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넷째 날, 참 빛으로부터 온 빛의 아들들

정낙원 2017. 10. 21. 08:58

◆ 넷째 날, 참 빛으로부터 온 빛의 아들들 ◆

 

구원을 보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빼내심과 새사람으로서의 자라감이 있습니다.

창조도 이와 같습니다.

 

구원과 창조는 동의어입니다.

신앙생활은 옛 것은 제하고 새것으로의 채움이 있습니다.

 

첫째 날에서 셋째 날은 갈라내는 것으로 되어 있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조의 6일을 갈라냄과 채움이라는 두 구조로 구분을 하면

 

첫째 날과 넷째 날이 짝이고,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이 짝이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짝이 됩니다.

 

첫째 날 빛은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의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둘째 날 궁창 위와 궁창 아래의 갈라짐은,

다섯째 날 바다에는 각종 고기와 하늘에는 새가 창조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셋째 날 바다와 땅의 분리는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의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에 궁창에 해와 달이라는 두 광명을 창조하였습니다.

두 광명으로 주야(晝夜)를 나누게 하였습니다.

 

해는 낮을 주관케 하셨고,

달은 밤은 주관케 하셨습니다.

 

광명을 “마오르” 라고 하는데 이는 “참 빛으로부터 온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의역하면 “참 빛을 받은 자들” “참 빛을 소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참 빛이란? 첫째 날의 원초적인 빛을 말합니다.

 

첫째 날 빛은 원래의 빛이고,

넷째 날 빛은 복사 빛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생명을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날의 빛은 세상에 생명(빛)을 공급해주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넷째 날의 두 광명의 빛은 예수님으로부터 생명(빛)을 받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이 세상은 죄 아래 있는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죽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세상에 예수라는 빛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예수님의 빛을 성도들에게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후 4:6절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두 가지 빛이 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빛과 빛을 받아서 발하는 빛이 있습니다.

이러면 넷째 날 해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달은 교회와 성도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은 참 빛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어둠에 비추는 빛들입니다.

 

해와 달은 어둠이라는 세상에 빛으로 둔 것은 참 빛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심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을 비취는 빛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를 구원한 것은 이방의 빛을 삼고자 함입니다.

 

행 13장47절 “주께서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벧전 2:9절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5: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두 광명으로 땅을 비추게 하고 낮과 밤을 주관케 하셨습니다.

“주관하게 하셨다(마솰)” 라는 말은 “지배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주관한다는 말은 교회는 세상 위에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해와 달을 통해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는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때와 기한을 알려주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의 시간을 알려주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모습은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의 시간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