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뱀 우리의 자화상

정낙원 2015. 8. 4. 10:49

◆ 뱀 우리의 자화상 ◆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간교하다는 말은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뱀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뱀은 생명과와 선악과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뱀은 영물이므로 인간보다 더 나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죽고 사는 것을 압니다.

 

알다시피 뱀은 속이는 자이고 미혹하는 자입니다.

뱀은 어떻게 인간을 미혹을 하였는가요?

이는 선악과로 생명과를 가리는 식으로 미혹합니다.

 

뱀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악과가 지니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를 이야기 해 주었을 뿐입니다.

 

뱀은 싸움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뱀은 생명과를 감추기 위해서 선악과를 가지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하와는 그 질문을 덥석 물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관심사를 선악의 세계에 붙잡아 두고자 함이다.

선악의 세계에 머무는 한은 생명의 세계는 요원합니다.

뱀은 선악의 구조 속에서 선을 행하게 함으로 거짓 선에 머물게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은 생명과에 있습니다.

결국 뱀은 인간들이 눈을 선악과의 선에 고정케 함으로서 참 선인 생명과를 가리게 합니다.

 

뱀이 만약 하와에게 하나님이 먹으라고 한 실과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인간의 눈이 생명과로 고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선악과를 따 먹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라고 접근을 하여서 인간의 사고를 먹지 말아야하는 명제 속에 머물게 합니다.

먹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빠지면 먹어야 하는 명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뱀은 인간의 눈을 먹지 말아야 하는 명제에 머물게 하고 맙니다.

 

하와의 눈을 선악과에 붙잡아 두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관심사가 선악과에 고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선악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보는 순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움에 빠지고 맙니다.

 

먹고 싶어졌습니다.

인간들은 마음속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

인간의 모든 신경은 먹고자 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뱀과 인간을 동시에 저주합니다.

둘 다 흙에 가두고 맙니다.

뱀과 인간에게 떨어진 저주가 동일합니다.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흙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흙은 육을 상징합니다.

육은 또한 세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육은 떡을 주식으로 삼고 영은 하나님 말씀을 주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마귀는 40일 굶은 예수에게 떡을 주고자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를 주겠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에게 절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떡에 가두고자 함입니다.

세상에 가두고자 땅에 것으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말 중에 의미심장한 것은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는 말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말 속에는 마귀가 성도를 어떻게 미혹하는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마귀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아들 상(像)은 이 땅에서 성공하는 자입니다.

이는 롯의 처 처럼 세상에 미련을 두고서 땅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말에 일언지하에 거절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것은 떡에 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성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떡에 가치로 사는 자가 아니라

언약에 가치로 사는 자라고 합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뱀이 예수님에게 한 유혹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계속되어 집니다.

세상에서 영웅이 되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여서 주류가 되라고 합니다.

이는 관심사를 세상에 붙잡아 두고자 함입니다.

관심사가 세상에 머물게 되면 하늘은 자연히 멀어지게 됩니다.

 

땅에 지체를 죽이라는 것은 육신의 가치로 살지 말고 영생의 가치로 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추구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를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했습니다.

 

떡이 좋은 사람은 떡과 가까이 놀 것입니다.

반면에 말씀이 좋은 사람은 말씀과 가까이 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삶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뱀에 미혹당한 거짓 목사들도 동일한 말을 합니다.

사람에 주소지를 땅에 붙잡아 두고자 합니다.

이는 뱀의 독을 마신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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