49세의 나이로 급사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서 대리 운전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다 보니 장례 치를 돈도 없단다.

부조금으로 치러야 할 판이다.

친정 형제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셈하기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교회에서 나온 장례 준비하는 집사님에게 혹여라도 교회에서 어떤 도움을 입을 수 있는지 넌 저시 물었다.

어려운 가정인데 이런 일을 당하면 교회에서 배려해 주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대답 왈! 교회에선 지원 할 것이란 여전도회에서 나와 음식상 차리는 것과 예배 드려주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한 마디로 돈 나올 구멍은 없단다.

 

워낙 돈 많은 대형교회라서 혹 금전적 지원이라도 바랄용으로 물었는데 영 아니올시다이다.

심지어 장지로 갈 때 교인들이 타고 갈 교회 버스도 돈을 내고 사용하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교회가 크다가 보니 죽는 사람이 많아서 지원 할 수가 없단다.

 

교회방침이 그렇단다.

교회 법이 그렇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하랴,

돈 긁어내는 데는 교인이 많아서 좋은데 교인이 많아 죽는 사람이 많을 때는 나 몰라이다.

참으로 셈 법 하나 교묘하고 고약하다.

하기사 죽었으면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교회에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나쁜 심보이지,,

 

갑자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떼거리가 우르르 몰려들어 온다.

족히 오십명은 될 듯싶다.

이유인즉 입관예배를 드리러 왔단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구석진 곳에 앉았다.

 

설교 내용이 오로지 죽은 사람 칭찬 일색이다.

교회에 충성스럽게 봉사 하였으니 천국에 갔단다.

그리곤 둘러선 무리들에게 죽은 사람의 신앙을 본 받으라고 한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 죽었단다.

교회적으로 손실이 크단다.

유족들에게도 죽은 사람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한다.

아마도 사업에 실패하고 교회에서 산 모양이다.

 

예배가 끝나고 처제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어째서 시간 시간마다 김 서방을 본받으라고 설교를 하는지,,,,,

 

대답인즉 사업에 실패하고 새벽기도 하러 나가면 밤에 들어오곤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사업에 실패하고 상심한 마음을 달래려고 교회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일어서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 달렸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남 선교회 총무를 맡아서 교회 청소에, 안내에,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쫓아 다녔단다.

내년엔 남 선교회 회장에 출마하려고 열심을 내었단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집사라고 칭찬이 자자하게 돌았단다.

여 집사들은 자기 신랑들에게 김 집사님 좀 본받으라고 채근하곤 하였단다.

처제에게 어쩌면 신랑이 저렇게 신앙이 좋으냐고 부러워들 했단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자연히 목사들 눈에도 띈 모양이다.

죽기 전날 주일날에도 새벽에 나가서 밤 11시에 집에 들어 왔단다.

그리곤 월요일 날 죽었다.

 

목사들이 이걸 놓칠 리가 없다.

그 얼마나 교인들을 옥죌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 아닌가?

그러니 시간 시간마다 죽은 사람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교인들에게 교회를 떠나지 말고 충성하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설교 시간 내내 집사람은 내 얼굴을 힐끔 힐끔 쳐다본다.

못 마땅한 눈치이다.

혹시 내가 나설까봐서 경계하며 나서지 말라는 눈치이다.

 

장지로 출발하는 날 아침이다.

발인예배를 드린다고 교인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또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보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예외없이 어떤 본문을 설교하여도 충성하라는 것이다.

고인의 열심을 귀감으로 본 받으라고 한다.

한마디로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신앙이란다.

 

어떻게 예배시간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서는 단 한마디도 안하는지가 신기할 따름이다.

하나님이 철저하리만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귀를 막고 입을 봉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울의 마지막 설교가 생각난다.

 

사도행전 28장 26-27=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나님께서 어쩌면 이처럼 귀를 닫고 마음을 닫게 하실 수 있는지 참으로 끔찍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복음이 믿어지고 깨달아진다는 것이 참으로 너무나도 귀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발인예배를 드리고 화장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망자가 충성하던 교회로 운구차가 이동한다고 한다.

