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정낙원 2015. 9. 11. 22:22

◆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

 

역사는 창세전 언약을 그려내는 도화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역사 전반에 창세전 언약이 흐르고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구원을 받을 자와 유기 될 자인 두 민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둘이 전쟁을 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트리고,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에 발꿈치를 무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는 장차 예수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단의 권세를 깨트릴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담은 이 약속을 안고 에덴동산을 떠나옵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가인의 이름은 ‘얻음’ 즉 ‘있음’이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아벨의 이름은 ‘허무’ 즉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속에는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걸어갈 운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인은 이 땅에서 있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인생을 살 것이고,

아벨은 땅에서 버림당하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은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가인은 농사짓는 자로서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로서 양을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부하셨습니다.

이를 성경은 증거하기를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 나은” 이란 말은 “옳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아벨은 어떻게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는가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에게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인은 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방식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나아오는 자들은 거부하십니다.

 

그러자 가인이 분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반발이며 하나님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름하여 죄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이름대로 있음을 위하여 아벨을 없음의 자리로 밀어내고 죽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가인을 뱀의 후손에 속한 자라고 하고 아벨은 여자의 후손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제사는 의(義)에 행위입니다.

이 제사가 신약으로 오면 율법에 의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의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난 의를 받으십니다.

 

율법에 의를 상징하는 가인이 믿음에 의를 상징하는 아벨을 죽였듯이 지금도 행함을 의지하는 자들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재현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자와 아벨의 제스를 드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옛 언약인 인간의 열심으로 나오는 것이고,

아벨의 제사는 새 언약인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나아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심에 새 언약으로 나아오는 자들이 옛 언약인 행함을 주장하는 자들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당하게 됩니다.

 

 

 

'주보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한 복과 저주   (0) 2015.09.14
가인과 아벨 그리고 나  (0) 2015.09.14
생명의 길을 막아버린 하나님   (0) 2015.09.11
여자의 길과 남자의 길  (0) 2015.09.11
죽은 자를 살리는 길  (0) 201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