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글

개혁이라는 말에 미혹당하지 말라

정낙원 2008. 8. 30. 17:02

 

개혁이라는 말에 미혹당하지 말라

 

 

미혹이란? 본질을 가리는 것이다.

마귀는 복음에 본질만 가리면 성공한 싸움이 된다.

신앙의 본질이란? 예수그리스도와 아버지 간에 세우신 새 언약을 믿는 것이다.

 

새 언약이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죄사함 받는 것이다.

내가 받을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받으신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구원에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서만 성도가 구원이 되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앙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만 믿는 것이다.

 

마귀도 구원의 능력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성도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에서 눈을 떼게 하려고 관심사를 다른데 돌리게 하는 일을 한다.

 

성도의 관심사를 너무 다른 것으로 돌리면 탄로가 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미혹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름으로 교인들을 미혹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데서야 누가 교회를 우습게 여기겠는가?

당연히 교회에 충성하고 열심을 내는 것이 옳고 좋은 신앙이라고 믿게 된다.

 

마귀는 예수그리스도 대신 항상 교회를 앞세운다.

이렇게 되면 마귀의 궤계가 멋지게 성공을 한 셈이다.

 

마귀는 믿을 대상을 예수그리스도에게서 교회로 대체 시키는데 성공한 셈이다.

교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교회를 아름답게 가꾸지 아니 할 수가 없다.

 

보다 더 좋은 교회로,

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로,

보다 더 예수님의 냄새가 풍기는 교회로 만들어가고자 애쓰게 된다.

 

흔히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한다.

이 시대 교회는 너무도 세속적이라고 하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지는 운동을 벌린다.

이름하여 교회를 성경적으로 되돌려 놓자는 개혁운동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라고 묻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김없이 하는 말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들먹인다.

초대교회를 들먹이는 이유 중에 가장 큰 매력은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구제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일들이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자기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서 교회에 내어 놓는 것이다.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시대 교회들은 물량주의로 빠졌다는 것이다.

교회가 너무 대형화 되어 기업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은 물질만능주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초대교회의 모습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교회의 본연에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너무도 성경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그 내면을 감찰해 보면 마귀의 엄청난 술수임을 금새 알아채게 된다.

 

교회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제가 느낀대로 한마디로 말한다면 상대적인 열등감에서 오는 푸념들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대형교회를 가지고 있는 목사들은 개혁을 외치지 않는다.

설령 외친다 하여도 자기를 감추기 위한 수준에서 외친다.

 

물론 큰 교회 목사 중에도 개혁을 외치는 목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혁을 외치는 목사들은 적은 교회이거나 아니면 무임 목사들이다.

 

아니 목사님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항변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항변도 교회의 본질과 비교하면 금새 들통이 난다.

 

어떤 분이 저희 교회에 올려진 블로그에 글을 보고선 전화를 했다.

좋은 글들을 올려 주셔서 고맙단다.

자신은 고신교회에 몸담고 있다가 교회가 너무도 세속화 되어가는 모습이 역겨워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집사님이신데도 신학자들을 들어가면서 말씀 하시는게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하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기성 교회에 치부가 보이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나왔겠지,,

얼마나 역겨웠으면 교회를 나왔겠는가?

 

일단은 기존 교회의 모습에 식상해 한다는 모습엔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진리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해산의 고통이라는 생각이리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교회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으며 붙잡고 있느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붙잡지 않으면 교회 안에 있으나 나오나 똑같다.

 

진정으로 십자가 도를 믿고 붙잡고 있다면 장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진다면 지옥 속에 가 있어도 괜찮다.

그 하나님의 약속이 건져 낼테니깐?

요나처럼 지옥이 감당하지 못하고 뱉어 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회의 개혁에 대하여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제가 교회의 개혁을 말씀 하시는데 무엇이 교회의 개혁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버릴 것은 무엇이고 취할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대답이 교회 안에 십자가도 없애고 절간 같이 화려하게 해 놓은 것들을 버리고 권위적인 제도들을 타파하는 것으로 말한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하시진 않았지만 제가 듣는 느낌으로는 기존의 개혁주의 자들이 외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가 않아 보인다.

 

마침 어제 저녁에 교회개혁연대라는 싸이트에 들어가 본 것이 생각이 난다.

교회개혁연대가 외치는 것을 보면 주로 교회의 제도를 바꾸는 것들이다.  

지금 한창 논쟁을 벌리고 있는 이슈가 일천번제를 드리지 못하게 하지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권위를 없애자 라던가,

교회의 계급이 사라져야 한다거나,

목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거나,

교회가 과도하게 부동산을 사들이지 말자 라는 것이나,

교회가 너무 의식종교로 흐른다거나,

교회 제정을 투명하게 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거나,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느니,

교회의 세습은 막아야 한다는 대충 이러한 성질의 등등에 것들이 주 이슈들이었다.