 

왜? 화장장으로 가지 않고 교회로 가느냐고 물으니 고인의 혼이 서려 있는 곳에서 노제를 지내야 한단다.

혼잣말로 아주 쑈를 하는구만 중얼거려 본다.

교회에 도착하자 영정 사진을 들고 교회로 간다.

 

차 안에서 교회를 둘러보니 엄청나다.

한 동네 전체가 교회이다.

운동장만한 주차장이 두개이고 교육관이다, 뭐다 하는 건물이 수두룩하다.

거대한 왕국이다.

 

차에 앉아서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왜? 그런가 하고 차에서 내려 가 보았다.

영정 차가 간 곳으로 가 보았다.

아마 본당인가 보다.

 

교회에 들어가는 앞 계단에서 영정 사진을 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막 끝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참다못해서 한마디 역정을 낸다.

“이게 무슨 짓인가? 무당 굿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러냐” 고 소리를 버럭 치니 놀라는 기색이다.

 

장례 준비 위원장인가 하는 집사가 영정사진을 차에 걸고 운전하는 처남에게 교회를 한 바퀴 돌으란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었다.

고인의 흔적과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처남에게 소리를 치면서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빨리 장지로 가라고 하였다.

 

곁에 섰던 장례준비 위원장 집사가 왜? 그러느냐? 불쾌해 한다.

그러면서 퉁명스럽게 나에게 누구냐? 누구신데 그러느냐 라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울산목양교회 정낙원 목사이고 죽은 김 집사의 동서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 그러시냐고 몰라봐서 죄송하다면서 거만하던 기색이 금새 누구러지면서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갑자기 저 자세로 나오는게 당황스럽다

 

아마도 교회에서 목사에게 순종하라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모양이다.

그러니 목사라는 말에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예 그렇게 하지요 라고 꼬리를 내리지,,,,

속으로 일찍 목사라는 것을 밝힐 것을 그랬나 싶다.

그래서 이 엉터리 짓하는 것들을 막을 걸 그랬나,

 

빨리 화장장으로 가지고 채근하여 운구차를 고속도로에 올렸다.

 

차 안에서 아내와 말한다.

이번에도 분명히 예배드릴 때에 복음을 전하지 않고 고인을 본 받아서 교회에 충성하라는 설교를 할 텐데 아예 내가 설교를 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말하였다.

 

아내가 하는 말!

아니 누가 당신더러 설교하라고 할 것 같으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한번만 하면 다 끝나니 참으란다.

 

한참을 가다가 운구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간다.

아마 잠시 쉬었다 가려는가 보다.

갑자기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스친다.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나서 하관예배를 인도할 목사를 불렀다.

 

점잖게 내 신분을 밝히고 그 동안 여러번 설교하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하면서 그동안 수고가 많았으니 이번에 설교는 내가 하겠다고 하였다.

좋은 핑계로 동서의 마지막 가는 길이니 내가 설교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신은 교구담당목사로서 이런 일을 처음 하는 것이라서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설교를 해 주면 자기는 좋고 고맙겠다고 한다.

하지만 교인들이 많이 와서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 본 교회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겠다고 한다. 혹시 당회장에게 알려지면 문책을 당할 수 있다는 투다.

 

잠시 후 날 찾아 왔다.

설교는 곤란하다고 한다.

본 교회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들 교회 교인들 앞에서는 다른 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것은 안 된단다. 당회장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도는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기도를 해 주실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럼 그러라고 하였다.

 

화장장에 도착하여 마지막 예배를 드리려고 쭉 둘러 모였다.

족히 백여 명은 될 듯싶다.

순서가 되자 기도하라고 소개한다.

설교를 못하게 하니 기도를 핑계 삼아서 설교하기로 하였다.

