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만나와 안식일

정낙원 2016. 5. 22. 04:31

◆ 만나와 안식일 ◆

 

신앙이란? 종에서 아들 법에 사람에서 은혜의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빼내서 언약 백성들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일을 하십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야지만 살아 갈 수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스스로 살아 갈수가 없는 광야로 인도하셨을까요?

광야에서 하나님은 애굽의 떡에 가치로 살던 자들을 하늘에서 만나를 주어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나는 배부름을 주기 위한 먹거리가 아닙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양식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안식에 동참하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만나를 거두게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게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안식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여호와의 안식이 있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장소적으로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지만 광야에서는 일곱째 날 여호와의 안식일로 초대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주어진 일곱째 날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가지고 성도의 구원이 어디로 지향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완성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에서 만나를 가지고 여호와의 안식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여호와의 안식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 40년 생활은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말합니다.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여호와의 안식에 동참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이 안식일이 교회 모임으로 나타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임은 여호와의 안식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이 자기 피로 값 주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날에 교회로 모이는 것은 주의 날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을 하시고 안식의 세계로 나아간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란? 단순하게 쉬는 날이 아니고 여호와의 창조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왕의 아들에 혼인잔치에 참예치 않는 자를 징벌하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왜? 자기 사정을 핑계로 왕의 아들에 혼인 잔치에 참예치 않음이 징벌 받을 죄가 됩니까?

이는 왕의 도움으로 살고 있음에도 그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저주 받을 죄가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안식일은 왕의 아들에 혼인잔치에 동참하는 것과 같습니다.

광야에서의 안식일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 생활 속에서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예치 않은 자들을 징벌하신 것과 같이 동일한 죄를 물어서 징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엿새 동안만 내리고 일곱째 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의 엿새는 이 세상 전체를 의미합니다.

 

엿새 동안 내린 만나는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역사 속에서 엿새가 차기까지 언약 백성들을 여호와의 안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창조의 일을 하십니다.

 

만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생명 자체는 아닙니다.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도 생명 자체가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을 주는 대속 제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오셔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만나를 먹거리로 생각하고 쌓아 두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를 탐욕으로 믿으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는 자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했습니다.

 

만나를 먹거리로 쌓아두려고 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부자가 재물을 쌓아 둔 것은 재물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광야의 이스라엘이 만나를 쌓아두면 생명을 지켜준다고 믿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육신을 이 세상에서 성공시키고 살찌우게 해 주시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구원 또한 이 세상의 복을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구원을 출애굽으로 말하는 것은 이 세상 것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은 성령의 간섭하심 속에서 날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편안한 삶을 꿈꾸는 것은 마귀가 주는 미혹이면 죄인의 탐욕으로서 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