 

이들이 벌리는 개혁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좋은 사회를 만들고 좋은 교회를 만들어서 교회가 세상에 욕을 먹지 않게끔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너무도 욕을 먹는 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자정 운동을 벌려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진리는 아니다.

듣기 좋은 말과 진리는 다르다.

개혁주의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진리는 생명에 관한 문제이다.

진리는 복음에 관한 문제이다.

진리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혁을 외치는 분들의 말대로 교회를 뜯어 고쳤다고 생각하자.

제가 묻는다.

목사가 가운 벗어 던지고 대신 청바지 입고 설교한다고 구원의 능력이 나오느냐이다.

예배당 없이 학교 강당 얻어서 예배드린다고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교회 세습 안하고 다른 목사에게 물려준다고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이들이 고쳐야 한다는 것들을 뜯어 고친다고 해서 거기서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런 것이 복음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헛된 싸움을 하지 말고 “오직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만 바라봅시다 ”라고 해야 된다.

 

복음이란? 구원의 능력이다.

교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병폐들을 혁파하였다고 해서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나온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이다.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증거하여야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이것은 세월이 가고 시절이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여도 안되고 변할 수없는 것이다.

 

다시한번 말한다.

 

구원의 능력은 교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교회가 할 일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구원의 능력이 나오는 예수그리스도에게 눈길을 돌리도록 하여야 한다.

 

성도들의 관심사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게만 두도록 하여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은 상태에서의 교회 개혁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분명하게 말하지만 교회를 붙잡으면 지옥에 간다.

 

그 증거가 바로 유대인들이다. 

스데반 집사가 성령에 감동으로 유대인들의 성전 중심의 신앙에 허구성을 지적해 주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어떤 능력이 나온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신앙을 성전과 연관시켜서 확인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가 바로 성전이니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셨다.

 

이는 곧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성전은 성전이 아니란 말이다.  

이것을 이 시대적으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가 증거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란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 꼭 우리교회도 십자가 도를 전하는데요 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전하는 십자가는 자신들이 삶을 윤택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 부적처럼 믿어지고 외워지는 것이지, 난 죄사함 받았으니 다 날아가도 좋습니다 라고 하는 차원에서의 복음이 아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약속이 내 안에 있으므로 난 망해도 좋습니다 라는 차원의 복음이 아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회자되는 복음은 사람들이 길흉화복을 가져다주고 막아주는 상업용 부적일 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정으로 안다면 자기를 확장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부인되어지지 않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교회를 개혁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어치피 이 세상은 죄 아래 타락한 세상이다. 

해 아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 없다.

어둠이라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을 생산해 내지를 못한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것만 받으신다.

예수그리스도의 기도를 받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헌신을 받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제물만 받으신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사를 좋은 교회 만드는데로 돌리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하여야 한다.

 

이는 구원의 능력은 좋은 교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자들은 한마디로 타락한 교회를 뜯어고쳐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자고 하는데, 이 역시 또 다른 교회일 뿐이다.

 

우리끼리 좋은 교회 만듭시다 이다.

심하게 말해서 좋은 교회라는 이름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또 다른 교회일 뿐이지 진리는 아닌 것이다.

 

세상엔 좋은 교회 나쁜 교회는 없다.

오로지 진짜 교회이냐, 가짜 교회이냐 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좋은 교회 나쁜 교회를 만들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만 만들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교회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 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교회라고 하지 인간이 모인 집단을 교회라고 하지 않는다.

지붕에 붉은 십자가를 세우고 오색찬란하게 조명을 하고 내부에 고상하고 웅장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성가대가 잇고, 파이프 오르간이 잇고 점잖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교회가 아니다.

 

바울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다. 

진리란? 예수그리스도이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면서 사회성을 가진 집단적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둘만 모여도 조직을 만들려고 하고 힘을 모으려고 한다.

자기 조직을 키우고 자아 확장을 꿈꾼다.

 

죄는 자아 확장을 하도록 날마다 순간마다 인간을 부추긴다.

죄의 몸으로 사는 인간은 그 누구라도 자아 확장이라는 이 마력을 이길 수가 없다.

 

이는 복음을 외치는 목사나,

개혁을 외치는 목사라 할지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늘 자기를 부인하는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묘해서 조금만 자아가 확장이 되면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

처음엔 복음 복음 하다가도 교회가 어느 정도 부흥이 되면 그 집단에서 안주하고자 한다.

그 집단 속에서 왕 노릇하고 싶어 한다.

 

결국 그릇만 차이가 날 뿐이지 본질 면에선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다를 바가 없다.

큰 도둑이고 작은 도둑일 뿐이다.

