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두 가지 옷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

정낙원 2018. 2. 25. 13:23

두 가지 옷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는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고 살았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인간이 옷을 입게 된 것은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부터이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 벌거벗음이 부끄러움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옷이 등장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과 선악과를 먹고 난 후 발가벗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발가벗음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 발가벗음이 수치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담은 발가벗음이 수치로 보이자 옷을 만들어 입고 수치를 가리기에 이르렀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 생각으로 수치를 가렸다.

내가 이렇게 수치를 가렸으니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게 죄이다.

 

창세기는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고,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끝을 알리는 책이다.

그런데 옷 입는 것으로 시작을 하여서 옷 입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인류의 시작을 여는 에덴동산에서도 수치를 가리는 옷이 등장하였듯이,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에도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예하는 신부들에게도 빛나고 흰 세마포 옷을 입혀주신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역사는 옷을 입는 역사로 시작해서 옷을 입는 역사로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입혀준 가죽 옷은 흠 없는 짐승의 희생으로 얻어진 옷이다.

여기서 두 가지 비밀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죄인들의 수치는 하나님이 가려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죄인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흠 없는 짐승이 죽는다는 것이다.

 

인간 쪽에서 죄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죄는 하나님께서 가려 줄 때만 가려진다.

하나님께서는 죽어야 할 아담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흠 없는 짐승을 죽인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이는 곧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의 수치를 가려주실 분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는 옷으로 보내신 것이다.

 

이를 예수그리스도 의로 옷을 입었다고 한다.

성도란? 예수그리스도 의로 옷을 입은 자들이다.

예수그리스도 의로 옷을 입었다 함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죄인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수치를 가려주는 옷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일컬어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들이라고 한다.

 

갈 3:2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아무리 예수그리스도가 죄인의 옷이 되기 위해 오셨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죄인임을 모르면 허사이다.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에서 죄인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대신 죽어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만 통용될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옷의 필요성을 알게 하려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들추어내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죄(수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여 어린 양의 피로서 수치를 가려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기보다는 율법을 지킴으로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에 바빴다.

 

마귀는 선악과로 아담을 미혹하였듯이 율법으로 미혹한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 죄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마귀는 이걸 역(逆)으로 이용한다.

어떻게 역(逆)으로 이용하는가 하면 인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서 죄인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의인이 되라고 부추긴다.

 

마귀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뱀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서 선악과를 먹도록 미혹하였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다.

순종하고 싶어도 죄의 종으로 팔린 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는 것처럼 미혹한다.

범죄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하는 것은 죄가 된다.

 

마귀는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 말씀을 지켜 낼 수가 있다고 미혹을 한다.

그래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 죄란? 가죽옷을 벗는 것이다.

어린 양의 희생을 잊는 것이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어린 양의 희생을 잊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성령은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한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에 수치를 가리기 위해 죽임 당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가죽 옷을 입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행위가 옷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행위도 옷이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행위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대신 죽임 당한 어린 양의 가죽 옷이지만,

인간의 행위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대신 말씀을 지켜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입혀 주신 가죽 옷을 입은 것이 된다.

하지만 자신이 말씀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이 된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인간의 행함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반대로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행함에 의미를 두게 된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왕의 아들에 혼인 잔치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왕의 아들에 혼인 잔치에는 왕이 준비한 옷이 있다.

누구든지 그 옷을 입고 잔치에 참석을 하게 된다.

 

왕이 준비한 옷이란?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대속의 가죽 옷이다.

천국에는 자기 옷을 입고서는 들어 갈 수가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들어간다.

 

계 19:7-8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재림하시 직전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는 신부들에게 빛나고 흰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신다.

하나님이 어린 양의 신부들에게 입혀주는 흰 옷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의에 옷이다.

천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흰 옷을 입혀주심을 입은 자들만이 들어 갈 수가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내가 만든 옷인가?

하나님이 입혀 주신 옷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