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예수님 이야기

정낙원 2017. 12. 31. 13:32

◆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예수님 이야기 ◆

 

아담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하나되는 이야기 속에는 이중적 계시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이야기로 풀면 타락하는 이야기가 되지만, 예수님 이야기로 풀면 구원이야기가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창세전 언약이 역사에서 어떻게 펼쳐질지를 보여주고 있는 모형적인 그림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부모가 되고자 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이 부모를 떠나 독자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은 기뻐하고 축하 해 줄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담이 가장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담 할 수 있을 때입니다.   

아담이 아내에게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줄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럼 아담은 아내를 맞이하기 전에 먼저 생령에서 생명의 사람으로 한 번의 거듭남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거듭남이 없이 독자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은 죽음의 길입니다.

결국 생령인 아담이 부모를 떠나 아내를 맞이함으로 온 인류를 죄 아래 가두는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아담을 영생하는 자들만이 살아갈 수가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곤 죄의 원흉인 뱀의 머리는 깨트릴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뱀의 머리를 깨트릴 여자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남자로서 부모를 떠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건한 남자로서 부모를 떠나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실패한 것을 회복하고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안에서 나온 여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 당겨서 한 몸을 이루십니다.


아버지로부터 떠나옴을 입은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기 안에서 나온 자들을 위하여 한 몸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언약의 후손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고자 함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운명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이 모습이 아담이 여자가 주는 선악과를 먹고 함께 죽음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담은 선악과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몸에서 나온 여자가 들고 온 선악과를 먹은 것은 여자와 운명을 함께하고자 함입니다.

  

이 모습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상징하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례는 세례를 받는 자가 세례를 주는 자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다시피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죄가 없는 분이고, 세례요한은 죄 아래서 태어난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죄가 없는 분이 죄인과 연합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의 성도들이 예수님과 연합이 된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와 연합이 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대속 제물로 드립니다.

 

이는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죄 없는 자가 죄인을 위하여 대속 제물이 되어서 죽임을 당하여서 죄인이 죄사함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처럼 자기 안에서 나온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언약의 후손들을 위하여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잘 알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담과 하와 이야기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결혼이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생명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어서 남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남편은 주인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어서 키워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가 준 생명을 자기 몸을 다 하여서 길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몸은 뱃속의 남자가 준 생명인 아이를 키워내는 구조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인생을 끝이 나고 어미의 인생을 전환이 됩니다.   

여자에서 남자가 된 것입니다.


남자란? 자기 몸에서 나온 자를 위하여 희생(죽음)하는 자입니다.

이를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여자의 해산의 수고를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편 앞에서는 유약한 여자이지만 아이 앞에서는 강인한 남자입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종용히 하고 남편에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여자에서 예수의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남자가 될 때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명이 영글지 않은 여자는 교회에서 참 남편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 말씀을 자기 몸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여자가 예수그리스도로 남자가 되면 이제부터 남자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서 자기 몸인 교회를 위하여 제물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약의 후손들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것으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대표로 이들이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기 안에 예수라는 생명을 세상에 퍼뜨리는 남자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남자가 부모를 떠남입니다.

부모를 떠난 남자의 삶은 예수님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예수의 생명을 위해 버림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몸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섬김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섬김은 남자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교회를 돌보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일컬어 남자의 삶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기를 희생하는 남자로서의 삶을 일컬어 산 제사라고 합니다.

산 제사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영적 예배가 드려집니다.

자기 몸을 언약의 도구로 드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영적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구원이란? 나로 살던 인생을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으로 차압당하는 것입니다.

이게 가나안 전쟁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천국이 침노해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침노해 오셔서 자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케 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날마다 겉 사람은 후패해져 가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쇠하고 예수가 흥하게 됩니다.

이를 나는 날마다 죽고 예수 안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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