큰 무당이고 작은 무당일 뿐이다. (내일 설교 할 내용인데,,,)

 

교회가 힘이 된다 싶으면 예수그리스도에게 목숨을 의탁하지 않고 교회에 의탁하고자 한다.

그래서 자기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다르다는 것으로 교인들을 붙잡아 두고자 한다.

 

자기는 개혁적인 목사라고 한다.

자기 교회는 다른 교회와 같지 않은 개혁주의 교회라고 한다.

그래서 교인들을 개혁이라 이름으로 미혹하여 자기 우리에 가두려고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에 말을 듣도록 훈련된 충견으로 사육한다.

자기 뜻에 맞는 교인으로 만들어 간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자기 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기양양하게 다른 교회와 비교하면서 봐라! 우리 교회는 다르다.

너희들 한번 나가 봐라 어디 가서 이런 교회를 만나겠는가?

또 어디 가서 이런 개혁적인 목사를 만나겠는가? 라고 은근히 자랑 겸 공갈을 친다.

 

그러면 무식한 교인들은 복음으로 평가를 하여야 함에도 복음을 모르니 다른 교회와 비교하여서 아!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안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교회는 그 사람에게는 구원의 방주가 되는 셈이다.

이 때부턴 교회를 지키게 된다.

누가 우리교회를 헐뜯고 폄훼하면 이리떼처럼 달려들어서 공격을 한다.

드디어 교회라는 이름의 바벨탑이 쌓아진 것이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구원의 능력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에서만 나온다.

교회를 뜯어 고친다고 구원되지 않는다.

사회에 빛과 소금 역할을 한다고 구원되지 않는다.

 

개혁은 신앙이 아니다.

그져 하나의 종교적 수사이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러니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지 말고 주 예수를 믿으라.

 

신앙이란? 날마다 순간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속에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지,

앞으로 좋은 교회를 만들고, 좋은 사람이 되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습니다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들 손에 의하여 개혁되어질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고백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하게 해 주셔야만 할 수 있는 고백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세우진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어느 놈이 뜯어 고친단 말인가?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손으로 뜯어고쳐지지 아니할 하나님께서 신앙을 고백케 하신 성도들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이런 교회야 말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이런 고백이 있으면 바른 교회이고 없으면 틀린 교회이다.

신앙고백이 좋으냐 나쁘냐는 없다.

다만 진실이냐 거짓이냐 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교회 나쁜 교회도 없다는 뜻이다. 

신앙고백을 개혁하라고 하진 않는다.

신앙고백은 개혁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리하면 신앙고백하는 사람이 교회인데,

교회를 개혁합시다 라고 한다면 당신의 신앙고백을 뜯어 고칩시다가 된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게 해 주신 신앙고백을 뜯어 고친단 말인가?

 

교회 개혁을 외친다는 것은 곧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내가 가만히 보니 당신의 신앙고백을 들어보니 당신의 신앙고백이 잘못되었으니 뜯어 고쳐 주겠습니다 라는 말과 같이 된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고친단 말인가.

목사 자기가 뭔데 하나님이 하게 해 주신 신앙고백을 뜯어 고친다 말인가?

건방지게!

그러니 교회는 개혁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신앙고백은 목사가 고칠 수 없다는 말에는 다 동의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개혁합시다 라고 한다.  

이들이 개혁하자는 교회는 기껏하여야 인간들이 모인 집단을 손 좀 보자는 것 밖에 다른 의미가 없다.

 

종교적인 행태를 시대에 맞게 리모델링 하자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서 개혁되어지는 교회라면 애시당초부터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에 의한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이외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런 고백은 좋은 교회에 다닌다고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타락된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이라면 구태여 타락한 교회에서 나올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속에서 이건 교회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다니면 된다.

그러다가 나가라면 그동안 잘 놀았습니다 라고 감사하고 나오면 된다.

 

이번 동서의 장례식 때 보니 큰 교회에 다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교회가 크다 보니 조문객이 너무도 많이 와서 부조금이 넘쳐 나니 얼마나 좋던지,,,,

어차피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인데 절간이면 어떻고 타락한 교회이면 어떠한가?

어치피 나와 봐야 이 시대 교회들은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혹시 옆에 복음 전하는 교회가 있거든 옮기고,,,, 

 

다만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고 그 안에서 이겨낼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다니라는 말이다.

경조사가 되면 수입이 짭짤하니,,,,,,왜? 그 좋은 것을 포기하는가?

그러다가 마음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그 때 나오면 된다.

이 말은 어디에 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으면 나와도 별수 없다.

교회 안에 있어도 지옥 가고 나와도 지옥에 간다.

반면에 아버지께서 알게 해 주신 신앙고백이 있다면 어딘들 어떠한가?

