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죽은 자를 살리는 길

정낙원 2015. 8. 13. 10:04

◆ 죽은 자를 살리는 길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사랑입니다.

그럼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담을 에덴에서 추방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이유는 생명과에서 차단키 위함입니다.

이는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아담이 생명과를 먹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생명과는 먹으면 영생을 합니다.

 

죄인인 아담이 생명과를 먹으면 죄인으로 영생하게 됩니다.

이는 영원한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이 저주를 벗어주기 위하여 아담을 생명과로부터 단절시킨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아담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럼 죄인이 된 아담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은 선악의 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선악의 사람에서 해방시키는 방법이 역설적이게도 선악의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이 와서 죽음의 권세를 깨트려 줄 것이라는 약속을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에게 있어 최고의 소망은 선악에 가두어진 사람을 죽음에서 해방을 시켜줄 여자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와서 선악의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십니다.

 

성경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였다고 합니다.

창설이란? 어떤 목적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어떤 목적인가요?

 

창세전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세전 언약을 펼쳐 보이기 좋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게 아담과 하와 그리고 선악과와 생명과입니다.

 

에덴동산 안에는 두 과실을 두었습니다.

두 과실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있는 것이므로 두 과실은 곧 두 언약을 상징합니다.

창세전 언약 속에는 죽이는 언약과 살리는 언약이 있습니다.

 

이것을 옛 언약인 율법과 새 언약인 은혜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은혜는 살리는 것입니다.

두 언약은 곧 두 예수를 상징합니다.

 

예수도 죽이는 예수가 있고 살리는 예수가 있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는 선악과처럼 죽이는 예수이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생명과처럼 살리는 예수입니다.

 

생명이 어떻게 주어지는가?

이는 예수에 의하여 죽임 당한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생명을 담으려면 먼저 선악의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옛 언약으로 죽임 당한 자가 생명과인 새 언약으로 살리심을 받게 됩니다.

아담 안에서 난 자가 죽어야 예수 안에서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자기백성을 구원하는 원리가 이러합니다.

먼저 흙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뱀을 통하여 흙에서 난 자를 죽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은 자에게 생명과를 먹여서 영생하는 자로 살려 내십니다.

 

그래서 창조가 저녁에서 아침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길을 역설적이게도 죽은 자를 죽임으로서 살려 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 된 자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