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간의 전쟁

정낙원 2018. 2. 4. 13:35

25강.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 (창 3:13-15)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서로 원수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뱀의 후손은 마귀에게 속한 자를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말합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는 형제 싸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담의 집안에서는 가인과 아벨로,

아브라함 집안에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으로,

이삭의 집안에서는 에서와 야곱으로,

야곱의 집안에서는 요셉과 그 형제들로 나타났습니다.

 

국가적으로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타났고,

교회적으로는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로 나타났고,

언약적으로는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나타났고,

신앙적으로는 율법과 은혜로 나타났습니다.

 

이 둘은 항상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항상 가짜가 먼저 강한 자로 나타나고 진짜가 나중에 약한 자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약함 속에 생명(하나님의 약속)을 담아 두셨습니다.

세상 속에서는 강함이 약함을 핍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약함으로 강함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사망이 약함(생명)을 삼킨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생명이 사망을 삼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마귀가 예수님이 진 것 같은데 실상은 예수님이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트리고 뱀의 후손은 여자의 발꿈치를 물게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트린다는 것은 여자의 후손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력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문다는 것은 시험하여서 넘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뱀은 성도를 넘어지게 할 수는 있어도 구원은 빼앗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요 10:26-29절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마귀는 시험에 빠트리고 넘어지게 하여 구원의 즐거움을 상실하게 합니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하도록 미혹하여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두 가지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의의 전쟁입니다.

 

율법으로 난 의이냐?

예수그리스도의 의이냐?

 

마귀는 율법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게 합니다.

 

율법의 의는 인간의 행함으로 나오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 나오는 것을 불의라고 하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나오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롬 6:6-14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성도는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났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 함은 율법의 참소로부터 자유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성도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게 하고 마귀는 불의의 병기로 드리게 합니다.

의의 병기는 은혜 아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남기는 것이고,

불의의 병기는 법아래서 인간의 공로를 남기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은혜로 살게 하는데 마귀는 법으로 살도록 미혹합니다.

마귀는 신앙을 우리의 행함에 묶어 두고자 하고,

성령은 우리의 신앙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둘째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전쟁입니다.

 

육신의 소욕은 떡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성령의 소욕은 언약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뱀의 후손들에게 이 세상 것을 분깃으로 주셨고,

여자의 후손에게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마귀는 성도들로 하여금 흙에 붙잡아 두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관심사를 땅에 것을 쫓아가도록 합니다.

마귀는 인간들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 32:15-34절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 32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34 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마귀는 인간들을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마귀는 떡으로 하나님을 잊게 하고 급기야 떠나도록 합니다.

여기에 땅에 속한 거짓 종들을 사용합니다.

 

거짓 종들은 인간의 생사화복이 떡에 있는 것으로 미혹합니다.

여기에 미혹당하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재물을 모으는데 일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로 쉼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물로는 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것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아담이 살아갈 땅을 저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를 품은 이 땅의 것으로는 쉼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쉼은 하늘의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안에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생사화복은 언약 안에 있습니다.

언약 안에 있으면 자족함으로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로부터 자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청년이 자기 형에게 이야기 하여서 자신에게 돌아올 유업을 좀 나누어주게 해 달라고 청을 할 때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면서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왜 어리석은 부자라고 합니까?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관계를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를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합니다.

 

거짓 종들은 떡을 소유함이 마치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라고 미혹을 합니다.

그리하여 성도의 눈을 떡에 머물게 하여서 언약을 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뱀이 선악과로 인간의 눈을 사로잡아서 생명과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떡에 가치로 살게 하고,

성령은 말씀의 가치로 살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떡의 가치로 사는 것을 땅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떡을 쫓아가는 자들을 일컬어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빌 3:18-19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됩니다.

 

마귀가 이기면 우리 몸은 불의의 병기로 드려지고,

이 세상의 떡을 쫓아가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이 이기면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드려지고,

하늘의 신령한 말씀을 쫓아가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 몸도 가 있게 마련입니다.

마음에 떡이 그려져 있으면 몸은 세상과 짝하고 있을 것이고,

마음에 언약이 그려져 있으면 몸은 교회와 가까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들은 하늘나라 소속이므로 이 세상에서 외국인이므로 나그네이고 행인들입니다.

 

히 11:8-16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영적인 전쟁입니다.

의의 전쟁이고, 육신의 소욕의 전쟁입니다.

여자의 후손들은 율법의 의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 안에 거하는 것과,

떡에 가치로 살지 말고 하늘의 말씀의 가치로 살아가는 싸움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전쟁에서 이긴 자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성도 안에서 달음질을 하여 의와 불의 그리고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라는 영적 전쟁에서 이기게 하여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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