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가인과 아벨 그리고 나

정낙원 2015. 9. 14. 09:16

◆ 가인과 아벨 그리고 나 ◆

 

가인과 아벨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가인과 아벨은 큰 틀에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뱀의 후손은 육으로 난 자로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약속으로 난 자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항상 전쟁을 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는 육(율법)으로 난 자들이 성령(약속)으로 난 자들을 핍박하는 구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림 때에는 유대인과 예수님과의 싸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옛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이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을 핍박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둘째는 가인과 아벨은 우리 안에 두 사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가인과 아벨은 한 아담 안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한 아담 안에서 나왔다 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란 말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말합니다.

가인은 아담 안에서 난 우리 옛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아벨은 예수 안에서 난 새 사람을 상징합니다.

 

이 둘은 항상 싸웁니다.

이 싸움에서 옛 사람이 새 사람을 이기는 형국으로 나타납니다.

옛 사람을 ‘아담 안에서 난 나’이고, 새 사람은 ‘예수 안에서 난 나’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가인이 되어서 아벨인 예수를 죽이는 원수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면 항상 예수를 죽인 살인자로서 서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어서 지켜 주십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어 지켜주신 것은 신약에서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회개케 하여 구원해 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셨는가요?

이는 죄인이 하나님의 긍휼로 산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함입니다.

 

또한 가인을 통해서 죄의 소원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고발하기 위함입니다.

가인 속에 있는 죄의 소원은 하나님이 하는 일에 항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동의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 동의 할 수 없는가요?

이는 선악의 법 아래서 난 가인 안에는 독자적인 심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선악의 법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반기를 들게 합니다.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는 편애성을 드러내셨을까요?

이는 아벨을 통해서 가인 속에 있는 선악의 법이라는 죄를 끄집어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죄가 언제 본색을 드러내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투입이 될 때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불러내는 미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인 면에서는 가인은 육에 속한 자이고 아벨은 영에 속한 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적용하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아벨(예수님)을 죽이고도 용서로 살고 있는 가인이고 또한 예수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죽임 당하는 아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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