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칼럼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 오라

정낙원 2018. 3. 4. 13:51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오라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을 합니다.

그리고 생명나무 길을 막아 버립니다.

천사들로 하여금 그 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는 혹여라도 아담이 생명과를 따 먹을까봐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성질이 다릅니다.

성질이 다른 둘은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밀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가 없고,

거룩과 비거룩이 함께 할 수가 없듯이,

하나님과 죄인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함께 있으면 서로가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가 된 아담을 산 자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추방을 하신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 산 자는 산 자와 있어야 편하고 죽은 자는 죽은 자들끼리 있어야 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산 자들이 살아가는 에덴동산에서 죽은 자인 아담을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으로 보낸 것은 아담에 대한 배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사랑인 것입니다.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 한 것도 사랑인 것입니다.

 

아담은 범죄 한 후에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무 사이에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아담을 하나님 곁에 둔다는 것은 아담을 고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 바깥으로 분가를 시켜 버린 것입니다.

마치 시부모 눈치를 살피면서 어려워하는 며느리를 분가 시킨 것과 같습니다.

이는 아담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 분가를 하는 아담 입장에서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이신 하나님 입장에서는 엄청난 아픔인 것입니다.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당하는 아담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집을 떠나가는 탕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의 아픔보다 떠나가는 아담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아픔이 훨씬 더 깊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이 깊은 사랑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담이 그런 존재입니다.

 

사랑과 아픔은 비례합니다.

사랑하는 것만큼 아픔도 크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이 아담을 구원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아픈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담을 떠나보낸 하나님은 한시라도 쉼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신경이 집 떠난 아담에게 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을 가죽 옷을 입히고서 에덴동산을 내 보냅니다.

내어보내면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너희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서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식을 위해서 집 떠난 아담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벌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아담의 죄과를 도말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는 것도 하나님의 안식을 위해서입니다.

 

사 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아담의 죄를 도말한다고 합니다.

마치 아픈 자식을 곁에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용한 의원을 보내서 치료케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아래서 신음하는 아담을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이고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집을 떠나 온 아담에게 있어서 소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게 에덴동산을 떠나온 아담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 보낸 둘째 이유는 죽은 자는 생명과를 따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선악과 속에는 죽음이 담겨져 있고 생명과는 영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자기 안에 죽음을 담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죽음을 담고 있는 아담이 생명과를 먹고 영생을 하게 된다면 마치 중병에 걸린 환자가 죽지 않고 영원히 병으로 고통당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건 저주입니다.

재앙 중에서도 엄청난 재앙입니다.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지옥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을 담고 있는 아담을 죽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경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아담 속에는 불순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右)하면 아담은 좌(左)하고 하나님이 좌(左)하면 아담은 우(右)하게 됩니다.

죄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에덴동산에 그대로 두면 불순종하게 됩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내려진 명령은 생명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속에 죄가 생명과를 따 먹도록 역사를 합니다.

 

그럼 죄인으로서 영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천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죽은 아담을 살리는 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서는 선악의 법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아담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사람으로 다시 살리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사람이 되어야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 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생명나무의 길을 차단시킨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구원의 순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먼저 선악의 사람이 죄값으로 죽임 당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생명의 사람으로 살리심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아래서 태어남이 먼저이고 죄에서 건짐 받는 것이 나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린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본성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에덴동산입니다.

 

성도의 죽음을 소천이라고 하는 것도 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은 선악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사람으로만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죽음은 죽음의 사람을 이 세상에 묻어 버리는 것입니다.

땅에 반납하는 것입니다.

땅에 반납하고 나면 하늘에 몸을 주십니다.

 

고후 5:1-8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고전 15:51-54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죽음이란? 몸을 바꿔치기 당하는 것입니다.

헌 집을 주고 새 집을 받는 것입니다.

땅에서 난 죄의 몸을 주고 영생하는 하늘에 몸으로 바꿔치기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은 형벌적 의미가 있습니다.

죄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고하는 삶입니다.

 

에덴동산과 아담이 쫓겨난 땅은 극과 극입니다.

에덴동산은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새 소리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천국이지만,

범죄 한 아담이 쫓겨난 땅은 가시와 엉겅퀴가 몸을 찌르고 수고와 슬픔이 가득하고 애가와 애통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지옥입니다.

 

에덴동산을 맛본 아담으로서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던져 넣고 천국을 사모하도록 하셨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담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을 떠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을 떠나온 아담의 신앙이고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의 죄값을 치르는 형기를 다 마치고 출소할 때가 다 되었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수고하고 슬픈 삶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이고 나그네입니다.

더 이상 일을 벌리지 말고 하던 일 마무리 잘하시고 퇴근 할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