 

교회에 의미를 두지 말라.

교회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 다니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당신 속에 그리스도가 있느냐를 묻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 있든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는 다 허상이고 허구라는 것을 알고 다니란 말이다.

 

예수그리스도 이외는 모두가 허구라는 것을 알고서도, 목사님 그래도 난 교회를 개혁하고 싶어요 라고 하면 그럼 그렇게 하세요.

 

자기 성격과 취미가 불의하고 더러운 것을 못 보겠다는데 서야 누가 말리겠는가?

개혁해라 열심히 개혁하다가 재미없으면 그 때 그만두어라.

당신 안에 진리의 성령이 계신다면 언젠가는 에이 내가 헛 지랄을 했네! 라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어치피 인간이란? 자기 고집대로 한평생 살다가 죽는 것이다.

 

교회에 의미를 두는 순간 당신은 뱀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 넣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왜 그런줄 아는가?

개혁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속된 이야기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지 않는다.

호박은 호박일 뿐 외부의 조건에 속은 달라지지 않는다.

 

보통 개혁을 외치는 목사님들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상실감을 채우고자 시도합니다.

나도 큰 교회는 하고 싶은데 지금은 없으니 큰 교회의 비리들을 고발하면서 난 저 놈들과 다르다는 식으로 말하여 사람들 시선을 자기에게로 끌고자 한다.

그래서 자기하고 진짜 멋진 교회를 한번 세워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교인들에게 시선을 끌어서 교회가 부흥하면 그 놈이 그 놈이 된다.

자기도 역시 부흥된 교회를 지키고자 앞서서 타락하였다고 욕을 하던 그런 목사와 교회로 닮아간다.

 

개혁을 외치는 목사나 세속화 된 목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관심 없기는 매 일반이다.

그래서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은 교인들이 없으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 글을 보고 아! 목사님 참 복음적이네요 라고 찾아와서 교회가 커지면 나 또한 교회를 지키고자 할 것이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난 이런 인간입니다 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보이는 교회는 허구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실제입니다 라고 증거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몰라 이것도 그때 가면 달라질런지,,,,,)

 

모든 인간은 다 동일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땅에 진짜 목사는 없다.

예수님께서 이런 인간의 심성을 잘 아셨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고 땅에 있는 자를 선생이라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일러 주셨는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목사를 선생으로 따르고 있다.

목사님 손이 마치 어릴 때 배 아프면 문질러 주던 할머니의 약 손인 줄 안다. 그러니 아무데나 목사라고 하면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모두가 교인들이 복음 전하는 목사를 좋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는 무당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르쳐 주어도 안 믿고 안 듣는 것이다.

 

우리의 참 목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뿐이다.

힘 주어서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참 목자는 예수님이시다.

 

참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분이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분은 예수님이지 목사가 아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않는 목자는 다 삯꾼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목사도 성도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 참 목자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를 믿지 말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당신이 목사를 믿는 순간 목사는 이리가 되어 당신의 것을 도적질 하려고 든다.

 

너무 심한 말을 했나!

 

목사들은 돈 냄새를 맡는데 귀신들이다.

당신의 허점을 목사에게 보이지 말라.

보이는 순간 당신은 목사의 먹잇감이 된다.

 

잠언 7장의 말씀대로 거짓 목사가 술집 여인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달콤하게 접근하여 당신의 주머니를 노릴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을 일컬어 강도요 도적이라고 하셨다.

 

목사가 당신을 위하여 죽어주지 않았다.

당신을 위하여 죽어주신 분은 오직 한분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러니 예수그리스도만 믿으라.

이 사실이 믿어지면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관심두지 말고 자랑하지도 말라.

당신 눈 앞에 십자가가 밝히 보이거늘 누가 꾀는가?

 

누가 교회를 개혁하여야 한다고 말하면

아! 목사라는 직업으로 어떻게 하든지 살아보려고 손님 끌기 위해서 가게 리모델링 하려는구나! 라고 생각해라.  

 

사람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서 망한다.

교회가 타락하는 원인은 돈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교회가 타락하였다고 생각이 드는가?

그럼 헌금을 하지 말아라. 

그래도 정히 헌금하고 싶으면 십자가도만 증거하는 목사들에게 드려라.

 

나중에 주님이 재림 하시면 교회 개혁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지 않고 왜? 복음이 아닌 엉뚱한데 신경을 썼느냐고 책망을 하실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아버지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고백한 사람에 한해서만 청문회가 이루어진다.

 

바울의 말로 가름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신앙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성경적인 성화주의  (0) 2008.10.10
예수쟁이  (0) 2008.09.08
어느 장례식 풍경  (0) 2008.08.25
올림픽 개막식  (0) 2008.08.16
능력 없는 목사  (0) 2008.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