 

왜? 인간은 죽어야 하고,,,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복인지,,,

왜? 인간에게선 구원받을 의가 나오지 않으며,,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은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약속 안에서 받는 것이라고,,,,

 

인간의 행함엔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으니 죽은 사람 본받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믿으라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에 가지만 여기 죽은 김집사 충성을 본받으면 지옥에 가니 김집사 신앙을 본받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라고,,,

 

교회에 열심 내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암튼 복음을 말한다고 하면서 약 10분간 기도가 아니라 설교를 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분위기가 술렁거린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깨닫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건넨다.

더 말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다.

하지만 다른 교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더는 가까이 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시무룩하고 언짢은 기분이다.

목사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나쁜지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괜히 기도를 시켰다 싶은 분위기이다.

 

화장을 위해 관을 화구 쪽으로 운구하니 각각의 화구 앞에서 각각의 종교 놀음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쪽에선 한 무리들이 모여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염불을 외우고 유족들은 울고불고 난리이다. 유족들은 망자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면서 몸부림이 처절하다.

 

다른 한 쪽에선 남묘호랭계교 라는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한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불교 의식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주기도문 외우듯이 중얼거린다.

 

또 다른 곳에선 벽에 몸을 부딪치면서 절규를 한다.

왜? 이리 일찍 죽었느냐고!

남은 사람은 어찌 살라고 원통하고 애통하다고 땅을 치면서 통곡한다.

 

그리고 우리 쪽에선 교인들이 천국에서 만나보자고 찬송가를 부른다.

참으로 신도 다양하고 종교도 다양하다.

한 마디로 총 천연색이다.

각각의 풍경들을 하나의 앵글에 담으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이 화구 속으로 들어가고 문이 굳게 닫힌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유족들만 남겨두고 교인들은 모든 예배가 끝이 났는지 돌아가려고 교회버스에 오른다.

처남이 유족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하라고 등 떠밀면서 교회 버스에 오르게 한다.

버스에 오르자 아까 기도를 한 것이 기분을 상하게 하였는지 시큰둥하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언제 당신들을 보겠느냐!

복음을 전하고자 마이크를 잡았다.

짧은 만남 속에서 느낀 신앙적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 한마디 한다.

 

목사의 말을 믿지 말고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으라고,,,

교회 다니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예수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보이는 교회를 붙잡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약속을 붙잡으라고,,,,,

 

인간의 충성에서 구원의 능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원의 능력이 나온다고,,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한 것은 신앙으로 내어 놓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내어 놓으라고,,

 

보이는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교회라고,,,

암튼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하고 수고하셨다고 잘 가시라고 기도하였다.

 

어떤 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어떤 이는 불쾌하다는 태도이다.

떠나가는 버스를 보니 어떤 분들은 손을 흔들고 어떤 분은 못 본척한다.

 

이번 장례식을 치르면서 느낀 것은 종교적으로 너무도 잘 훈련되어진 사이비 교주 아래 속한 한 집단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철저하게 목사를 신격화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정들을 본 것 같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집단적으로 종교적인 최면에 걸려서 빠져 나 올수 없는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각본에 따라서 옴짝달싹 못하며 움직이는 기계적 사람들을 본 것 같다.

 

동서도 그 집단적 종교 최면에 결려서 허우적거리다가 숨을 멈춘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쓰레하다.

 

차라리 내가 바라본 것이 사실이 아니고 기우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 생각이 빗나가고 틀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 하나 망하여서 온 동족이 살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바울의 심정이 전이 되어 온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우셨던 예수님의 눈물이 지금 내게서 나오고 있다.

 

 

다윗의 기도가 내 안에서 흘러나온다.

 

 

시편 51편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주여 종을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에 성을 쌓으소서"

 

 

'신앙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쟁이  (0) 2008.09.08
개혁이라는 말에 미혹당하지 말라  (0) 2008.08.30
올림픽 개막식  (0) 2008.08.16
능력 없는 목사  (0) 2008.07.25
개혁이라는 뱀의 독  (0) 2008.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