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흙으로 돌아가라는 복음

정낙원 2015. 8. 8. 09:49

◆ 흙으로 돌아가라는 복음 ◆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자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죄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하고 일찍 죽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죽음을 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영생으로 나아가고,

어떤 이는 영벌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되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제 2 라운드의 삶으로서의 갈라짐이 됩니다.

 

죽음은 어떤 이에게는 복이고 어떤 이에게는 저주입니다.

영생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복이고,

영벌로 나아가는 자는 저주가 됩니다.

 

이 땅에서 육신으로 오래 살고자 하는 사람에겐 죽음은 저주입니다.

반대로 이 땅을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축복입니다.

 

누가 이 땅에 오래 살고자 합니까?

이는 이 땅에 주소지를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름하여 뱀의 후손들입니다.

 

그럼 누가 이 땅을 빨리 벗어나고자 합니까?

이는 하늘에 주소지를 두고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흙으로부터 벗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성경적 죽음 관으로 죽음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계 14:13절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는 성도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수고를 그치고 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해하면

이 땅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곧 수고와 슬픔이란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일찍이 모세는 인간들이 죄악 된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이사야 선지자는 성도의 죽음을 이 땅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침상에서 평안하게 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도의 죽음은 축복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저주 받은 죄인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예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있어서 세상에서의 삶이란 형벌과도 같습니다.

저주 받은 죄인으로서의 삶은 오래 살수록 고통이 가중되고 빨리 끝낼수록 수고와 슬픔이 작아집니다.

 

그래서 욥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이 복이고,

오래 사는 것보다 태어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복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자기 백성들을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심으로서 저주의 삶을 끝내게 하셨습니다.

성도에겐 이 세상에서의 삶이 죄인으로서 형벌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 부활의 세계에서는 안식으로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말씀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복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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