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정낙원 2015. 11. 3. 09:18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

 

성경은 나타난 것은 감추어진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행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어떤 일을 행할 때에는 그 행함을 일으킨 원인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에 선진들은 모두가 믿음이 주체가 되어서 어떤 행함을 도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누구는 어떤 일을 하였다는 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감추인 것이고 행함은 드러난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이 행한 일도 감추어진 원인에 의한 것입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발가벗고 수치를 드러내는 일을 하고 맙니다.

이 모습을 본 그 아들들은 두 가지 상반 된 반응을 나타냅니다.

 

함은 아비의 수치를 조롱하는 것으로 반응(행함)을 하였고,

셈과 야벳은 수치를 가려주는 것으로 반응(행함)을 하였습니다.

 

어째서 동일한 사건을 가지고서 정 반대의 행동을 하였을까요?

이는 함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았고, 셈과 야벳은 하나님이 간섭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함은 율법으로 행동하였고, 셈과 야벳은 은혜로 행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데 함과 셈이 한 일은 그 아비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의 아비는 마귀였고, 셈의 아비는 여호와 였던 것입니다.

 

알다시피 노아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수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노아는 이 사실을 자식들에게 알리고자 방주에서 나와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물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무지개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하셨습니다.

하남님이 노아의 가족을 은혜로 저주 속에서 살려 준 것은 앞으로 저주와 상관없이 은혜로 사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주는 정결한 짐승이 대신 담당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피를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피를 흘렸다는 것은 누군가 대신 죽었다는 말입니다.

홍수 후에 살아난 자들은 피를 보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흠 없는 제물이 죽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노아의 아들들을 시험하십니다.

여기에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수치를 드러내는 식으로 동원이 됩니다.

노아의 수치를 어떻게 대하느냐를 가지고 복에 자손과 저주의 자손으로 갈라집니다.

 

노아가 마신 포도주에 “그” 라는 정관사를 붙여서 이미 예전에 마셨던 “그 포도주”라고 합니다.

이는 과거에 수치를 드러나게 한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포도주란? 말씀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오는 음녀가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행의 포도주는 타락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최초에 타락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 시켜서 하와를 미혹하여 타락케 하였습니다.

뱀은 하나님 말씀을 왜곡시켰습니다.

이게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한 것은 타락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셈이 아비의 수치를 가려준 옷도 동일하게 “그 옷”이라고 정관사를 붙여서 말합니다.

그럼 이 옷도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준 “그 옷”이란 말이 됩니다.

이는 흠 없는 제물이 죽어서 남긴 가죽 옷을 상징합니다.

 

이게 신약으로 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면 복의 자손과 저주의 자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느냐 모르느냐로 갈라지게 됩니다.

 

자신의 수치를 예수님의 피로 가리움을 입은 사람은 셈처럼 수치를 가리는 모습으로 살 것이고, 자신의 수치를 가리움을 입지 못한 자들은 함처럼 수치를 조롱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삶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셈을 칭찬하지 않고 셈으로 하여금 수치를 가려주게 하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함은 수치를 드러냄으로서 가리움을 입지 못한 자로 저주를 받게 됩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도 그 안에 법이 있는 자는 법으로 내어 놓고, 그 안에 은혜가 있는 사람은 은혜를 토해 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남을 장죄하고 죽이는 칼로 사용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남을 살리고 덮어주는 것으로 시용을 합니다.

 

결국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팥이 납니다.

그 속에 마귀가 있으면 복음 가지고도 남을 정죄하는 마귀 짓을 하고,

그 속에 예수가 있으면 복음으로 남을 덮어주고 살리는 예수의 짓을 하게 됩니다.

 

예수의 짓을 했다고 하여도 그건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하신 것이므로 자기를 자랑 할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행하게 하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를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했다고 합니다.

 

야고보서에는 이것을 믿음이 일으킨 행함이라고 합니다.

이 행함이 없는 자는 죽은 자이고 귀신의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을 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분리되고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하나입니다.

 

믿음이 일으킨 행함이 나타납니까?

그 믿음을 주신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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